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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신학교에는 성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념품이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앉으셨던 의자와 교황님께서 입으셨던 제의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한 것은 제게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 신학교를 방문한 것은 신학교에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대학교에서는 사회에 공헌이 큰 인사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곤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 추기경님께는 큰 영광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대학교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세례자 요한에게는 큰 영광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직접 오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줄 때 물은 ‘정화’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물은 ‘성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물은 성수(聖水)가 된 것입니다.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신앙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이 머문 자리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3번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동방박사의 경배입니다. 이방인인 동방박사가 황금, 유향, 몰약으로 예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구세주가 아닌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나타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은 1784년 한국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입니다. 단순한 정화의 상징인 세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구원의 성사가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내려오면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타볼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야, 모세와 함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게 변모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곳에 천막을 짓고 살고 싶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거쳐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변모는 죽음을 넘어 부활하심으로서 이루어졌습니다.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세상의 것을 버리고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신앙인이 가야할 길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변화된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조재형신부)
2021년 다해 주님 세례 축일
<사춘기 반항은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신호>
복음: 마르코 1,7-11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날입니다. 30년간의 사람의 아들로 사는 삶을 마감하고 3년간의 하느님 아들로 사는 삶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여기서 “너는”이라는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직접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이심을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뜻입니다.
왜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서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그런 인정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인간의 성장 과정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당신을 따라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인간이 아는 것은 당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기 이전의 상태를 인간 성장 과정에 빗대어보면 ‘사춘기’입니다. 많든 적든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4~5학년이면 사춘기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부모에게 대한 반항입니다. 사실 부모가 너무 잘난 사람이라면 자녀는 더 큰 사춘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김미경 강사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자퇴하였습니다. 사실 자퇴지만 퇴학 이틀 전에 학교에서 전화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자퇴한 것입니다. 아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스트레스가 컸던 것입니다. 5년 동안 엄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아이도 그래서 지옥과 같은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아들인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니 열등감과 무기력감에 피시방만 전전하는 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입시학원에 다니다가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무언가 의욕적으로 하고 싶어 해서 기뻤지만, 입시 석 달 남겨놓고 예대를 가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엄마는 웃겨서 말이 안 나왔지만 그래도 뭔가 하려고 하니까 시켜주었는데 아이는 음악성이 있는지 악보도 못 보면서 한 곡을 몽땅 외워서 시험을 보고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치다가 들어온 학생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 년을 겨우 버티다 또 자퇴하였습니다.
무기력증에 시달리다 엄마가 믿어주는 것에 죄송했는지 이번엔 일본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합니다. 엄마는 기쁜 마음에 돈을 대 줍니다. 아이는 일본에서 성당에 다니게 되었고 다시 노력해서 음대에 들어갔습니다. 어쩌면 왜 태어났는지 성당을 다니며 알게 되었을 수도 있고, 그때부터 하루에 6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는 모르지만 아마도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미경 강사는 사춘기를 길게 앓고 있는 아들이 자신에게 계속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들렸다고 말합니다.
“엄마,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나 진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근데 나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사춘기는 ‘왜 태어났는지’ 알려주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흔히들 ‘사춘기에 맞는 부모의 대화법’이란 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춘기는 ‘왜 태어났는지’를 묻는 시간입니다. 왜 태어났는지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왜 태어났는지 가장 처음에 묻는 때가 언제일까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입니다. 물론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아기는 그저 불안해서 울기만 합니다. 다행히도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는 엄마가 금방 해결해 줍니다. 젖을 줌으로써 자신이 엄마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기는 엄마 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됩니다. 엄마, 아빠처럼 되면 됩니다.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고민이 다시 시작되는 때가 사춘기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사춘기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굳이 부모에게 반항하고 무기력하고 고립되는 시기가 성장에서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조론에서는 이 시기가 참 부모를 찾으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춘기가 없다면 하느님을 굳이 찾을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때 참으로 세례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때 부모가 자신이 부모임을 강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너는 내 자녀다”라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사춘기가 되면 자신들도 아기를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되며 더는 부모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아기의 모든 문제가 부모를 만나면서 해결되었던 것처럼 사춘기 때의 모든 문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하느님만이 다시 생명을 주시고 몸을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부모처럼 되려고 하는 것으로 모든 고민이 사라지듯이, 세례를 받으면 하느님처럼 되려는 것으로 모든 고민이 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기 시작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바로 시작하신 두 가지는 ‘자기 자신과 싸움’과 ‘아버지 뜻의 실현’입니다. 성령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에게 자신이 부모임을 믿으라고 주는 젖과 같습니다. 우리는 성체 성혈을 먹고 마시며 당신 생명을 양식으로 주시는 그분을 우리의 참 부모로 확신합니다.
저도 사춘기를 극복한 것은 아마도 ‘나는 누구인가?’를 넘어선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에 대한 어쩌면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였습니다. 그때 자주 하던 말이 “외롭다, 외롭다!”였습니다. 한 개신교 친구가 “너 성당 다니잖아. 예수님이 옆에 계시는데 뭐가 외로워?”라고 했을 때 저는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성체를 영해도 그분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혼자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정말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이 믿어졌고 그 이후로 사춘기의 반항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사춘기는 하느님을 찾으라는 신호였던 것입니다.
요즘 계속 같은 말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첫영성체와 세례가 진정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우리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그렇고 특별히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고 그래서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처럼 편안히 하느님처럼 되려는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합시다. 사춘기는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진화론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아버지께 자녀임을 인정받도록 주님께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세례의 의미입니다.
https://youtu.be/2XNWSGB-PCg
유튜브 묵상 동영상(전삼용신부)
2021년 01월 10일 일요일
[백] 주님 세례 축일
대영광송신경교중
공현 대축일을 1월 7일이나 8일에 오는 주일로 옮겨 지내는 곳에서는, 주님 세례 축일은 바로 다음 월요일에 지낸다. 이때 신경은 바치지 않는다.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 성령을 내리시고,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만민의 주님께서 전해 주신 평화의 복음을 전하기로 다짐합시다.
입당송
마태 3,16-17 참조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또는>
하느님, 외아드님께서 저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으니
겉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에서도 저희가 그분을 닮아 새로워지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는 성실하게 세상에 공정을 펴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강조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신다(복음).
제1독서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물가로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5,1-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2 너희는 어찌하여 양식도 못 되는 것에 돈을 쓰고
배불리지도 못하는 것에 수고를 들이느냐?
들어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좋은 것을 먹고 기름진 음식을 즐기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니
이는 다윗에게 베푼 나의 변치 않는 자애이다.
4 보라, 내가 그를 민족들을 위한 증인으로,
민족들의 지배자와 명령자로 만들었다.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르고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오리니
주 너의 하느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그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신 까닭이다.
6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7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9(28),1ㄱ과 2.3ㄱㄷ과 4.3ㄴ과 9ㄷ-10(◎ 11ㄴ)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제2독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38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9
사랑하는 여러분,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르 9,7 참조
◎ 알렐루야.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알렐루야.
복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
그때에 요한은 7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9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1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구원자이신 주님, 주님의 세례로 거듭난 교회를 언제나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어, 주님께 받은 은총을 사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사용하게 하소서.
2.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세계 정세 속에서 갈등을 겪는 저희 겨레를 살펴 주시어, 남북이 갈등을 풀어내고 함께 평화를 이루도록 도와주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자이신 주님,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어, 그들이 주님의 위로를 통하여 하루빨리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4. 가정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저희 가정에 필요한 은총을 풍성히 베푸시어, 위기를 겪는 가정은 주님 안에서 다시 화목하게 하시고, 단란한 가정은 더욱 굳건해지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사랑하시는 성자께서 세상에 드러나셨음을 기념하며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어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이
세상의 죄를 씻으신 성자의 희생 제사가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3 : 주님 세례(주님 세례 축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새로운 세례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하늘의 소리로 주님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 계심을 믿게 하셨나이다.
또한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의 종 그리스도에게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32.34 참조
보라,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보았다.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
영성체 후 묵상
▦ 베드로 사도가 말한 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아 새로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거룩한 양식을 가득히 받고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오니
저희가 성자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며
주님의 참된 자녀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하느님이시다.’라고 우리 신앙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마주합니다. 마치 어린아이와 늘 함께 있는 보호자처럼 그분께서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느님으로 오십니다. 성자의 강생은 나약한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세례는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동참하는 가장 아름다운 결심이며,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례가 하느님과 만나는 문이라면,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세례는, 이 세상을 구하러 오신 성자께서 성부와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나약한 우리에게 드러내어 보이신 것입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어린아이의 모습을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셨듯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늘 함께 계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세례는 영광이고, 예수님께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하시는 사랑의 일치입니다.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성부께 순종하시고 예언을 성취하시고자 택하신 겸손의 표양입니다. 성부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에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간인 우리도 주님의 세례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하느님으로 함께하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내 삶의 중심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놓는 것처럼, 세례를 받은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고 마쳐야 합니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