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있다. 그런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안 건 어처구니 없게도 중국집 밥상 위에 놓인 조선일보에서였다. 아주 쪼가리 기사로, 진보진영 안에서 대선을 앞둔 논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식으로 진영의 대표적 학자인 최장집, 조희연, 손호철 세 사람의 주장을 두어 줄로 소개해 놓은 거였다. 마치 그러한 논쟁이 갈 곳 없이 갈팡질팡 무너져 내리는 분열이기라도 한 듯, 위기감이 반갑다는 듯한 목소리를 싣고서 말이다. 나중에 제대로 찾아 읽어봐야지 하던 것이 어찌어찌하던 사이 두 주 넘게 지났다. 지나가다 본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대통령도 거들어 한 마디 했다 말도 나왔다, 그러더니 한참이나 그 논쟁을 놓고 변죽을 때리는 소리들이 많았다. 아니, 논쟁의 속살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변죽 두드리는 소리들만 넘쳐났다.
생각난 김에 검색 싸이트에 들어가 대충 알맹이가 될만한 말을 넣고 찾아보니 신문기사들부터 온갖 게시판 글까지 수두룩 이어졌다. 솔직히 첫 느낌은 아이, 이걸 언제 다 읽나 하는 거였다. 하나 읽기 시작하면 또 뽕빨을 낼 때까지 다 봐야 직성이 풀릴 텐데… 잠깐 동안 이걸 봐, 말어 하고 망설였다. 망설임이 끝나기 전에 손가락은 벌써 끌리는 곳으로 가 클릭을 해대고 있었고… 역시나 논쟁보다는 변죽의 글들이 더 많았고, 제대로 된 맥락부터 찾아보자 하여 논쟁의 뼈대가 되고 있는 글들 몇 개를 골라냈다. 그 밖에도 이 논쟁에 대해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민웅, 이병천, 우석훈, 지금종… 선생들의 글이 더 있었으나(물론, 뭐에 그리 신이 났는지 조중동의 논평과 칼럼들도 넘쳐났고) 우선 논쟁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글을 중심으로 간추렸다.
논쟁의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서로 상대방의 글을 오독한다거나 그 의도를 지나치게 앞서 추측한 뒤 그것에 대해 반론을 펴거나 할 때인 것 같다. 최장집 교수가 “나는 한나라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뿐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좋다는 것은 왜곡된 해석이다”며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나, 손호철 교수가 자신의 주장이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를 더 극단적으로 체험하면 대중이 진보세력에게 돌아설 것이다”와 같은 논지가 결코 아니라며 답답해하는 모습은 대표적이다.
개혁과 진보라는 말, 이미 그 둘 사이는 분명하게 선이 그어졌어야 했다. ‘수구-신자유주의자들’에 견주어 ‘개혁-신자유주의자’들은 ‘개혁’이기는 하겠으나, 그 '개혁' 또한 양극화와 세계화, 경쟁과 개발, 전쟁과 빈곤의 주범이지 않은가. 어차피 그 둘은 약간의 방법만 다를 뿐 신자유주의를 추구, 관철시키려 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그 둘은 신자유주의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는 '수구-보수'와 '개혁-보수'일 뿐이다. 말의 느낌으로야 '개혁'이 '보수'보다는 '진보'에 가까운 듯 느껴질지 모르나, 그것은 그네들의 본질을 감춰주는 껍질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개혁'은 '수구'와 마찬가지로 '보수'일 뿐이다. 여기에 자꾸만 우리 스스로도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낱말의 조합을 별 거리낌 없이 받아 넘기면서 개혁과 진보를 한 자리에 뭉뚱그리는 물타기에 까무룩 속을 때가 많다. 보수는 보수고, 진보는 진보다. 다만 보수 안에서 옛날보수(수구)와 신식보수(개혁)이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뿐.
- 아래는 논쟁의 시작이 된 최장집 교수의 지난 해 9월 [경향신문] 인터뷰와 1월 22일 [한겨레] 기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레디앙]에서 ‘정치위기와 07대선’이라는 이름의 꼭지로 이어져온 조희연, 손호철 선생의 주장들을 차례로 걸어 놓았다. 이러한 논쟁이 한참이던 가운데 청와대 홈페이지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쓴 글과 그에 대한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반론을 함께 걸었다. 아직 논쟁은 계속 중이다… 대충은 훑었으나 내내 모니터로 보고 있다 보니 머리가 흐리다. 프린터를 아직 그대로 두어 다행이다. 종이에 뽑아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오독하지 말지어다, 내 구상과 기획으로 누군가의 글을 재단하지 말지어다… 그냥 나에게 하는 소리다.
1. [최장집 인터뷰]보수정권 보다 더 과격한 신자유주의 추구 / 경향신문, 2006. 09. 28
2. [1987년 그뒤, 20년] 민주개혁세력 어디로 / 최장집, 한겨레, 2007. 01. 21
3. '지적'의 올바름과 '진단'의 오류 [최장집 교수 비판①] ‘헤게모니의 정치’와 ‘진보적 민중주의’ / 조희연, 레디앙, 2007. 01. 25
4. 제도정치 중심주의 vs 사회 중심주의 [최장집 교수 비판②] 진보적 민중주의 고민했어야 / 조희연, 레디앙, 2007. 10. 25
5. ‘두려움의 동원정치’를 넘어서자 [조희연의 최장집 비판을 읽고] 차라리 '반개혁국민후보'가 답? / 손호철, 레디앙, 2007. 01. 31
6. 신보수, 진보세력에 좋은 조건인가? [손호철 교수 논평을 읽고] 위기론과 전략론의 풍부화를 위해 / 조희연, 레디앙, 2007. 02. 05
7.‘정치 개혁’ 넘어 ‘사회경제적 개혁’ 향해 ‘정치위기 진단’ 손호철 교수에 대한 조희연 교수의 추가주장 / 한겨레, 2007. 02. 12
8. 몇 가지 오해와 몇 가지 반론 [조희연 교수 비판] 반신자유주의와 반수구, 무엇이 패배주의인가 / 손호철, 레디앙, 2007. 02. 12
9.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 실현 위해선 유연성과 책임성 중요 / 노무현, 청와대 브리핑, 2007. 02. 17
10. "진보 자처 국민에 대한 예의 아니다" [노대통령께 보내는 편지] 여기가 보수정당만 사는 나라인가 / 노회찬, 레디앙, 2007. 02. 20
11. 유연한 진보는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 결단을 내려야합니다①] 최근 논쟁에 대해 / 정태인, 레디앙, 2007. 2. 21
12. 교조적 시장주의자들이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결단을 내려야합니다②] 골짜기에 빠진 대통령 / 정태인, 레디앙, 2007. 2. 21
13. [논평] 손호철 발언에 주목한다 진보 가르는 기준으로 반신자유주의 타당, 문제는 현실 / 참세상, 2007. 02. 22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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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화라는게 말이나 글로 하는 건데, 말이나 글이 사람이 갖고 있는 느낌과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수가 없죠. 대부분. 그래서 많은 싸움이 나잖아요. 근본에서 갖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물론 말과 글을 따로 뚝 떼어낼 수는 없지만, 대화할 때의 몸짓, 눈짓,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공통 경험, 당시 상황... 기타 등등. 그리고 글도 마찬가지고) 그 말과 글 자체로만 대화를 해야만 싸움이 덜 하리라 생각합니다. 자꾸 상대의 숨은 뜻과 말과 글의 다른 해석 가능성을 생각하면 정말 일상에서는 뚜렷한 것도 180도 확 뒤바뀌더라고요. 그러다 쌈나죠. ㅎㅎㅎ. 몸튼튼 마음튼튼
밤새 논쟁이 되는 글을 읽다 잠들었는데 글쎄 꿈에 최장집 교수가 나오더라고요. 잠들기 전 내내 선생님 글과 관련한 것들을 읽으며 머리씨름을 하느라 그랬는지, 한 번도 뵌 일 없이 꿈에서만 만났는데도 얼굴 표정이며 말할 때 입가에 잡히는 주름까지 아주 생생하게 떠오르더라고요. 한 일 년쯤 전 선생님이 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미처 끝까지 읽지 못하고 덮은 일이 있는데 다시 한 번 바짝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