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9월 09일 5~6교시 동양철학의 이해
영어교육과 0822005 권가영
강의: 영화 "공자" 앞 부분, 공자 시대에 대한 설명
영화 "공자"는 공자 시대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였고, 그리고 공자가 타도 삼환을 하는 장면까지 였다. 영화 공자와 교수님의 강의를 조합하여 공자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공자 孔子
시대적 배경: 주나라는 봉건제도로 천자(天子)와 제후의 관계 즉 군(君)과 신(臣)관계가 쇠퇴해
지면서 많은 제후들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참칭왕(제후들이 월권하여
나라를 세운 왕을 일컬음)들이 나라를 다스렸던 춘추 시대 말에 태어났다. 공자는
그 중 노나라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그 시대에 때에는 공자 말고 노자도 있었다.
영화에서의 내용: 그 때 당시 주나라 황제의 권력 실추로 나라가 혼란한 시대였다. 또한 기원전501년 노나라는 정공이라는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정공은 실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실권은 삼환 (계씨, 숙손씨, 맹손씨)이 가지고 있었는데 공자는 기원전 498년 국상대리임무를 맡게 되었을 때 타도 삼환을 하기 원했던 장면까지 시청하였다. 영화 속에서 순장제도에서 나왔다. 순장제도는 고대시대 때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처나 노비를 함께 묻는 제도였다. 공자는 순장제도는 악습이라 생각하여 폐지를 원했다. 영화 속에서 한 계씨가문 계평자라는 사람이 죽었을 때 노비들을 묻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노비들 중에서 도망친 노비가 공자집에 숨어 들게 되었다. 공자는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마 예를 중시했던 공자가 순장제도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 당시 순장으로 인해 많은 목숨들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예전에 아무리 순장제도라 해도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사람이 아닐 거라 생각했었다. 그 때 당시에는 종이가 없었는데 종이를 대신해 나무를 엮어 만든 죽간을 사용하였다. 또 죽간에 먹을 썼을 때 잘 번져서 잘 번지지 않는 묵을 만들기도 하였다. 영화속에서는 제나라와 위나라에 대해서 약간 나왔었는데 제나라의 주경원은 노나라와 협약을 맺었다. 협곡에서 펼쳐진 장면에서 공자의 위트가 웃음을 자아냈다. 군사력이 강력했던 제나라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제후들에게 군사력을 청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들로 저 멀리서 소리를 지르게 함으로써 많이 군사가 대기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위나라에서는 공자를 높이 샀던 거 같다. 공자로 말마암아 노나라는 강성해질 것이라고 확신한 위나라의 왕비는 공자를 위나라로 데려 오고 싶어했다. 여기까지 영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수업내용: 공자에 대해서 말씀 하셨다. 앞의 내용을 이어 삼환을 타도하려 했던 공자와 정공은 실패하였다. 정공은 힘이 없어 삼환의 편을 들어주었고 그 후로 공자는 철환천리 주유천하를 하였다. 즉 전도를 하려 13년 동안 여러 나라를 다녔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미션도 실패하였다. 그 후 공자는 후세를 위하여 편찬사업을 하였다. 시경(3000여편의 시를 300편으로 요약), 서경(역사 철학), 역경(십익을 첨가)을 편찬하였다. 공자에게는 3000여명의 제자가 이었었으며 그중 72명 또 그중에서 10명의 주요 제자들이있다. 이 제자들은 영화에서도 나온다.
<공자>
1. 이번 영화 공자를 통해서 어떤것을 느끼 셨나요?
또는 유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공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첫댓글 교수님께서 첫시간에 말씀하셨을때 공자는 유학의 창시자가 아니라 집대성자라고 하셨습니다. ^^;
네. ^^ '공자'는 유가의 집대성자이며, 스승인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죠.
스승이 노자라고 영화에서는 나왔는데 교수님이 노자는 공자의 스승이 아니라고 말씀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맞다. ㅋㅋ 잊고있었네요. ㅎ
영화에서의 공자와는 약간 달리, 실제 공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상가 였고, 공자의 뒤를 이은 제자들이 세운 유교가 중국의 정치이념으로 채용되었죠...
저는 영화를 보고 공자 가 한 말들을 다시 알게 되었고, 공자가 인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자가 그냥 한없이 인자한 성인인 줄 알았는데 영화에서는 그럴 뿐만 아니라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나와서 실제로도 그런지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공자가 단순한 현자일 뿐만이 아니라 진짜 세기적으로 위대한 어쩌면 예수보다 더 대단한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공자가 유가를 집대성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과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지 않았을 거라 합니다. 그만큼 공자는 우리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주유하게된 것은 제나라의 계책때문입니다. 타삼도의 실패이후 B.C. 496년(56세 때) 정승의 일까지 겸직하게 된 공자는 관리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대부 소정묘를 처형했고 제나라에서는 노나라의 국력이 비대해짐을 두려워하여 대부 여서의 책략을 채택하여 노래와 춤에 능한 미녀 80명과 말 120필을 노나라에 보내게 됩니다. 정공과 계환자가 이 선물을 받고 사흘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고 하니 공자는 스스로 이들과는 큰 일을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벼슬을 버리고 주유천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공자는 유학의 창시자가 아니라 집대성자라고 쓰려고 했는데 윗분들이 벌써 말하셨네요^^;;;; 영화에서 보이는 공자는 정말 반듯한 인물이었습니다. 인과 예를 중시하는.. 본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