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同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동행(同行)이란 둘이 같이 걷는 것이다.
동행은
히브리어로 ‘할라크’ 영어로는 walk with 인데 동행은 ‘함께 걷는다’란 본뜻 이외에 ‘삶의 방식을 따른다’라는 의미도 있다.
동행은 둘이 팔짱을 끼고 계속 대화하며 더욱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미6:8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다.
사춘기시절에 김성수가 부른 '동행’이라는 유행가가 생각이 난다.
아직도 내겐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있어요
그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안개
긴밤을 오가는 날은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누가 나와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가슴
채울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이 있는 날까지
누가 나와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가슴 채울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사랑이 있는
날까지
연인을 생각하면서 불렀지만,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오버랩되어 하나님과의 동행을 많이 생각했었다.
이 아침에 430장 찬송을 불러본다.
1.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후렴)
2.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후렴)
3.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후렴)
4. 옛 선지자
에녹같이 우리들도 천국에
들려 올라갈 때까지 주와 같이 걷겠네
후렴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동행은 단지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는 말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동행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는 에녹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이 간단하게 나온다(창 5:21-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들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짧게 기록된 에녹의 삶의 행적에서 동행의 비결과 내용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 많은 힌트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동행하다’는 히브리어 동사 할라크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무려 1,562번이나 사용되었다.
기본적인 뜻은 ‘걷다, 가다’이다. 이 히브리어 단어에는 ‘동행’이라는 특별한 의미나 개념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걷기’를 의미한다.
뜻이 단순할수록 쓰임새는 오히려
다양하다. ‘할라크’라는 동사도 함께 쓰이는 동사나 목적어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첫째, 짐승과 피조 세계의
움직임
가장 일반적인 의미가 사람의 걸어감(출 14:29 - “바다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을 뜻하는데 사용되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짐승의 움직임, 물의 흐름과 소리의 확대를 포함하여 폭넓게 사용되었다
• 뱀의 기어다님(창 3:14 - “배로 다니고”)
• 여우들의
노님(애 5:18 -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 배의 항해(창 7:18 -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 물의 흐름(창
2:14 -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 나팔소리의 커져감(출 19:19 -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시 78:39)
• 쉬 없어지는 이슬(호 6:4)
• 비가 내리고 '그치는'(아 2:11)
이처럼
‘할라크’라는 동사는 사람의 걷는 동작뿐 아니라 짐승과 사물의 모든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사람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운행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뱀이나
여우가 움직이고 배가 물 위에 떠다니며 물이 흐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처음 창조한 창조의 모습대로 움직이며
동행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심으로 동행하길 원하는 대상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이다.
둘째,
하나님의 ‘오심’과 사람의 ‘패역’
‘할라크’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찾아오시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되었다
•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삼하 7:23)
•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시 80:2)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출 33:14)
•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출 13:21)
• 내가 네 앞서 가서(사 45:2).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바람을 뿌리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릇된 길로 가고 말았다.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달려나가 맞이하는 동행의 삶을 살지 않은
것이다.
렘 5:23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말씀처럼 거짓 신들을 좇아갔다.
렘
7:24의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와 렘 11:8 의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말씀처럼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대로 행하였다.
이를 이사야 선지자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사 9:2)이라 표현하였다.
모두 ‘할라크’라는
동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패역한 삶의 행적을 묘사하고 있다.
패역한 세상, 하나님의 ‘오심’을 뿌리치고 제 갈길로 갔던 사람들
틈에 에녹과 노아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창 5:24, 6:9).
에녹과 노아의
‘동행’은 히브리어 ‘할라크’의 재귀동사(히트파엘형) 이트할레크가 쓰였다. 1,562회의 ‘할라크’ 동사의 쓰임 중 재귀동사인
히트파엘형으로 쓰인 것은 60회인데, 이 중에서 ‘동행’으로 번역된 것은 에녹과 노아의 경우(창 5:22,24, 6:9) 단 세 번뿐이다.
에녹과 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반드시 마음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동반자인 부부가 동행하기로 작정한 것도 마음이 맞아서다. 그런 부부일지라도 마음이 틀어지면 결국 갈라져서 동행의 삶이 끝나게
된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에 동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려
애쓰는 삶이다. 하나님 또한 에녹과 노아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그들의 삶에 지팡이가 되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마음을 나누는 동행
예수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마 11:17) 세대를 한탄하며
책망하셨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대한 질책이었다.
이 비유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동행의 삶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남의 기쁨을 질시하고, 남의 슬픔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경향이 많다.
남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며 축하해 줄 때 상대방은 나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게 마련이다.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하며 애통해 할 때
상대는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인생을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에녹과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공유했다.
하나님 또한 여느 피조물보다 사람과 함께 동행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할라크’) 완전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에 쓰인 ‘할라크’ 동사를 에녹과 노아의
경우에 대입하면 “너는 나와 동행하여 완전한 삶을 살아라”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모스3:3은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두 사람의 뜻이 같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사람이 결혼을 하고 한 집에서 살아도 뜻이 일치하지 않으면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성적으로 무엇이든지 내 마음과 내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뜻을 합하여 동행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뜻과 내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받아들여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후에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뜻)대로 하옵소서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마 26:39, 막 14:36, 눅 22:42) 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가장 기쁘고 가장 행복한 길이다.
자신의 주장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에녹과 노아처럼,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은 ‘동행’하기를 원하셨고, 명령하신 것이다. 에녹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여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는 축복을 받았듯, 오늘 우리 또한 이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구원의 축복에 동참하는 은혜가 넘치길 기도한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영원까지 하나님과 동행의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