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없이 모세의 지위와 영광만 탐하는 사기꾼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번 쯤 만민을 지도해 이끌 수 있는 영웅이 되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참된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시대에 유명 영웅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의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공인받은 영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 유일한 독생자(장자, 권세자)였기 때문에 만민의 리더가 된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한가지도 빠뜨리지 않고 순종해 지켰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천하 만민은 이런 이치로 집안 형제의 리더가 되든지 이웃과 사회와 나라와 세계의 리더가 되어야만 비로소 만물과 만민에게 참된 평안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하셨습니다.
인류의 유일무이한 지도자이신 예수님이 이 같은 경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신 까닭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출애굽의 모세를 영웅 취급해 존중하며 또 그 같은 지위에 올라 자신들도 그 같은 대접을 뭇 사람들로부터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지도력이 얼마나 가슴 저리고 뼈 아픈 사건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와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 육신이 차이는 마치 하늘 저 높은 곳과 땅 제일 밑바닥 차이보다 더 멀고 높고 깊습니다. 그러므로 만물과 사람들을 창조해 이끄시는 거룩하시고 지존무쌍하신 하나님의 뜻을, 흙과 같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인간 육신이 알아듣고 이해하고 따르도록 중개 역할을 하려면, 반드시 양쪽 사이에서 발생되는 이해상충의 악순환을 중개인이 다 겪고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양치기 하는 모세를 만나자 마자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출해 내는 지도자로 지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일이 얼마나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으로는 무모하고도 망상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그 지도자 역할을 사양하였습니다. 설혹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도와 주신다고 하여도 애굽왕 바로의 포악무도함과 또 그의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라는 것을 모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양하였습니다. 끝내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자신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모세의 불신에 대하여 노를 발하시자 모세가 굴종하였습니다만은, 그러나 모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대한 가능성을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애굽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 보내라고 명하자, 바로는 코웃음을 치며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앞으로 짚도 없이 벽돌을 구어 만들라는 명령으로 답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모세는 애굽왕 바로와 싸우는 일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과 자신을 제대로 믿지 않는 불신에서 나오는 원망과 싸우는 일에 더욱 가슴 아파하였습니다. 즉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 본격적으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왕 바로는 쉽게 이겼으나, 이스라엘 자손들과는 40여년간 가슴 아프게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애굽왕 바로의 완고함은 쉽게 꺾을 수 있었어도, 이스라엘 자손들의 무지하고 완악한 육신의 불신 사상만큼은 쉽게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원망 소리를 죽기 직전까지 들어야 했었고, 또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백성들의 불신에서 발생되는 불평불만의 원망 소리가 바로 하나님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취급해 가까히 있는 모세에게 그 진노를 쏟아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무지무능한 백성들 사이에서 발생되는 엄청난 갈등의 악순환을 중간에서 모두 감수해 삭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당대에 그 어떤 고명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세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과 완악한 백성들간의 다툼을 중간에서 무마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사람들은 모세의 이 같은 고통을 모르고 그저 모세와 같은 지위에 올라 무지무능한 백성들로부터 존대와 영광만 받으려 합니다.
즉 모세의 지위에 오르기만 하면, 교황처럼 아름답게 수 놓은 옷을 입고 왕좌에 앉아 임금 대접 받을 수 있으며, 또 잔치 자리나 모든 모임의 자리에서 상석에 앉아 뭇 사람들로부터 영광과 존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뭇 사람들에게 이적기사를 베풀어 존대받으며 영광받았을 때에 지나가든 어떤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예수님께 나아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누가복음 9:57)라고 자신만만해 하였으나, 예수님이 그 사람의 심중에 존귀와 영광받는 일만 탐하고 십자가의 길로 행할 믿음이 없음을 꿰뚫어 보시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누가복음 9:58)는 말씀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의 기라성 같은 뭇 인간들이 모세의 자리를 탐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와 만왕의 왕되신 영광만 탐하여 모세와 같은 지도자와 영웅이 되려 할 뿐, 그러한 리더로서 마땅히 겪어야 하고 마셔야 할 쓰디쓴 잔, 곧 무지하고 완악한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원망소리에 대한 죗값을 감당할 수 있는 멸시의 가시관과 채찍질과 십자가를 짊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처럼 골고다의 언덕길을 올라가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흔들어 거부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의 탐관오리 같은 교회 목사들과 정치인들이 꿈꾸는 모세의 자리이자 또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겐 모세와 같은 가슴 앓이도 할 수 없으며 또 그리스도와 같은 십자가도 짊어질 수 없는, 도리어 모세를 비방하고 그리스도에게 채찍질만 가하는 사단의 간교한 신학만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들의 거짓된 행위에 대해 하나님의 철퇴가 이 땅에 임하였으니 그게 바로 종북 반역 세력들의 반국가 반민족의 악행입니다. 즉 어떤 사람도 무지하고 완악한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원망소리에 대한 죄책은 감당하려 하지 않고, 그저 문재인처럼 존대받고 영광받으려는 자들이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의 목사들이며 또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쓰레기 정치인들입니다. 진정한 모세는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볼멘소리에 대한 죄책을 친히 감당하였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성도들 또한 이웃 사람들의 죗값을 자신들이 감당하였습니다. 이런 분들만이 한반도 금수강산에 거하는 백의민족의 참된 리더가 될 수 있을 뿐, 철면피 문재인(김정은) 같은 목사들이나 정치인들은 추호라도 이 민족의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믿음과 지혜를 터득하는 일도 이와 같음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공지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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