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의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은 그 당시 반미운동의 무풍지대로 인식되어온 남한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넣은 사건이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현관에 누군가가 불을 지르고 이로 인해 건물 안에 있던 한 대학생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문화원 주변에는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유인물이 뿌려졌다.
이 사건은 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으로 무고한 시민이 죽음을 당하고 그해 12월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난 것에 기인한다.
광주미문화원사건을 현장으로부터 들은 문부식, 김은숙 등은 광주의 참상과 독재자들의 만행,그리고 광주사건에 미국이 개입되어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상징적 의미로 부산미문화원에도 방화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방화의 대가로 문부식, 김현장은 1심에서 사형선고를, 김은숙 등 여대생들은 무기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80년대는 '미국 문화원의 수난시대'라고 할 정도로 전국의 미국 문화원들이 연쇄적인 공격대상이 되었고 이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한국에서의 '반미'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를 간첩 등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한국과 미국'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