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텃밭
점심 뒤에 밭에 나가 노릇노릇하게 익어 가는 대추열매를 따 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렸다. 작은 대추나무 가지에 동부(콩)가 줄기를 늘어뜨리고 익어가고 있었다.
올해는 감알이 무척 잘았다. 크기가 작았다. 들녘의 벼 이삭이 노릇노릇하게 익고 있었다. 가을이 함께 익어 가고 있었다. 고즈넉한 가을빛깔이 아련하게 고왔다.
호미를 단 긴 바지랑대로 밤송이를 털었다.
바지랑대를 높이 쳐들고 호미로 긁어내거나 톡톡 쳐 땅 밑으로 떨어뜨렸다. 늙은 어머니는 밤송이를 주웠다. 속이 탁 벌어진 밤송이 겉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런데도 속은, 흰빛 나는 속은 매끈거렸다. 그 속에는 토실토실한 밤톨 두서너 개가 들어 있었다. 참으로 매끈하며 먹음직스러웠다. 날카롭고 억센 밤송이 가시를 보면 꼭 여자 음부에 난 거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뽀죡한 가시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금기처럼 바람기 많은 나를 움추리게 만들었다. 탄탄한 군화발로 밤송이를 지그시 밟아 누르고, 낫등과 부삽(불삽)등으로 밤송이 껍질을 우악스럽게 짓이겨서 껍질을 발라냈다. 이따금 가시에 손끝을 찔리면서 빼낸 밤톨이 반들거리며 듬직했다.
"어머니, 밤송이 껍질로 국 끓여 잡수세요."
"에라이, 너나 끓여 먹어라."
지난 겨울부터 어머니의 오른쪽 팔뚝이 굳어 오그라졌다. 이제 호미질도 힘겨워 하는 어머니가 용케도 가꾼 밭에서는 고추, 기장, 호박, 들깨, 고구마, 콩들이 익어가고 있었다. 봉탱이가 된 오이는 노각이 되어 풀 속에 누워 있었다. 배추, 무 잎새가 시퍼렇게 커가고 있었다.
대전의 누나가 씨앗을 뿌렸다는 배추와 무는 촘촘히 밀집되어 있었다. 솎아 주어야 하는데도, 어머니의 손이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서울로 떠난 뒤 수십 년 채 농약을 전혀 치지 않은 텃에는 실베짱이, 여치, 풀무치, 땅개비, 풍뎅이, 사마귀들이 모여 사는, 오염되지 않은 땅이었다. 비료조차 뿌리지 않는, 거름조차 늘 부족한 땅에서 자란 푸성귀는 잎새 줄기 뿌리들이 자연 그대로였다. 바랭이, 강아지풀, 온갖 풀 속에서 자란 푸성귀의 모양새는 늘 볼 품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추위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자꾸 움츠러드는 호박줄기 끝머리를 줄기 째 쑹덩 쑹덩 쓸어서 된장국을 끓이거나 쌈 싸 먹으면 맛이 날 것 같다. 고추잎사귀와 고구마 잎파리를 한 웅큼 훑어서 한 끼 반찬해 먹으면 좋겠다.
여든여섯 살의 어머니가 지키는 고향에 나는 사오 년 뒤에야 내려간다.
정년퇴직하면, 나는 또 한 마리의 두더지가 되어 흙속을 뒤지며 푸성귀를 뜯어먹는 산짐승이 되겠지. 이름 모를 철새와 텃새가 날아오는 곳에서 새소리, 바람소리를 귀담아 듣겠지.
2004. 10. 2.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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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 2. 15. 수요일.
하늘이 높고 맑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서 봄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뜻이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2015년 2월 25일 밤 11시 15분에 돌아가신 뒤 ... 나는 그참 서울로 되올라와서 산다.
서울에서는 할일이 없는 나는 바보 머저리 등신이기에 날마다 컴퓨터 사이버 세상에서나 들락거린다.
회원들의 글을 읽고, 나도 생활글, 일기를 쓴다.
글 쓰는 것은 별것도 아니다. 자판기를 보지 않고도 다다닥하면서 글 쓰기에. 그런데 쓴 글을 다듬으려면 왜그리 어렵던지.
다듬은 글을 저장했다가 이따금씩 하나를 꺼내서 월간문학지에 낸다.
글은 오래 보관하려면 평소에도 글 잘 쓰겠다, 언어순화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더 공부하게 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우리글자(한글)로 바르게 많이 쓰자'라는 생각을 지녔다.
우리문화를 세계 속으로 더욱 많이, 더 널리, 더 오래토록 전파했으면 싶다.
비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110개쯤을 올려다놓고는 늘 들여다본다.
특히나 밤중에는 더 자주....
화분 속에는 야행성 민달팽이가 밤중에 기여나오니까.
눈이 어두워도 징그러운 이들을 잡아내야 한다.
마치 내 글에서 어색하고, 잘못된 오탈자를 골라내는 것처럼.
내 일기에서 하나 골라서 여기에 올린다.
그냥 다다닥한 것이라도 ....
2023. 2. 15. 수요일.
첫댓글
콩을 읽고 두부 사러가야겠다 생각하고
야채 키우기를 잘하셨네요 생각하며
유기농 무공해 야채쌈을 생각 합니다
꺼내볼 수 있는 일기장
덧붙임 할 수 있는 오늘의 삶
글 길 따라 읽어내러 오며 즐감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날마다 메모, 일기 등을 쓰면 나중에 읽었을 때 기억과 추억이 되살아나오대요.
녹음 사진 그림 등도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늘 글을 반듯하게 바르게, 정확하게 쓰려고 하지요.
내 소중한 기억과 추억이 되기에. 훗날 다른 사람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요.
위 글 쓴 지도 벌써 만18년이 더 지났군요. 그 당시의 어머니.... 지금은 고향 서낭댕이 앞산에 무덤 하나만 남았고....
이제 열흘 뒤에는 엄니 제사가 오기에 제사 지내면서 절 올리고,
올봄 3월 초순에 고향 농협조합장 선거일에 투표하려 내려가서 시골집에 머물면서 엄니의 무덤 앞에서 절 또 올려야겠습니다.
몸이 적은데도 쌍둥이를 잉태해서 키웠던 엄니...
엄니 무덤 아래에는 만20살에 뱀 물려서 죽은 쌍둥이동생 무덤도 있고.
형인 나는 그 동생보다 50여 년을 더 오래 살고 있습니다.
고향 다녀오면 '삶의 이야기방'에 올린 글감이 또 생기겠지요.
베란다에 화분이 가득하시네요
봄볕 더해지면 더 예쁘게 자라겠어요
댓글 고맙습니다.
화분 속의 식물을 키우면서 배우지요.
쌀 씻은 뜨물을 모아서 화분 흙에 부어주고, 번식도 시키고, 때로는 재배기술부족으로 죽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증가시켜서....
시골로 가져가서 텃밭에 심고... 그런데 왜그리 외국식물을 재배하다가 내버리는지..
우리 토종식물이 재배하기 쉽고 실용적인데도...
화초 파는 가게에서는 외국식물을 팔아야만 그게 다 돈이 되나요?
지난해 고추모종 4포기 심었다가 지금 한 포기가 겨울을 나고, 새 싹이 돋는군요. 다년생식물이기에...
네 너무 잘 표현 했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그 어머니... 지금은 다른 세상으로 떠나셨지요/
어머니에 대한 회상은 이렇게 일기를 읽으면서 다시 기억을 떠올리지요.
기록해서 저장 보관하는 글이 소중하다는 증거이지요.
이곳에도 글쓰고
나의 일상을 기록 하는건 바람직 합니다
화분에도 식물 키우면
들여다보고 하루가 지루하지 않아요
어머니 장수하셔서 부럽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아파트 안에서 화초 키운다는 거.. 그거 쉬운 일은 아니대요.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으로 식물을 가꿉니다.
소중한 자원이니까요.
저도 일기보단
메모습관 있는데
참 보기 좋습니다
늘 강건하시길요
예..
저는 메모하고, 일기 쓰고, 카페에도 글 쓰지요.
나중에 나중에 들여다보면 기억이 되살아나대요.
나이 들어서 자꾸만 희미해지는 기억력인데도 이렇게 글 써서 잘 보관하면...기억이 새롭게 나겠지요.
어머니 살아계실 때
써 놓았던 일기이군요.
한 번 일꼬 감니당.
박민순 시인님
고맙습니다.
오래 전에 써 둔 일기이지요.
그냥 아무것이나 다다닥했다가 나중에 읽으면 기억이 새롭게 나대요.
먼 훗날에 다시 읽으려면 글 반듯하게 잘 써야겠지요.
오늘 오후에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방이동재래시장으로 나가서 장터 구경을 했지요.
허름한 장터.. 그렇고 그런 물건들이... 헌옷도 팔고, 헌구두도 팔고.. 값싼 먹을거리도 팔고...
서민의 애환이 서린 장터이지요.
오늘 일기 쓰면.. 장터 구경한 거 위주로 쓰겠지요.
일기를 오래 쓰셨나봐요
에.
수십년 동안에 걸쳐서 쓰지요.
메모, 일기, 카페에서 산문 글 쓰고...
제 가방 속에는... 바지 주머니 속에는 늘 볼펜이 있지요.
아무 때라도 끄적거리며 메모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