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일요일 이른 아침.
“…….”
멍- 하니 넋 놓고 운동장만 보고 있는 류. 총회장에게 주어지는 개인실에서 누구를 부회장 자리에 앉혀야 하는지, 그 고민 덕에 기숙사에도 가지 않고 멍하니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물론 식사도 완전히 거른 채다.
꾸르르르르륵.
“어. 배고프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못 먹은 게 아닌가.
같은 시각, 교문.
학교 교정이 크고 넓은데다가 기숙사까지 있는 만큼 경비 역시 철저하다. 경비소가 학교 교실 세 개를 합한 만큼 크고 넓으며 그곳 역시 숙식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경비를 서는 사람은 주로 50대 층이지만 10대에게도 뒤지지 않는 체력과 근력을 가졌으며, 또한 4조 3교대를 이루어 돌아가면서 학교와 기숙사를 수시로 순찰한다.
만에 하나 돈 사고라도 나게 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럴 확률이 극히 적은 게, 학생회의 돈 관리자는 총무부장 세 명이며, 그들은 3학년 총무부장의 지휘 하에 그들 세 명밖에 모르는 금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 돈 사고가 크게 터진 뒤 당시의 총무부장이 학생이나 교사 등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금고를 만들어 놓고, 비밀번호를 설정한 뒤 총무부장에게만 그 비밀번호를 전수한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씩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도 잊지 않으며, 그것을 금고 수호의 철칙으로 한다.
얘기가 살짝 엉뚱한 곳으로 세었으나 결론은 경비소도 학교만큼이나 크다는 것! 그리고 늘, 언제나, 조용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글쎄 이 학교 학생 맞다니까요?”
“그럼 신분증을 보여!”
“아직 제대로 된 전학 절차를 밟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분증을 보여요?”
“학생 맞다면서! 그리고 우리 아카데미가 어디 전학이 쉬운 줄 아나? 정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전학을 오가지 않아!”
바락바락 대드는 아이나, 그에 못지않은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치는 경비원이나, 거기서 거기로구나.
“일단 학교 안에 들어가야 전학 절차를 밟죠!”
“어디서 온 놈이냐, 너!”
“제국에서 왔어요, 됐어요?”
“이, 이놈이! 감히 우리가 누구인줄 알고!”
“헤헹~ 경비원 아저씨들이잖아요, 누가 그걸 몰라?”
그 상태로, 3시간 경과.
“왠지 왁자지껄하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말소리를 들은 류, 멍하니 중얼댄 뒤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봤다. 어느 소년이 경비원 서넛과 함께 말싸움을 하고 있다.
“!”
눈동자 빛이 탁한 류, 소녀를 보고 있던 사이 점차 빛이 맑은 색으로 돌아온다.
‘그래, 그거야!’
벌떡 일어난 류는 자신의 개인실을 나와서 교문을 향해 뛰었다. 하루 정도 굶었지만 지금의 그에게선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파워다.
“잠깐!”
순식간에 교문에 도착한 류는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멈췄다.
“무슨 일인가요?”
“아, 총회장! 글쎄, 이 녀석이-”
경비원은 요점만 추려서 설명했다.
“그러니까 정체불명의 이 녀석이, 자신이 전학생이라고 우기면서 들어오기를 원한다 이거지요? 아직 전학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서?”
“그렇다니깐.”
“그럼 들어가면 되겠네.”
경비원 전원의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자야 할 사람들이건만 그 잠이 확 달아날 만큼 충격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는 경비원 일행이다.
“초, 총회장!”
“문제 해결 된 거죠? 그럼.”
류는 손을 들어 가벼운 인사를 건넨 뒤 소년을 데리고 교정으로 향했다.
자신의 개인실로 소년을 데리고 들어온 류는 냉장고 안의 차가운 우유를 살짝 데워서 그에게 건넸다.
“아, 고맙습니다.”
“후후, 뭘. 난 우리 학교 학생회의 학생 총회장을 맡고 있는 3학년 류 메이라고 이라고 해. 너는?”
“워더. 워더 토마로입니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워더는 잔을 들어 우유를 쭉 들이켰다. 말싸움 하느라 진이 다 빠진 것을 우유가 어느 정도 채워주는 것만 같았다.
적당히 데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냉기가 남아 있는 우유를 저렇게나 마시다니! 눈을 동그랗게 뜬 류는 슬쩍 떠보듯 묻는다.
“한 잔 더 줘?”
워더는 두 번 생각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1리터 종이팩 안의 우유가 동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 할아버지들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전학생이라고 하는데도.”
입을 삐죽 내민 워더는 쉴 새 없이 투덜거린다.
“어른들이 말이야, 청소년의 말을 못 믿으면 어쩌겠다는 건지. 나~ 참.”
그 사이 커피를 한 잔 마신 류는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몇 년 전에 학교 안에서 돈 사고가 크게 났었거든. 그래서 외부인이라면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 해. 입학생들은 졸업할 때 졸업하는 학교를 통해, 미리 학생증을 받기 때문에 너 같은 일이 잘 안 일어나. 우리 측에서 그 학교에게 학생증을 제공하니까.”
“그렇군요. 1학년이라서 몰랐어요.”
피식. 전학생이라서 몰랐던 게 아니고?
실소를 터트린 류는 책상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런 뒤 다시 소파에 앉을 때는, 탁자에 어느 종이 몇 장을 올려놓는다.
“장난삼아 한 번 풀어볼래? 3학년 졸업용 시험이야.”
류의 말을 들은 워더는 자신의 눈썹을 씰룩댔다.
“그런 것도 있어요?”
“응, 있어.”
그는 겉과 속으로 각기 다른 말을 내뱉는다.
‘쿠쿡! 잘해봐라.’
졸업 시험까지는 아니다. 학교 측에서는 승급 시험에 가까운 모의고사를 치르곤 한다. 학년을 올려도 되는 지 시험하는 것인데, 학생들은 그것을 모의고사가 아니고 승급 시험 자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3학년은 12월 초,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 시험을 한 번 더 친다.
대학 진학이나 자신의 진로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기적이라고 불릴 법한 일은 그로부터 30분 후 일어났다. 워더가 다 풀었다며 내민 시험지의 답을 훑어본 류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뭐가요?”
“1000점 만점에 996점이라니. 이런 세상에.”
250문항을 30분 만에 풀어내다니. 그것도 3학년 최종 시험을 1학년이 말이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 교문에서 경비원 아저씨들이랑 얼마 동안 실랑이를 한 거야?”
“음~ 한 3시간 가까이 되네요.”
“이야-. 그럼 내가 너 구해준 거야?”
워더는 눈을 세 번 정도 껌벅였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데요, 총회장님은?”
님? 님이라, 하하하하!
대소를 터트린 류는 민망함을 감추며 크게 웃었다. 그런 뒤 워더의 잔에 우유를 다시 채워주며 말했다.
“그냥 간단히 선배라고 불러, 회장님이라니, 쑥스럽게 시리!”
“에이~ 그래도요.”
“어쨌든 내가 너 구해준 건 맞지?”
워더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인다.
“너, 학년부회장 해라.”
“!”
우유 잔을 들던 워더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예?”
점심시간이 지난 뒤 학생사령회의실.
“뭐라고?”
“뭐라고요?”
류의 긴급 소집 메시지를 받고 이곳으로 집합한 사령관 전원(물론 워더 제외)은 류의 선포를 듣고 경악을 터트렸다.
“말도 안 돼, 아니 어떻게!”
“문제를 빨리 풀었다고 학년회장에 올리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학생 총무부장과 2학년 회장의 반대가 거세다. 옆에 앉은 총 부회장 세니 역시 팔짱을 끼고, 자못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이번 건은 동의할 수 없겠어. 아무리 1학년 부회장의 자리가 비어서 급히 채워 넣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전학생이야. 그것도 전학 절차를 모두 마치지도 못 한. 무엇보다 저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 학교의 분위기 파악과 적응이라고.”
“그건 다나도 마찬가지 아냐? 녀석은 작년에 입학하자마자 휴학계를 냈어. 그리고 1년 만에 돌아왔는데도 넌 학년 회장 제의를 했잖아."
말싸움이 시작됐다.
“그거야 가요계 활동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지금 건은 그 건과는 상황 자체가 달라. 그래도 다나는 1개월 정도는 다녔어. 어느 정도 학교 분위기를 익힌 뒤에 휴학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 거절했어. 동의할 수 없어. 반대야. 너무 성급한 결정이야.”
“경비원 아저씨들과 말싸움을 2시간 넘게 했어.”
“그건 학생회 임원이 되는 조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얘기야.”
교내 공식 연인인 두 사람이건만, 어째 사랑싸움하는 모습보다 다른 일로 다투는 모습을 더 자주 보는 지 원.
“저기~.”
워더의 짧은 부름 덕분에 두 사람의 말싸움이 갑자기 끊겼다. 모두의 이목을 잡아당긴 워더가 한 마디 내뱉는다.
“제가 안 한다고 했는데, 그럼 끝난 거 아닌가요?”
얼굴 창백하게 변하는 류인 반면 다른 이들의 얼굴은 활짝 핀다.
“그랬어?”
세니 역시 얼굴이 확~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