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방학이라 나는 시립도서관을 가려다 방향을 바꾸어 느긋하게 마산역으로 가갔다. 열차 타고 어디 갈 생각이 아니었다. 역 광장에서 기점인 구산면으로 떠나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함이었다. 출발시각에 여유가 있어 광장 노점을 둘러보았다. 역 광장에는 새벽 번개시장이 열린다고 들었는데 다음 언제 한번 일찍 찾아와볼 요량이다. 버스가 출발하는 지점 근처엔 잡곡을 파는 가게였다.
광장 노점에 품목이 하나 더 늘었다. 메주를 트럭 채 실고와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는 공장은 다른 곳에 있나 보았다. 그는 매년 이맘때면 역 광장을 한 자리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메주를 사려고 흥정하는 할머니도 작년에도 아저씨한테 사 갔다고 했다. 콩 다섯 되 기준으로 메주덩이는 세 개씩 묶여 있었다. 바야흐로 새봄을 맞아 장 담그는 계절이 돌아왔다.
버스가 광장을 출발할 때 승객은 많지 않았다. 어시장을 지날 무렵 시골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챙겨 여럿 탔다. 나는 할머니 한 분한테 자리를 양보해 일어나 출입구 쪽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갔다. 밤밭 고개 넘어 면사무소가 있는 수정마을을 지날 때 승객이 많이 줄었다. 수정 앞바다는 매립만 해놓고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 있었다. 어디서나 개발과 보존 사이 갈등은 있게 마련이었다.
버스는 옥계와 욱곡 입구를 지나 반동삼거리로 향했다. 삼거리는 구복과 원전으로 나뉘는 갈림길이었다. 내가 탄 버스는 난포를 지나 원전으로 가는 버스였다. 그런데 바로 원전으로 가지 않고 굽이굽이 고개를 하나 더 넘어 용호마을 갯가를 지나갔다. 나는 갯마을 풍경을 한 곳 덤으로 더 구경했다. 용호마을을 돌아 나오니 심리마을이었다. 원전 종점은 심리에 딸린 작은 마을이었다.
원전은 낚시꾼들에게 널리 알려진 마을이었다. 주차장에는 평일임에도 태공들이 타고 온 자동차가 더러 보였다. 임자를 만나지 못한 여러 척 낚싯배가 포구에 묶여 있었다. 나는 마을 제일 안쪽 방파제로 나가보았다. 근처 아침나절 양식장에서 건져 올린 홍합을 세척하는 사람이 있었다. 낚싯배를 세 내지 않은 사람들은 방파제 위에서 바닷물에다 바로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있었다.
구경꾼으로 방파제에 선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는 낚시에 대해 문외한이라 낯선 것이 많았다. 낚시 도구도 도구거니와 낚시 미끼 궁금해 가까이서 살펴보니 갯지렁이와 새우였다. 요즘 무슨 물고기가 낚이는지 물었더니 도다리와 노래미라고 했다. 한 태공이 손바닥 크기 도다리와 노래미를 낚아 놓고 있었다. 방파제 위에는 낚싯대에 따라올라 온 불가사리가 너덜하게 깔려 있었다.
방파제 끝 한 팀은 라면을 끓여 소주를 들이켰다. 낚싯대를 메지 않은 구경꾼이 다가가자 나에게 잔을 건네려 했다. 나는 웃으면서 사양하고 좋은 시간 가지십사고하면서 방파제를 되돌아 나왔다. 원전마을에서부터 갯가길 따라 걸었다. 바다에는 홍합양식장의 하얀 부표가 줄지어 떠 있었다. 작은 섬들 지나 거제도가 건너다 보였다. 바다에 뜬 낚싯배는 물놀이하는 보트처럼 보였다.
종점에서 설진마을 앞으로 나오자 불모산 송신탑과 시루봉이 보였다. 그 아래로 진해시가지 일부가 드러났다. 멀리 좌우 간격을 두고 마창대교와 거가대교 교각도 보였다. 설진해안에서 심리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심리마을 포구에는 어촌계 바지락양식장이 있었다. 맑은 바닷물을 내려다보고 걸어가다 커다란 숭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곁에 한 마리 더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난포 횟집에는 도다리쑥국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볕바른 길가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쪼그려 앉아 쑥을 캐고 있었다. 플라스틱 소쿠리에는 말갛게 가려진 여린 쑥이 담겨 있었다. 나는 반동삼거리 앞둔 길가 묵정밭에서 냉이를 찾았다. 등에 진 배낭에서 비닐봉지와 꽃삽을 꺼냈다. 갯바람이 스치면서 겨울을 난 냉이였다. 뿌리가 상하지 않게 캐 담았다. 20.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