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1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다니엘서 8장에는 200년 후의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이 무너지는 예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재로 200년 후에 유다를 지배했던 바벨론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무너집니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했고 다니엘서에 기록된 예언이 자신임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20세에 세계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웅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이 꿈의 실현을 위한 대원정의 길을 떠나기에 앞서 그는 자기 재산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합니다. 한 신하가 알렉산더왕에게 물었습니다. 『임금님은 왜 모든 보물을 신하들에게 나눠주십니까?』 알렉산더왕은 『나는 보물 전부를 나눠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있는 보물만은 끝까지 간직하고 있을 작정이다.』 『그처럼 임금님께서 아끼시는 보물이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알렉산더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보물이다.』
저는 오래전부터 있던 습관 중에 하나가 달력을 세달치를 걸어 두는 것입니다. 앞으로 두 달치를 더 보는 것이죠. 11월이 되니, 1월달까지 바라보게 됩니다. 다음 주는 추수감사주일, 그리고 12월 첫주는 대강절이 시작되고, 성탄절이 다가 옵니다. 또한 한해의 마지막과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해가 벌써 끝이네” 라는 생각이 드는 때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이네”라는 생각도 동시에 드는 때입니다. 이때가 되면 목회자는 사실 많은 고민과 기도의 시간입니다. 부담스러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부담이라는 말되신, 고민이라는 말대신 저의 마음 속에 “소망”, “희망”, “기대”이라는 단어를 가득채워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본문이 속한 이사야서는 예언서 17권 중에 가장 첫째 성경이기도 하며, 66장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말씀입니다. 이와같은 예언서가 주는 가장 강력한 파워가 있습니다. “소망”이며 “희망”입니다. 더나아가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에는 반드시 믿는 자들을 향한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며, 한해의 끝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되는 이 때에 제 자신도,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희망을 마음 가득한 시간이 되기를 원하며,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과거로부터의 해방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이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천사가 "당신들은 세상에 살 때 너무 많은 죄를 졌으니 엉덩이를 백대씩 맞아야 겠소! 그런데 원하는 한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소!"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먼저 미국인이 "저는 엉덩이를 때릴 때 두루마리 화장지를 위에 올려놓고 때려 주세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음 일본인이 "저는 방석을 올려놓고 때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한국인 차례가 되었답니다.
한국인은 "저는 금방 들어간 일본 놈을 올려놓고 때려 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과거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픈 상처와 과거가 지금의 나를 아프게 한다면 끔찍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하도록 유혹합니다. 과거의 그림자 안에 가둬 놓기를 좋아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느낀 바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1대 왕이사울은 늘 “작은 자”라는 트라우마 속에서 살았습니다. 작은 지파, 작은 가문 출신이라는 트라우마는 왕이 되어도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로 늘 유다지파이며, 백성의 지지를 받았던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과거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총 66장으로 이루어진 성경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66장인데, 같은 숫자입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사야 성경 39장까지는 과거의 이야기라면, 40장부터는 희망의 선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신약 성경이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죄인이었던 인간에게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는 메시지와 동일한 구조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같은 말씀을 보면서 과거가 아프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아픈 과거에 매이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담임목사로 제 자신도, 여러분도 과거에 매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보면 그녀의 과거가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더워 아무도 나오지 않는 시간에 물을 길러 나온 것입니다. 사람 만나기가 무서웠던 것입니다. 과거가, 그리고 과거의 상처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이 그 마음에 역사하자 그녀는 마을로 뛰어가 사람들에게 예수를 외칩니다. 저는 외치는 이 여인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뜁니다.
이 순간이야 말로 복음의 능력, 희망을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이제 믿음 안에서 과거는 이기고 극복하여, 희망의 언어로 가득한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 아팠지만, 힘들었지만, 괴로움도 있었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받고, 회복되어,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꿈꾸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2024년에는 못했을지라도, 이미 지나간 시간이니, 2025년도에는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꿈으로 가득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꿈은 여러분만의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꿈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교회는 위한, 유재익 목사를 위한, 성도님들을 위한 계획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계획이 있습니다.
이사야 성경은 남유다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알아야 이해가 가능한 성경입니다. 오늘 최대한 간략하게 말씀을 드려보려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 활동했던 시대의 왕은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는 남유다 위대한 왕 3명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왕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을 일으켰고, 성전에서 우상과 관련된 것을 제거하는 성전 청결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왕국을 멸당시킨 앗시리아의 장군 산헤립이 십팔만 오천의 대군으로 남유다를 공격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물리쳤습니다.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5년의 생명연장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왕도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39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앞세우는 교만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랑했던 모든 것을 바벨론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후 남유다는 점점 패망의 길로 걸어갑니다. 그의 아들 므낫세는 남유다의 최고의 악한 왕이 됩니다. 아버지가 제거했던 우상숭배를 다시 이끌고 들어왔고 심지어는 인신공양,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죄악까지 범합니다. 그의 아들 암몬도 같은 길을 가다 신하들에 의해 피살당하게 됩니다. 마지막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요시야 왕이 있었지만 주전 609년 애굽과 바벨론 사이의 전쟁으로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애굽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김 왕도 주전 바벨론에 대항하다 죽음을 당하였고, 그의 아들 여호와긴도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으며,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주전 587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두 눈이 뽑힌채 포로로 끌려갑니다.
남유다는 왕들의 범죄와 우상숭배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희망, 소망, 기대는 사치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하 7:16에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 이후부터는 회복과 희망의 선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핵심적인 말씀이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라”입니다.
끝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계획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절망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은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 제자들 중에 하나는 밤중에 벌거벗고 맨 몸으로 도망쳤습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입니다. 베드로는 큰소리 땅땅 치고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신했습니다. 다 끝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시어,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되셨습니다.
고난을 기뻐하고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고난 때에 부흥했습니다. 고난의 연속 속에 살았던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그럼으로 2024년이 어떠했든, 지난 시간이 어떠했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좋게 말해 모여있던 것이지, 숨어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들었지만, 자신의 것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그랬던 그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니,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성령받기 이전과 이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희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희망과 기대는 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세상을 나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움받게 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면 믿어집니다. 믿어지면 희망이 됩니다.
셋째, 오늘의 하나님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첩경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43:16-17)
과거에 애굽을 탈출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셨던 하나님,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로 배불리 먹이셨던 하나님, 광야의 망망한 길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가야갈 곳을 인도하셨던 하나님, 광야에서 목말라할 때 바위에서 샘물이 터지게 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께서 제2의 대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그렇게 일하셨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새 일을 지금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가끔 하나님께 여쭤봅니다. 하나님, 저를 벤츄라교회에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의 카톡에 “언제나 그렇듯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저의 신앙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어제도, 오늘도 늘 한결같이 역사하실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시간에도 언제나 그렇듯이 저와 제가 섬기는 교회와 성도 위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기대와 소망으로 채워보려고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