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터널을 빠져나와도 넓은 길은 자동차들로 여전히 혼잡하다. 터널에 이르기 전 고속도로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곳을 아기 배밀이하듯 겨우 지났고, 한남동 혼잡한 동네도 떠밀려 겨우 지나왔다. 이제 좀 나으려나 했지만, 통행료를 냈어도 오십보백보다. 속상하지만 구시렁대봐야 소용없다. 그저 앞차가 길을 터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니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다. 젊은 날 이곳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늘 부딪히던 일이다. 늦어서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일찍 서두르는 게 상책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갈 일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짐이 많을 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스럽다.
손님을 가득 실은 버스도, 짐 실은 트럭도 기다리고, 부호를 태운 수억 원짜리 최고급 승용차도, 삿대질을 잘하는 정치인이 탄 중후한 자동차도, 으르렁 포효하며 맹수처럼 질주하고픈 젊은 주인을 태운 스포츠카도 기다리는데, 난들 별수 있나. 그저 찍소리 못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일에 이젠 이골 났다.
그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차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길은 훤해졌다. 옆 차로는 아직도 몸살인데, 꿈인가. 슬쩍 앞발을 들어 텅 빈 차로에 놓으니 ‘빵’하며 뒤차가 소리친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빨간색 버스가 큰 몸집을 좌우로 흔들며 으스댄다. ‘물렀거라. 버스 나리 행차시다’라며. 그러고 보니 앞에 툭 터진 길은 이제 막 시작된 버스전용차로다. 바닥에도 파란색 띠가 보인다. 다른 차들은 알고 눈치껏 피했지만, 맹한 나는 미처 몰랐다. '역시 촌놈이라 다르군. 쯧쯧' 하며 뒤차는 놀린다.
내 차는 십몇 년 전에 붙인 녹색 번호판 [경기xx고 oooo]를 여전히 붙이고 다니니 눈치챌만하다. 서둘러 피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니, 버스는 그 큰 몸을 흔들며 비상등을 껌뻑인다. 고맙다는 것이다. 운전사의 태도가 제법이다. 눈을 부라리며 호루라기를 불 땐 언제고…. 나도 꾸벅 답례한다. 작은 일이지만 인사를 주고받음은 서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운전을 하면서 종종 불편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다. 옆 차로를 달리던 차가 내 앞으로 끼어들고 싶어 애원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야박하다. 오히려 간격을 좁히기도 한다. 이런 때 속도를 늦추며 ‘들어오세요.’하면 그들은 좋아한다. 특히 버스나 화물차라면 비켜준 보람도 있다. 버스는 사회적 이익이 많고, 화물차와 택시는 생업이니 그저 개인인 승용차는 양보함직 하다. 오늘의 버스처럼 껌뻑 껌뻑 인사하는 모습을 본다면 덩달아 기분이 좋다. 그러나 인사할 줄 모르는 사람도 가끔 있다. 서운하다.
이런 사람들을 아내는 두둔한다. 고마운 걸 모르는 것이 아니고, 여유롭게 운전하지 못하는 자기 같을 것이라고.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우린 이런저런 몰이해로 남을 원망하며 산다. 오해는 무섭다. 바로 해소되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기도 한다.
나는 다시 혼잡한 2차로로 들어섰지만, 빨강 파랑 녹색 옷을 걸친 덩치 큰 버스는 신났다. 승객들도 신났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나도 그런 기분 잘 안다.
버스전용차로, 무조건 칭찬하고 싶은,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교통정책의 하나가 아니냐. 전용차로를 침범할 생각이 난 추호도 없다. 종종 이것을 위반하고 싶은 트럭이나 택시 같은 이들이 있긴 해도 대체로 잘 지키는 보통사람들이 고맙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고맙다.
첫댓글 서울 시내는 언제 봐도 밀리고 있어 승객들이 불편해 하지요.
예, 승용차는 운행도, 주차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대중교통이 최고입니다...
질서란 서로 지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밝은 사회 될것 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못난 사람이 제 잘난체 교통 예절을 지키지 않아 꼴 볼견 이더군요.
부지불식간에 버스전용차로를 잠깐 침범했었지만, 고마워할 줄 아는 버스의 태도가 오히려 고맙네요. 말씀처럼 상호간에 예의를 지키니 길은 막혀도 기분은 좋습니다. ^^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구호처럼 교통안전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하는 일이라서 많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양보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읽고 갑니다~~내내 행복하시기 뱌ㅏ랍니다^^
네 맞습니다. ^^
평안하세요.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