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지각했습니다. 사실상 백수라서 요일 구분이 무의미한데도 불구하고 토요일은 왠지 늦게까지 놀고 싶은 날입니다. 그래서 늦게까지 놀다가 당연히 늦잠을 잤습니다.
지난주에 이은 두 번째 지각입니다. 사실 수강생 중에 집이 제일 가까운데 제일 늦게 도착한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도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데 사는 친구가 제일 늦게 오던 걸 생각해보면 이건 보편적인 원리일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지각생의 역설이라고 해야할까요?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응 나는 꿈지럭대다가 늦은 게 아니라 지각생의 역설 때문에 늦은 거야~ 라는 느낌.
2.
자전거를 타고 요가원으로 달려오면서 명상을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밟기 명상? 저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들 때 알아차림이 제일 잘 되는 편입니다. 음, 지금은 나보고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또 늦었다고 생각하네. 어떻게 매일매일 늦지? 라고 생각하네. 다시 한 번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네. 마음이 급하니까 가슴이 둥둥둥 하는 느낌이네.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다 보면 점차 마음이 편해집니다. 물론 마음이 편해지면 페달을 밟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게임으로 치자면 편안함 +2/속도 -30% 효과의 버프 스킬을 쓴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튼 수업은 지각이지만 수련은 제시간에 시작한 거라는 기적의 계산법으로 당당하게 들어갑니다.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쭈구리가 됩니다. 다들 저를 보면서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무언의 비난을 퍼붓는 것 같습니다.(물론 다들 제가 지각해도 별 생각 없다는 거 머리로는 압니다만) 눈에 안 띄도록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요가 매트와 책상을 펴고 자리에 앉습니다.
3.
나연쌤의 근막경선 수업이 전격 쇄신을 감행했습니다. 근막의 전후방선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알려주고, 수강생의 몸에 테이프를 붙이면서 또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수강생이 직접 테이프를 붙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세 번은 배운 내용인데 막상 제 손으로 테이프를 붙여보려니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옆자리의 미정쌤이 붙이는 것을 흘깃거리며 따라붙이다보니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제 모습은 흡사 미라입니다. 그래도 테이프 색깔이 화려하니까 파라오도 부러워할만한 미라가 되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습니다.
아무튼 여러 번 반복 학습하고 손으로 직접 붙이면서까지 학습하니 확실히 좀 더 머리에 들어옵니다. 바뀐 수업 방식이 제게는 너무 좋습니다. 현정쌤이 아사나? 지도를 해주시니 전후방선의 움직임이 상상되기 시작합니다. 근육 이름과 위치를 아는 곳은 동작에 따라서 근막과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되는 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네 번 반복 학습한 내용 중에서 제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근육은 복직근과 능형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음번 수업때는 꼭 뼈와 근육 이름을 달달달 외워 가겠다고 다짐합니다.
4.
점심 시간에 반가운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익히 뵈었던 페드로 쌤과 소문으로만 들었던 은유 선생님과 소문으로도 못 들었던 은유 선생님의 아기였습니다.
차를 마시는 시간 내내 아기가 저를 향해 끊임없는 아이 컨택을 시도했습니다. 어린 아기일수록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선호한다던데 역시 그것 때문일까요?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겠네요.
5.
오후 수업은 나연쌤의 바디 스캔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몸의 한 지점을 이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는 방식과는 다르게 같은 지점으로 반복해서 돌아오면서 이완을 한다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습니다. 매번 이완을 할 때마다 아직 이완되지 않고 있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돼서요.
사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들어서 진짜 나연쌤의 바디 스캔이었는지 나연쌤의 바디 스캔을 받는 꿈을 꾼 건지 구분이 안 되는데 명상이 끝나고 보니 그 자리에 맹부쌤이 앉아있었던 것을 보면 꿈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
맹부쌤의 요가 철학 수업을 빙자한 썰풀이는 언제나 그렇듯 재밌습니다. 예전에 아잔 브람 스님의 법문을 보았는데 스님이 썰을 푸는 솜씨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맹부쌤이 브람 스님에게 배워온 것은 사실 저 썰 푸는 솜씨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제게는 있습니다.
오늘 수업 중에 제일 재밌었던 얘기는 곰, 여우, 앵무새, 호랑이의 비유였습니다. 일전에 문,사,수라는 말로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던 이야기였는데 동물로 비유가 되니 확실히 귀에도 쏙쏙 들어오고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각자 자신의 멘토를 이야기해보라는 데서 저는 곰 둘과 여우, 여우인지 앵무새인지 모를 분이 한 명 있다고 했습니다.(여긴 맹부쌤이 포함될까요? 비밀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왜 호랑이가 없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어어 하다가 제대로 대답을 못 했습니다. 아 그때 이렇게 말할 걸: 그 분들이 호랑이인지 아닌지 판단할 눈이 제게는 없는 것 같고요. 단지 제가 그 분들에게 배우고 싶은 면모가 곰이나 여우, 앵무새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문,사,수라는 중립적인 언어와는 다르게 여우와 앵무새는 아무래도 우화적인 선입견이 있는 동물이라서 이야기가 원래의 의미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상상 속의 맹부쌤이 벌떡 일어나서 뒤의 전지에 적어둔 말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적절히 넘어가는 지혜!'
7.
오늘 형중씨가 저에게 '흉악한 놈!'이라고 외친 횟수는 총 세 번입니다.
일기장에 적어둘 것입니다.
8.
아 그리고 철학 수업 초반에 인식론과 존재론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하면 수업이 너무 길어질까봐 넘어간 게 있습니다.
완전히 인식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과 싸울 일이 없다고 맹부쌤이 그랬잖아요. 상대방과 나의 생각이 부딪칠 때 상대방의 그런 생각이 만들어진 과정을 존중한다면 싸울 일이 없다고요.
그런데 만약 내가 상대방을 존중해도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떤 경우라면 그런 사람을 피하는 것으로도 해결될 수 있지만 피할 수 없는 관계도 있잖습니까. 그럴 땐 싸움으로 상대방의 인식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상대방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것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식을 바꾸는 게 아니라 행동을 바꾸길 요구하는 거죠.
좀더 형이상학적으로 말해보자면, 인식론의 관점에서도 우리가 발딛고 있는 세계는 공통적인 것이기에 공통적인 인식도 가능한 거잖아요. 그게 요가수트라에서 말하는 바른 인식의 지반이기도 할 거구요.
그런데 만약 공통적인 지반이 파괴되는 상황이 있다면, 아무리 완벽한 인식론자라고 해도, 싸움이라는 방식을 전술적으로 택해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9.
소마요가 수업때 제가 궁금해했던 부분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교재 130p의 표에서, '고유'결합조직이 있으면 고유하지 않은 결합조직도 있냐는 게 제 궁금증이었는데요.
네이버 지식 백과에 따르면
"결합조직이란 ... 좁은 의미로는 여러 기관이나 조직의 틈을 메우고 연결하여 내부 장기를 보호하는 고유결합조직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신체를 받치고 있는 연골, 뼈, 혈액과 림프 등의 특수결합조직을 포함한다." (링크)
라고 해요. 다시 말해 결합조직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고유결합조직 = 우리가 배우는 근막을 일컫는 말이네요.
그리고 넓게 보자면 연골, 뼈, 혈액, 림프, 지방 등의 특수결합조직을 포함해서, 신경조직/근육조직/상피조직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직을 결합조직으로 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다짐을 적어둡니다.
1.오는 토요일에는 일찍 자기
2.근육/뼈 이름 공부해서 가기
저는 프로 다짐지키지않음러라서 이 또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만 그래도 다짐을 해두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늘 수업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주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