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요약>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 마가복음 14:55-58
올해는 개신교가 탄생한 종교개혁 50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7년 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의 개신교회가 이를 크게 기념하였고, 한국에서도 수 십 종의 개혁관련 서적들이 출판되고, 여기저기에서 개혁을 기념하는 집회를 열어서 교회개혁에 대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구호들이 개혁을 “나부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부터 스스로의 개혁을 시작해야한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모임에 참여했던 제가 보기에도 “이제 정말 변화가 시작될까?”하는 약간의 기대를 할 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7년 동안 교계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갔습니다. 2013년 제정된 담임목사직 대물림 방지법을 어기는 대형교회가 등장하다 못해, 올해는 이 법을 삭제하자는 안건이 올라와 교계가 시끄러웠습니다. 강남의 한 대형교회는 지하공간을 불법적으로 확장해서 사용하는 일을 벌이고도 제제를 받거나 반성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여성목사 안수를 거부하는 교단이 있으며, 교회일치와 통일운동을 주관하는 교회협의회도 소속교단들의 정치적 입장의 광풍에 흔들려서 남북교회의 대화를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악법저지”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오늘 200만 명의 기도집회를 광화문 일대에서 하겠다는 교회연합체가 등장했습니다.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 연합단체들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심지어 그동안 주던 후원금을 끊는 교회들도 등장하였습니다. 이런 행사를 종교개혁 507주년 기념행사로 한다니, “나부터 개혁”이 이제는 “너부터 개혁”, “남부터 개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100대 기도문이 발표되었는데, 읽으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기도문 내용은 전쟁과 테러로 인한 세상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않고, 끝없는 가난 속에 허덕이는 세계인에 대한 연민도 없고, 점점 더 깊어가는 분단과 비방의 남북관계에 대한 반성도 없었습니다. 그런 옥외 기도회를 한다니, “너희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끌려간 예수를 두고 증인이 등장해서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이 사람이 말했다는 것이 마가복음의 내용입니다. 복음서 저자들은 이 말은 예수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해설하지만, 저의 생각을 덧붙이면, 성전종교가 무너지고 예수의 종교가 등장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지금 유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권력을 무너뜨리고 다시 하나님의 뜻을 세우겠다는 종교개혁 선언입니다.
34년 전 독일이 통일될 때에 서독과 동독의 교회는 끈기 있는 인내와 형제적 사랑으로 일치에 헌신하였습니다. 정치가 이념을 앞장세울 때에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 잃지 않았습니다. 1983년 루터 탄생 500주년기념행사를 동동 전 지역에서 개최하도록 대화하고 노력하였고, 그로인하여 막혔던 동서독 간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982년에 십 수 명의 참여자로 시작된 동독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 평화기도회가 출발점이 되어서 1989년 10월에 12만 명이 기도회가 끝난 후 라이프치히 광장에 모여 비폭력과 자유를 외치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서독교회의 기나긴 인내와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단 80년을 목전에 두고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인내와 형제적 사랑은커녕 비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교회와 신앙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안다면, 우리 한국교회가 무엇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군중집회로 왜곡하지 않아야합니다. 정치적 이념에 신앙을 이용하거나 이용당해서도 안 됩니다.
“이 성전을 헐고 다른 성전을 세우겠다.”는 증언이 마가에서는 거짓증언이라고 말하지만, 요한복음 2장에서는 주님이 하신 말씀으로 나옵니다. “손으로 짓지 않은 다른 성전”이란 건물이 아닌 말씀 중심의 종교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도 문자중심을 넘어서서 살아있는 예수의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는 지금도 살아 계서서, 성서에 기록된 당신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 시대에 고민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손으로 만들어 내지 않은 종교”는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위하여 위장하는 않는 종교입니다. 자신의 고집이나 확신 그리고 욕심으로 채색되지 않은 신앙입니다. 정죄와 비난으로 선동하고 힘을 과시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의 종교는 넓고 높게 볼 수 있게 하는 종교입니다. 내 것, 우리 것만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전쟁과 테러로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신앙입니다. 지금도 골방에 들어가 세상을 넓게 바라보며 숨죽여 기도하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주실 것입니다.
2024년 10월 27일
홍지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