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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마...막걸리~!!” 이것은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00분회 농민 형님께서 나를 기억하며 내뱉은 한 마디. 지난 8월 안동교구 소입식 운동 10주년 취재를 갔을 때였다. "이런 몹쓸 이미지"라고 가슴을 치면서 기억은 5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사실 나는 안동교구 가농과 인연이 좀 있다. 서울대교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 간사로 있을 때, 1년에 한 번 씩 학생들과 함께 여름생태농촌활동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입사하자마자 이름도 생소한 ‘생태농활’에 끌려갔고, 그 10주년 행사를 마지막으로 퇴사했으니, 농활로 시작해 농활로 끝난 7년인 셈이다. 농활을 통해 참 많이 배웠다. “생태’가 뭐에요?”라고 묻던 나는 학생들과 함께 농활 기획을 하고, 내용도 만들어야 했기에 좀 열심히 공부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농민들 곁에서 보고 느낀 것이 컸다. 나는 곧 ‘생태’라는 화두에 매료되어 생태적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풋~. 하지만 일은 일이고 결심은 결심. ‘소통’이라던가, ‘관계의 회복’은 자료집과 머릿속에 갇혀 있었고, 농활은 일단 잘 치르고 봐야 할 ‘행사’였다. 농사일만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열흘 만이라도 농민들의 삶을 체험해보자는 목적은 저 멀리, 주최 측의 일원인 나에겐 그 소통과 나눔도 짜여진 틀 안에서, 내가 그리는 그림대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었다.
농활 초기, 00분회 형님들과 갈등이 생긴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마을에서도 일보다는 농활대원들과 술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고, 농활을 마무리하는 해단식에서는 무슨 프로그램이 진행되든, 참여하기보다는 따로 술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화가 났다. 프로그램이 각본대로 일목요연하게 흘러야 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두 번 쯤 그런 모습에 화를 냈고, 다른 마을과는 달리 00분회에서는 마음을 편히 내주지 못했다. 2008년이니까, 마지막 바로 전 농활이었다. 하루씩 학생들이 머무르는 마을을 방문하는데, 그날도 점심을 먹고 1시 쯤 00마을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오전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중이어서 신부님과 나는 마침 숙소를 돌아보던 한 농민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막걸리와 함께. 그날 나눴던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내가 참 부끄러웠다는 것은 잊을 수 없다. 처음으로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면서 그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옹졸하고 좁은 마음이 미안해졌다. 이른바 ‘막걸리 소통’은 그들이 선택한 살던 대로의 방식이었다. “농활이 끝나면 술 말고는 기억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탄식했지만, 농활이 끝난 후에도 00분회는 학생들과 가장 돈독한 관계를 이어갔다. 사람보다 일이 먼저였던 해묵은 내안의 틀 하나 어쩌지 못하는 나였다. 생태니, 관계의 회복이니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강요하려 했던가. 오후에 논의 피를 뽑으러 나갔다가 새참으로 먹었던 빨간 비빔국수와 막걸리는 참 맛있었다. 형님들이 인근을 지나가는 마을 분들을 자꾸 초대하는 바람에 우리 조원들은 몇 번이나 주저앉아야 했다. 덕분에 논에 기어서 들어갔다가, 기어서 나와야했지만 그때의 행복했던 마음은 잊을 수 없다. 그 해 해단식에서, 그리고 그 다음해 마지막으로 참여한 농활에서 나는 막걸리 병을 들고 다니며 유독 00마을 형님들을 챙겼다. 성격체험 극과 극. 지난 8월 안동 농은수련원 강당, 농활 발대식과 해단식을 치렀던 바로 그 자리에서 꼭 4년 만에 00마을 형님들을 만났고, 나를 하필 ‘막걸리’라고 기억해줬다(많이 먹은 건 사실이지만...그렇지만....). 가톨릭농민회를 하면서 세례를 받은 **형님은 조신한 신자가 되어 미사에 참여한 후, 음식을 마련하는 곳 바로 옆자리에서 신나게 막걸리병을 날랐다. “막걸리 한 잔 해야지?” 다른 참가자들은 축하공연에 집중하고 있었고, 소고기 잔치는 공연 후에 시작한다고 했지만 아랑곳 없었고, 나도 기꺼이 동참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최 측은 우리가 굉장히 얄미웠을지 모르겠다. 느낌 아니까. 하지만 미안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시간, 신나게 막걸리 잔을 채우던 형님들과 가장 반갑게 4년만의 인사를 나누는 방법이 그것이었으니까. 정현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취재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