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1코린13,13).
예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신다
2616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드리는 기도를 공생활 동안에 이미,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권능을 앞당기는 징표들을 통해서 들어 주셨다.예수님께서는 말로 표현되었거나(나병 환자,야이로,가나안 여자,회개한 죄수),또는 침묵 중에 표명되었던(중풍 병자를 떠메고 온 사람들,예수님의 옷을 만진 하혈증을 앓는 여자,죄 많은 여자의 눈물과 향유)믿음의 기도들을 들어 주셨다.“다윗의 자손이시여,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마태9,27),또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10,47)라며 탄식했던 소경들의 애원은,예수님께 드리는 기도의 전승 안에서 이렇게 인용되고 있다.“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병을 치유해 주시거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가지고 당신께 애원하는 기도에 늘 응답해 주셨다.“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평안히 가거라.”
동정 마리아의 기도
2617마리아의 기도는 때가 차 오는 여명에 우리에게 알려진다.하느님의 아들이 강생하시기 전에,그리고 성령께서 세상에 강림하시기 전에,그리스도의 잉태를 위한 주님 탄생 예고때,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형성하기 위한 성령 강림 때에 마리아께서 바치신 기도는 성부의 자비로운 계획에 탁월하게 협력하는 기도이다.하느님께서 태초부터 기다려오신 승낙은 하느님의 비천한 여종의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전능하신 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가득히”입으신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전 존재를 바쳐 응답하신다.“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이루어지소!”(Fiat)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기도, 곧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셨으니,우리도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되겠다는 기도이다.
2618복음서는 마리아께서 믿음 안에서 어떻게 기도하고 전구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카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혼인 잔치에 필요한 것을 당신의 아들에게 청하신다.그런데 이 혼인 잔치는 또 다른 잔치, 곧 당신의 신부인 교회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몸과 피를 내주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상징한다.그리고 새 계약의 맺어지는 시각에,십자가 아래에서,마리아께서는 ‘새 하와’로,‘여인’으로 ‘살아 있는 이들의 참어머니’로 받아들여진다.
2619이런 까닭에,라틴 말로는 마니피캇Magnificat,비잔틴 말로는 메갈리네이인,“성모의 노래”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노래이자 교회의 노래이며,시온의 딸의 노래이자 하느님의 새 백성의 노래이고,구원 경륜 안에서 충만하게 베풀어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의 노래이며,우리 조상들에게,“아브라함과 후손에게 영원토록”언약하신 약속의 이행을 통해서 그 희망이 채워진 ‘가난한 사람들’의 노래이다.
제3절 교회 시대의 기도
2623오순절 날에 “한자리에 모여”(사도2,1)“모두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며”(사도1,14)그분을 기다리던 제자들 위에 약속된 성령께서 내리셨다.교회를 가르치시고,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가 기도 생활로 성장하게 하신다.
2624예루살렘의 첫 공동체 안에서,믿는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2,42).이는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곧 사도들의 신앙에 근거를 두고,사랑으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는 교회의 기도는 성체성사로써 양육된다.
2625이 기도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신자들이 성경에서 듣고 읽는 것들이다.그렇지만 신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특별히 시편의 기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것을 근거로 하여, 이 시편들을 현재 상황에 따라 새롭게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 바친다.기도하는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상기시켜 주시는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신다.그리고 성령께서는,교회 생활과 성사와 교회의 사명 수행에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를 표현하게 될 새로운 기도문들이 생겨나게 하신다.이러한 기도문들은 위대한 전례적 영적 전승들 안에서 발전되어 갈 것이다.신약 성경 곧 사도들의 저서와 정경 正經안에 들어 있는 기도문들은 그리스도교 기도의 규범이 될 것이다.
Ⅰ.찬미와 흠숭
2626찬미는 그리스도인 기도의 기본 움직임을 드러낸다.찬미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다.찬미 안에서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과 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서로 대화이며 결합한다.찬미 기도는 하느님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곧,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시기 때문에,인간의 마음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축복의 근본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2627이 움직임은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그 하나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올라가는 움직임 곧 찬미이다(우리에게 강복하셨기에 우리는 성부를 찬미한다).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내려오시는 성령의 은혜를 간청하는 것이다(성부께서는 우리에게 강복하신다).
2628흠숭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임을 깨달은 인간이 취하는 기본 자세이다.흠숭은 우리를 지어 내신 주님의 위대함과,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시는 구세주의 전능을 드높이는 것이다.흠숭은 “영광의 임금님”앞에서 인간이 마음을 쏟아 끓어 엎드리는 것이며,“언제나 더욱 위대하신”하느님 면전에서 존경 어린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지극히 거룩하시며 최고의 사랑을 받아셔야 할 하느님에 대한 흠숭은 우리를 겸손되게 하고 우리의 간청에 확신을 심어 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맑아서
눈에 빛을 주네.
주님의 경외함은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은 진실이니
모두가 의롭네.
금보다,많은 순금보다
더욱 보배로우며
꿀보다 생청보다
더욱 달다네.
(시편19,8-15)
“어수룩한 이”는 단순한 이로서 지혜나 분별벽이 없는 이를 말한다.그래서 토라는 그에게 분별력과 지혜를 준다(시편119,130).“사람이 영적인 법에 동화되면 될수록 더 영적인 경향을 얻고 더 법을 실현한다.사람이 법 안에서 더 기뻐하면 할수록 법의 짐으로부터 덜 고통을 받으며 그 빛에 의해 활기를 띤다.은총이 죄를 용서하고 사랑의 정신을 불어넣을 때 의로운 사람들은 더 이상 고되지 않고 더욱 즐겁게 된다”(아우구스티누스).
“올발라서”는 신뢰성이 있고 확실하다는 의미다.하느님의 말씀은 그분의 행동과 일치한다(카시오도루스).“마음을 기쁘게 하고”는 피엘 부사형태로 마음이 기쁜 상태를 강조한다.이는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다.“기쁘게 하고”는 6절의 “좋아하네”와 연결된다.“맑아서”는 ‘순수하다’또는 ‘빛나는’는 뜻이 있다.
‘눈에 빛을 준다’는 것은 어떤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다(시편119,105,130).
눈의 빛은 생명과 연관된다.눈에서 빛이 사라지면 죽음이 가까운 것이다(13,4;38,11).
“주님을 경외함”은 전형적인 지혜 용어인데 여기서는 토라와 동의로 사용된다.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원이다(111,10).주님을 경외함은 두려움이 섞인 사랑이며 세속적인 배경에서 존경이라 불린다(카시오도루스).“순수하니”는 이교도들의 부도덕함에 반대되며 내적인 순결을 의미한다.“주님의 법규들”은 본질적으로 의롭다.그래서 사람의 의로움의 기반이 된다.
여기에는 점층법과 강조법을 사용하여 앞에서(19,8-10)언급한 토라의 가치를 더욱 고양한다.곧 토라에 대한 체험을 ‘금.순금보다 보배롭고,꿀.생청보다 더 달다’라고 표현한다.여기서 꿀은 대추야자의 꿀을 가리키고 생청은 벌집에서 나오는 벌꿀을 가리킨다.시편의 다른 시인“저는 당신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합니다”(119,127)라고 말하고,“당신 말씀이 제 혀에 얼마나 감미롭습니까!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도 답니다”(119,103)라고 말한다.그분이 주시는 빛은 바람직하며(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마음에 달다(카시오도루스).꿀과 생청은 오직 혀끝에만 달지만 하느님의 판단은 사람의 정신에 전적인 달콤함을 가져온다(카시오도루스).
시편 19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19편은 피조물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우주적 자기 계시와 토라에 대한 은혜로운 교훈을 충만한 경외심으로 묘사한다.c.s.루이스는,19편은 시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이며,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서정시라고 말했다.이 시편은 하느님 안에서 자연과 율법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다.시인은 우주와 그영광을 바라보다가 율법의 완전함을 깨닫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느낀다.아무것도 해의 열기 앞에 숨을 수가 없다.그 강렬함이 모든 것을 꿰뚫는다.그다음 그는 율법을 소개한다.그것은 모든 것을 꿰뚫고 모든 것을 찾아내는 햇빛과 같다.햇빛이 모든 것을 찾아내는 것처럼 율법은 그의 영혼이 숨으려는 곳이 어디든 다 찾아낸다.완전한 해와 율법과 대조적으로 시인은 자신에게 드러나지 않은 잘못이 있음을 인식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한다.하느님의 피조물로서 태양 빛의 투명함,율법의 보배로움,인간의 결백함이 하느님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낸다.생명을 주는 태양의 빛과 광채,그리고 눈을 맑게 하고 하느님의 종을 계몽시키는 하느님의 율법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태양이 없으면 지구상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마찬가지로 율법에 나타난 하느님 계시의 말씀이 없으면 참된 인생도 존재할 수 없다.하느님의 피조물인 태양의 열기 앞에 숨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듯이 율법도 인간 삶의 모든 것을 꿰뚫는다.그러나 창조된 그대로 순수한 자연이나 율법과 달리 인간은 하느님의 용서와 보호가 필요하다.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말과 생각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기를 기도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1-41편/전봉순 著/바오로 딸)
“위기와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닥친다.한사람의 개인부터 팀과 기업,국가와 전 세계까지 규모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위기는 외부적 압력으로 야기 될 수 있다.예컨대 개인이라면 이혼으로 배우자와 헤어지거나 배우자의 죽음으로 혼자가 되기도 한다.또 국가는 다른 국가의 위협이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다.한편 내부적 압력도 위기의 원인이 된다.개인에게는 질병,국가에는 사회적 갈등이 내부적 압력의 대표적 예이다.외부적 압력이나 내부적 압력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려면 선택적 변화 selective change가 필요하며,이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선택적’이란 단어이다.개인이나 국가는 완전히 변할 수도 없고 과거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없다.물론 그런 변화는 바람직하지도 않다.위기를 맞은 개인과 국가에게 중요한 과제는 정체성 중 제대로 기능해서 바꿀 필요가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바꿔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개인이나 국가든 압력을 받으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정직하고 자세하게 조사해야 한다.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부분이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기능하며 적정성을 유지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그런 부분은 당연히 보존하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찾아내는 용기도 필요하다.동시에 개인과 국가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관에 양립하는 새로운 해결책도 찾아내야 한다.”(본문 20-21쪽)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의 기도가 지니고 있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을 훌륭하게 요약한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사제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우리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또한 우리 안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시편 상해,85.1 재인용)
행복한 날만 되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