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팬들이 한 번쯤 꿈 꿔 봤을 순간으로 우승을 꼽는 이들도 있겠지만, 시구 역시 가장 고대하는 순간 중 하나이지 않을까? 선수 응원가 공모전에서 당선된 최승연 씨는 지난달 1일, kt전에 앞서 그 꿈을 이뤘다. '성덕(성공한 덕후)'이란 바로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LG와 사랑에 빠진 그녀
집에서 잠실 야구장이 가까웠던 덕분에 LG 트윈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최승연 씨는 성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잠실의 주인은 LG죠"라고 말한 그녀가 매 경기 챙겨보기 시작한 때는 2014년부터였다. 그녀는 시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모습을 보고 반하게 되었다.
"2014시즌 하루하루가 기적 같았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라며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문선재 선수를 꼽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이 문선재 선수와 닮아 좋아한다는 그녀의 유니폼에 처음으로 이름이 새겨진 선수도 문선재 선수의 이름 석 자였다. "프로 입단 7년 차인데 장타력, 주력, 수비능력, 주루센스까지 여러 가지를 갖춘 선수잖아요. 문선재 선수 특유의 법력도 좋아요"라고 말하며 요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멋진 활약 계속해서 보여주길 바란다고 응원의 한 마디도 남겼다.
이천웅 선수는 이번 시즌 개막전에서 처음 봤는데 팀이 지는 가운데 추격을 알리는 2점 홈런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주루나 수비에서 이천웅 선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 반하게 되었다며 "신바람 야구 느낌도 나고, 적극적인 공격 스타일이 멋있어서 기대가 많이 되는 선수에요"라며 1군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또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지다
그녀에게는 단짝이 있다. 바로 이번 응원가 공모에 도움을 주었던 정민경 씨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야구를 보며 더욱 가까워진 그들은 어느새 떼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제가 처음 공지를 보고 바로 민경이가 떠올라서 전화했는데 마침 민경이도 이미 그 공지를 보고 저랑 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원래 야구와 관련된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때다 싶었죠."
가장 먼저 응원가에 맞는 곡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각자 응원가에 맞는 곡을 생각한 뒤,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개사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Swing Baby'는 많은 팬에게 익숙한 리듬이고 '스윙'이라는 가사가 들어가서 야구와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 이외에도 IKON의 '리듬 타(RHYTHM TA)', 레인보우의 'Whoo' 등 총 10개의 응원가를 만들어 봤지만 'Swing Baby'로 결정했다.
응원가 제작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첫날은 곡을 선정하고 개사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생각보다 저희가 만든 응원가가 괜찮은 것 같아서 욕심이 생겼어요. 개사하면서 안무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어려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걸 다 했는지 신기해요"라고 말하며 원곡의 MR에 맞춰 응원가를 부르면서 녹음하고, 가사와 리듬에 맞는 안무를 만든 뒤에야 동영상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동영상까지 찍을 생각은 없었지만, 안무를 만들면 가산 점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응원가에 맞는 안무까지 추가하면서 스케일은 점점 커졌다. 차별화를 위해 유니폼은 물론 응원수건까지 두르고 응원봉을 흔들며 응원 영상을 만들었다. 응모 영상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응원가 제작에 매진했다. "저희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몰랐는데 동영상을 다 완성하고 보니까 배경이 아침부터 밤으로 변해있는 것을 보고 많이 웃었어요.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었습니다!"
꿈만 같던 순간들
그녀와 친구 민경 씨는 응모 직후부터 당선 공고까지 응원가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기대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뽑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더라고요! 저희가 만든 응원가가 야구장에 울려 퍼질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고, 온종일 둘이서 응원가 얘기만 했던 것 같아요"라고 답하며 그 날부터 매일 시구와 시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순간(시구와 시타)은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꿈만 같아요"라며 시구, 시타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경기 전 시구와 시타를 준비하던 때까지만 하더라도 실감을 못 하고 있었지만, 잔디를 밟는 순간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봉중근 선수가 뒤에 있는 것도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요"라며 전광판에 응모했던 안무 영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민망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승연 씨는 시구하던 날로 돌아간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시구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제가 약간 패대기를 쳤던 것 같아요. 연습 때는 잘 됐는데 그 점이 아쉽네요"라며 이준형 선수와 함께 한 연습도 좋았지만, 만약 시구하는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최근 마무리로서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임정우 선수와 함께하고 싶다며 평생토록 잊지 못할 그 날의 기억을 이어나갔다.
평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좌석은 응원석이다. 그러나 빨리 매진됐던 탓에 주로 외야석을 가야한 했다. 이날만큼은 잠실 야구장에서 가장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테이블석이 제공되었다. "평소에는 서서 응원하느라 야구장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데 테이블석은 음식이 있어도 계속 서서 응원할 수 있어서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녀의 평소 응원 스타일이 궁금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야구장에서는 응모 영상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신나게 응원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교내 댄스 동아리(R-FLOW)에서도 활동 중인 최승연 씨는 "등장곡부터 응원가까지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 공격할 때는 계속 서서 춤추고 응원해요. 특히 오지환 선수 등장곡과 유강남 선수의 응원가를 좋아하는데 오지환 선수의 등장곡은 춤추기 너무 좋아요. 야구장에서 평소보다 과장되게 웃는 편인데 스트레스가 풀려서 좋더라고요"라며 경기에서 지더라도 즐겁게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말했다.
잊지 못할 순간들
그녀는 투수전이나 큰 점수 차이로 리드하는 경기보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녀가 꼽은 최고의 명승부는 2014년 무더운 여름, 잠실벌을 뜨겁게 달군 두산 베어스와 맞대결이었다. "두산 팬과 '직관'을 갔는데 크게 지고 있어 기대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8회말 LG의 베테랑(정성훈, 박용택, 이진영) 선수들이 출루하고, 이병규(7)가 만루홈런을 치면서 분위기를 역전시키고 무려 7점을 뽑아냈습니다. 이병규 선수의 8회말 만루홈런은 최고였어요!"라며 비록 경기에서는 졌지만 큰 점수 차에도 불구하고 8회에만 7점을 따라가 턱밑까지 추격하며 팬들에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소사 선수에 대한 미담도 들려주었다. kt 원정경기를 응원 갔던 그녀는 선수들이 탄 버스를 보고 야구장으로 출입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선수에게 사인을 부탁했지만 짐도 많은 데다 바쁘게 들어가다 보니 그녀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그때, 소사 선수가 그녀의 유니폼을 빼앗아갔다. 그녀는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나타난 소사의 손에 들린 유니폼에는 다른 선수들의 사인이 있었다. "너무 감사했어요. 실력뿐만 아니라 팬을 아끼는 마음도 최고인 선수라고 느꼈어요!
나의 LG 트윈스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만들어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보물이라면서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로 직접 만든 플래카드를 꼽은 그녀는 김용의 선수와 양석환 선수의 플래카드 제작했다. 양석환 선수는 홈으로 들어오라는 뜻과 더불어 '드루와'라는 유행어를 함께 '양석환드루와♥'로 만들었다. 김용의 선수의 경우 별명인 '또치'에서 힌트를 얻어 '또치가 또!치네 안타머신 김용의'라는 문구에서 그녀의 센스를 엿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현재 김용의 선수의 플래카드는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LG 트윈스는 인생의 활력소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취미가 생겨 행복하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느라 지치지만, 야구가 시작하는 6시 30분만 되면 힘이 난다는 그녀의 말에서 야구와 팀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시즌 젊은 선수들이 활약해주고 있는데 활기찬 에너지를 이어가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부상 없이 건강하게 이번 시즌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월요일은 야구가 없어서 힘도 없고 지루해요. 가을에 지루하지 않고 에너지 넘칠 수 있게 부탁해요! 무적 LG 트윈스 파이팅!"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올 시즌 7번의 '직관'을 통해 6승 1패라는 높은 승률을 자랑했다. 한의예과 학생인 그녀는 더 나아가 한의학도 출신 팀 주치의라는 목표도 갖고 있다. LG 트윈스 덕분에 관심이 생기면서 꿈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가진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현재 한의학 출신 팀 주치의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꿈을 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그녀의 꿈 역시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