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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 송편, 콩 송편, 밤 송편
추석은 해마다 돌아오는 민족의 생일이다. 온 국민의 75퍼센트가 동참하는 귀성객을 보면 다른 나라와 남다른 명절다움을 실감한다. 한가위에서 ‘한’은 ‘큰’이란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의미로 ‘가배’라는 옛말에서 나왔다. 신라 시대까지 거스르지 않아도 지극히 민족적인 명절이라, 남과 북 모두가 쇤다. 한때 북은 봉건 잔재를 일소한다는 명분으로 추석을 없앴으나, 지금은 음력설과 추석을 모두 지킨다고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명절에는 창조의 마음이 담겨있다. 추석은 한 해의 결실을 감사하고, 설은 한 해의 시작을 기원한다. 옛부터 설이든, 추석이든 새로운 충전의 기회가 되었다. 명절에는 어제까지 다투던 사람도, 빚진 사람도 받을 사람도, 감정도 잊고, 빚도 잊었다. 이날만큼은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흩어진 가족이 한데 모여 지지든, 볶든, 다시 시작해 보자고 결심하는 날이기도 하다.
20여 년도 훌쩍 지난 묵은 기억이다. 독일에서 교민목회를 할 때, 명절이면 설교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추석이든 음력설이든 그곳의 달력으로는 평상시와 똑같은 날이니, 실은 잊고 지내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몸에 밴 명절을 잊을 리 없다. 설교하면서 추석이니, 설날이니 고국의 명절 분위기를 꺼내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냐고 하면 다들 울컥해 한다. 정작 말을 꺼낸 설교자부터 목이 칼칼하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조선 8도가 공인하는 추석의 대표 음식은 송편이다. 추석의 송편과 설날의 떡국은 민족 절기를 기념한다. 우리 집은 명절마다 거르지 않는 아산 ‘장수 복떡’에서 올라온 고급 떡 맛에 길들여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송편은 진노랑, 보라, 분홍색 등 고운 색동 옷을 입고 찾아 왔다. 사실 주일 애찬 후에 종종 나누는 감사와 축하의 떡들은 가정을 넘어 공동체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반가운 명절치레와 같다.
추석을 앞두고 아내와 송편을 빚었다. 마침 냉동고에 쟁여둔 쌀가루와 국산 검정콩이 있었다. 아내의 떡 반죽을 돕고, 곁에서 거들자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송편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아내는 시집와서 배운 강원도 송편과 친정에서 익힌 충청도 송편을 비교하며 설명하였다. 손마디 자국이 선명한 강원도 송편과 달리 충청도 송편은 선이 부드럽다. 송편을 유난히 잘 빚으신다는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숨이 멈칫하기도 했다.
아내는 가끔 어린 시절 성장한 고향에 대한 추억을 말한다. 동생을 여럿 두었기에 맏딸인 아내는 학령아동 직전까지 충청도 괴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어린 시절만 듣자면 누구보다 시골 사람 태가 잔뜩 배어있다. 추억의 보자기에 덮여, 기억에 시렁에 올려 둔 조부모님이 첫 손녀에게 베푸신 사랑 타령은 언제 들어도 감동이다. 할머니가 송편을 빚으실 때면 맨드라미 꽃을 오려 십자 모양으로 붙이셨다고 한다. ‘붉은 십자꽃잎 송편’이 놀랍다.
마침 수요일 저녁, 연휴 전날 기도회에 나온 교우들과 송편을 나누어 먹었다. 자연스레 송편 소에 대해 품평이 다양하게 이어진다.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나 어려서는 깨 송편을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동부 팥이나, 검정콩 송편이 더 입에 맞는다고 하였다. 그중에도 가장 귀한 송편은 역시 햇밤 소를 넣은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한겨울에 멀리 아버지 빈소를 찾아오신 조문객들에게 밤 송편을 대접하도록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 아직 추석도 오기 전인데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부쩍 늙으셨다.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던 중 전화가 왔다. 오늘이 추석인데 왜 아직 안 오느냐는 것이다. 추석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 부랴사랴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손수 송편을 빚어 잔뜩 쪄내셨는데, 예전의 솜씨도 손맛도 아니었다. 크기가 올망졸망 제각각이고, 맛은 소금 송편 수준이었다. 얼마 지나지 못해 어머니는 서울 자녀들 곁으로 올라오셨고, 더 이상 시골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셨다.
명절의 기쁨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일이다. 빈자리는 더 돋보이게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 “설에도 부모를 모른다니...”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저러나 이젠 찾아뵐 부모님은 계시지 않고, 집에 올 자식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추억은 그렇게 자잘한 기억들이 모여모여 얘기꽃을 피운다. 어쩌면 자잘한 복은 우리 일상 가운데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보름달보다 둥근 마음으로 큰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명절의 은총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