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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모또오리 노리나가 (本居宣長, 1730∼1801) 에도시대 국학의 거두 (우) 사이고 다까모리 (西鄕隆盛 1828~77), 일본 명치유신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로 정한론의 선봉에 섰음 |
2. 추노(推奴)라는 드라마를 보았는가?
일본에게 있어서 한민족은 도망간 종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 본인들의 시각은, 36년에 걸친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1000년 전의 역사를 옛날 그대로 복원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즉 일본서기에 적혀진 대로, 옛날 일본의 조상들이 부렸던 종(열등한 한국인)들을 다시 추포(追捕)해 온 것이다.
3. 예고된 순서- 독도침략과 역사왜곡
아베 총독의 말은 인터넷에서 가져온 말인데, 그 전거가 정확한지는 잘 모른다.
어떤 분은 이말의 전거가 잘못 되었다며 <대박>을 발견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말이 저의 글의 핵심은 아니고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베의 말을 넣은 것이, 전체의 논조에서 크게 잘못 된 것도 아니며,
이 말이 없더라도, 존 카터 코벨의 말은 아베의 말과 똑 같은 내용이다.
아베 말의 전거를 찾아보고 싶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kmin
마지막 조선 총독이 떠나며 남긴 말.....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우리는 패배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교육>을 심어 놓았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식민지교육>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나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
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
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
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
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
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
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
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존 카터코벨 박사의 충고 (일본사 사학자)...
일본은 태평양전쟁 중에도 고대사 조작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부모, 일본은 후레자식...
역사상 일본 천황 혈통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한국의 가야사가 분명하게 확립되는 것을 볼 때까지 오래 살고 싶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이런 압력에 굴복하거나 모욕을 한 귀로 흘려넘기는 한,
일본은 소리 없이 등뒤로 다가와 한국을 밟고 설 것이다.
4. 지금이라도 일본서기의 허구성을 파헤쳐야... 요약하면
왜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아야 하나?
일본의 역사왜곡의 바탕에는 일본서기가 있다.
습관성 왜곡...... 독도를 다께시마로 변조, 침탈야욕
종군위안부의 은폐
남경학살(중국)의 은폐
일제 통치하의 역사조작.... 일제는 국가총력을 다하여 우리의 역사를 말살
한국인은 고대부터 일본의 종살이를 해 온 민족
한국인은 열등하고 모자라는 종족
일본서기의 반한, 혐한 정서...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36년간의 지배의 원인
임진왜란의 발발의 원인
근본적으로, 일본 고대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 고대사는 한국인을 열등한 종족으로 묘사함
일본 고대사는 혐한, 반한적인 내용 일색임
일본 국민은 현재도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배움
5. 일본역사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수많은 책
백 제와 왜에 대한 의문을 품고 쓴 글들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한도 끝도 없이 널려 있다. 몇십년 전에도 어느 도서관에서나 아래에 열거한 제목과 비슷한 책들이 수없이 많았다. 모두 역사의 이면에 숨겨져 있었던 진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단서를 발견하여 쓴 책들일 것이다.
이 러한 책들은 하나같이 서로 모순과 상이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각 저자들이 자기가 본 한쪽 면만의 진실을 일본서기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한 까닭이다. 즉 일본서기 자체가 순서, 구성, 사건연도 자체에서 모순되게 기록되었고, 알듯 모를듯한 의혹의 암호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실체에 접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이유이다.
일 본사를 대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끝없는 의혹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고, 수많은 의혹과 분분한 학설의 갈래 사이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갈래치기를 하기 십상이고, 딱 부러지게 맞는 실체를 잡을 수 없다보니, 울분과 비장에 찬 목소리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성토하는 말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일본속의 백제·나라(奈良)> 홍윤기 저, 한누리 미디어, 2009
<일본, 또 하나의 한국> 부지영 저, 寒松, 2009
<다시 찾은 한국 고대사 해외유적> 신형식, 주류성, 2012
<한국 고대사의 비밀> 김은석, 살림터, 2012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김운회, 동아일보사, 2010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百濟> 홍윤기 저, 한누리 미디어, 2010
<일본, 한국 이주민의 나라> 이성한, 큰책미래, 2012
<일본의 첫 왕은 한국인이었다> 이종기, 동아일보사 1997
<패왕 후히토> 구로스 기이치로 저, 오근영 역, 태일출판사, 1997
<일본을 정복한 한국인 이야기> 프랭크 호소노 저, 신동란 역, 남도 1997
<일본고대사>고바야시 야스꼬(小林惠子) 저
일본 제40대 천무천황(天武天皇)은 연개소문(淵蓋蘇文)인가?
<신라 문무왕의 생부는 연개소문이다?>
http://cafe.naver.com/coreaspirits/1310
<연개소문을 생각한다>, 강준식 저
<잃어버린 왕국-백제> 최인호 역사소설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는 등등
6. 일본역사의 미스테리- 조작된 천황
기간 | 시기구분 | 실제의 일본역사 (윤영식 연구) | 일본서기상의 조작기록 |
BC660 ~100 | 한·중 역사에 일본이 나타나지 않음 | 이 시기에는 일본이 존재하지 않음 | 일본서기는 BC660에 일본이 건국되었다고 조작함 |
100~247 | 일본이 처음 나타남 | <왜지>에 100여개의 부족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됨 | |
247~365 (120년) | 부족국가간의 내전으로 역사에서 소멸함 | 일본서기에는 40명의 천황이 계속하여 다스린 것으로 꾸며짐 | |
366~391 (26년) | 백제영토로 편입됨 | 가야왕 아리사등(阿利斯等)이 왜지에 진출함. 곧이어 백제에 의해 동쪽으로 축출되고 <왜지>는 백제의 영토가 됨 | |
392~478 (87년) | 백제로부터 독립하여 가야왕조 수립 | 백제로부터 독립한 가야인의 왕조 수립 (찬왕: 아리사등의 차남) 독자적인 외교로 중국역사에 왜5왕이 기록됨 | 상동 |
479~660 (182년) | 백제영토로 편입됨 | <왜지>는 다시 백제의 영토로 됨. 660년에 백제 멸망함 | 일본서기는 697년까지 40명의 천황을 꾸며 넣었다 |
661~697 (36년) | 일본 내란 | 3년간의 백제 부흥전쟁(661~663)의 실패후 백제와 가야계 귀족간에 내란이 일어남 | |
697 ~ | 일본국 수립 | 백제계의 문무천황이, 내란을 수습하고 일본국을 수립함 문무천황부터는 진짜 인물임 | 문무천황(41대)은 독립일본국의 초대 천황이다. |
720년경 | 일본서기 편찬 | BBC660~AD697의 기간에 40명의 천황을 꾸며넣는 등 가공의 역사를 만듦 |
1. 위의 도표는 윤영식 씨의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2. 392~478 (87년)의 기간은, 백제로부터 독립하여 가야왕조가 수립된 시기이다. 가야왕조는 중국과 외교를 유지하였고, 중국역사서에는 <찬왕, 진왕, 제왕, 세자 흥, 무왕>의 왜5왕의 기록이 남아있다.
3. 그러나 일본의 역사서(일본서기)에는 이러한 백제와 가야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40명의 천황들이 계속하여 일본을 다스려온 것으로 꾸며져 있다.
7. 역사왜곡의 주범- 일본서기의 허구성
해 방후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식민사관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였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는 일본서기의 끈질긴 생명력을 너무나 모르는 얘기이며, 일본의 역사왜곡은 단순히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하기엔 너무나 뿌리가 깊다. 고대의 일본서기에서 유래하는 역사왜곡은 독도 문제, 위안부 존재의 은폐, 남경대학살의 부인 등 현재 일본인의 습관적인 역사조작의 전통에 깊은 뿌리가 되어 온 것이다.
지 금 말하려는 일본서기의 허구적인 실체는 아래 다섯분 역사가들이 서술한 기록에서 정리한 것이다. 1781년 후지와라 사다모또(藤井貞幹)가 일본서기의 실체를 규명한 이후 2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윤영식 씨에 의해 일본서기의 허구성이 상세하게 밝혀졌으며, 당시의 백제·왜국의 연합왕력표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일은 1933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본서기의 허구성을 간파한 이후 5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이며, 또 윤영식 씨의 저서가 발간된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업적이 거의 외면되고 사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후지와라 사다모또(藤井貞幹) 충구발(衝口發) 1781, 재인용
신채호 “조선상고사” 1931 조선일보 연재
김성호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1982년 초판
윤영식 “백제에 의한 왜국통치 삼백년사” 1987년 초판
존 카터 코벨 박사(1910~1996)의 여러 저작물
존 카터 코벨 박사의 독자적인 연구는 다방면의 문화적인 접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고대사의 실체에 대하여 독창적이고 정밀한 결론을 끌어내었으며, 그것은 네분의 문헌연구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8. 다섯분 역사가에서 보이는 일관된 흐름
1781, 후지와라 사다모또 (藤井貞幹)
후지와라 사다모또는 일본 에도시대의 고증학자로 그의 저서 충구발(衝口發)에서, 일본의 역사와 언어가 한반도에서 기원했다고 단언했다.
“< 일본기(日本紀)>를 읽으면 처음 이 나라가 마한·진한의 이한(二韓)에 의해 열렸고, 아울러 변한(弁韓)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옛날부터, 한(韓)으로부터 일이 비롯되었다는 것이 숨겨져 있음을 알지 못하고, 이 나라(일본) 것만으로 무엇이나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한어(韓語)를 왜어(倭語)로 보고서 가지가지 설(說)을 내세운 나머지 마침내는 그 본 뜻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일본역사는 馬韓· 辰韓의 二韓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한편 변한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고 읽었다면 진정 일본기를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하여 일본 국학계(국수주의 역사)의 거두 모또오리 모리나가(本居宣長)는 사다모또를 <미친놈, 鉗狂人>이라고 비난하였다.
1933년, 단재 신채호의 <쇼또꾸태자= 근구수왕>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성덕태자가 가짜의 인물이며, 백제 근구수왕이라는 것으로 단언하였다.
“그러나 나(신채호 선생)는 일본사의 성덕태자의 사적이 거의 근구수왕의 것을 훔쳐다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일본인이 근구수왕의 공적을 흠모하여 이를 본떠다가 저 <성덕태자 전> 가운데 넣은 것이 분명하다.”
1982, 김성호의 <일본서기의 8인= 실제는 4인>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가 조선일보에 게재된 지 50여년이 지난 후, 김성호 씨는 일본서기의 등장인물 8명이 실제로는 4명이고, 인물의 가공성과 이중성을 지적하였다.
경진주신 = 대물주신 경경저존 = 숭신천황 (강상 교수 지적)
난 생 녀 = 신공황후 (삼품 교수 지적) 신무천황 = 응신천황 (강상 교수 지적)
1987, 윤영식 씨의 <40 천황= 실제는 10명>설과 물부·대반 양 가계도
윤영식 씨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천황 33명이 실제로는 10명의 백제/가야의 왕과 왕족인 것을 밝혔으며, 그 외에 일본서기의 방대한 수의 등장인물에 감춰진 이중등재와 가공등재의 대부분을 파헤쳤다.
일본 건국기의 천황 40명의 실체 (윤영식 연구)
실제인물 | 일본서기에 등재된 40 천황 (여러사람으로 부풀려져 기록됨) | 왜의 양대 귀족 |
백제의 왕/왕족 4인 | 13인의 천황 | 물부계 귀족 |
가야의 왕/왕족 6인 | 20인의 천황 | 대반계 귀족 |
그외 7인의 천황은 이름만 있고 기록이 없어 제외됨 |
1993, 존 카터 코벨의 저서에서 (Jon Carter Covell, 1910∼1996)
일본천황의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인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이다.
그 리하여 조국을 멸망시킨(AD660) 신라에 원한을 품은, 백제의 망명한 학자들의 손에서 만들어진 일본 역사서는 엄청난 모순과 날조로 가득 차게 됐다. 그들이 알고 있는 실제 역사는 오직 300년 전부터였지만, 1000여 년이나 길게 역사를 늘이기 위해 어떤 일왕은 100년도 넘게 통치했다고 썼다.
역 사상 일본 천황 혈통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일본 역사교과서에 써놓은 것처럼 일본왕통이 서기전 660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4세기 들어 처음 생겨난 일본왕가는 바로 우수한 무기와 기마병을 이끌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한국 부여족이다.
일 본 역사가들은 369년 가야 부여족의 왜 정벌 이래 700년까지 한국이 정치·문화적으로 일본을 전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감춰버렸다. 그렇게 해서 일본 사가들은 역사를 뒤집고 가야에서 온 부여족이 왜를 정복한 게 아니라 왜가 가야를 정복했다고 썼다.
나는 한국의 가야사가 분명하게 확립되는 것을 볼 때까지 오래 살고 싶다.
9. 세분 역사학자가 일본서기에 대하여 표현한 어휘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사용한 어휘:
기록의 삭제, 훔쳐다 만든 것, 본떠서 끼워넣기 등
김성호 씨가 사용한 어휘:
이 중, 이분법(二分), 공백기를 은폐, 6대의 계보를 가구(假構)시킴, 이원화(二元化), 가공(架空), 동명실체(同名實體), 동일실체(同一實體), 허구적 존재, 위사(僞史)체계, 만세일계(一系)의 위기년(僞記年), 가구(假構)적 존재, 무수한 위작(僞作)의 관제, 가구(假構)된 황통(皇統), 고고학적인 사도(詐道) 등
윤영식 씨가 사용한 어휘:
위사(僞史), 이중구조, 표리(表裏), 암호서(暗號書), 동일인물, 분식(粉飾)처리된 인물, 암호의 해독표, 허기(虛記), 위조된 국가, 실연대와 가공연대의 이원화(二元化) 등
10. 왕인과 아직기, 그리고 신도(神道)의 재해석
윤영식 씨는 그의 저서에서 역사적인 실체가 의문시되는 왕인과 아직기 두 사람을 백제의 왕으로 규명하고 있다.
왕인 = 근구수왕 (백제 14대왕) ≠ 일본왕에게 천자문 1권과 논어 10권을 전해줌
아직기 = 아신왕 (백제 17대왕) ≠ 말 기르다가 왜왕에게 왕인을 소개함
참고: http://cafe.daum.net/jp-history/AzTh/16
필자소개 및 출판물
곽 경, 건축사
http://cafe.daum.net/jp-history
http://cafe.naver.com/hangulforum
現 (주)아키덤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現 (사)한국어정보학회 감사
백년전의 한글세계화- 원세개와 헐버트박사(신동아 2012)
거꾸로의 동북공정과 한글(조선일보 2010)
외국어표기라는 미로(한겨레신문 2010)
외국어표기를 위한 방점한글(*한국어정보학회지 2011) *학술등재후보지
한글은 외국어표현에 부적합한 문자인가?(*한국어정보학회지 2012)
(부제: 로마니제이션 vs 코리아니제이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포럼 2011년 총람 “한글세계화와 한글확장” 편집위원장
한류문화의 종결자-한글세계화(신부용 교수의 KT 워크샵에서 모두(冒頭)발표, 2012)
정확히 윤영식의 책에서 어떤 서술을 하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유사하다고 판단한 해당 링크글을 대충 훑어봤습니다. 해당 링크글이 윤영식의 책과 유사하다고 판단했을 때 대부분은 억측으로 풀어나가는군요.
예컨대 日羅라는 이름은 바로 "몸에서 화염 같은 빛이 난다"는 의미를 이름으로 표현한 것인데 "빛이 사방으로 발산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걸 火焰王之後也하고 연결시키다니. 일라라는 이름이 음차인지 훈독인지도 불확실한데, 그걸 또 빛=화염으로 해석해서 연결하는식의 심한 논리비약인데요. 한자 자체의 뜻을 이런식으로 풀면 계백과 김유신도 동일인물로 만들 수 있겠습니다. 남은 글도 이런식이군요.
특히나 이런식의 음운과 한자의 뜻과 유사성으로 결부시켜 해설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유사성에 근거하는만큼 신빙성이 낮아-대표적으로 이병도의 지명 비정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다른 고고학적인 증거와 일치하거나 다른 사서와의 검증이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든 규슈 일대의 정치세력이 가야에 "종속적"이었다는 근거는 없고, 일본서기는 물론 삼국사기를 보든 중국의 기록을 참조하든 오히려 백제나 신라가 왜를 대국으로 본다는 식의 기록은 있어도(송사) 반대로 백제나 가야가 왜를 집어 삼켰다는 기록은 없죠. 별개의 정치체로 인식될 뿐이구요.
저 링크의 글과 윤영식씨의 책의 논지전개가 얼마나 유사한지는 모르겠지만-소위 40인, 10인 이중등재 운운하니 비슷한 논지인거 같습니다만-, 유사하다치면 kmin님이 요약할 수 없는것도 이해가 가네요.
다른 근거는 없이 오로지 음운의 유사성을 토대로 사서에 등장하는 다른 주체를 동일인으로 연결시키고 이걸 토대로 다시 다른 식으로 연결시키니 요약 자체가 불가능할 수 밖에요. 특히 [[ 오오[大]>近, (ㅅ+아래아)(ㄲ+아래아)>(사까, 소꼬)이므로 오오사까[大坂]는 '近速古'와 같은 뜻이다. 소꼬[速古]는 초고대왕의 열도시호다. '오오사까'라는 지명도 초고대왕의 시호에서 나온 것이다. ]] 이부분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