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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원
 
 
 
카페 게시글
##목원대동양철학 2010년 09월 09일 동양철학의 이해 강의를 듣고서...
0822005권가영 추천 0 조회 83 10.09.09 15:54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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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9.09 16:33

    첫댓글 교수님께서 첫시간에 말씀하셨을때 공자는 유학의 창시자가 아니라 집대성자라고 하셨습니다. ^^;

  • 10.09.09 17:54

    네. ^^ '공자'는 유가의 집대성자이며, 스승인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죠.

  • 10.09.09 18:07

    스승이 노자라고 영화에서는 나왔는데 교수님이 노자는 공자의 스승이 아니라고 말씀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 10.09.09 18:51

    아 ..맞다. ㅋㅋ 잊고있었네요. ㅎ

  • 10.09.10 02:09

    영화에서의 공자와는 약간 달리, 실제 공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상가 였고, 공자의 뒤를 이은 제자들이 세운 유교가 중국의 정치이념으로 채용되었죠...

  • 10.09.10 21:04

    저는 영화를 보고 공자 가 한 말들을 다시 알게 되었고, 공자가 인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자가 그냥 한없이 인자한 성인인 줄 알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럴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나와서 실제로도 그런지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공자가 단순한 현자일 뿐만이 아니라 진짜 세기적으로 위대한 어쩌면 예수보다 더 대단한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공자가 유가를 집대성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과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지 않았을 거라 합니다. 그만큼 공자는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

  • 10.09.12 16:09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주유하게된 것은 제나라의 계책때문입니다. 타삼도의 실패이후 B.C. 496년(56세 때) 정승의 일까지 겸직하게 된 공자는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대부 소정묘를 처형했고 제나라에서는 노나라의 국력이 비대해짐을 두려워하여 대부 여서의 책략을 채택하여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 80명과 말 120필을 노나라에 보내게 됩니다. 정공과 계환자가 이 선물을 받고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고 하니 공자는 스스로 이들과는 큰 일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벼슬을 버리고 주유천하를 하게 된 것입니다.

  • 10.09.13 23:02

    공자는 유학의 창시자가 아니라 집대성자라고 쓰려고 했는데 윗분들이 벌써 말하셨네요^^;;;; 영화에서 보이는 공자는 정말 반듯한 인물이었습니다. 인과 예를 중시하는.. 본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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