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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댁
서 정 인
애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서울에만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종종 벼랑에 핀 꽃처럼 대단한 벽지에서도 산견되는 수가 있다. 그들은 그 희소가치로 인해서 더욱 빛이 찬연하고 기세가 대단하다. 아무도 그들의 우국충정을 폄할* 수 없다. 그들은 갈수록 창궐하는 매국적 부정부패와 민족정기의 망국적 타락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이고 제동장치이다. 비록 모든 사회악과 도덕적 타락이 불치의 암처럼 뿌리 깊은 고질이 되어버렸지만 그들은 그들의 제동능력의 효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자임하고 나선 임무가 엄청
나게도 중대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 그들은 없으면 별것이 아니지만, 있으면 없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들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첫째, 정열적이고, 둘째, 배타적이며, 셋째, 비생산적이다. 그들을 만나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직 절망적인 단계는 아니다.
대단한 벽지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인구 삼만이면 전라남도에서 십 대 도시에 든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봄이 늦는 이 분지 도시에는 여섯 개의 교육기관과 한 개의 극장, 다섯 개의 약방, 세 개의 병원이 있다. 지금 이 지방 최고급 교육기관인 종합고등학교의 교무실에서 이례적으로 직원 종례가 열리고 있다. 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생각해보시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소. 읍사무소의 사환아이까지 동원되어 나무를 심고 있는데, 바로 그 시각에, 대낮부터, 옴팍집에 들어박혀 술타령을 하다니, 이게 도대체 용인될 수 있는 일이요? 길을 막고 물어보시오. 학생들이 동원되면 당연히 교사가 따라가야 한다는 교육자적 양심은 잠시 차치하고라도, 국가적 대행사에 불참하는 것이 우선 국민 된 도리로서 되겠소? 그러고도 당신들은 이 지방의 최고 지성인을 자처할 작정이요? 그래, 지성인의 눈과 귀에는 매년 비가 오면 홍수요, 안 오면 한해가 되는, 이 민족적인 비극적 현실이 안 들어온단 말이요? 지성인들에게 국가적 대사업에 앞장설 의무는 있어도 그것을 뒤에서 우롱할 권리는 없을 것이요. 국가 없는 지성인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민족 없는 교육자가 무슨 필요가 있겠소. 통탄할 일이요.”
교장의 비분강개에 감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그들은 교장이 가령, 청소년 축구대회가 국민체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얘기했더라도 역시 같은 표정들을 했을 것이다. 교감은 교장의 연설이 자기의 영향력에 끼칠 득실을 따져보면서 탁상용 달력의 지난날치 이면에다가 이따금씩 비망록을 적어넣는 척 했고, 서울사대를 나온 영어선생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광선에다가 안경 알을 하얗게 번득이면서 논리의 일방통행이 갖는 횡포성에 관해서 생각했고, J 대학을 나온 국어선생은 혹시 거기서 어떤 시적 영감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책상 위에 묻은 잉크 얼룩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눈을 깜박이는 사람, 코를 후비는 사람, 천장을 쳐다보면서 바지 호주머니에 들어 있어야 할 십 원짜리 행방을 찾는 사람, 모두가 직원회의 때마다의 습관 그대로였다. 교장은 그것이 원망스럽다. 그가 파놓은 감정의 웅덩이에 아무도 빠져주지 않는다.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파놓은 사람 자신이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항상 말하는 바이지만, 정서적 정의감의 고갈이다. 그러나 교장은 더 말하지 않고 거기서 그치기로 한다. 조금 짧았지만 그 대신 내용이 중후했으므로, 그가 한 이야기는 그날치 애국의 하루 몫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된 때문이다. 그는 얼굴이 상기되어 밖으로 나간다. 그의 연설에 가장 감동된 사람은 바로 교장 자신이다. 그는 오랜만의 시원스런 배설로 가슴이 후련하다.
서무실을 거쳐 교장실로 돌아온 그는 조금 울적한 기분이 된다. 언제나 한바탕의 애국을 하고 나면 그는 그런 기분이 된다. 고군분투라고나 할까. 그는 적적하다. 그럴 때면 그는 얼마나 지기(知己)가 아쉬워지는지 모른다. 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창밖을 내다본다. 밖은 완연히 봄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봉에는 철 늦게 질척질척 내린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고 학교 뒤 개천에는. 물 위에는 살얼음이 깔렸었고 양쪽 기슭에는 얼음기둥들이 들고 일어서 있었고 밟고 지나가자 바삭바삭 무너지는 소리들을 냈었는데, 어느새 봄은 그 입김을 살며시 불어서 언 것들을 녹여버렸다. 먼 산에 눈이 녹자 개천물은 부쩍 늘어나서 겨우내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던 징검돌들 위로 소리를 내며 흘렀고, 얼음 기둥들이 있었던 양쪽 기슭으로 넘쳐서 버실버실 무너지는 논둑의 흙벼랑 속으로 촉촉이 번져갔다. 대지의 표면에까지 번져간 물기는 이탈리아 포플러와 수양버들과 오리나무의 뿌리를 통해 줄기를 타고 가장 가는 가지의 끝에까지 기어올라갔다.
교장은 어제 비선암 골짜기에다 다섯 그루의 리기다소나무를 심었다. 그러고는 한시가 되자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버실버실한 흙을 밟으며 암자로 올라가서 술을 마셨다. 술은 읍사무소에서 마련한 막걸리였는데, 두 개의 커다란 술통 속에 들어 있었다. 읍장은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동이에 부어놓은 술을 기관장들이 시음 삼아, 말하자면 테이프를 끊는 셈으로 한 사발씩 들이켜고 났을 때, 부읍장이 넌지시 그를 끌고 한쪽으로 가더니 읍장은 지난번에 터진 비료대금사건 관계로 급히 광주에 올라갔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귀띔해주었다. 그는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역시 심각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 중의 누구도 불행한 것 같지는 않았다. 더러 남의 불행은 우리들을 기쁘게 해주는 수가 있다.
교장은 권에 못 이겨 두 사발의 술을 더 마셨다. 시장하던 터였으므로 술기운이 즉시 온몸으로 퍼졌다. 그는 알맞게 취한 기분으로 교감과 함께 네 명의 교사들에 의해서 옹위되어 산을 내려갔다. 깨끗하게 빗질되어 있는 흙계단 밑에서부터 달구지 하나는 좋이 지나갈 수 있는 등외 도로가 파란 보리밭 사이로 길게 나 있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의 흉을 보면서 싱그러운 사월의 들판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일 킬로미터쯤 가자 그들이 올 때 걸어왔던 큰길이 나타났고 다시 일 킬로미터를 더 가자 읍내가 되었다.
시간은 두시가 겨워 있었다. 술기운으로 잠시 잊혔던 배고픔이 되살아왔다. 그들은 동일옥으로 갔다. 그러나 교사들 중의 두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비단결보다 더 부드러운 사월의 태양을 불평하면서 각자 마누라들한테로 돌아갔다. 사실 햇볕에 쬐인 것을 이겨내지 못한 것은 나이에 의해서 저항력이 약해진 교장의 머리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자, 먼저 심부름하는 애를 불러서 뇌신을 사오게 했다.
“제일약방으로 가거라. 어딘지 알지야?”
제일약방은 한 갑에 십오 원씩하는 뇌신을 백 원에 열 갑씩이나 주는 인심 좋은 약방이다. 교장은 뇌신을 잘 먹는다. 거의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 갑씩 먹을 정도이다.
약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집 주인이 들어왔다. 그 읍에서 일급으로 꼽히는 요릿집 동일옥의 주인은 그들의 학교의 기성회 부회장이었다.
“교장 선상님 오셨습니꺄! 교감 선상님도 오시고! 두루 평안들 허셨습니까!”
키가 작고 살이 찐 주인은 크고 둥글고 불그스레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네 사람의 교육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그는 그들보다 훨씬 더 신수가 휜해 보였지만, 대단히 친절했기 때문에 그들 중의 누구도 기분을 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날이 사월 오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월 오일이 식목일이라는 것은 깜빡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입을 모아 그의 무지를 깨우쳐주었다. 그들은 그들끼리만 있었을 때는 교대로 십 분에 한 번씩 정도밖에 할 말이 없었는데, 그가 뛰어들어오자, 아연 활기를 띠었다. 그는 그들에게 말할 재료들을 한없이 많이 만들어주었다. 무엇이든지 그가 끄집어내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화제가 되었다. 심부름하는 애가 약을 사왔을 때, 그는 그 소년을 자세히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으면서, “뭐이냐. 니는 나가 있거라”라고 말함으로써 교장에게 “이왕 사온 약이니 그냥 먹어둡시다” 라고 말하여 좌중에 폭소를 일으킬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그 약이 교장의 습관성 두통을 치료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해지자, 그는 돼지의 골을 열 마리만 빼어먹으면 절대로 두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머지 네 사람은 한 오 분 동안 그들의 돼지에 관한 지식을 총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장은 팔의 굽힘 하나에까지 중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약 한 봉지를 입 안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셔서 꿀꺽 삼켰다.
“교장 선상님은 어쩔라고 갈수록 더 이뻐지십니꺄?” 동일옥 주인이 불쑥 말했다. “젊으셨을 적엔 각시들헌티 인기가 좋으셨겄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세 사람들은 일제히 돼지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들은 열심히 교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연 살갗, 얄팍하지만 붉은 입술, 날카로운 콧날, 짙은 눈썹, 늙어서 주름이 잡혀 쌍꺼풀이 된 눈, 단아한 이마, 숱이 작지만 기름을 발라 곱게 양쪽으로 빗어넘긴 머리, 그들은 교장이 미남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러나 교장 앞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들은 적도 없다. 교장은 소년처럼 얼굴을 붉혔다. 과히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밥상이 들어오자, 다소 구원을 받은 듯한 눈치였다.
밥은 비빔밥이었다. 교감은 그의 항문의 늘옴치근*이 싫어한다고 고추장을 젓가락으로 상위에 덜어놓았다. 주인도 합석을 했다. 그에게는 조금 이른 점심 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네 사람의 교육자들에게는 “찬은 없지만…….”이라는 말을 거의 할 필요가 없었다. 식목은 식욕을 돋우어주었다. 우아한 옥색 한복으로 차려입은 배구 선수같이 몸집이 좋은 짧은 머리의 작부가 ‘스탱’ 쟁반에 술 주전자와 잔들을 받쳐 들고 들어왔을 때는 이미 두서너 번째의 숟가락들이 그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자, 교장 선상님, 반주로 한잔 드십시오.”
채 밥도 다 비비지 못하고 있던 주인이 작부에게 교장 곁에 앉도록 눈짓 하면서 말했다.
“아까 산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섞어서 괜찮을랑가 모르겄소?”
교장이 작부로부터 건네받은 유리 술잔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막걸리를 자셨습니까? 하하! 그래서 머리가 아프시그만이라. 요새 도게 탁배기*가 뒷이 안 좋습넨다. 그게 보나마나 종만이 짐샌네 신월도계에서 나왔을 텐디, 요새 그 집 술, 말이 많습넨다.”
“정말, 큰일이올시다.” 교감이 주인의 말을 받았다. “막걸리라면 농준데, 정 말이지 농민들의 위생에 커다란 적신호가 아닐 수 없어요.”
교감은 그 학교에서 가장 표준말을 잘 쓰는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중학교를 동란 전에 서울서 나온 그는 전라남도 ‘교육계에 투신’하기 전에 서울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적이 있고 그것을 굉장히 자랑으로 알고 있다.
“그렁께 촌에 가면 집집마다 밀주 없는 집이 없심다.”
젊은 교사가 숟가락질을 잠시 멈추고 얼른 한마디 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나이 좀 든 그의 동료가 아마도 그 이야기가 그들 둘 사이에 공통되는 지식 이었던지, 이렇게 받았다.
“양조장에서는 아예 단속해서 고발할 생각을 안헙니다. 그 대신 각 부락에다가 매달 한 통이면 한 통, 두 통이면 두 통을 강제로 떠맡깁니다. 그러면 부락에서는 못 이기는 체하고 그것을 받습니다. 그 대신, 인자 책임량을 소모했응께 그다음부터는 얼마든지 밀주를 마셔도 상관허지 말라는 그런 툽니다.”
“하, 그래요?”
“그렁께, 술도가에서 농민들허고 협상을 허는 셈이그만. 한 달에 도가 술 암만을 마셔라, 그러고 나서는 밀주를 얼마든지 마셔도 좋다, 이거로구만.”
교장은 그 이야기에 초면이 아닌 모양이었다. 작부가 따라준 정종을 옆에서 보기에도 시원스럽게 짝 들이켠 다음에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그 이야기의 진수를 듣는 사람들이 행여 놓쳐서야 되겠냐는 듯이 부연했다.
“양조장에서 배당을 많이 하면 어떻게 해요?”
교감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교장에 건네주는 술잔을 냉큼 받아 들면서 그가 말했다.
“하하하, 그러면 그만큼 더 마시면 되겄지라우, 하하.”
주인이 웃자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교감도. 그러나 그는 조금 무안했던지 얼굴을 살짝 붉히고 여자가 따라주는 술을 홀짝 마셨다. 그러고는 머리를 한번 털고 술맛을 감상하는 척 했다.
“나주떡은 어디 갔소?”
교장이 말했다.
“아, 나주떡 말입니꺄?”
주인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나주댁이라면 아마 할 말이 조금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이 든 교사를 통해서 그에게 건너온 술잔을 받아들고, 그러나 그것을 여자에게 내밀 생각은 하지 않고,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화술이란 별것이 아니었다. 천천히 말하는 것이 비결이었다. 느리게. 될 수 있는 대로 느리게. 단 발언권을 뺏기지 않을 범위 안에서. 지금 주인이 그 좋은 본보기였다.
“이놈의 장시도 옴팍집 때문에 못해묵겄십니다. 생겼다 허면 옴팍집이지 뭡니까? 그런디, 어떻게 된 놈의 세상이, 이놈의 옴팍집은 간판도 없이, 옴팍허니 들어앙거서, 알 국물만 쪽쪽 빨아묵고 있음시롱도, 세금 한 푼 안 내니, 어디 해보겄십니꺄. 말이 좋아서 옴팍집이제 각시가 셋 있으면 작은 축에 든다니, 요정 뺨치고도 남지 않겄십니까. 그런디 술 먹는 사람들은 여기 와서 쪼끔 비싸면, 바가지 썼다고 생각험시롱, 그놈의 옴팍집에서는 아무리 포옥 뒤집어써도 본전 생각이 안 나는 모양이니, 사람 환장헐 노릇 아닙니까.”
작부는 술을 따르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잔을 든 손이 움직일 때마다 주전자가 들먹거렸다. 그녀는 틀림없이 신참이었다. 남자들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술을 부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는 잔을 내밈으로써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요 앞에 네거리 말씀입니다, 교장 선상님.” 그는 오래 비어 있었던 잔에 술이 채워지자 단숨에 홀짝 마시고 나서 옆에 앉은 젊은 교사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돌린 다음, 말을 계속했다. 젊은 선생은 작부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요 앞에 네거리에 가면 새로 옴팍집 하나 생긴 것이 있습니다. 칠성이가 문방구 허던 자린디, 겟돈 백만 원 띠묵고 야반도주 안했심니까. 그 집에 가면 나주떡이 있을 거이그만이라. 왜, 저, 며칠 전에 쇼가 안 들어왔십니꺄. 그걸 보고 오길래, 한 자리 뭐라고 했더니,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보따리를 쌈시롱, 나도 순정이 있어요, 이러지 않습니꺄. 하도 얼척이 없어서, 어, 잘헌다, 잘해, 허고 보고만 있었십니다.”
주인은 말을 마치자 웃지도 않고 밥을 한 숟갈 가득히 퍼서 입 안에 집어넣었다. 아마 위 안에, 밥알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 소화액이 분비된 모양이었다.
“나도 순정이 있어요, 그래요? 하하하.”
교감이 말했다. 그의 콧등에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 있었다. 그는 그가 조금 전에 처했던 웃음의 대상 자리에 딴 사람을 앉힐 최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소리 높여 웃었다. 그래서 옆엣사람들은 할 수 없이 조금씩 부조를 했다.
“ 장사장이 순정을 못 갖게 헌 것 아니요?”
“아이고, 교장 선상님도, 원. 허허허.”
“하하하.”
모두들 잠시 숟가락질할 것을 잊고 머리들을 뒤로 잦히면서 크게 웃었다. 다만 작부만이 남자들의 밥그릇들 옆, 손 가까운 곳에 놓여 있는 술잔들 중에 혹시 빈 것이 있지나 않은가 두루 살펴보느라고 미처 웃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뿐이었다.
교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다. 담뱃불을 크라운맥주 재떨이에다 비벼 끄고, 열두 개의 우승컵과 우승패가 진열되어 있는 소나무 책장 앞을 지나 교기가 받침대에 꽂혀 축 늘어져 있는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본다. 봄, 애국, 여자…… 군데군데 웅덩이가 파인 운동장과 가위질은 잘되어 있지만 한쪽 구석에 구멍이 뚫린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의 일직선 위로 먼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목, 순정, 막걸리……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의 눈이 보는 것과는 별로 관계없는 낱말들이 춤을 춘다. 그러다가 ‘쇼’라는 낱말이, 맹렬히 발운동을 하면서 나팔을 휘두르는 악사들과 흔들며 악을 쓰는 가수, 그리고 조명을 받아 온통 극장 안에 빛의 조각들을 뿌리는 코카콜라 깡통에서 오려낸 양철조각과 함께 나타나자, 일제히 그 속으로 그 낱말들은 빨려 들어가버리고, 한순간 그의 머릿속은 찡― 하는 소리가 나도록 텅 빈다.
그때, 문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쪽 승낙도 없이 그것이 열린다. 대머리가 훌렁 벗어진 서무주사가 결재판을 들고 들어와서 빈 교장 의자 곁으로 간다. 그러고는 마치 교장이 거기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결재판을 펼쳐서 그 앞에 놓고 공손히 서서 두 손을 마주 잡는다.
교장이 가서 안경을 코 위에 걸치고 들여다보니, 학생 입퇴학에 관한 학교장의 전권을 행사하라는 이야기다. 매년 이맘때면 그런 건이 서너 건씩은 생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그 지방 ‘유지’의 아들로서 서울 또는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세 번쯤 떨어진 애들이 서넛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장은 두말 없이 도장을 찍는다. 대머리씨는 보기보단 민첩하게 서류를 넘기면서 도장이 찍혀야 할 자리를 손가락들을 가지런히 해서 가리킨다. 일이 끝나자 결재판을 덮으면서 그가 말한다.
“아까 장사장헌티서 저녁에 교장 선생님 틈 있으시면 놀러 나오시라고 전화 왔었습니다.”
교장은 우선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머리를 끄덕거려둔다. 그러나 속으로는 조금 놀란다. 그는 전날 그와 헤어졌을 때를 생각해본다. 대머리 주사는 거의 교장의 생각을 방해함이 없이 방을 빠져나간다.
그들이 그 전날 동일옥에서 헤어진 것은 거의 네시가 돼서였다. 비빔밥과 정종으로 배를 불린 네 명의 교육자들은 유쾌하게 주인과 작별을 했다. 주인은 특히 틈을 붙잡아 교장에게 살짝 “미처 몰랐습니다. 며칠 사이에 조용히 한번 모실랍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얼른 알아차릴 수 없었다. 물론 마음에 언뜻 집히는 것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그것이라고 대뜸 단정을 내리기에는 아무래도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는 한층 더 기분이 우쭐해졌기 때문에 교감과 단둘이 되어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우리 여기 들어가서 한잔 더 하고 갈까요?”라고 말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그런데, 교감은 서울말을 잘하는 데 비하면 이런 데에는 너무 쑥이었다. 이쪽에서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아, 저게 바로 그 옴팍집이그만요. 교장 선생님, 한번 들어가보시죠?”라고 말해주면 오죽 좋으랴만, 그는 도통 이쪽 기분과는 거리가 멀다.
“아, 포식 했더니 졸리운데요. 교장 선생님은 피곤하지 않으세요?”
그들은 네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과연, 노트와 시험지를 잔뜩 쌓아놓고, 목이 없이 바로 어깨에가 머리가 붙은 사내가 쭈그리고 앉아서 문방구점을 보고 있던 자리에, ‘대중식사’라고 유리창 한 칸에 한 자씩 써 붙인 음식점이 나 있었다. 교장은 창문 안으로 벌겋게 익은 낙지가 통째로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결국 그들은 나주댁 집을 그대로 지나쳤다. 교감은 피곤하다면서도 의무감에선지 여러 가지 학교일들을 의논해왔다. 그는 배수로를 확장하기 전에 봄장마가 찾아올까봐서 걱정이었고, 체육선생이 체육시간에 애들을 시켜서 운동장 파인 곳을 메우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고급학년으로 갈수록 학년초부터 장결생이 생기는 것이 큰일이었고, 그 대신 저학년으로 가면 교과서를 갖추지 않은 학생들이 많은 것이 탈이었다. 교장은 연방 머리만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좌우를 살피는 척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세번짼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주댁 집에서 한 패의 술꾼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교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려다 말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학교의 선생들이었는데 모두 해서 세 사람이었다. 교감도 두어 걸음 중얼거리며 혼자 더 나아가다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저게 김선생 아니에요? 어이구 박선생두. 어? 윤선생두 나왔네, 산에는 안 나온 냥반이.”
그 외에 또 한 사람, 나주댁도 나와 있었다. 김, 박 두 교사는 두어 걸음 떨어져 있었고, 윤선생과 나주댁이 조금 전의 교장과 동일옥 주인처럼 한쪽으로 비켜서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미처 몰랐어요. 며칠 새에 조용히 한번 모시겠어요.” 교장은 그런 소리를 듣는 듯했다.
그때까지 교장은 부하직원에게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 밑에 있는 직원들을 제대로 존경해준 적이 별로 없었다. 부임해오는 교사가 ‘삼류’ 출신이면 ‘여기도 과분하지’ 였고, 반대로 ‘일류’ 출신이면 ‘오죽이나 못났길래…….’ 이었다. 아무리 탁월한 학벌과 훌륭한 경력을 가졌어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산골에까지 밀려오는 사람은 일종의 낙오자였다. 그는 교장이니까 그곳에 있었지, 젊었을 적, 교사 때에는 도내 일급지의 유수한 고등학교에 안 있어본 데가 없었다.
윤교사는 그해 봄 학년 초 대이동 때 전강에서 교사로 승진되어 그곳으로 부임해온 순수한 풋내기였다. 교육경력 일 년 이 개월에 출신학교는 서울에 있는, 그 이름을 들은 적은 많지만, 어떤 한 사람과 관련지어 오래 기억하기에는 아무래도 힘이 드는, 이 학교가 저 학교 같고 저 학교가 이 학교 같은, 그런 어느 사립대학이었다.
교장은 그날 밤 윤교사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온 지 보름도 안되는 햇병아리의 얼굴은 문득 생각하면 윤곽이 잡혔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잡힐 듯하면서도 가물가물 손가락들 사이로 빠져나가버렸다. 남자의 매력 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여자들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하는가? 그리고 퇴화해버린 꼬리뼈를 좌우로 흔들게 하는가?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일단 알아버리면 학벌도 직위도 장래성도 심지어는 재산조차도 그 앞에서는 초라해져버리는 어떤 신비스런 힘, 빛 또는 냄새, 그는 그런 것을 윤선생의 얼굴의 부분품들 이것저것에다 연결시켜보았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 전날까지만 해도, 정확히 말해서 그날 오후 네거리에서 그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못했던 연결이, 그의 얼굴 부분품들 어디에서나 척척 손쉽게 이루어졌다. 윤선생의 코는 뭉툭하게 큰 것이 첫 보매 매우 희극적이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거의 비극적이기까지 한 심각성을 가지고, 그로 하여금, 그때까지 딴 코들에 대한 그 우위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자기의 날카롭지만 쪽 곧아서 오뚝한 콧날을 거울에 비춰 보게 했다. 사람이란 여럿 속에 끼어 있을 때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이기 쉽지만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무라도 한 사람 딱 꼬집어내서 보면, 그는 아무리 정선된 사람에게라도 적수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정선된 사람이 어떠한 가벼운 의미에서도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장은 화가 났다. 생각을 한번 빨딱 뒤엎어보면, 윤교사는 그를 밤늦게까지 전전반측하게 할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없었다. 그는 날이 밝으면 출근해서 우선 입 안에서만 뱅뱅 도는 어물쩡한 그의 출신학교의 이름을 한번 찾아본 다음, 그를 포함한 모든 교직원에 대한 학교장의 탁락한 우월성을 여지없이 증명해주어야겠다고 자신을 달래어 간신히 잠을 재웠다. 역시 나이가 나이인지라, 낮에 산을 탔던 것이 조금은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교장은 후딱 서무주사가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쨌든 그는 기분이 좋다. 사람이 항상 애국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때로는 전환이라는 것도 해야 되는데, 술집과 여자보다 더 효과적인 전환이 있을 리 없다. 그는 그 전날 장사장과의 헤어질 때의 언약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그는 조금 전의 적적함, 허전함, 고고한 외로움, 지기지우의 아쉬움…… 등으로부터 말끔히 빠져나와 경쾌한 기분으로 퇴근을 서두른다.
교무실에서는 교장이 나가버리자 직원회의에 김이 빠졌다. 교감이 탁상용 일력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경을 낀 영어과 김선생은 교장이 역시 미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국어과 박선생은 책상 위의 잉크 얼룩을 손톱 끝으로 긁적거리면서 자기도 한번 교장이 되어보면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가 교장이라면 맨 끝에 이러이러한 말을 덧붙여 멋을 부렸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신참 윤교사는 교장이 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와 함께 부임한 교사가 그 말고도 넷이나 되지만 그들은 모두 교육경력이 많고 딴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그 학교에 많이 있어서 사람들은 유독 그만을 신참으로 취급했다. 그는 교훈 “부지런한 사람”이 써 붙여져 있는 하얀 벽을 멀끔히 쳐다보면서 부지런히 두 눈을 껌벅이고 있다. 그는 기분이 나쁘다. 그는 교장이 말한 대로 그가 반국가적인 사이비 지성인이라고는 결코 생각한 적이 없다. 반국가적이라니, 그는 지금 눈물겹도록 애국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의 담당과목은 일반사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곧 군대에 갔지만 다행히도 기관지가 확장되어 있었으므로 육 개월 만에 제대를 했다. 그 뒤로 약 이 년 남짓 동안, 서울의 옛 하숙에서 뒹굴며 대학원에 다닌다는 핑계로 집으로부터 돈을 타다 쓰며 놀았다. 집에서는 취직을 하라고 성화였지만, 서울서는 선뜻 오라는 데가 없었고, 그렇다고 아버지의 양조장이 있는 전라남도의 K시는 가끔 방학 때 일주일만 있어보아도 갑갑해서 숨이 막힐 듯했다. 그는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자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조금 있어보니 그렇게 답답한 것만도 아니었다. 그전에 갑갑하게 느꼈던 것은 일주일밖에 있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는 손쉬운 대로 우선 교편을 잡았다. 광주 시내의 한 고등학교의 전임강사로 부임 했다. 그것만 해도 그에게는 커다란 양보였다. 그랬는데 일 년이 지나자 교사 승진이라는 미명 아래, 인구 사십만의 ‘대도시’에서 삼만의 벽지로 전보명령이 났다. 그는 사십팔 시간 동안 심사숙고했다. 장학사는 ‘일 년 동안만…….’이라고 토를 달았지만, 그런 말은 귓가에도 오지 않았다. 결국 부임하기로 결심했지만, 장학사의 말엔 상관없이 일 년만 ‘봉사’ 하기로 했다. 그것은 순수한 의미의 봉사였다. 그랬는데!
교감의 발언은 끝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두 사람째 발언하고 있다. 청소구역이 바뀌었다는 뭐 그런 얘기다. 선생들은 흥미가 없다. 다음은 도서계 차례다. 교과서 구입 이윤금 분배의 건이라면 몰라도 그 외에는 역시 흥미가 없다. 말하는 사람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끔 “이건 꼭 좀 학생들헌티 주지시켜주셔야겄습니다” 라고 제법 교감 같은 소리를 섞는다.
검은 소나무 틀에 끼인 좀상맞게도* 잔 창유리들 너머로 교장이 대머리와 함께 퇴근하는 것이 보인다. 교감은 종례를 끝마쳐야 할 때가 왔음을 안다. 교장과 교사들은 삼 분간의 사이를 두고 교문을 나간다.
윤선생이 그 학교에 와서 맨 먼저 사귄 것은 박교사였다. 그는 나이가 그보다 열 살이나 위였지만, 알고 보니 대학 동창이었다. 그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가 어제사 그의 주선으로 하숙을 구해 이사를 했다. 이사래야 갈아입을 속옷 나부랭이와 책 몇 권이 든 조금 큰 여행용 가방과 이불짐뿐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안 그래서 마침 식목일이라 수업이 없었으므로 그만 학교를 쉬어버렸다. 그러고는 도배지를 사다가 말끔히 방치장을 하고 그 집 귀퉁이 달아난 앉은뱅이 책상을 빌려다놓고 그 위에 종이를 깔아 책들과 일용품들을 진열한 다음, 낮잠을 잤다, 나른한 사월의 봄 낮잠을. 얼마를 잤는지 모르지만 눈썹이 없고 코가 작아 볼품이 없는 중년의 주인아주머니가 깨워서 일어난 그는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방문을 열어보니 밖에 박선생이 와 있었다. 그는 눈을 씩씩 비비면서 밖으로 나갔다. 돼지막 곁에 김선생도 서 있었다. 그들은 가까운 음식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거기서 반주로 술을 한잔씩 했는데도 박선생이 굳이 우기는 바람에 그들은 다시 네거리에 있는 대폿집으로 들어갔다. 그집은 밥알이 동동 뜨는 동동주로 유명하다고 박선생이 말했다. 그러나 들어가보니, 그보다는 술을 따르는 여자가 더 일품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나주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집이 나주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나주라면 광주에서 합승이 다닌다는 것밖에는 모르면서도, 마치 거기에서 몇 년을 살아본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나주댁은 고향 친구를 만나서 기쁘다기보다, 자기의 환심을 사려는 노골적인 아첨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의 나주 실력을 더 캐물어보지 않고, 곧, 우리들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펴는 경계와 배척으로 짜여진 그물을 거둬들여버렸다. 그러고는 그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박선생은 짐짓 화난 시늉을 하며 “나주떡은 어찌 그리 총각 냄새를 잘 맡소”라고 말하여 좌중에 폭소를 일으켰다.
“박선생님, 우리가 대폿집에 들어앉아 있었을 때는 식목이 끝나고 좋이 두 시간은 지났을 때 아닙니까?” 윤선생은 교문을 나서면서 박선생에게 불평한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식목일 행사에 빠진 사람은 하루 종일 무릎 꿇고 엎드려서 전전긍긍하고 있어야 한다 그 말입니까? 원 세상에! 아전인수도 유만부동이고 논리의 비약에도 분수가 있지, 그런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어디 있어요, 네?”
“아, 윤선생, 뭘 그걸 가지고 그러시요? 아무것도 아니요. 잊어뿌시오, 잊어뿌러. 아, 그런 말 허는 재미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교장노릇 허겄소?”
“아니, 재미로 남을 병신 만들어요?”
“어허이. 그거이 아니랑께 자꼬 그네. 그런 말은 하나하나 새겨들을 필요가 없단 말이요. 아, 지금 애국에 관한 이야기를 허고 있는갑다, 그렇게 얼렁 대의만 파악해버리면 더 들을 것이 없단 말이요. 생각해보시요. 내용이야 들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학교 교장이 그런 말을 안허면 누가 헐 거이요? 그래도 인구가 몇만이 되는디, 그런 말 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말이 되겄소? 아니, 그래, 아무리 부패허고 타락했다 해도, 부패했다, 타락했다 허는 말도 없이 부패허고 타락해서야 되겄소? 이건 부패허구 타락한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요, 잉. 그건 오해허지 마시요.”
“그래요!”
“가령, 십만 원을 써서 교감이 된 사람과 안 써서 안된 사람이 있다고 헙시다.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을 놓고 뭐라고 말허겄소? 써서 된 사람은 재주꾼이라 허고, 안 써서 안된 사람은 병신이라 허요. 만일 안 쓰고도 될라고 허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멍청이라고 헐 것이요. 멍청이가 아니면 아마 지독한 구두쇠이겄지요. 나는 뭐, 써서 된 사람과 안 써서 안된 사람의 어느 쪽이 옳고 굻다고 말할 자신이 없소. 그러나 비록 아침 눈떠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돈만 벌라고 눈들이 비래가지고 돌아다닌다 헐지라도, 가다가 한 번씩은 비개인적인, 비현금적인, 비현실적 인 이야기를 들어야 허지 않겼소? 그 말에 어떤 실용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요. 말하는 사람 자신도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그것을 일단 들어서 정서적 만족을 얻은 다음에 다시 철저히 개인적, 현금적, 현실적이 될 수 있지 않겠소! 만일 말이요, 교장이 교직원들을 모아놓고 직원회의를 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나서 하는 말이, 우리 선생님들 다 생활들이 곤란하실 텐데, 각자 재주껏 요령을 부려서 수입을 올리십시오. 과외수업을 해서 부수입을 올리고 싶거나, 자녀의 교육을 좀더 잘 시키기 위해서 꼭 도시로 나가셔야 할 분들은 각자 삼만 원씩만 가지고 오십시요. 이곳에다가 생활터전을 웬만큼 잡으셨거나, 여기의 실험실습비 정도로도 만족을 하실 분들은 면 소재지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각자 이만 원씩만 가지고 오십시요. 교감이 되시고 싶은 분들은 곗돈 탄 것이거나 달리 모아놓은 돈 십만 원 하나는 쓸 각오를 하십시요. 물론 자격이 있는 분들 이야기입니다. 자격을 아직 못 따신 분들은 우선 교감강습 지명을 받아야 하므로 삼만 원씩만 준비해두십시요. 이건 교감 선생님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만, 혹시 교장이 되시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니까? 다행히도 이번에 무능 교장들을 대폭 좌천시킬 방침이 섰다고 합니다. 기회가 대단히 좋습니다. 삼십만 원만 쾌척하십시요. 돈 아까운 줄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받는 사람은 반드시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대개 이렇다고 한번 상상해봅시다. 이런 일은 도대체 있을 수가 없소. 왜냐면, 만일 그렇다면 요릿집이나 이슥한 시간에 찾아간 상사의 집 응접실에서 은밀하게 낮춘 목소리로 귀에다 대고 무슨 말을 할 것이요? 아, 장학사님, 또는 아, 교장 선생님, 우리들도 이젠 조금 애국을 해야 되겠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요? 그러면서 기미독립선언문이나, 순국선열추념문이 들어 있는 봉투를 은밀히 술상 밑으로 건네거나, 그 봉투가 든 케엌상자를 슬쩍 내려놓고, 아이들이나…… 라고 말할 것이요?”
“아, 아, 박선생님은 참 이상한 말씀만 하십니다. 하신 말씀은 다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제가 화난다고 하는 것은 딴 게 아니고, 왜 교장은 자신이나 교직원의 정서적인 만족을 위해서, 왜 애매한, 애매하다고까지야 할 수는 없지만, 억울한 나를 도마 위에 얹어놓고 요리를 하느냐 그 말씀입니다. 마치 술 마시면서 안주 한 점 집어먹는 식이 아닙니까? 나는 누구의 안주도 되고 싶지 않다, 그 말씀입니다.”
“아, 그, 그건 또 이렇지요. 윤선생이 아직 오신 지 얼마 안되어서 그러신디, 앞으로 몇 개월만 있으시면 자연히 그런 문제는 해결됩니다. 여기 직원이 약 삼십 명밖에 안핑께, 어차피 한 달에 평균 한 번쯤은 교장 구설에 오를 각오를 해야지요. 그러나 그걸 괘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도 교장 이야기의 장본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 장본인이 자기 자신일 때도 마찬가지지요. 자, 그럼. 아, 이따 저녁밥 묵고 놀로 가지요. 술이나 한잔씩 허로 나갑시다. 지내고 보면 우리 교장 선생만큼 좋은 분도 드뭅니다. 그동안 한 열 분 모셔봤지뱐, 이 교장만큼 건망증이 심한 분도 드물어요.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헌덴 그게 어딘디요!”
그들은 헤어진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나자 윤선생은 박선생이 기다려진다. 그러나 박선생은 여덟시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윤선생은 옷을 걸치고 산보 삼아 거리로 나온다. 박선생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집에서 막 나오는 그와 부딪친다.
“아, 윤선생이요? 그렇지 않애도 지금 들를라든 참인디, 기다리실까봐서. 나는 처남이 장흥서 온다고 해서 버스 정류소에 좀 나가봐야 겄소.”
“아, 그러세요? 다녀오십시오.”
“윤선생은 당구나 한 큐 치실라요?”
“네, 뭐, 산보 삼아 한 바퀴 돌아서 집에 들어가지요.
아, 마누라가 있는 사람은 할 일도 많구나! 그는 그렇게 탄식하면서 박선생과 헤어진다.
그는 당구장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문득 큐를 잡은 사람들의 그림자들이 불 켜진 이층 유리창에 비친 것이 보이자, 그는 갑자기 들어가고 싶어진다. 이십쯤만 내려서 놓으면 설마 읍민들에게라도 바가지야 쓰지 않겠지. 그는 좁고 컴컴한 나무 층계를 올라간다.
당구대는 셋인데 빈 것은 하나도 없다. 제일 안쪽에 있는 대에서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세 사람인데 모두 그의 학교 동료교사들이다. 그는 그들의 성을 생각해낼 수 없다. 그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는 한 판을 구경한 다음, 팔십을 놓고 게임에 끼어든다. 이십을 낮추었지만, 한 시간 뒤 네 판 중에서 한 판은 그가 지불한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그를 끌고 당구장 건너편에 있는 대폿집으로 간다. 그는 그들의 권에 못 이겨 막걸리 두 사발을 마시고 그들과 헤어진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서무직원이다.
그의 뱃속에 들어간 두 잔의 술은 그의 발걸음을 네거리로 돌리게 한다. 단둘이 앉아서 술을 마시자. 밤이 조금 늦어도 좋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의 발걸음은 갑자기 활기를 띤다. 그리고 나주댁 집의 문 유리에서 인적이 드문 한길 위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자 가슴이 조금 뛴다. 그는 백치처럼 거침없이 웃을 그녀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걸음을 빨리한다. 바로 그때 불빛이 새어 나오던 문이 열리고 길 건너편에까지 확 뻗친 빛의 홍수 속에 그녀가 나타난다. 그는 걸음을 멈춘다. 문이 뒤에서 닫혀지자 그녀는 어둠 속에 묻힌다. 그는 전신주 뒤에 얼른 몸을 감추고 그녀 뒤에 누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지나감에 따라서 그는 전신주 뒤로 반원을 그린다. 동행은 없다. 그는 다시 길 복판으로 나와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그녀는 오른쪽으로 꺾어서 골목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는 그 골목 입구께로 뛰어간다. 입구에서 열 걸음 남짓 되는 곳에 철사로 그물을 만들어 씌운 삼십 촉짜리 백열전구가 희끄무레하고 비추고 있는 대문이 있는데, 그 속으로 그녀가 막 들어가고 있다. 그 집은 그도 알고 있는 집이다. 대문 기둥에는 골목 입구에서도 잘 보이게 ‘강남여관’ 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그는 거기에서 부임 첫 사흘을 묵었다. 그는 골목 입구 반대편 길가로 물러서서 조금 생각에 잠긴다.
그는 자기 주위가 너무 밝아서 옆을 살펴본다. 꽤 깨끗한 대문에 반투명 유리로 뚜껑까지 해 단 외등이 바로 ‘동일옥’ 간판을 비추고 있다. 그는 담배를 피워 물고 활짝 열린 대문 앞으로 가서 한글로 쓴 그 간판을 들여다본다. 집 안에는 방방이 불이 켜져 있고 더러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처마 밑에도 외등이 있다. 막 물러 나오려고 할 때, 한 방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오는데 얼른 보기에도 틀림없는 교장이다. 그는 흠칠 놀라서 열 걸음도 더 물러나 야음 속에 몸을 숨긴다.
교장은 그보다 키가 작고 머리통이 큰 사람과 함께 대문의 외등 밑으로 짧은 그림자를 만들며 나타나더니, 성큼성큼 걸어서 건너편 골목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머리통이 큰 사내는 외등 밑에 그대로 잠시 섰다가 마치 천기라도 살피려는 것처럼 고개를 뒤로 발딱 잦히고 하늘을 한번 휘둘러본 다음에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사월의 밤바람이 네거리로부터 불어와서, 부지런히 눈을 껌벅이며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는 윤선생의 뺨을 스친다.
『창작과비평』 11호(1968 가을); 『강』 (문학과지성사 1976)
* 2005년 6월 작가가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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