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박돈규 기자]
배우의 앙상블이란 이런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Mystic River·12월 5일 개봉)에서 숀 펜,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 등 세 연기파 배우는 보색(補色)처럼 서로 동떨어진 캐릭터를 빚어내지만 나란히 놓일 때면 더없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든다.
이 절묘한 앙상블은 삼각형 중에서도 역삼각형의 형태라서 이야기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지미(숀 펜)와 션(케빈 베이컨), 데이브(팀 로빈스)는 어릴 적 미국 보스턴의 허름한 골목길에서 하키를 하며 어울리던 친구였다. 데이브가 형사를 가장한 사내에게 납치되고 성폭행을 당하다 사흘 만에 탈출한 사건이 일어난다.
데이브는 상처 때문에, 지미와 션은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서먹한 사이가 돼 버린다. 25년 후. 지미의 딸이 살해되자, 형사가 된 션이 사건을 맡고 데이브가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셋은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영화는 평소처럼 하키를 즐기는 열한 살짜리 소년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공이 하수구 구멍으로 빠지자 허탈해진 이들은 영원한 우정을 바라며 덜 마른 시멘트에 각자의 이름을 새긴다. ‘지미(Jimmy)’ ‘션(Sean)’에 이어 마지막으로 차례가 온 데이브는 ‘Da’까지 쓰고 납치된다. 25년 뒤에도 그 시멘트 바닥에는 쓰다만 이름이 흉하게 남아 있다. 우정은 일찌감치 깨지고 그날의 악몽 같은 기억만이 그들을 영원히 괴롭힌다.
보스턴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강에서 제목을 빌린 ‘미스틱 리버’는 어릴 적 받은 상처가 피해자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파장을 미치는지 보여주려고 애쓴다. 중요한 건 누가 지미의 딸을 죽였는가가 아니라, 세 소년의 인생을 통째로 삼켜버린 그 사건이다. 하수구는 소년들의 공을 무수히 삼키며 강으로 흘려보냈지만, 세월은 그토록 많은 망각의 구멍을 지니고도 그날의 잔상(殘像)만은 지우지 못한다. 그 고통과 모순을 그리면서 영화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되뇌인다.
배우는 배우를 볼 줄 안다. 명배우 출신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출 경험이 있는 세 주인공 외에도 ‘트루먼 쇼’의 로라 리니, ‘매트릭스’의 로렌스 피시번, ‘폴락’의 마샤 게이 하든 등 연기파들을 모아 ‘배우들의 영화’를 만들었다. 캐릭터의 부피를 키우고 에너지를 얹을 줄 아는 그들이 서로 충돌하며 빚어내는 긴장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이 영화가 왜 그렇게 호평받았는지에 대한 답이다.
광기와 이성과 무기력. 세 주인공을 지배하는 특징들이다. 딸의 죽음에 스스로 심판자를 자처하는 지미는 광기를, 옥살이를 한 지미의 어두운 전력을 의심하는 션은 냉정한 이성을, 어릴 적 사건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는 데이브는 무기력을 각각 양식삼아 하루하루를 버틴다. 자신의 출연작들에서 영웅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제 일상의 인물들로부터 광기를 찾아낸다. 특히 숀 펜은 딸의 시신을 확인하고 울부짖는 장면 등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순식간에 넘나드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미스틱 리버’는 돌멩이 하나가 강물 전체를 흔들듯이 어떤 범죄의 파장이 무고한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강물로도 세월로도 죄는 씻기지 않는다. 영화는 비극일 수밖에 없지만 끝은 열려 있다. 데이브가 끝내 새기지 못한 이름처럼.
첫댓글 아-- 저도 이거 보고 싶어요!~ 아까 중앙일보에도 소개글 나와서 봤는데 되게 재밌을 것 같은 영화!! 나오는 배우들도 너무 멋져요!~ +_+ 케빈 베이컨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