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98. 환단고기의 제3왕조 시대의 고조선 영역. 고조선은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지역까지 퍼져 있었다.
이병도는 낙랑군 수성현이 황해도 수안이고,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뻗어 있었고, 황해도와 경기도가 대방이었다고 논문을 발표하였지만, 삼국사기 영양왕조의 수양제 침략견로에 보면 대방군의 모든 지역과 낙랑군에 속한 대부분 지역이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어서 한사군과 후의 낙앙군 및 대방은 고구려 서쪽 국경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밖에도 수없는 잘못된 기록이 있어서 필자는 이같은 한국사학자들의 잘못된 기술을 바로잡고자 이 글을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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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전 역주 환단고기(桓檀古記) 302-304p 고조선의 영역에 대해서 펌한다.
....그런데 이 운장(雲障: BC 365년 燕나라가 고조선의 국경을 공격한 곳)은 이후 BC 195년에 번조선의 준왕이 망명객 위만을 받아주면서 그곳 국경 수비대장으로 임명한 곳이다.
이처럼 운장(雲障)이 번조선(番朝鮮) 땅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제3왕조 시대 내내 고조선의 서쪽 국경은 난한(灤河)를 훨씬 넘어서 위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의 강역을 짐작케 하는 국경지대의 또 다른 지명은 만번한(滿番汗)이다. 몇몇 중국 사서가 기록한 ‘진개(秦開)의 공격’ 사건에 이 지명이 등장한다.
연(燕)은 장수 진개를 보내어 그 서쪽 지역을 공격하게 하고 땅 2천여 리를 빼앗았다.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를 삼으니 조선은 마침내 약화되었다(『삼국지 위서동이전』: 燕乃遣將 秦開 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사기(史記)』와 『鹽鐵論』의 기록은 『삼국지』와 다소다르지만, 중국이 승리한 이 전쟁을 세 사서가 모두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만번한(滿番汗)도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일대이다.(*일부 학자들은 만번한을 지금의 요령성 개주, 해주 지역으로 추정한다(KBS TV <역사스페셜>, “첫나라 고조선의 수도는 어디였나”), 이는 연날의 침략 후 백여년이 지난 BC 194년에 위만이 강탈한 왕검성을 요동반도로 잘못 비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왕검성은 요동이 아니라 훨씬 서쪽인 현 하북성 창려현에 위치하고 있었고 만번한도 하북성에 위치하였다.
고조선의 강역이 대륙 깊숙이 뻗어 있었다는 사실을 고고학 발굴로도 입증된다. 20세기 후반에 발굴된 하가점(夏家店)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하가점은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의 한 촌락으로 건조한 기후 때문에 유적과 유물이 빗물에 유실되지 않고 시대별로 층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하가점 유적지의 상층에서 유목민 문화가 나타났고, 하층에서 BC 2,400-BC 1,500년에 걸쳐 농겨집단의 청동기 문화가 나타났다. 이 하층에서 비파형 청동검이 나왔는데, 그것은 청동기의 대표적 유물로서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검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하가점 하층문화는 고조선 문화이고, 하가점은 고조선 지역인 것이다.
이처럼 문헌 기록으로 보나 유물로 보나, 고조선은 한반도에서 요서에 이르는 드넓은 땅을 차지한 동북아시아의 대국이었다.
고조선은 동북아의 대국으로서 70여 개의 크고 작은 제후국을 거느렸다. 『단군세기』를 비롯하여 『제왕운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응제시주』, 『규원사화』 같은 국내문헌 뿐 아니라 중국 사서들에 그 사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역사책에 기록된 제후국만 해도 시라(尸羅: 길림), 고례(高禮: 고구려) 즉 고리국(藁離國), 옥저, 부여, 예(濊), 맥(貊), 남국(藍國: 북경 부근), 숙신(肅愼), 청구(靑丘), 낙랑(樂浪), 여(黎), 임둔(臨屯), 현도(玄菟), 고죽(孤竹), 영지(令支), 수유(須臾), 엄(奄: 산동성 북부), 서(徐), 회(淮), 추(追), 양이(良夷), 양주(楊州), 유(兪), 진번(眞蕃), 졸본(卒本), 비류(沸流), 해두(海頭), 개마(蓋馬), 구다(句茶), 송양(松壤), 조나(藻那), 주나(朱那), 행인(荇人) 등 30개국이 넘는다.(*윤내현 『고조선 연구』 441쪽)
『단군세기』에 의하면, 고조선의 단군은 제후국을 순회하였고, 제후들은 단군에게 조공을 바쳐 그 속국임을 자인하였다. 단군은 제후들을 불러 삼신상제님께 올리는 천제에 참여시키고 함께 적국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과 일제는 고조선의 제후국들을 모두 고조선과 무관한 별개의 나라인 양 서술함으로써 지금의 중국 본토 일부와 만주와 한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대제국 고조선의 면모를 은폐하려 하였다.(*참고로 한국의 식민사학자들도 고조선을 신화라고 격하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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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약소국 연나라가 강대국 고조선에 인질로 보냈던 진개가 연나라로 돌아간 이후 고조선을 침략하여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까지 빼앗았다(요동은 춘추전국시대 말 소진이 연나라의 동쪽에 조선 요동이 있다고 한 점에 비추어 빼앗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진개는 고조선에서 빼앗은 땅에 연장성을 쌓았는데, 1세기 후 진시황이 연나라를 정복하고 연장성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만리장성은 갈석산이 있는 진황도시 산해관에서 북경의 팔달령을 지나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으므로, 진개가 빼앗은 땅이 이 만리장성 안에 있었고, 이 만리장성 안에 어양, 우북평, 요서 및 요동이 존재한 것은 아닌지? 사학자들의 연구가 필요하다. 필자의 견해로 당시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및 요동은 모두 진장성 서쪽에 이치해 있었을 것으로 비정하고 있다. 고조선의 유물인 명도전이나 고인돌이 모두 어양, 우북평, 요서 및 요동을 포함한 지역까지 펼쳐저 있음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자들이 고조선의 역사를 신화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놈들의 짓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춘추전국의 연나란는 인정하면서 연나라에서 인질을 받았던 강대국 고조선은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학자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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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를 보면, 고루려는 고구려 이전 고조선과 부여가 한나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은 것을 다물이라고 하였다. 고구려 초기 5대 모본왕과 6대 태조왕은 한나라와 태원,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지방에서 한나라와 싸워 이겼고, 태조왕은 요서에 요서10성을 쌓았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는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빼앗았던 땅이며, 연장성(진장성) 안쪽에 있는 땅이다.
고구려는 진장성 안쪽 태원, 상곡, 어양, 우북평(지금의 북경으로 추정), 요서에서 한나라와 싸웠던 것이다. 이 지역은 지금의 북경보다 훨씬 서쪽의 지역이며, 연나라 침략 전 고조선의 영토이었고, 만리장성 안쪽의 땅이다. 이는 고구려가 압로강 중류 비류수에 나라를 건국한 것이 아니고, 위나라 관구검이 최초 고구려를 침략한 요서 비류수(관구검이 압록강 비류수에 처음 침략한 것이 결코 아니다)에 나라를 건국한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