弄談隨筆:
여성부장관
/윤행원
어느 날, 한국수필작가회 모임에서 어느 여류 작가가 나에게 짓궂은 농담을 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정부에서 임명한 각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대 뜸 저에게 “윤행원 작가님은 여성부장관이 적격이다.” 라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나는 얼토당토 농담에 당황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여성부장관 자리는 여성이 해야 하는 직책인데 남성인 나를 택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까, 작가님 가라사대 ‘윤 작가님은 여성으로 부터 인기가 좋아서 여성부 장관에 적임자 ’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리 기분이 나쁜 말은 아니라서 나는 허허 웃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내 나이가 인생 후반기로 들어섰는데 여성으로 부터 인기가 있다는 말에 새삼 世壽 아흔일곱에 돌아가신 피천득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피천득 선생님이 아흔 다섯 되는 해, 어느 늦은 봄 날 선생님을 모시고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두 시간 여의 느린 점심을 끝내고 서울 문학의 집으로 모셨는데 그곳에는 어느새 20 여명도 더 되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중년 부인들이 가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필가, 시인, 소설가 그리고 외교관 부인들이 琴兒 선생님을 만나려고 미리 오셨든 것입니다. 당도를 하니 모두들 열렬한 환영과 호감 어린 몸짓은 하늘을 찌를 듯이 왕성했습니다. 겸손과 예의와 존경과 사랑하는 표정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때는 일본에서 한창 ‘욘사마’ 붐이 있을 때라 나는 잘 생긴 남자 배우들 만이 여성에게 인기가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훌륭한 作家도 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시는구나 하고 老詩人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남성으로는 피천득 선생님과 나 그리고 어느 남자 한 분, 이렇게 셋이 있었는데 왕성한 여성의 기운을 아흔다섯 老作家님이 감당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열심히 공부를 해서 흉내라도 내고 싶은 터무니없는 욕망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이 정도로 각설하고...
여하튼 남자인 내가 여성부장관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 우습기는 하지만 기왕 농담인 이상 농담으로 정책을 구상해 보았습니다.
내가 여성부 장관에 취임을 하면 제일 먼저 대한민국 가정주부에게 일인당 월 100만원씩을 정부에서 휴가비로 지급을 하겠습니다.
요즘은 男女平等을 넘어서 여성 상위 시대에 접어든 세월입니다. 세칭 일류 대학도 여성 입학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그 어려운 사법 고시도 많은 여성들이 차지할 정도라고 하니 여자가 득세를 하는 시대가 온 것 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는 대부분이 여성들로 채워져 있어 정부에선 아이들 人性 교육 상 남성을 비례 적으로 채용하려고 안간힘을 써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기야 어느 유명한 易理學者는 현대는 天機상으로도 水가 왕성한 여성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氣가 센 여성을 상대로 정책을 펴야 하니 호감을 살 만한 정책부터 먼저 실시해야 그나마 며칠이라도 장관 자리를 유지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매주 토, 일요일은 대한민국 가정주부는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오직 휴식을 취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고, 갖고 싶은 물건 마음대로 사고, 영화를 보고, 노래방에서 목청 껏 노래를 뽑고, 여행을 하고, 친구들과 호텔 커피숍에서 閑談으로 인생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휴가비 조로 25만 원씩 지급을 하면 월 일백 만원의 정부 지출이 됩니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이걸 두고 무리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어느 머리 좋은 후보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신혼부부들에게 일 금 일억 원 씩 정부에서 지급하겠다고 한 것에 비하면 이건 새 발의 피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아무 말씀 마시고 조금 더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또다시 투덜거릴 가능성은 있지만, 토, 일요일은 아내는 절대로 家事 일을 시키지 말고 남편은 솔선해서 부엌일과 빨래를 하고, 아들은 이불을 개고 집안 청소를 해야 합니다.
이건 법률로 정해 놓으면 모두들 지킬 것입니다. 처음엔 왕 짜증을 내고 항의를 하는 남성들이 많겠지만 얼마 안 가서 좋은 정책이라고 칭찬을 할 것이고 심지어 정권이 바뀌더라도 여성부 장관 만은 바꾸지 말아 달라고 각계에서 연판장이 날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청 광장에선 88 올림픽 군중보다 더한 집단이 모여들어 윤행원 여성부장관 연임을 보장하라고 데모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알뜰한 가정주부들은 토, 일요일 충분한 돈과 함께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고 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기분이 좋아서 집안일에 기운이 펄펄 날 것입니다.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건강도 좋아지니 우선 병원비가 대폭 줄어들 것이고, 남편과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뼈에 사무쳐서 더욱 싹싹 하고 고분고분해서 분골 쇄신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테니 말입니다. 이쯤 되면 가족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오죽 왕성하겠습니까?
미국이나 홍콩에선 가라앉은 경기부양책으로 나라에서 각 가정에 돈을 얼마큼씩 돌려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주부들이 주말에 쓴 그 돈은 어려운 시장 경기를 살리는 적극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업이 잘 된다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사람 또한 수두룩할 것입니다. ^^ㅎ!
요즘은 인구가 생산이 안 된다고 다들 야단인데 이걸 본 노처녀들은 결혼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날 테고 아기 생산 또한 대폭으로 증가할 것이니 산아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가정은 집집마다 每日이 경사스러운 일로 가득 찰 것이고, 기분이 잔뜩 좋은 남편과 아들은 일터에서 학교에서 더욱 열심히 일과 공부에 매진할 것입니다. 이런 지경이 계속되다 보면 우리나라 산업은 엄청 발전할 것이고, 공부 잘하는 人才는 수두룩히 배출이 되어 세계 최고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그때는 여성부 장관인 나는 그렇게도 부러워했든 피천득 선생님의 인기보다 더 고조된 환영과 사랑을 받을 것이고, 드디어 나라에 큰 공헌을 했다고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여성부 장관에 추천한 女流作家님은 사람을 제대로 보는 통찰력(洞察力)과 예지(叡智)가 탁월하신 것 같아서 새삼 존경심이 솟구치는 걸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성부장관으로 추천하신 女流作家님, 감사합니다.
2011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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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요즘 신문에선 우리나라가 인구 절벽이라고 온통 요란하다.
출산 비율이 0.7%이니 어쩌고 하다가 올해는 0.6%가 된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고 보니 13년 전에 쓴 농담 수필이 생각난다.
정부에서 큰 맘 먹고(...) 대한민국 기혼 여성들에게 월 일백 만원씩
지급한다면 결혼을 미루기만 하던, 아니 아예 결혼을 접어버린 미혼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
야단스럽게 힘 쓸 것이고 그리고 아이들도 부쩍 늘어날 것이다.
정부의 혜택으로 기혼 여성들은 풍성한 삶을 즐기게 될 것임은 물론이고?...ㅎㅎㅎ...!
-202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