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7:21-22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한 요양보호사가 근무 중에 어르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였다고 합니다. 어르신의 아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어머니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는데, 그때마다 아들은 가득한 걱정과 피곤으로 지쳐 돌아간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어르신은 아들에게 자신이 아프고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만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요양보호사도 근무 시간 내내 아프다는 투정의 소리에 지쳐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오면 아들의 안부를 묻고 다른 대화도 나누어 보세요”라고 권하면, 그 어르신은 “내가 아파 죽겠는데…”라며 서운해하고 화를 내다고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
조용기 목사님은 서적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은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인용하면, 자동차는 우리 삶에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능을 올바르게 활용할 때 자동차로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활용하지 않는 기능은 고장 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정의 생각 기능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를 믿음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구원의 은혜와 함께 주셨습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즐거움’ שָׂמֵחַ (8056 샤메하 AMS שָׂמֵחַ) 기뻐하는. 유쾌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의 원 뜻은 ‘즐거워하는 마음은 선을 행하여 치유한다’입니다. 이는 사람이 유쾌한 감정으로 기뻐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마음의 변화에 따라 삶 전체와 영적 상태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는 두려움을 이긴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고통과 염려를 즐거움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믿음으로 올바로 서지 못하면 믿음의 은혜를 빼앗겨 삶의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집니다.
기쁨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성령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삶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그 삶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함을 뜻합니다.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즐거운 생각의 기능’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유쾌하고 기뻐하는 삶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심령의 근심은
근심의 삶은 늘 “할 수 없다, 힘들고 고통스럽다”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고 질병으로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하다고 피폐한(지치고 쇠약함) 생각과 추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추해지는 것은 쇠약해진 정신과 생각으로 드러나는 배려가 없는 자기중심의 고집과 행동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은 인생을 근심 가득한 얼굴로 어둡고 답답하게 살 것인가, 힘들고 어려워도 성령 충만의 밝은 빛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성경의 지도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성숙한 생각을 통해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잠 17: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근심’ נְכֵא (5218 네케 AFS נְכֵאָה) 짓눌린. 낙담한. 상처 입은.
질병과 고통으로 짓눌리면 그 삶은 자연히 낙담(실망으로 맥이 풀림)으로 근심의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근심이 우리의 심령을 짓눌러 낙담하게 하고 영혼에 상처를 입혀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근심 자체를 완전히 없애주신다는 뜻보다, 성령을 통해 근심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주심을 뜻합니다.
습관적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은 그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통제되지 못하는 ‘상한 심령’의 상태로, 늘 부정적 생각 속에 자신에게 찾아든 작은 문제도 크게 확대해서 보는 염려의 질병입니다. 이에 대한 치료법은 오직 기도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으로 주시는 능력으로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시 55:22). 하나님이 바라시는 기쁨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잠 17:21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사람이 근심으로 지배당하면 주변의 모든 환경이 자기의 몸과 마음에 크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미련한 자의 모습으로, 이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함께 힘들게 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근심이 자라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 충만의 부르짖음으로 모든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으로 위로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준다고 해서 걱정과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생각과 ‘할 수 없다’라는 생각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의 사람은 늘 쇠약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과 근심으로 살기에 행복도, 기쁨도, 삶의 목적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대하며 살기에 그 눈에는 분명한 생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능력으로 복음의 향기를 전하는 믿음이기를 바라십니다.
잠 17:22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마르게’ יָבֵשׁ (3001 야베쉬 VPIFZS תְּיַבֶּשׁ) 시들다. 말라버리다.
우리는 근심 때문에 삶의 목적과 소망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는 단지 세상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심령의 근심으로 우리의 영이 시들거나 말라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걱정, 사람에게 받은 상처, 비교와 열등감,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의 근심은 우리의 심령을 다시는 소생할 수 없도록 말라버리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근심의 염려만 토로하는(마음에 품어 드러냄) 습관의 행동은 자신의 미련함을 증명할 뿐입니다. 삶의 태도를 근심과 염려에서 감사의 기쁨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 말씀의 능력으로 영혼이 시들지 않도록 지켜내야 합니다.
잠 17:24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마음의 상태가 정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와 기쁨이 충만해지나, 자신에게 부족하고 쇠약한 상황만 바라보면 불평과 근심만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령 충만한 백성입니다. 명철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지혜로 사는 명철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들에게 근심과 염려, 서운함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미련한 모습 대신, 성령 충만에 의한 따뜻한 칭찬과 격려, 위로와 용기의 선물을 안겨주어야 합니다. 이번 추석이 우리 모든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명절이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