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23] 북한은 ‘남조선혁명’을 전국적 범위에서의 혁명완수를 위한 地域革命(지역혁명)으로 간주해 그 성격을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말하는 통일은 어느 경우든 ‘남조선혁명의 완수’를 전제로 하고 있다. 남조선혁명의 당면 목표는 現대한민국 정부를 顚覆(전복)하고 공산계열이 주도하는 민주연합정부라는 이름의 인민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 같은 1단계 혁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혁명력량 강화의 전략적 구상’은 우선 남한 내에 마르크스-레닌주의 黨을 건설하며, 그 주위에 노동자·농민을 결속시켜 ‘혁명의 주력군’을 편성하고 補助力量(보조역량)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통일전선 형성은 下層(하층)통일을 위주로 하면서 上層(상층)통일을 밀접히 결합시킨다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통일전선의 대상으로 삼은 남한의 정당·사회단체 내의 下層 군중들과 下層 통일전선을 우선 형성하고, 그 정당·사회단체 내의 지배층과 上層 통일전선을 형성해 上과 下를 결합시킨다는 전략이다. 북한은 이처럼 남북이 분단된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남조선 혁명을 추진해 왔으며, 그 결실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민노당이 2000년 1월 제도권에 진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민노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간에 알려진 대로 ‘汎(범)좌파계열’(PD)과 북한의 노선을 추종하는 소위 ‘민족해방’(NL 주사파)계열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黨內(당내) 노선 차이는 운동권 내에서의 분류일 뿐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NL-PD는 모두 從北的(종북적)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2004년 6월 실시된 黨대회(민노당 제1기 지도부 선출)에서 NL주사파 계열의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출신은 김창현 前민노당 사무총장을 비롯, 최규엽, 이영희, 하연호, 박인숙, 김미희, 이정미 등 모두 8명으로 원내대표인 천영세를 포함, 12명의 최고위원 중 9명이 전국연합 계열이었다. ‘전국연합’, 聯邦制통일 지향하는 極左(극좌)단체 ‘전국연합’은 1991년 출범 이래 南北聯邦制를 주장해온 단체로 재야에서 국보법 철폐·주한미군철수 및 6·15공동선언 2항의 실현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구현 및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후 1민족1국가2제도2체제의 ‘연방통일조국건설’을 지향해온 親北反美 단체이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이른바 ‘9월 테제’(별칭 ‘군자산의 약속’)를 채택한 바 있다. 당시 오종렬(現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상임의장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중략)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전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소위 식민 지배 상태에 있는 남한을 해방, 南北聯邦制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당시 대회에서 발표된 자료집은 소위 ‘낮은단계의연방제를 거친 후 자주적민주정부를 수립해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료집은 구체적으로 ‘낮은단계연방제’에 대해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주한미군철수 ▲국보법 철폐로 남북 連帶(연대)·聯合(연합) 합법화 ▲남북 諸(제)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민족통일기구 구성 등이 기초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방통일조국 건설’에 대해서는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과 미국의 ‘제국주의세력’의 대결에서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하고,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이 ‘親美예속세력’의 대결에서 민족민주전선역량이 승리한 뒤, ▲남한 내 ‘민족민주전선역량’의 反帝鬪爭(반제투쟁)이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이 승리의 기선을 잡은 反帝戰線(반제전선)에 加勢(가세)·結集(결집)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전국연합’은 이를 위해 2005년 사업목표로 “6·15공동선언 5돌, 광복 60년, 미군점령 60년을 맞아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 주한미군철수 원년으로 맞이하자”고 결의했고, 2004년 사업목표로 “미제(美帝)식민지배체제의 결정적 해체, 6·15선언이행을 앞당겨 連北(연북)·連共(연공)의식의 대고조 이룰 것, 事大賣國(사대매국)세력 한나라당 박살, 국보법·利敵(이적)규정·主敵(주적)규정철폐” 등을 결의했다. ‘전국연합’은 국보법철폐에 대해 “하나의 惡法을 없애는 투쟁에 그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친미수구세력을 척결하는 투쟁”, “친미수구세력의 생명줄을 끊어 놓는 투쟁”, “친미수구세력을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는 투쟁” 등으로 정의해왔다. 전국연합이 주장하는 南北聯邦制統一은 국보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및 소위 ‘친미수구세력’으로 표현되는 보수 세력을 척결 또는 매장한 뒤,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에 加勢(가세)·결집(結集) 내지 連北(연북)·連共(연공)하는 赤化(적화)통일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시절 청와대 고위직 비서관을 비롯, 열린우리당·민노당에 다수의 국회의원을 진출시켜 온 ‘전국연합’은 2005년 ▲5월15일 광주미군철수집회 ▲7월10일 평택 미군철수집회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철거집회 ▲11월15일·21일 전국농민대회 ▲11월18일 부산APEC반대집회 등 대규모 반미(反美)활동을 사전기획·실행해왔다. 민노당 제1기 지도부 상당수 ‘공안사건’에 연루 제1기 민노당 지도부들 중 상당수는 공안사건 연루 전력을 가지고 있다. 김창현(現민노당 울산시당 위원장) 前민노당 사무총장의 경우 1987년 국보법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고, 이후 울산동구청장 재직 당시인 1998년 ‘반제청년동맹 영남위원회’(일명 ‘동창회’)사건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2000년 8월15일 특별 사면됐다. 영남위원회 사건 당시 경찰은 “영남위원회는 북한의 對南혁명전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지도기관으로 하는 조직으로서 ‘결정적 시기’에 부산·경남지역을 장악할 계획을 세우는 등 이적활동을 벌여왔다”며 “매년 김일성, 김정일 생일에 회합을 갖고 조선노동당 창건 축하문건을 만드는가 하면 ‘김정일 보위투쟁행사’로 모금활동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과 관련, 당시 대법원(재판장 지창권)은 “영남위원회가 직접적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주체사상을 선전, 장차 북한이 지향하는 목적에 동조하여 국가를 변란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利敵團體(이적단체)”라고 판시했다. 민노당 제2기 지도부, 대표 등 黨3역 포함 8명이 ‘주사파 계열’ 최규엽(現민노당 부설 새세상 연구소 소장) 前민노당 최고위원의 경우 1982년 ‘전국민주노동자연맹’사건에 연루되어 국보법위반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1987년에는 ‘서울남부지역노동자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역시 국보법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민노당 내 자주통일위원장을 맡아 온 최 前최고위원은 ‘반미투쟁의 과제’라는 문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적을 미국”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주민조직을 활용해 미군기지반환투쟁, 기지폐쇄투쟁을 전개, 미군을 이 땅에서 하루빨리 몰아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처럼 민족해방(주사파) 계열의 약진은 그대로 이어져 민노당 제2기 지도부 선거에서 그대로 되풀이됐다. 汎(범)좌파(PD)계열과 주사파(NL)의 대결 속에서 11명의 최고위원 가운데 문성현 대표 등 黨3역을 포함한 8명이 주사파 계열로 채워졌기 때문이다.(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