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속박의 길을 통해 진리와 자유에 이른다.
우리는 사물의 환영과 같은 성질을 꿰뚫어봄으로써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된다.
삼사라samsara(윤회계)를 피해 돌아가서는 열반에 이를 수가 없다.
지옥을 회피하거나 둘러감으로써는 천국에 이를 수가 없다
혼동을 회피함으로써는 명확함에 이를 수가 없다.
우리가 가지는 환영,
우리가 매달려 사는 신념이야말로 해탈쪽으로 열려 있는 통로이다.
우리는 그저 그 환영을 움켜쥐지도 않고 멀리하지도 않으면서, 그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믿어서는 안되며, 동시에 그것에서 도망쳐서도 안 된다.
어느 모로 보거나 속박이 분명한 순간순간으로 해탈로의 초대로 맞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매 순간순간이 모두 일어날 필요가 있는 순간이다.
우리가 겪는 하나하나의 경험이 모두 신성의 초대장이다.
그것은 갖가지 무늬가 새겨진 아름다운 초대장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매우 사나운 초대장일 수도 있다.
모든 순간이 초대장이다.
이 삶이라는 흐름은 매 순간순간마다 그 자체가 해탈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삶 자체가, 해탈을 얻기 위해 우리가 꿰뚫어 보아야만 할 것들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정직하고도 일관된 태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실제로 맞닥뜨려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과연 삼사라의 한가운데를 통하여 열반에 이르게 됨을 깨닫는다.
이 말은 우리가 삼사라에 갇혀서 지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는 자신을 삼사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윤회하는 환영과 같은 생각들을 놓아 보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끝내는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깨어남은 우리 안에 이미 완전한, 본연의 자유를 드러내 준다.
깨어남은 또한 우리를 고통과 동일시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모든것을 들여다보게 하는 도구인 명확함과 용기를 키우는 터전이 되어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알아차림과 그에 따르는 해방은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그것은 자동적인 것이 된다.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며, 진지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것은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자동적인 것이 된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알아차림과 해방은 아주 내면화되어서 거의 자동화 되어 버린다.
'순수의식'은 스스로를 한없이 끊임없이 해방시키고 있다.
그리고 앞서도 강조했지만 핵심적인 요소는 '진실성' 이다
즉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이건간에,
진지하고도 정직하게 거기에 맞닥뜨리는 용기이다.
이것이 해탈로의 진정한 관문이다.
오로지 지금, 또 지금 이 순간에만 생겨나는 해탈인 것이다.
- Adyashanti-
첫댓글 좀 어렵다라고 마음이 말하네요 맞닥뜨릴 용기가 없어서 피할때가 더러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기도하고 게으름도 있습니다 한번 물으면 절대 놓치지않는 근성이 필요한데 어째 좀 약한것같아요 하기좋은 말로 집착이 적다라고 적당히 포장하기도 합니다 이 공부하면서 갈수록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는걸 느낍니다 !!참잘했죠잉!!
네 그래요..우리는 고통이 오면 순간적으로 피합니다...피하기만 합니까?...'수행하기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또 싫어하기도 하지요...마음이 하는 모든것을 봐야겠지요....그리고 공부를 하다보면 정직하게 살수밖에 없더라구요...원인결과가 바로오니까요...처절하게느끼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