분명히 전쟁은 인간이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도 동물들은 인간이 일으킨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고 수난을 겪었습니다. 만약에 정말 동물들을 사랑하신다면 이 글을 읽는 것을 추천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읽으신다면 사진 뒤부터 읽으시길
※오타주의!
(수정 - 오타 일부 수정, 내용 일부 추가)
-동물들의 수난-
제1차 세계대전때는 말은 매우 큰 공을 세운 동물입니다. 말은 대포를 끌고 보급품들을 실어 날랐으며, 식량이 부족하면 고기로도 쓰였고 동부전선처럼 전선이 넓은 전투지역에선 기병대가 여전히 잘 운용 되었었고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전까지도 기병대를 보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때는 공을 세울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폴란드의 기병대와 전투를 벌인 독일 기갑 부대원의 말을 들어보면 대충 그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병대에게 일제 사격을 가했고 몇 분 뒤 연기가 걷혔고, 기병대 병사들과 말들이 팔다리가 잘리고 창자가 튀어나온 채 뒤엉켜서 비명을 질려 댔다.」
당시 유럽에는 동물원이 많았는데 독일의 동물원들은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습니다. 1945년에 연합군에 폭격을 받은 드레스덴의 동물원은 동물들의 우리가 박살이 나면서 수많은 동물들이 탈출을 했습니다. 독수리가 시체를 뜯고 원숭이가 나돌아다닌다는 신고가 6주일 후까지 들려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사자도 목격 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945년 베를린을 방어하던 일부 독일군은 소련군의 진격을 막다가 티어가르텐 공원으로 후퇴 했는데, 후퇴한지 몇 일이 지나지 않아서 독일군은 항복을 했습니다. 근데 항복을 한 이유가 티어가르텐 공원에 있던 굶주리고 다친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였습니다. 이유는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그런데 딱 마침 맨탈에 금이 크게 가던 독일 병사들은 그 소리를 듣고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 소련군 병사는 동물들보다도 고통스럽게 들렸던건 자신이 사육하다가 포탄을 맞고 죽은 하마 시체 옆에서 울던 사육사의 울음소리라고 하더군요.
잘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히틀러는 개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했을때도 푸들을 길렀는데 그는 푸들을 훈련 시켜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도록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기 전에 그 푸들은 도둑 맞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는 셰퍼드를 키웠고 전쟁이 터진 뒤에는 블론디라는 개를 키웠다고 합니다. 1945년 독일의 패망이 결정되자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는 먼저 청산가리를 자신의 애견인 블론디에게 먹였습니다. 청산가리는 매우 강력해 블론디를 고통 없이 죽였다고 합니다.
또 히틀러는 채식주의자라고 합니다.
(무슨 식물을 먹었길래 그런 발상이 튀어나왔을까?) 그는 동물이 고통 받는 것을 싫어 했는데 그는 바닷가재를 요리 할때 고통을 최대한 줄여서 요리 하게 법을 만들거나 사냥견을 이용해서 하는 사냥을 금지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냥견을 이용한 '인간'사냥은 허용 했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심복이자 유명한 전범인 하인리히 히믈러는 유태인, 외국인들을 강제 수용소에서 고문 시키고, 생체 실험을 하고, 가스실에 집어넣고, 구타하고, 총살하고,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면서 "인권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라는 식으로 극악무도한 짓을 자행했지만, 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새와 동물에게 총질을 하는 것은 오락거리가 아니라 완전히 살해 행위다. 우리 독일인은 동물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인권을 정말 개에게 주었다)
실제로 하인리히는 친위대에게 밤에 종을 달고 다니게 해서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동물들을 밣지 않게 했고, 심지어는 식량을 훔쳐 먹은 쥐들에게도 중세 독일 관습에 따라서 재판에 부쳐 얌전히 행동할 기회를 주자고 주장했습니다. 또 나치가 지배하던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하던 생체 실험을 금지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인체 생체 실험은 허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도 수용소만큼은 예외였나 봅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갇힌 수용자들은 언제나 배가 고팠습니다.
(언젠가 다른 글로 말했는데 밥을 톱밥빵을 주고 순무 스프를 주었는데 그 양마저도 매우 적었고 일은 하루 18시간 가까이 시켰다고 합니다. 유태인 강제 노동 수용소 기준으로 유태인들의 평균 수명은 단 3개월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스스로 채소를 길러서 먹거나 (이마저도 경비원들이 훔쳐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수용소 안에 동물들을 잡아닥치는대로 먹었는데 얼마나 많이 잡아 먹으면 원래는 수용소에는 길고양이나, 개들이 많았는데 수용소에 사람들이 가득차고 몇 개월만에 개와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쥐마저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 같은 경우는 빠르고 민첩해서 제대로 먹지 못한 수용자들에게는 잡기 어려운 대상이였는데, 그들은 독일 경비원들에게 총으로 개들을 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경비원들도 개들은 골칫거리로 생각하거나 사격 연습 표적 정도로 생각하고 개를 쏴주었고, 수용자들은 총에 맞은 개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용소에서 근무하던 한 경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가 쓰러지면 미처 죽기도 전에 수용자들이 달려들어 맨손으로 개를 잡이 뜯었다. 수용자들은 나중에 먹을 심산으로 개의 심장과 간과 허파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불을 붙히고 고깃덩어리를 나무토막에 끼워서 구웠다. 서로 큰 덩어리를 먹겠다고 늘 싸웠다.」
-신기하고 대단한 동물들-
(별 상관 없지만 사진이 귀여워서 가지고 왔다.)
(몇몇부대들은 마스코트를 부대원들이 기르는 동물들로 정하기도 했다.)
(캣톨릭 만세)
가끔씩 보면 지진이 날려하거나 대형 재해들이 발생하려하면 동물들이 먼저 반응하여 도망가거나 특이한 행동을 취하기도 하는데, 전쟁도 마찮가지였나 봅니다.
-정말 야옹이가 그랬을까?-
1940년 9월 런던의 성 오거스턴 교회에서 고양이에게 매우 신기한 일(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 부른다고 합니다)이 발생 했습니다. 교회의 주인인 로스 목사는 고양이를 기르는데 이 고양이와 3년전부터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고양이와 그녀의 새끼들을 교회 꼭대기층에서 키우게 했는데 사흘전부터인가 그녀는 그녀의 새끼들을 데리고 교회 지하로 내려가서 새끼들을 구석에 몰아 넣었다고 합니다. 영문을 모르는 로스 목사는 다시 교회 꼭대기층에 고양이들을 데려다가 놨으나, 그녀는 계속 지하실로 새끼들을 데리고 구석에 몰아 놓았습니다. 그러던 1945년 9월 8일 밤에 폭격으로 교회 꼭대기층이 날리가버렸건겁니다! 하지만 지하실에 숨어 있던 고양이 가족들은 무사히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이일은 영국 교회 전역에 퍼져나갔고 런던 주교도 인정했다고 합니다.
런던 주교 왈
「우리도 고양이처럼 꼬리를 세우고(?) 조용히 생각해 봅시다!」
-오리 공습경보-
1943년 3월에 독일 프리드부르크를 방문한 스위스인 기자는 프리드부르크 마을 사람들만의 비밀 공습 경보가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리 "프레다" 입니다. 그 기자가 그 마을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을 거리로 오리 한 마리가 꽥꽥 거리며 거리를 질주하자 사람들은 놀라서 재빨리 방공호로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몇분 뒤에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면서 무시무시한 폭격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 공습 경보인 오리 프레다덕분에 그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전히 공습을 피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리 프레다를 위해서 동상을 지을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프레다 왈
「꽥꽥 꽥~ ! 번역: 영국군이 온다 숨어라~!」
지질 줄 모르는 잡종견
1940년 11월 이집트 사막에서 한 영국 육군 중대에서의 일입니다. 그 육군 중대는 사랑스러운 잡종견 '샌디'를 기르며 부대 마스코트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엘알라메인 전투 이후 이동 중이던 샌디가 타고 있던 트럭이 독일군에게 포획되고 맙니다. 독일군들은 포로와 물자들은 들고 가고 샌디를 한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사막 한가운데에 버리고 가버렸고 모두들은 샌디가 죽었을줄만 알았으나 몇 일후 샌디가 영국 육군 중대 부대기지로 당당히 걸어 들어온 것입니다! 마음씨 착한 누군가가 도와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영리하고 용감한 샌디는 23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알렉산드리아까지 왔고 그 복잡한 시내와 꾸불꾸불한 길들을 지나서 용케도 중대 막사를 찾아서 도착한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샌디를 잡종견이라 놀리지 못할 것입니다.
중대 선임 상사 왈
「이 개는 지저분하고 잡종견처럼 보이지만 영국의 두둑한 배짱을 지닌 불도그 같았습니다, 그는 우리 중대의 자랑스러운 부대원입니다.」
잡종견이 이탈리아에서 벙커 하나를 돌파하는 공을 세우고 이탈리아 병사 10명을 생포하는 등의 큰 공을 세우자 미국에선 그 개에게 수많은 훈장을 주었지만 했지만 육군사령부에서는 동물에게는 훈장을 주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며 훈장을 회수 하기도 했다.
동물들은 전쟁을 겪고 싶어서 겪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잘 모르지만 인간 못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은 동물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이러한 재앙을 만들었고 그 재앙에 희생양이 된 것이 동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끝냅니다.
-출처- 쾅쾅탕탕 제2차 세계대전
첫댓글 인권은 개나주라지....진짜잖아?!
2차대전 동물하면 역시 그 곰친구 아니겠습니까?
???
보이텍..
@마더조선 아.... 대다난 곰돌이네요.
이것도 스토리가 있을텐데 못올린게 아쉽네요.
저때 독일은 진짜... 개팔자가 상팔자였군요;;
보이텍이 없어서 아쉽네요
말에 대한 파트는 보충해야할게 전체적으로 미군을 제외하면 차량을 보급의 main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수밖에 없었죠. 전투용 차량과 보급용 차량을 둘다 생산하면서 수요를 맞출수 있는 나라는 미국 말곤 없었습니다. 따라서 전투부대에서 말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야전에서 보급수단으로 말이 많이 이용되었고 특히 독일군이 그러했다고 하네요
맞습니다
독일군 전체 12사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단은 완전 차량화가 안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폴란드 기병대도 그렇고 다른 나라 기병대도 그렇고 기병대로 돌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할때만 말을 탑승하는거죠 본문에 나온 폴란드 사례는 독일군에 항복할 대신에 죽겠다는 다짐하에 돌걱한거죠
이글의 주제는 동물이였고 어떻게 쓰였냐보다는 "동물들도 이렇게 죽어나갔다." 라는걸 말하려고 부가설명을 쓰다가 이상하게 써졌네요.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