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봐요
허영옥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머니 뱃속에서 연결된 탯줄이 서로
의 필연에 의해 분리되는 순간부터 자아가 형성된다. 그 순간부
터 하나의 인격을 가진 객체로써 어머니와 나라는 인간관계가 형
성되어 어떤 언어로든 상대를 불러야하는 호칭이 생기게 되는 것
이다.
어머니란 말도 호칭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이 세상을 처음 접하게 되면 맨 먼저 부모와 친척 그리고 이
웃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소집단 일원이 된
다. 만남이 이루어지면 차츰 자기를 보호하는 보호본능이 생기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 배움이 학교에서 가정에서 이루어진
다. 이 모든 것은 생명체를 가진 생물의 본능이요. 세상에 태어나
서 삶을 살아가는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살아가는데는 법
과 질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 관계에서 법만을 앞세
우고 살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먼저 도덕이나 질서가 생활화되
고 최소한의 기본예의가 지켜져야 서로간의 편안한 대화가 이루
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십이 되어서야 뒤늦게 깨닫고 남을 부르는 호칭에 대하
여 예를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나온 세월 동안은
남을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부드럽지 않아서인지 주위에 많은 사
람들이 있어도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
다. 그것은 나의 인격이 부족해서도 이지만 숙련되지 못한 언어
도 크게 작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호칭 때문이었는지 남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쉽
게 친해지지 못해 아쉬움이 있을 때가 많았다. 특히 ‘언니’와 ‘사
모님’이라는 말이 익숙지 못하다. 그것은 자존심이 강해서이거나
무지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려서부터 부르지 않던 호
칭이라 쑥쓰러워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큰오빠가 결혼을 하여 새언니가 생겼을 때의
일이다.
새로운 식구가 생기게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였
다. 다른 형제들은 올케언니에게 ‘형수님’ ‘언니' 대수롭지 않게
호칭을 불렀다. 나도 한번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 입안에서만 빙빙 돌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새 식구가
된 언니는 자기를 따르는 시누이와 시동생을 예우해서인지 도련
님이니,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호의적이고 친절하게 대했다. 물론
나에게도 호칭은 아가씨라 불러 주었지만 듣기만 해야 했던 나는
새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그도 역시 나처럼 언니라
는 호칭에 익숙지 않은지 대화의 내용만을 이야기한다든지 가끔
씩 나에게 ‘셩님'이라고 농담처럼 부른다. 동생이 나에게 부르지
못하는 마음을 나만은 알 수 있다. 아마도 동생이 지금 당장 언
니라고 부르면 우린 서로 쑥쓰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
온 탓인지 사회생활을 하다 언니라는 호칭을 나에게 부르는 사람
이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상대가 대견해 보이기까지 한다.
부부의 호칭이나 형제간 그리고 남의 호칭을 부르는 것은 처음
시도가 어려울 뿐이라고 한다. 한두 번 부르고 나면 가슴이 후련
해지고 어떤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고 하는 데 나는 아직까
지 부드럽게 사용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 남편을 부
르는 호칭이다. 격에 맞는 호칭을 잘 부르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남과의 대화 도중 상대가 부르는 호칭이 귀에 잘
들어온다.
남에 격을 높인다고 나의 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자신의 인격이나 교양이 한층 더 돋보이고 자신의 격이
높게 되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아내에게 남편이 ‘중전’하고 부르면 남편은 자연
스럽게 왕이 되는 것이 아닌가. 호칭도 하나의 예(禮)라고 할 수
있다. 예의(禮儀)는 지키면 좋고 받으면 더 기쁘다고 하는데 아직
도 사모님과 언니라는 호칭이 숙달되어 있지 않고 남편에게도 여
보라는 호칭을 하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 용기를 내어 부르고는
있지만 아직도 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호칭을 부르고 나면 주위
를 휘 둘러보게 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한 좌석에서
하는 내 농담 속엔 언니와 사모님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내
생활에 접목을 위해서.
남편이 자영업을 하는 관계로 2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며 살았다. 늘 같이 있다보니 상대의 일거
수 일투족에 움직임을 훤히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날씨
가 맑으면 맑아서, 흐리면 흐려서의 일로 서로의 의견이 달라 언
쟁이 생길 때가 많다.
어느 날 남편과 사소한 언쟁이 있던 날이다.
우리는 언쟁을 하다가도 손님이 들어오면 둘만이 하던 대화와는
달리 상냥한 연극 배우가 되어야 한다. 손님이 돌아가면 다시 전
투를 시도하지만 끊겼다 이어졌다하는 대화로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무엇을 가지고 언쟁을 하였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을 묻
다 시원하게 언쟁 한 번 못해보고 흐지부지 끝이 난다.
그날 역시 언쟁이 잠시 중단되고 있던 찰나 건장한 남자 한 분
이 들어왔다. 다짜고짜 “장화 하나 주슈”라고 하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며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보더니 그럼 “꽃신”이라고 하면
알겠소, 그제 서야 대충 말뜻을 알 것 같았다. 그땐 처음 듣는 단
어의 생소함에 터지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텍스’라고 상용하지만 사람마다 자기가 편히 쓰
는 낱말이 있었던 것이다. 평상시엔 손님이 와서 TV에서 보았는
데 탈렌트 000이가 선전하는 OO이라든지, 화끈화끈하고 썬데 붙
이는 것이라든지 하며 비슷한 용어만 듣더라도 순발력 있게 알아
듣곤 하였는데 황당한 단어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웃
는 모습을 보이는 실례를 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
아 서랍을 뒤적였다. 그래도 웃음이 진정되지 않아 입술이 헤지
도록 꽉 물고 남편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날 봐요 이게 장화 맞
아요” 작고 힘찬 소리로 물었다. 의미 심장한 웃음을 웃으며 고
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피임도구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하여 얼떨결에 불렀던 호칭은 우리의 애칭이 되었고 지
금껏 불편 없이 부르며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 선배로부터 남편을
찾는 전화가 있어
“날 봐요 전화 받아요”라고 스스럼없이 하였던 그 호칭이 남편
과의 모임에 화두(話頭)가 되어 선배들이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
다.
‘여보’라는 말은 여보시오의 낮춤말이라고 하는데 남들이 사용하
는 여보라는 말이 시작이 늦어서인지 불편함이 없어서인지 선뜻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왠 일인지 나는 요즈음 여보가 아닌 대
상의 사람들에게 여보를 남발하고 정작 불러야 되는 사람에게는
부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촌스럽고 구수한 날봐요가 부
르기 편해서 좋다.
나이 탓인 줄은 몰라도 잘난 사람이나 재력이 풍부한 사람보다
예를 지킬 줄 알고 편안한 사람이 좋다. 만나면 반갑고 안보면
보고 싶은 사람, 자주 보기보다는 그리워서 찾아지는 사람이 더
욱 더 좋다. 이런 사람을 내 인생에 길동무로 만나게 된다면 나
머지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내 인
생에 허물을 가장 많이 벗고 있는 시기가 요즈음이 아닌가 싶다.
많은 돈을 주고 사는 값비싼 보석도 재물(財物)이다. 그러나 상
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슴에 재
물(财物)을 쌓아 두고 사는 사람이다. 곡간에 재물은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줄어들지만 가슴속에 재물은 퍼내도 퍼내
도 줄지 않는 재물이다.
2002. 12집
첫댓글 상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슴에 재물(财物)을 쌓아 두고 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