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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 강신규 목사] 열왕기상 9장 10-28절 | 2024. 4. 25
https://www.youtube.com/live/KcH_17ygA6I?si=VNoeFf3C2zV8PyCH
솔로몬과 히람의 거래 9:10~14
10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11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14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솔로몬이 건축한 성읍들 9:15~28
15 솔로몬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18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20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21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2 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23 솔로몬에게 일을 감독하는 우두머리 오백오십 명이 있어 일하는 백성을 다스렸더라
24 바로의 딸이 다윗성에서부터 올라와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25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성전 짓는 일을 마치니라
26 솔로몬왕이 에돔 땅 홍해 물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27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28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왕에게로 가져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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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을 20년 만에 마치고, 재료를 제공한 히람에게 갈릴리 성읍 스무 곳을 줍니다. 히람은 그 성읍들이 눈에 들지 않았음에도 솔로몬에게 금 120달란트를 보냅니다. 솔로몬은 많은 건축 사업을 하기 위해 역군을 일으킵니다. 또한 배들을 만들고 오빌에서 금을 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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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히람의 거래 9:10~14
솔로몬은 성전과 왕궁 건축을 20년 만에 마칩니다. 그는 건축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 히람에게 두로에서 가까운 갈릴리 지역 땅 스무 곳을 줍니다. 그 땅이 마음에 들지 않은 히람은 그곳을 ‘가불’ 즉 ‘아무것도 아닌 땅, 무가치한 땅’이라 부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의 위세에 눌려 금 120달란트(약 4톤)를 줍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좋지 않은 땅을 주고 필요한 물품과 돈을 받았으니 괜찮은 거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면에서는 땅을 사고팔지 말며 경계표를 함부로 옮기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을 어긴 것이기에 옳지 않은 거래입니다(레 25:23; 신 27:17). 경제적 이익 앞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솔로몬은 건축 재료를 제공한 히람에게 이스라엘의 어느 땅을 주었나요?
경제적인 부분과 신앙 문제가 맞물릴 때 나는 주로 어떤 선택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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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건축한 성읍들 9:15~28
솔로몬은 성전과 왕궁 외에도 많은 것을 짓습니다(15절). ‘밀로’는 돌을 채워 넣어 기초를 다진 것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이 밀로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애굽에서 아람까지 이어지는 해변 길 길목에 위치합니다. 솔로몬은 애굽의 보호를 받기 위해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는데, 게셀은 애굽 왕 바로에게 선물로 받은 땅입니다. 솔로몬은 군사적 목적으로 국고성, 병거성, 마병성도 건설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건설하려던 것을 모두 건설합니다. 건설을 위해서 가나안 사람을 노예로 삼아 부렸는데, 이들을 관리하는 관원이 550명이나 됩니다. 이스라엘의 외적 번영 이면에는 가나안 노예들, 이방 왕비, 많은 군대라는 어두움이 깔려 있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솔로몬은 건축을 이루기 위해 어떤 사람들을 동원했나요?
내 삶에서 높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 간과된 문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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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하나님,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후에 적절한 대가를 받고 싶어 하는 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게 하소서. 합리적이고 이로운 일일지라도 저보다 약한 사람의 힘과 노력을 악용하지 않게 하시고, 과정과 방법도 선한 것을 선택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이루어 주시는 주님이심을 잊지 말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나아가도록 하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도록 하자
날마다 그 형편에 맞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만을 의뢰하고, 주님과 한 마음이 되어 주님의 법도대로 걸으며, 주님의 계명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자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0-14절 지금까지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지혜와 선한 통치를 부각하고, 그의 과오는 암시적으로만 전했지만(3:1; 4:26; 6:38-7:1), 이제부터는 솔로몬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와 금을 공급해준 두로 왕 히람에게 그 대가로 갈릴리 스무 성읍을 양도합니다. 하지만 그 땅은 가치 없는 ‘불모지’(가불)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자기 마음대로 이방에 넘겼고, 그마저 쓸모없는 땅을 주어 히람의 환대를 박대로 갚았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그들 앞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섬깁니까?
15-24절 솔로몬은 성전과 궁전 외에도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성, 국고와 병거와 마병을 위한 성들을 건축합니다. 무리한 공사는 과중한 강제 노역(12:4)으로 이어져 이 무렵 백성의 삶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솔로몬은 건축 사업을 위해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쫓아내라는 명령(출 23:31; 민 33:52)을 어기고 그들을 종으로 부렸습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에 민감하지 않으면 신앙과 공익을 내세워 내 욕망을 위한 아성을 쌓을 수 있고,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16,24절 게셀과 밀로는 애굽과의 정략결혼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두 곳은 두 나라의 동맹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솔로몬 왕국의 불안정한 미래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고, 그 불신앙은 더 큰 화를 불러올 것입니다(11:1-4).
25절 솔로몬이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점은 귀감이 될 만하지만, 약속의 땅을 이방 왕에게 넘긴 것, 무리한 건축 사업을 추진하느라 백성에게 과중한 짐을 지게 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그의 행보는 그의 예배가 하나님만 높이며 그분과 깊은 사귐을 누리는 예배였는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순종이 바탕이 되는 예배, 순종으로 이끄는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입니다.
기도
공동체-하늘에 속한 지혜와 세속적인 지혜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왕상 9:10~28절)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
❚ 세상에서의 성공에만 주목하는 인생이 아니라, 믿음 안에 누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 무엇을 경계하는 삶이어야 합니까?
➲ 성공 논리를 경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0~14절).
솔로몬 왕은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에 걸쳐 모두 완공하고 두로와 히람에게 갈릴리 땅에 있는 스무 개의 성읍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두로 왕 히람은 솔로몬이 넘겨준 스무 개의 성읍이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가불 땅’ 즉, 쓸모 없는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히람은 갈릴리 땅의 성읍들을 받고 나서 솔로몬에게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보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방에게 넘겼습니다. 성읍을 넘겨준다는 것은 단순히 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의 운명도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성읍에 살고 있던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이방의 왕인 두로 왕의 통치를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솔로몬의 선택은 분명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에 대하여 더욱 발전시키고 필요한 부분들을 세워 나아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분명 맞습니다. 아울러 능력 있는 사람과 협력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들을 진행해 나아감에 있어서 내 자신의 판단과 감정과 계획을 앞 세워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과의 협력의 관계에 있다면 더욱더 투명해야 하며, 지혜롭게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나친 성공 논리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도 잊어버리고, 타인과의 관계마저도 깨뜨리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과 권력 그리고 성공이라고 하는 탐욕은 사람들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마저도 파괴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작은 타협을 경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5~25절).
솔로몬은 다 진멸하지 못한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 등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성전, 솔로몬 궁, 밀로 궁, 예루살렘 성벽,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의 성, 기타 성읍들의 건축에 동원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 개월간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것과는 달리 영구적으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15~21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는 어느 누구도 노예로 삼지 않았습니다(22절). 이러한 차별은 훗날 왕국이 분열되는데 한 가지 요인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한 해에 세 번씩(무교절,칠칠절,초막절) 주님의 제단에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리고 또 주님 앞에서는 분향하였습니다(25절).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경력과 업적을 쌓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어기거나 세상과 타협 한다면 비록 많은 업적 쌓고, 성공이라고 하는 자리에 앉았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허무한 것이 되고 맙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4,11절)라는 전도자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의 성공에 눈이 어두워 세상 것에 집착하는 선택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비록 작다고 여겨지는 것들과 타협을 했지만, 결국엔 작은 불씨가 큰 산을 삼키는 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적인 방법과 사람들의 통해 나기 목적을 이루려는 영적인 타협을 조심해야 합니다. 목적이 선하다면 수단도 선해야 합니다. 작은 타협을 경계하는 삶을 통해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영적 타락을 경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6~28절).
솔로몬 왕은 에돔 땅 홍해변 엘롯 근방에 있는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만들었습니다(26절). 두로는 항해술에 능한 뱃사람들을 보내어 솔로몬의 신하들을 돕게 하였습니다(27절). 결과는 오빌에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가져오는 큰 성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해상 무역의 강자 였던 두로는 중요한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던 솔로몬과 연합하여 홍해 해상 무역을 시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두로 왕 히람과 연합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이러한 정책들은 분명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 성과 도시 건축을 진행하기 위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금하신 일들을 행하며 문제의 소지를 남기고 있어서 불행한 결말을 예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기회와 유익을 얻는 행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라도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을 더 우위에 두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면 자칫 영적으로 타락하고 받은 축복마저 빼앗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영적 타락을 경계하는 삶을 통해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를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내 욕심만을 채우고 내 이름만을 드러내려 했던 탐욕의 가면서 벚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의 부귀영화를 복의 전부인 양 좇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부요한 사람, 그 부요함을 나누는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9:10~28절)...
현대 국가가 생산력을 기준으로 국력을 가늠하듯이, 당시에는 생산과 건축을 위한 노예와 징집 능력으로 가늠할 수 있었는데, 주변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등 모든 가나안 족속을 역군으로 부렸고, 또 일반 국민들을 징집하여 밀로와 예루살렘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과 벧호론과 바알랏과 다드몰 성을 건축하는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이
와 같은 솔로몬 왕국의 부귀영화는 모든 나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세상 모든 나라들이 이러한 솔로몬 왕국의 영화를 재현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정작 솔로몬 자신의 결론은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왜 헛되다고 결론지었을까요?
사실 세상 영화도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풀의 영광에 불과합니다
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만 헛되지 않은 것은 오직 주의 말씀뿐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
그러나 지금도 세상은 이미 헛되고 헛되다고 결론이 난 것을 온 힘과 생명을 다해 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풀의 영광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영원한 영광,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풀의 영광을 가진 자들이 복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있는 주의 말씀을 가진 자들이 복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4/24일 전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의 국제적인 영향력은 그 어떤 시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이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침략을 받고, 위협과 쫓김을 받았던 과거의 일들은 볼 수 없고, 조공을 받거나, 성을 지어서 나눠 주거나 지배자와 조정자의 역할로 변화된 것입니다.
성전을 위해 7년, 왕궁을 위해 13년의 기간을 사용했지만, 그 외의 20년 동안의 통치 동안에도 솔로몬 왕은 쉬지 않고 곳곳에서 성을 짓고 고치고,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진행하고야 말았습니다(19절).
열왕기의 기자는 멸절의 위기에 놓인 그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토록 화려한 시대에, 가장 능력과 지혜가 주어졌던 솔로몬의 역할이 과연 어떠해야 했는지를 다시 조망하고 있습니다.
두로의 히람왕에게 수많은 백향목과 잣나무, 금을 조공 받았기에 그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들이 부족했는지, 갈릴리의 20개의 성을 답례로 주고 말았고, 이는 약속의 땅, 곧 아셀 지파에게 분배되었던 곳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가나안 족속을 노동력으로 동원하였는데, 이 역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쫓고 멸절하라고 했던 그 명령에 대한 거역이었습니다.
차지하라는 땅을 내어주고, 내어쫓으라는 이방 민족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일, 그것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과 장소로 가지 않는 불순종과 우리 안에 내어쫓아야 할 죄와 교만을 즐기고 붙들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겉으로 입은 옷,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예배의 태도가 아니라, 중심 가운데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고, 성령의 불로 우리의 죄악을 태워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자신의 산 제사로 드려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 인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겸손과 충성으로 나아가며, 여호와를 더욱 사랑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할지 말씀을 통하여 알려 주시고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안에 날마다 스며드는 교만과 죄악의 뿌리를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주님 뜻에 합당한 삶으로 우리를 산 제사로 올려 드리는
하루의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거룩한 증인으로
땀 흘리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아버지께서 풍성히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부터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죽도록 충성을 다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