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바이크 연비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경험 있는 라이더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실연비 경험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장거리 순항 연비는 고려하지 않았으며 실생활에서 가장 비중이 큰 사용환경인 “다소 정체되는 곳도 있고 좀 뚫릴 때도 있는 시내도로의 평균적 환경”을 기준으로 한 연비입니다. (4stroke)
이중에서 원동기장치자전거는 논외로 하고 좀 탈만한 이륜자동차(250cc이상)를 살펴보면… 제 잣대로 말씀드리자면400cc 네이킷, 또는 600cc크루져를 넘어서부터는 이륜자동차만의 우수한 연비가 주는 장점이 거의 다 퇴색됐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보면 앞으로 5년 내에 도요타 프리우스같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중화될 것인데, 그땐 이미 이 정도의 연비는 그저 4인승 승용차만도 못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연비 분포의 경향을 살펴보면 고배기량일수록, 다기통화될수록, 고회전화될수록 연비가 악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연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배기량이 높아지면… 이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일정한 비율로 혼합된 혼합기를 125cc만큼 빨아들이는 것과, 400cc만큼 빨아들이는 것은 누가 봐도 후자쪽이 기름을 많이 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단기통에서는 배기량이 어느정도 높아져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은 단기통의 특성상 고속 회전을 시키기가 어렵고 실린더와 피스톤, 밸브계통과 메인져널 베어링 등 부품간의 섭동저항이 작은데다가 저속세팅으로 밸브 오버랩이 최소화되어 미연소가스가 별로 없고, 밸브 개방면적이 작아서 흡기효율이 낮다는 단점이 오히려 적은 혼합기로도 1회 폭발을 완료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어 똑같은 체감 토크를 만드는 데도 다기통보다 더 적은 연료를 소모합니다. 게다가 단기통은 연소실이 1개 뿐이므로 태생적으로 SV비를 양호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열효율이 보전됩니다. 또한 배기량이 올라가도 기어비의 차이로 인해 같은 속도에서도 더 낮은 rpm으로 달리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단기통은 배기량에 따른 연비의 편차가 적은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기통은 진동과 저출력 등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연비 좋고 특유의 고동감이 있는 가장 “오토바이”다운 엔진으로 계속 애용되고 있습니다. 주제가 샜는데, 아무튼 배기량이 커지면 대체로 연비는 악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기통은 그 낙폭이 적다는 장점이 있는 거구요.
둘째, 다기통화되면… 이것은 위에서 말한 단기통의 장점을 거꾸로 뒤집으면 됩니다. 태생적으로 고회전에 유리한 다기통 엔진은 저진동/고출력 엔진이라는 커다란 장점이 있지만….그렇긴 하지만…사실 이건 위에서 계속 언급되는 “매니아”들에게나 환영받을 일이구요, 냉정히 따지면 힘이 좋아지는만큼 잃는 것도 많아집니다. 우선 고회전화에 따른 섭동저항의 2차곡선적인 증가입니다. 엔진 회전을 올려가면 이 저항치가 직선으로 쭉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시점을 넘어서 급속히 천장을 향해 돌진하는 2차 그래프라는 것이 연비 악화의 주범입니다. 미들급 중에서도 소형이라는 400cc엔진으로 레드존 치면서 달려봅시다…리터급보다 기름 더 먹습니다. 피스톤, 실린더가 4개씩이나 있어서 저항도 많고, 단기통은 밸브 많아봤자 4개만 눌러대면 되는데 4기통은 무려 16개의 밸브를 눌렀다뗐다 반복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나온SV비란 연소실의 용적 대비 표면적의 비율인데, 이것이 증가하면 열이 외부로 더 많이 발산되어 열효율이 추락합니다. 기통수가 많으므로 실린더 슬리브의 표면적도 넓으며, 여기서 버려지는 열도 무시 못합니다. 고압축비를 통해 효율이 증가하는 만큼 파워밴드는 고회전으로 올라가고 SV비도 증가해서 결과적으로 효율 증가분을 상쇄시키고 오히려 연비는 떨어집니다. 고회전 세팅된 엔진은 밸브 오버랩이 커서 파워밴드 이하에서는 마치 2스트록 엔진처럼(액면 그정도는 아니더라도) 미연소가스를 배출하며 또 고회전 파워밴드에서는 또 파워밴드대로 저항과 냉각으로 휘발유의 에너지를 뽑아씁니다. 그래서 같은 400cc라도 단기통과 4기통의 연비 차이는 극명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동차 엔진은 똑같은 휘발유 엔진인데 왜 4기통, 심지어 6기통으로 만드느냐? 물론 만들 수만 있다면 2000cc 단기통이나 2기통 엔진 자동차가 나와도 이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승용차는 저진동의 승차감이 우선순위이고, 무엇보다 휘발유 엔진은 한 지점에서 화염이 전파되기 때문에 이 화염전파 속도에 덜미를 잡혀서 기통당 어느 수준 이상의 대배기량은 오히려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럼 발칸2000은 뭐냐구? 이 녀석 엔진은 바이크 무게 수준에서나 쓸만한 거지, 70년대 자동차 수준의 리터당마력도 안나옵니다. 이걸로 2000cc자동차를 만들었다간 엄청난 진동에다 너무너무 느린 놈이 되어버릴 겁니다. 중형차 세금 내면서 소형차만큼도 달리지 못하는 차를 어따써~?
셋째, 고회전화하면… 위에서 말한 사실들 그대롭니다. 고회전화할수록 효율은 급락합니다.
로즈웰에 떨어져있던 무슨 외계 물질로 저항이 0이고 (손으로 집어 올릴 수도 없겠군요..-_-;) 세라믹을 능가하는 신소재로 만들지 않는 이상…지금의 고배기량 고회전 스포츠바이크들의 자화상은 사장님들의 골프채만도 못한 수준입니다.
아직은 먹고 살만하니까 별 생각이 없는 모양인데 몇 년만 지나 휘발유가 리터당 2000원을 넘어가는 날이 오면 그땐 정말 그룹 이사님들이나 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할리처럼 저회전 엔진이나 단기통 엔진, 혹은 자동차 뺨치게 연비저감 기술이 동원된 미러사이클 엔진 등이 각광받을 지도 모르죠. 바이크 엔진에도 린번은 기본에 GDI 성층연소 엔진이 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꼬우면 다운그레이드해야지 뭐. 제 아무리 매니아라 해도 밥보다 바이크가 더 좋다는 얘길 할 수 있는 건, 아직 “제대로 굶어 본 적이 없다”는 소립니다.
하지만 이 바이크란 놈이 마치 남자들 거덜내는 팜므파탈처럼 지극히 비이성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단기통이 연비가 좋아도 4기통의 후아아앙~!!하는 고회전에서의 비명소리가 좋아죽겠다는 사람한테 단기통 강요할 수는 없는 거죠. 모든 장르의 바이크들은 존재가치가 있고, 4기통 스포츠바이크는 그들 나름대로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고, 2기통은 2기통 나름의 존재가치가 있고, 단기통도, 고회전 엔진도, 저회전 토크빨 엔진도 다 역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유가 상승으로 유지 비용이 계속 상승해도 고회전 고출력 저효율 바이크 탈 사람은 타는 거고, 그것에 대한 경제적인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하는 것이지요. 애마로 인해 그 사람 삶의 다른 분야에서 많은 기회비용을 발생시켜도 그것을 지출할지 말아야 할지의 결정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모든 것에는 “도에 지나치지 않는”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고, 애마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인해 바이크와 함께 하는 삶 자체가 재미 없어져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우리들이 좋아하는 바이크가 상위 몇%에서나 만져볼 수 있는 최상위층의 스테이터스 심볼이되어 죽은 박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거리에서 친숙한 모습으로 흔히 달리는, 어릴 적 골목길에 무심히 세워져 있던 그 오토바이의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첫댓글 먼지라이더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극히 바이크를 일상생활에 완전히 접목시키셔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게는 해당이 되겠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글 정말 잘쓰셨네요..
모든 분들에게 해당(?) .... 아니 도움 되는 글 같네요\ ` -`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