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은 마슬이었을까? 2. "아이구, 지금 몇 시야?" 장과장은 네 시가 넘어있는 손목시계를 보면서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목운동을 하며 졸음을 쫓던 장과장은 안주머니에서 캡슐 한 개를 꺼내 입속으로 넣었다. "어? 무슨 약입니까, 과장님? 저도 한 알 주십시오." 남형사는 장과장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간 약을 쳐다보며 장과장의 안주머니에 궁금증을 나타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잠 안 오는 약이야." 장과장은 별걸 다 달란다는 눈치였다. "아이, 그러지 마시고 한 알만 주십시오." 장과장은 남형사는 몸에 좋다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보약은 물론이고 어디에 좋다, 어디에 효과가 있다 하는 약들은 밥보다 더 먼저 먹는 두 사람이었다. 3년 동안 특수 수사과에 함께 있는 윤주희 형사가 봐도 두 사람은 약에 대해선 유별난 데가 있었다. 다른 것에 대해선 서로에게 넘칠 정도로 후해도 유독 약만큼은 딴 주머니를 차는 두 사람이었다. 아마 두 사람은 박봉만 아니라면 몸에 좋다는 보약이란 보약은 죄다 사재기해서 주식 대신 먹을 성격들이었다. "남자들이란 그저......" 윤형사는 혀를 끌끌 차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장과장이 피같은 약을 한 알 주자 그것을 손으로 집은 남형사는 기쁜듯 입이 헤 벌어지면서 얼른 입으로 가져갔다. 물도 필요없는 두 사람이었다. "남형사, 그 약이 잠 안 오는데는 최고 잘 듣는 약이야. 난 이 약만 먹어, 다른 약은 질이 떨어지더라구." 장과장이 약의 효력에 대해 말해주자 남형사는 "아, 그래요?"하면서 금새 반짝이는 눈동자로 장과장을 보았다. 장과장과 남형사는 이제부터 상쾌한 새벽이라는 듯 즐거운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윤형사의 얼굴 표정은 구제불능이라는 듯 어이없어했다. 집중력이 요구되는 사건분석을 하다가 약 얘기로 화제를 바꿔서 사고력을 정지시키는 두 사람이 어린애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이층에서 응접실 정리와 청소를 마친 여비서가 홀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테이블로 다가오자 윤형사가 일어나서 자리를 권했다.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하겠어요." 윤형사가 친구 대하듯 다정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네, 조금요." 여비서는 피곤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강여사님의 의상실에서 일한지 8개월이 되었다구요? 파티에 참석한 분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 주시겠어요?" 여비서는 윤형사의 질문 내용을 잘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했다. "왜 미용실이나 의상실에서 하는 얘기들 있잖아요. 여기에 오셨던 분들 중에 미스코리아 진에 대해서 좋은 얘기든 지나가는 얘기든 한두 마디씩 했을 거 아니예요. 여기 오셨던 사람들 의상실에 들르곤 하지요?" "네. 일주일에 한번, 보름에 한번 정도 오세요." "윤보혜양이 진에 당선되기 전과 당선된 후에 얘기는 어떠했나요?" 윤형사의 질문에 여비서는 대답을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는 윤형사의 미소와 진실이 담긴 눈빛이 마음에 드는지 머뭇거리던 말문을 열었다. "윤보혜 씨가 당선되기 전까지는 평판이 매우 좋았어요. 그런데 막상 보혜 씨가 진으로 당선되고 나자 앞에서 하는 말고 뒤에서 하는 말이 너무 달랐어요. 보혜 씨 앞에서는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고는 없는 자리에서는 흉들을 보는 것이었어요. 허리가 약간 굵어보인다. 미스코리아 선이 백번 낫다, 과거가 의심스럽다는 등 두 혀를 가진 여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여비서는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 솔직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별장에 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나요?" 윤형사는 자연스런 목소리로 핵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여비서가 조슴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변호사님, 유진숙 회장님, 정주라씨, 모두가 이중성격을 쓰고 있었어요." "네...... 남자 분들은 의상실에 안 들러나요?" "가끔 가다가 동부인해서 오실 적도 있지만 그리 빈번한 편은 아니예요." "남자 분들은 미스코리아 진을 어떻게 보고 있던가요?" "모두가 한결같이 역대 미스코리아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미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부인들이 옆에 있는 자리에서요?" 윤형사가 중요한 대목이라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며 물었다. "있으나 없으나 개의치 않고 말씀들 하셨어요." "네...... 아참, 조금 전에 한 말이 생각나서 묻는건데요, 미스코리아 선이 훨씬 낫다, 과거가 의심스럽다 하고 흉을 본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나는지요?" 윤형사와 여비서는 어느새 편안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윤형사는 여성심리를 이용한, 대화 분위기를 이끄는 솜씨가 뛰어났다. 여비서는 상류층 여자들에 대해서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윤형사는 지금 그 점을 십분 이용하고 있었다. "보혜 씨를 흉보는 여자들 가운데서도 금지선 변호사가 제일 심했어요. 2주 전쯤이었을 거예요. 강희 선생님과 소파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이것 저것 캐묻는 것이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듣지는 못했지만 그 특유의 목소리로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그 회사가 어디에 있는 어떤 회사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강희 선생님의 기분을 만족시켜주면서 계속 보혜 씨의 과거에 대하서 묻는 것이었어요. 그런 애를 발굴해서 신데렐라로 만든 강여사의 안목에 감탄해마지 않는다며 야누스 짓을 서슴치 않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저는 금지선 변호사가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윤형사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여비서의 입을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여비서는 이왕 말난 김에 다 해버리겠다는 듯 마음놓고 험담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금지선 변호사는 박윤성 회장님을 짝사랑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권의원님과 유여사님이 의상실에 잠깐 들렀었는데 그때 박회장님도 동행해서 오셨었어요. 마침 보혜씨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저녁식사 약속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권의원님과 유여사님은 선약이 있다면서 다른 곳으로 가셨고 박회장님과 보혜씨만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어요. 헌데, 다음날 그 사실을 알게 된 금변호사가 화를 내면서 되먹지 않은 애라니, 형편없는 애라니, 선이 훨씬 낫다느니, 과거가 의심스럽다니 하는 것이었어요. 지 성질에 못이겨서 내뱉는 말들이었지만 말이예요. 흥,.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 여자는 색골이예요. 이혼경력이 있는 여자에다가 배우들의 변호를 맡아주는 걸 연줄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남자 배우들과 호텔을 드나들며 사랑행각을 벌이곤 했어요. 그런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러니까 남자한테 이혼을 당했지요. 위자료도 한푼 못받고 말이에요. 콩밥 안 먹은 것만도 다행이지오." "박회장님과 관계도 그래요. 박회장님이 어디가 아쉬워서 그런 색골하고 다니시겠어요. 더군다나 그 분은 아직 미혼인데다가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분이신데요. 그런데 그 여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대요. 연하의 남자는 남자대로 잘 생긴 남자는 남자대로 잘 요리한대요. 그런데 그 색골 변호사는 법을 많이 알고 있어서 그런지 유부남한테는 절대로 유혹을 하지 않는대요. 청년이나 이혼남한테만 꼬리를 흔든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아무 문제도 없이 변호사 노릇을 할 수 있는 거래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나요." "3개월 전에 의상실을 그만둔 디자이너 언니가 그러셨어요. 그리고 실제로 그 여자 입을 통해서 들었어요. 강희 선생님 하고는 잘 통하거든요. 하여튼, 그때 강희 선생님에게 보혜씨의 과거를 다 물어보고 나서는 과거가 의심스럽다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어요. 제 과거는 망각한 채 말이에요."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장과장은 치켜올린 입술을 풀면서 여비서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송지희씨는 죽은 미스코리아 진과 평소 친하게 지냈나요?" 장과장이 물었다. "네." "당선되기 전이나 후나 윤보혜양은 송지희씨를 변함없이 대해주었어요?" 다시 윤형사가 질문했다. "보혜씨는 정이 무척 많은 여자였어요.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마음씨도 천사처럼 아름다웠어요. 그런 보혜씨에게 남자분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은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미스코리아 진의 남자 친구는 없었습니까?" 잠자코 앉아있던 남형사가 궁금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 친구요? 보혜씨는 쑥맥이에요. 의상실에 있을 때 남자한테 걸려오는 전화 한통 없었어요. 휴일에도 의상실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다 보낸 걸요." "옛날에 사귄 남자 친구 얘기는 못들었습니까?" "회사에 다닐 때 쫓아다녔던 남자는 있었나봐요. 하도 귀찮게 쫓아다녀서 회사를 그만두고 강희 선생님의 의상실에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미스코리아 진이 다녔던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장과장이 날카롭게 물었다. "인천 주안에 있는 조그만 비디오 공급 회사에 다녔다고 했어요. 동오기획이라고 들은 걸로 기억나요." "물론 강여사님도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요?" "네, 그 변호사에게 얘기해주는 걸 들었어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요." 남형사는 미스코리아 진의 과거를 조사해 보는 것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회사명을 적었다. 남형사가 볼펜을 놀리고 있는 동안 윤형사는 계속 질문을 했다. "보혜양은 의상실을 잘 다녔나요?" "그럼요. 손님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잘 대해서 고객들이 모두 좋아했어요. 참, 그런데 이상한 건 작년 9월부턴가 4개월 동안 의상실을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의상실에 들어갔거든요. 좀 몸이 아파서 몇 개월 쉬는 거라고 강희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로 기억돼요." "아, 네. 그건 그렇고 강여사님이 그러시던데, 캠코더 기사를 윤보혜양이 데리고 왔다고 하던데요." 윤형사는 여비서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물었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 일이예요. 보혜씨가 미스코리아에 당선되고 나서는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보혜씨가 너무 바빴거든요. 다만 한 가지 아는 사실은 전에 다녔던 회사의 거래처 사람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럼 파티 때 처음 봤겠군요?" "네." "칵테일을 날라주었을 때 그 기사가 촬영하고 있는 걸 봤어요?" "그럼요. 아, 그래요. 확실히 기억나요. 왜나면 금변호사와 박회장님이 어울리지 않게 파트너가 돼서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 여자가 먼저 꼬리를 쳤겠지요. 그런데 그 기사는 테이블쪽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보혜씨쪽을 많이 찍는 것 같았어요. 저기서요." 여비서는 손가락으로 출입문쪽을 가리켰다. "그래요?" 달아나기 좋은 장소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기사의 모습이 윤형사의 눈에 환영이 되어 나타났다. 출입문은 테이블과 홀 중앙의 중간이었다. "주로 현관문 쪽에서 촬영을 하던가요?" "그랬던 것 같았어요." 여비서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자는 어째서 한 장소에서만 촬영을 했을까? 살인을 예상하고 있었단 말인가? 역시 그 자가 범인인가? 아니면 우연일 뿐인가? "근접 촬영을 위해 테이블로 가까이 가는 건 못봤나요?" "글쎄요...... 전 주방에 많이 있어서......" "고마웠어요, 지희씨.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할텐데 그만 올라가서 쉬세요. 서울엔 언제 올라갈 건가요?" 윤형사는 다정스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강희 선생님이 별장 정리와 함께 형사님들에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려서 사건해결에 도움을 주라고 하셨어요. 며칠 동안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여비서는 나오려는 하품을 억지로 참으면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고맙기도 하셔라. 강형사님 충격이 무척 크셨겠어요." "저 같으면 기절할 거예요. 보혜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으셨는데......" 여비서가 지친 걸음으로 이층으로 올라가자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남형사가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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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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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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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커피
08.04.2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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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누군지 추축할수가 없네요
디토
08.04.24 17:50
재밌네요^^
미혜
08.05.11 08:08
잘봤읍니다~!
공삼삼
15.10.06 14:15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
김성갑
17.11.20 15:11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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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범인이 누군지 추축할수가 없네요
재밌네요^^
잘봤읍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