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는 번 돈 중 일부를 떼어 언제 갈지 모르는 '해외 여행' 비용으로 남겨놓는다고 합니다. 라디오를 듣다보면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자유롭게 가지 못해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휴가철'이 다가옵니다.
도서관에 가니 여름 관련 그림책 들을 모아놓은 곳에 <할머니의 여름 휴가>가 눈에 띕니다. 안녕달 작가의 작품답게 친근하고도 편안한 풍경들이 그림책 속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소라 속으로 휴가를 떠난 할머니
이름조차 친근한 '메리'와 함께 홀로 사시는 할머니, '로터리'식 속도 조절 장치가 달린 선풍기는 한눈에 봐도 할머니네 모든 집기들이 그렇듯이 세월을 말해줍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랜만에 할머니네 찾아온 며느리는 당연한(?) 듯이 다음에 같이 바다에 가자는 손주의 말에 '할머니는 힘드셔서 못가신다'고 합니다.
그러자 손주는 '바다 소리'라도 들으시라며 바다에서 주운 '소라'를 남기고 갑니다. 손주가 돌아가고 방바닥에 있던 소라, 그런데 거기서 '타닥타닥' 소라게가 등장합니다. 소라게를 뒤쫓던 메리가 소라 안으로 쏘옥 들어갑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잠시 뒤 할머니는 예전에 입던 수영복을 챙기십니다. 양산도요. 그리고 돗자리도요. 아, 수박 반 통도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곤 아까 소라게를 따라 소라게 안으로 들어간 메리처럼 할머니도 소라 안으로 쏘옥 들어가십니다. 넓은 바닷가, 커다란 소라 안에서 할머니와 메리가 등장했습니다.
<할머니의 여름 휴가>에는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손주와 함께 바다를 가는 것조차도 힘든 현실의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가 메리와 함께 떠난 바다 여행이라는 판타지가 교차합니다. 까맣게 타도록 수영을 하고, 돌아올 때 기념품도 잊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메리'와 함께 집 욕조에서 땀을 식히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잠시 판타지 속에서나마 바닷 바람을 실컷 쐬고 온 할머니는 바닷바람 스위치로 켠 선풍기를 쐬며 말씀하십니다.
'그래, 바닷바람처럼 시원하구나."
할머니 표정만 보면 정말 실컷 바다 여행을 다녀오신 분 같습니다.
여행조차 여의치 않은 나이듦
이제는 여행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할머니를 뵈니 엄마가 떠오릅니다. 엄마는 바람같은 분이셨습니다. 어릴 적에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과 다를까 내심 불만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저는 싫었습니다. 나이가 드셔서도 늘 집보다는 밖으로 다니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하다 못해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있는 절에 가셔서 점심이라도 한 끼 드시고 와야 마음이 풀리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늘 바람처럼 다니시던 분도 세월 앞에서는 불가항력이었습니다. 하다못해 철마다 이모님들과 여행이라도 다니시던 분이 더 나이가 들자 그것마저 마다하셨습니다. 동네 마트라도 빠짐없이 다니시던 분이 몇 번 길에서 넘어지시더니 이젠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하십니다.
그저 하루 종일 하시는 일이라고는 높은 아파트에서 거리를 내려다 보시는 것입니다. 말로는 '내가 눈만 멀쩡해도'라고 하시지만 예전처럼 당신이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에 '열의'가 없으십니다.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미국의 계관 시인 도널드 홀은 그의 책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에서 소탈한 나이듦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 미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던 그도 '저 먼저 찾아오는 늙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넓은 집에서 안락 의자가 그가 누리는 공간의 전부가 되어갑니다. 죽음보다 앞서 균형감각을 잃은 몸이,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이 더 걱정입니다. 글을 쓰거나 하루 종일 안락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는 게 그가 보내는 일상의 전부이다시피 합니다.
그의 눈에 비친 단조로운 풍경, 하지만 이제 그는 그걸로 족하다 합니다. 눈이 쌓이고 새가 날아오는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어머니의 삶을, 아버지가 살아온 세상을, 그리고 그가 살아왔던 삶을 반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조로운 듯하지만 철따라 변하는 풍경을 따라 시간 여행을 합니다.
<할머니의 여름 휴가>에서 할머니가 잠깐 다녀온 바다 여행, 그건 그저 '판타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살아왔던 시간 속 여행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 입었던 낡은 수영복을 꺼내 소라게 껍질 속으로 들어간 곳에서, 예전처럼 비치 파라솔을 펴고 한껏 바다를 바라보았던 시간을 할머니는 여행삼아 다녀오신 게 아닐까요. 예전처럼 다닐 수는 없지만, 할머니의 시간 속에 바다는 그렇게 늘 건재합니다.
왜 거기 가만히 있어?
왜 자유롭게 여행하지 않아?
하얀 구름이, 검은 나무에게 말했다. 삼백 년을, 나는 여기에 서 있어.
그렇게 나는 시간을 여행해왔어
(중략)
자유란,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깊이 생각하며 여기서 살아가는 것이, 자유다. - 오사다 히로시의 시 '세상은 아름답다고' 일부
코로나로 모두가 원치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마드'가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던 것이 언제인가 싶습니다. 예전에 여행을 떠나보라는 선배의 말에 나는 내가 읽었던 책들을 떠올렸어요. 현실적 어려움으로 떠나지는 못하지만 대신 북구의, 아프리카의 그 모든 곳을 헤집고 다니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대신 우리가 지나왔던 시간 속 여행을 반추해 보는 시간은 어떨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사느라 돌아볼 여유가 없었잖아요. 나무처럼 지나온 시간을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주는 자유, 새로운 경험 만큼이나 우리가 지나왔던 시간 속 자유가 주는 여유,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댓글 나이듦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시간 속 여행~♡
시간 속 자유가 주는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