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왕위계승을 둘러싼 1740∼1748년의 국제전쟁. 18세기 이후 영국의 세계적 우위와 프로이센-독일의 대두를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왕위계승을 둘러싼 1740∼1748년의 국제전쟁. 18세기 이후 영국의 세계적 우위와 프로이센-독일의 대두를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식민지를 둘러싼 서유럽 열강,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신성로마황제 카를 6세는 장녀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전영토를 물려주려 했다. 1740년 카를이 죽자 바이에른 선제후 카를 알베르트는 그 상속권을 주장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도 마리아 데레지아의 계승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슐레지엔 4공령을 요구, 화해와 전쟁 양면의 전략으로 1740년 겨울 슐레지엔을 점령했다. 프랑스도 바이에른을 지지하며 프로이센과 결탁하고 1741년 11월 프라하를 점령해 선제후(侯)는 황제 카를 7세가 되었다. 영국은 오스트리아를 지지, 부르봉연합에서 프로이센을 탈락시키려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밀약을 성공시켰다. 반격에 나선 마리아 테레지아가 영국왕 조지 2세의 대륙출병에 힘입어 우세하게 되자, 프리드리히 2세는 또다시 베멘으로 군대를 진격시켰으나, 카를 7세의 사망을 계기로 해서 1745년 슐레지엔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드레스덴에서 화의를 체결,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속과 그녀의 남편 황제 프란츠 1세의 즉위를 인정했다. 그 뒤에도 유럽 각지에서 전쟁은 계속되었으나, 네덜란드싸움터에 오스트리아와 손잡은 러시아의 출병이 결정적 요인이 되어 1748년 아헨의 화약(和約)이 성립되어 전쟁이 종결되었다.
<출처:야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