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강둑을 따라 흐른다.
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으면 나무가 크는 대로 글자도 커진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 행위는 우리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걸림 없는 행이 아닌 한, 마음의 심층에 남겨진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나무에 흠집을 내 놓은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그런 흔적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심한 충격이나 깊은 슬픔의 경우는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지 않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저 흘러가 버린 일로 여긴다.
그러나 느끼지 못한다고 혹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여리다고 해서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번 일어난 것은 반드시 입력이 되고
입력된 것은 어느 때든 다시 나타나게 되어있다.
속담에 ‘고깃덩이를 먹어 본 개’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맛을 보고 나니까 자꾸 먹고 싶어 안달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습기의 무서움을 빗댄 말이다. 이런 얘기도 있다.
어느 불면증 환자가 늘 수면제를 복용해 오다가
어느 날엔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스르르 잠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깨어나서
‘하마터면 수면제를 안 먹고 잘 뻔했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습관이란 그렇듯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습기를 두려워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그것은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가는 사슬이지만
알았을 때는 이미 끊기 어려운 사슬이다.”
“습기는 내부의 전제 권력자이다.”
“우리는 매일 습관이라는 노끈을 꼬며 산다.”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면,
마음에 각인된 흔적을 지워야 한다.
그것이 닦음이요 수행이다.
또 나아가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더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습기를 없애는 수행이 어렵다면
대신 악업을 피하고 선업을 쌓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나쁜 지식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
의식주 돈 권력 명예 따위를 탐하지 않는 것,
정법을 비방하지 않는 것,
바른 길을 가는 벗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되어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한 번 길이 나면 그 길을 따르기 십상이다.
강물은 강둑을 만들고 그 강둑을 따라 물이 흐른다.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