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kr.blog.yahoo.com/natrang70/1034]
[출처=http://kaoru.txt-nifty.com/photos/travels/dscf0346.html]
바로 위의 사진(寫眞)에 나오는 글자는 동남(東南)-아시아의 베트남(Vietnam) 지역(地域)에 있었던 참파(Champa) 왕국(王國)의 고유(固有) 문자(文字)로 추정(推定)됩니다.
참고(參考)로 <위키백과>에 따르면,
참파(Champa) 왕국(王國)의 역사(歷史)는 중국(中國) 사료(史料), 참파(Champa) 비문(碑文), 참파(Champa) 사서(史書)에 기록(記錄)이 남아 있으며, 참파(Champa) 비문(碑文)에는 옛 참파(Champa) 언어(言語)를 인도계(印度系) 문자(文字)로 기록(記錄)한 것과 산스크리트(Sanskrit) 언어(言語)로 기록(記錄)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 카페의 <우리뿌리강좌> 코너에는 박자우 선생님이 번역(飜譯)하신 명대(明代)의 <성차승람(星槎勝覽)> ‘점성국’(占城國) 자료(資料)가 올려져 있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其國無紙筆之具,但將羊皮槌薄薰黑,削細竹為筆,蘸白灰為字,若蚯蚓委曲之狀。
그 나라는 종이와 붓이 갖추어지지 않아, 다만 양가죽을 망치로 두들겨 엷게 하여 훈흑색(薰黑色)이 되게 하여, 대나무를 가늘게 깎아서 붓으로 하여, 백회(白灰)를 담가 글자를 쓰는데, 지렁이가 기어가듯 막히고 굽은 형상(形狀)이다.
위에 인용(引用)된 사진(寫眞)을 살펴보면,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 연상(聯想)됩니다.
이것은 필자(筆者)의 주관적(主觀的) 판단(判斷)일까요?
사견(私見)이지만, 참파(Champa) 왕국(王國)의 문자(文字)에 대(對)하여 <성차승람(星槎勝覽)>에서 그 특징(特徵)을 그대로 언급(言及)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김홍필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영애승람", "성차승람"은 천상희 선생님이 왜곡되지 않은 책으로 분류한 책입니다. 최두환 선생님의 나름대로 서역진출은 성과가 있었지만, 남방 진출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최두환 선생님의 성품으로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 논리적 이유는 "교차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 지역이 인도 서남아 아프리카 지역과 역사가 겹쳐져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어느 누구도 이러한 최두환 선생님의 논리를 대항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코멘트 감사합니다. 문제는... 최두환 선생님이 "교차설"을 주장하신다는 것이군요...
그분의 가설을 그분이 스스로 합리화시키시려면, 무언가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겠지요... 그것도 결국 "이론"이므로, 그 논리를 꼼꼼히 분석해보면 어떤 결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그분의 글 속에서 논리적 비약, 모순, 함정 등의 결함을 발견한 적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논리"는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자기만의 색안경을 낀 논리는 자칫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맨눈으로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맨눈에도 어떤 문제가 있다면 정말 곤란하고요...
Chamba is an ancient town in the Chamba district in the state of Himachal Pradesh, in northern India.
[http://en.wikipedia.org/wiki/Chamba,_Himachal_Pradesh]
[참바는 인도 북부에 있는 히마찰 프라데시 주에 있는 고대 도시이다.]
[출처=http://cafe.daum.net/coreahistech, <아시아=조선>, "占城이 Champa라면 Chamba로는 못 읽을 리유 있나?", 최두환]
바로 위의 자료를 근거로 하여, 명대(明代)의 "점성국"(占城國)을 오늘날 인도(印度) 북부의 "참바"(Chamba)로 비정한다면...
"빈동룡국"(賓童龍國) 또한 오늘날 인도(印度)의 어디로 비정하여야 되겠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름발이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최두환 선생님의 그 글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The Chamba people of Nigeria and Cameroon that speak two distantly related languages:
Chamba Leko, of the Leko-Nimbari languages, and Chamba Daka, of the Dakoid languages.
The Chamba people have their own particular religious beliefs known as the Chamba Religion.
The Chamba in Cameroon are divided in to several sub sets : Bali-Nyonga, Bali Kumbat, Bali-Gham, Bali-Gangsin, and Bali-Gasho
[출처=http://en.wikipedia.org/wiki/Chamba_people]
바로 위의 자료를 살펴보면, 아프리카 서부의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에도 "참바"(Chamba)라는 종족이 나옵니다.
그들은 인도(印度) 북부의 "참바"(Chamba)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아니면, 전혀 관계가 없을까요???
Mungaka
A Language spoken by the people of Bali Nyonga. Bali Nyonga is located grasslands of Cameroon in the Northwest Province.
They are the descendants of the Bali Chambers in Northern Nigeria.
[출처=http://en.wikipedia.org/wiki/Mungaka]
바로 위의 자료에 나오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의 "발리"(Bali)는 인도네시아의 "발리"(Bali) 섬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최두환 선생님의 "교차설"을 적용하여... 아프리카 서부의 "발리" 역사와 인도네시아의 "발리" 역사는 서로 겹쳐져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말라카(Malacca; 滿刺加)의 남쪽 지역은 아프리카(Africa)이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본래의 "말라카"(Malacca)는 스페인 남부,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의 동북쪽 "말라가"(Malaga)라고 합니다.
말라가(Malaga)는 스페인 남부의 항구 도시로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2007년 기준 시의 인구는 561,250명이다. 말라가 주의 주도이며 위성 도시의 인구를 합치면 100만 명에 달하는데 스페인의 대도시로는 그 규모가 4~5위에 해당한다.
말라가는 과달메디나 강의 왼편 둑에 자리하는데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과달오르세 강은 말라가의 서쪽을 지나 지중해로 흘러들어간다.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므로 온화하고 살기 좋은 기후가 나타난다. 대개 평균 기온은 섭씨 19도이다.
하늘이 파랗고 넓은 항만을 끼고 있어 흔히 나폴리에 비교되기도 한다.
[출처=http://ko.wikipedia.org/wiki/%EB%A7%90%EB%9D%BC%EA%B0%80]
그런데, 최두환 선생님은 본래의 "수마트라"(Sumatra; 蘇門答剌)를 중동(中東)의 "시리아"(Syria)라고 주장하십니다.
본래의 위치를 오늘날의 지리적 위치와 비교하면, 그 방향과 거리가 다르군요...
<명사(明史)>에 따르면, 수마트라(Sumatra)는 말라카(Malacca)의 서(西)쪽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두환 선생님은 이를 동(東)쪽으로 고치셨습니다.
역사기록을 이렇게 아무나 함부로 고쳐도 되는 것인가요??? 이게 "원상회복"인가요???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지명(地名)들을 이리 묶고, 저리 엮고, 떼었다가 붙여놓고, 붙였다가 떼어놓고... 옛 기록의 내용이 엉망친창이군요...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명사(明史)>의 열전(列傳) 불랑기(佛郞機)에는 "佛郞機, 近滿剌加"라는 문구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도 본래의 "말라카"(Malacca)는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Malaga)라는 근거가 된다고 합니다.
"불랑기"(佛郞機)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나라 이름인데, 자총(子銃)이 붙어 있는 후장식(後裝式) 화포(火砲)의 이름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최두환 선생님은 그의 글에서 "불랑기"(佛郞機; Folangji)를 "프랑스"로 비정하셨으나, 일반적으로는 "포르투갈" 또는 "스페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불랑기(佛郞機)
어떤 책에서는 불랑서(佛郞西)라고 번역하고 있다.
명말(明末) 청초(淸初) 아오먼(澳門)를 점거하고 있던 "포르투칼인"에 대한 호칭으로 아라비아 글자 al-Frandj의 역음인데, 그 뜻은 유럽인 또는 기독교도라는 말이다.
제일 먼저 중국(中國)에 온 유럽인은 아오먼(澳門)에 거주하고 있던 "포르투칼인"이기 때문에 명말(明末)에 곧 불랑기(佛郞機)로 불려지게 되었고,
청초(淸初) 관방 문서에서도 명(明) 나라를 답습 그대로 불렀다.
[출처=http://cafe.naver.com/manchuri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86&]
또한... <명사(明史)>의 열전(列傳) 화란(和蘭)에는 "和蘭, 又名紅毛番, 地近佛郞機"라는 문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和蘭, 地近佛郞機"와 "佛郞機, 近滿剌加"는 서로 같은 형식의 문구일까요??? "地"라는 글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佛郞機, 近滿剌加"에서는 "地"를 일부러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원문(原文)의 미세한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명사(明史), 열전(列傳)213, 외국(外國)6>에는 여러 나라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유럽의 국가 곧 "불랑기"(佛郞機; 포르투갈/스페인)와 "화란"(和蘭; 네덜란드)도 등장합니다.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에서... 유독 그 두 나라의 이름이 그 기록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사(明史), 열전(列傳)213, 외국(外國)6>은 그 당시에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만 따로 모아서 기록한 것일까요???
이른바 여송(呂宋)에 관한 사실을 여러 글에서 상고해 보았더니, 민장(閩漳)과 멀지 아니한데, 지금은 불랑기(佛郞機)에 병합된 바 되었습니다.
[출처=<조선왕조실록>, 순조 7년(1807년) 8월 10일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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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원문(原文) 기준으로, "佛郞機"(불랑기)라는 낱말은 단 1건만 나옵니다. 그게 바로 위의 자료입니다.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을 유추하여 적용하면... 말라카(Malacca; 滿刺加)와 유사하게... 여송(呂宋) 곧 "필리핀"도 지중해 연안에 있었던 나라가 됩니다.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통치>
1521년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도중 세부 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후 에스파냐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다.
19세기 말까지 200년 이상 계속된 에스파냐의 통치는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로 만들어서, 필리핀은 수도사의 천국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결국, 1898년에 미서 전쟁(美西 戰爭)에서 패한 에스파냐는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필리핀의 지배권을 2,000만 달러에 미국으로 양도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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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앞서 언급한 <조선왕조실록> 순조 7년(1807년) 8월 10일 2번째 기사의 내용을 대변합니다.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명사(明史)>에 나오는 말라카[滿剌加/麻六甲]는 무엇보다 점성(占城)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현재의 베트남 정도로 봐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뒷날에 프랑크(Frank, 佛郞機)에게 그 땅을 뺏겼다고 했고, 1521년에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칙명을 내려 그 프랑크를 꾸짖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말라카(Malacca)
원래는 한촌에 불과하였으나 14세기에 수마트라섬에서 온 파라메스바라가 이곳을 중심으로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지리적 조건 때문에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창하였다.
1511년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갈이 왕국을 멸망시키고 아시아 최초의 유럽 식민지로 만들어 향료 무역의 독점과 그리스도교의 선교 기지로 삼았다.
그 후 1641년 네덜란드가 빼앗아 해협을 지배하였고, 1824년 영국의 소유가 되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바로 위의 자료는... "佛郞機, 近滿剌加"라는 문구를 잘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1511년에 말라카(Malacca)는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하였고, 1521년에는 명(明)의 세종(世宗)이 이를 꾸짖은 것입니다.
문제는, 최두환 선생님이 동남아(東南亞)의 이슬람 문화를 (14세기가 아니라) 19세기와 20세기에 만들어진 "특별한 문화"일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하신 것에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겠습니다. 크로스 체크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피부가 검고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들은 "아프리카"(Africa)에서만 살았는지도 조사해보겠습니다. 중요한 쟁점이니까요.....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 사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니까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흡사하네요... 검은 피부, 곱슬머리...
인터넷 포털에서 사진 검색을 하면, 이를 손쉽게 볼 수 있네요... 그곳에 직접 갈 필요도 없군요...
滿剌加,在占城南。順風八日至龍牙門,又西行二日即至。或云即古頓遜,唐哥羅富沙。
[출처=<명사(明史)>, 열전(列傳)213, 외국(外國)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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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최두환 선생님은 "頓遜"와 "哥羅富沙"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가리키나요???
"哥羅"는 불교(佛敎) 용어에도 나오네요...
《梁書·諸夷》
"頓遜國,在海崎上,地方千里,城去海十里。有五王,并羈屬扶南。頓遜之東界通交州,其西界接天竺、安息、徼外諸國,往還交市。所以然者,頓遜回入海中千余里,漲海無崖岸,船舶未曾得徑過也。其市,東西交會,日有万余人。珍物寶貨,無所不有。又有酒樹,似安石榴,采其花汁停甕中,數日成酒。"
[출처=http://zh.wikipedia.org/wiki/%E9%A1%BF%E9%80%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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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손(頓遜)의 서(西)쪽에 천축(天竺)과 안식(安息)이 있었네요... 왕환교시(往還交市), 동서교회(東西交會)...
그 지리적 조건 때문에 14세기에는 동서무역(東西貿易)의 중계지로 번창하였다는데요...
최두환 선생님은 별도의 글에서, <양서(梁書)> 제이(諸夷)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돈손국(頓遜國)은 오늘날의 파미르 고원, 신강성(新疆省), 티베트 지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장이 "頓遜國,在海崎上,地方千里,城去海十里"라는 내용에 부합할까요???
<명사(明史)>에 따르면... 말라카(Malacca)는 곧 돈손(頓遜)인데,
최두환 선생님은 말라카(Malacca)를 스페인 남부의 말라가(Malaga) 지역에 비정하시고는,
또 다시... 그 말라카(Malacca)를 파미르 고원, 신강성(新疆省), 티베트 지역으로 비정하셨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시고도, 논리적 결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앞뒤가 안맞아서 문제가 있습니다.
蘇門答剌,在滿剌加之西。順風九晝夜可至。或言即漢條枝,唐波斯、大食二國地,西洋要會也。
[출처=<명사(明史)>, 열전(列傳)213, 외국(外國)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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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는 대로, 이 문구도 검토해보겠습니다.
<蘇門答剌>
其國俗頗淳,出言柔媚,惟王好殺。歲殺十餘人,取其血浴身,謂可除疾。
貢物有寶石、瑪瑙、水晶、石青、回回青、善馬、犀牛、龍涎香、沉香、速香、木香、丁香、降真香、刀、弓、錫、鎖服、胡椒、蘇木、硫黃之屬。
貨舶至,貿易稱平。地本瘠,無麥有禾,禾一歲二稔。四方商賈輻輳。華人往者,以地遠價高,獲利倍他國。
其氣候朝如夏,暮如秋,夏有瘴氣。婦人裸體,惟腰圍一布。其他風俗類滿剌加。篡弒後,易國名曰啞齊。
[출처=<명사(明史)>, 열전(列傳)213, 외국(外國)6]
바로 위에는 토산물, 기후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특히... 여름에는 장기(瘴氣)가 있고요... 이것은 열대 지방의 특징이네요...
그리고 부인(婦人)들은 나체(裸體)인데, 천 하나를 허리에 둘렀군요... 가슴을 드러냈다?
왕(王)의 취미도 독특하네요... 살인한 후에 그 피로 목욕을 하였고요... 질병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보리는 없었고, 벼는 있었고... 벼 농사는 1년에 2번을 하였고... 이는 수전(水田)을 뜻하는데요...
말라카(Malacca)와 기타 풍속이 비슷하므로, 비교적 서로 가까운 나라이고요... 자연스럽게 동화된다고 할까요...
수마트라(蘇門答剌)... 이곳이 서남(西南)-아시아에 있었던 옛 시리아와 페르시아일까요???
문맥상, 한(漢) 때의 조지(條枝), 당(唐) 때의 파사(波斯) 대식(大食)이라는 나라의 뜻은 앞 단어의 소문답랄(蘇門答剌)이 아니라 서양요회(西洋要會)를 말한다.
[서양요회(西洋要會)는 "西洋之要會"에서 "之"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
즉, "서양요회(西洋要會)는 한(漢) 때 조지(條枝), 당(唐) 때 파사(波斯)와 대식(大食) 두 나라이었다"는 뜻으로,
뒤의 문장들은 당시의 서양요회(西洋要會) 지역이 된 소문답랄(蘇門答剌)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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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박자우 선생님의 견해입니다. 저도 이에 공감합니다. 다른 측면에서도 검토해보겠습니다.
扶南國也称夫南、跋南,是中南半岛的一个印度化古国,建国于公元1世紀,《汉书》中称为“究不事”,遗址在今柬埔寨境内,奉印度教為國教,受印度文化影響甚深。
扶南王國国都在公元五世纪在毗耶陀补罗城(Vyadhapura,梵文:猎人城),在今巴南(Banam)附近,有湄公河西北流东入海。
高棉語中扶南国王叫“山帝”(Kurung bnam),Kurung(帝) bnam(山)。扶南是高棉語bnam(山)的对音。
[출처=위키백과(중국어), http://zh.wikipedia.org/wiki/%E6%89%B6%E5%8D%97]
최두환 선생님은 바로 위의 자료를 언급하시면서...
부남국(扶南國)은 산(山; bnam)이 많은 지역이므로, 그곳은 동남(東南)-아시아가 아니라... 파미르 고원, 히말라야 산맥, 곤륜 산맥 등이 있는 중앙(中央)-아시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여기서 산은 모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리킬까요???
부남의 민족은 흔히 몬크메르계로 생각되었지만, 최근에는 오스트로네시아계로 추정되고 있다.
캄보디아인들은 티베트에서 내려온 몬크메르어계이므로, 부남의 민족이 캄보디아의 선조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힘들다.
학자들은 부남이 그 중심은 현재 캄보디아의 영역에 있지만, 민족은 말레이계의 선주민이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출처=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B6%80%EB%82%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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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의 자료를 살펴보면, 캄보디아는 티베트에서 이주해온 종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부남 왕국은 3세기 초 판 시만 왕의 통치 하에 최대 영토를 이룬다. 그 강역은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 서쪽으로는 미얀마에 이른다.
판 시만은 함대를 양성하고 관료조직을 개편하여 동남아시아의 강력한 해상 왕국을 완성한다.
해상 무역으로 번성했던 푸난은 5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는 4세기 경, 중국인들이 동남아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중계무역지로서의 푸난의 위상이 흔들린 것에 기인한다.
한편, 부남의 속국이었던 진랍은 점차 강대해져 결국 5세기 중엽 내란으로 약해진 부남을 공격하여 멸망시킨다.
[출처=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B6%80%EB%82%A8]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하면..... 부남국(扶南國)은 "해상왕국"(海上王國)이었다는 내용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扶南國俗本躶體,文身被髮,不制衣裳。
[출처=<梁書, 卷五十四, 列傳第四十八, 諸夷>, http://toyoshi.lit.nagoya-u.ac.jp/maruha/kanseki/liangshu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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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국(扶南國)의 풍속(風俗)은 나체(躶體)이고, 옷을 안입어도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머리를 묶지 않고, 문신(文身)도 하고요...
그러므로, 부남국(扶南國)을 중앙(中央)-아시아에서 찾으면 안되고... 차라리... 아프리카(africa)에서 찾아야 하겠죠...
赤土國,隋時通焉,扶南之別種也。
[출처=<通典, 卷第一百八十八, 邊防四, 南蠻下>, http://toyoshi.lit.nagoya-u.ac.jp/maruha/kanseki/tongdian1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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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환 선생님은 적토국(赤土國)을 아프리카(Africa)로 비정하셨습니다. 적토국(赤土國)은 부남국(扶南國)의 별종(別種)이고요...
그래서 제가...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에 논리적 결함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앞뒤가 안맞아서 문제가 있습니다.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본래의 아라비아 반도는 오늘날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이고, 본래의 제주(濟州)는 오늘날의 아라비아 반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유럽"과 "아랍"은 같은 어원을 가진 낱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이 왕성하게 활동하였기 때문에, 마치 그곳이 "무슬림의 발상지"인 것처럼 최두환 선생님이 주장하셨습니다.
"유럽"과 "아랍"... 양자(兩者)의 어원이 같다고 해서, 양자(兩者)의 지리적 위치까지 똑같다고 단정하여도 무방할까요???
본래의 제주(濟州)는 오늘날의 아라비아 반도라고 가정합시다. 그럼, 제주(濟州) 관련 역사기록을 모두 낱낱이 대조해보면 어떨까요?? 잘 맞아 떨어질까요???
중동(中東) 지역의 제주(濟州)를 기준으로, 동서남북(東西南北) 방향에 어떤 나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날의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메디나"와 "메카"는 모두 가짜인가요???
모든 역사연구자들이 오늘날 지중해 연안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고로 언급하면, 2007년 12월 30일 <최두환 칼럼> "추자도에 귀양이면 한반도 남쪽인가?"라는 글에서....
최두환 선생님은 제주(濟州)와 추자도(楸子島)를 지금의 대만(臺灣) 남(南)쪽 방향에 있는 임의의 지역으로, 유구국((琉球國)을 지금의 대만(臺灣; 타이완)으로 비정하셨습니다.
이러한 견해를 따르면, 동남(東南)-아시아 부근에서 제주(濟州)를 찾아야 합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삼면(三面)이 바다이고 그 북(北)쪽은 육지(陸地)에 연결되어 있는 제주(濟州)를 어디에서 찾으면 될까요???
그런데, 문제는 최근에 최두환 선생님이 그 학설(學說)을 변경하신 것에 있습니다.
학설(學說) 변경에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즉, 예전의 학설을 부정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새로운 학설을 긍정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하며, 그 이유나 근거들이 서로 충돌되거나 모순되면 안 됩니다.
선사(先史) 시대에는 문자(文字)가 없어서 그 역사를 기록한 문헌이 존재할 여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유적과 유물로만 그 역사를 연구하여야 됩니다. 이를 "선사고고학"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나중에... 유사(有史) 시대에 누군가가 그 역사를 상상하여 문헌으로 기록할 수는 있겠죠...
반면, 유사(有史) 시대에는 문헌만이 아니라 유물과 유적도 함께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연구를 할 때에 문헌을 무시할 수 없고, 유물과 유적 또한 간과하면 안 됩니다.
최대한 많은 자료들을 통해서 "크로스 체크"를 하여야 됩니다. 기록에 나오는 문자(文字)나 문구(文句) 몇 개보다는 "전체 모습"을 보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른바 "문헌"이라는 것은...
기록 당시의 시대적 상황, 기록자의 개성, 기록자의 판단 오류, 앞 시대에 잘못 기록된 것을 후대의 기록자가 확인 없이 재인용하는 것, 단순한 오탈자 등의 제반 문제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잘 살펴서 문헌을 분석하여야 됩니다.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문헌들을 바라보면, 때로는 엉뚱한 세상 또는 희한한 세계가 보이게 되는 겁니다. 이를 즐길 수도 있으나, 진실과 거리가 있다면 소설에 불과합니다.
위의 문자를 해독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 해독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