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산(靑山) 지광스님. 1969년 월주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대흥사 강원에서 수학했으며 대흥사 대명선원 등에서 7안거를 성만했다. 제9,12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하고 익산불교사암연합회장, 경실련과 환경연대 익산지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987년 익산 숭림사 주지를 맡은 이후 지역사회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지역화합’ ‘찾아오는 익산’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김형주 기자
“나보다 남을 위한 기도가 복전을 가꾸는 참된 신행”
“가정이 편안해야 지역도 사회도 안정
절에 오기 전에 집안 부처님부터 존중하고 배려하길”
인구 34만여 명에 교회 800여 곳. 사찰 40여 곳. 전북 익산의 종교지도이다. 유교전통이 강한 지역이지만 원불교 총본부가 위치하고 있으며 원광대학교와 병원 등 원불교 관련시설에 근무하는 이들 만해도 5만여 명이다. 원불교신도면 500만원 정도는 무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고’ 또한 적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반면 불교는 미륵사지와 천년고찰 숭림사를 중심으로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해 개원과 함께 인근 천주교 성당의 청소년템플스테이를 유치하며 지역의 중심이 되고 있는 숭림사를 지난 3월28일 찾았다. 주지 지광(智光)스님 또한 1987년 해인사 승려대회 이후 이곳에 주석해온 익산 종교계의 중심이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自利利他) 자세가 복전(福田)을 가꾸는 참된 신행생활입니다.” 숭림사에 들어서면 보광전에 걸린 현수막의 이 글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세울 것도 없고 불자들에게 도움 될 만한 말 한 마디 해 줄 그릇이 못 된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스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우락부락한 얼굴 모습에 중.고등학교 때 유도 좀 했다는 ‘죄’로 ‘깡패스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며 스님은 석 달간이나 인터뷰를 미뤄왔다.
“<화엄경>에 이런 말이 있죠. 어두운 속에 들어있는 보배도 등불이 아니면 볼 수가 없듯이 부처님의 법이 아무리 좋다 해도 설하는 사람이 없으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등(燈) 또한 밝히는 것이 사명이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득한 세월 업(業)에 저리고 죄악에 물들어있는 우리들의 심성(心性)을 부처님의 광대무변한 자비의 광명이 아니면 도저히 씻어낼 수 없으며 칠흑처럼 캄캄한 생사의 거센 물결을 건너감에 있어 지혜의 등불이 아니면 또한 피안(彼岸)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에 물들고 무명업보에 가려 어둠 속을 헤매는 중생을 위해 ‘지혜 광명의 등’을 함께 밝혀야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사암연합회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 연말 회장을 다시 맡은 지광스님의 말 속에는 항상 스님이 주지로 있는 숭림사 보다는 ‘익산(益山)’ 얘기가 많았다. ‘중생에 이익이 되는 지역, 이익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보다는 남을 위해 기도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다. ‘남에 대해 좋은 말하기’, 기업이 ‘떠나는 익산’을 ‘돌아오는 익산’으로 만들기 운동을 펼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100여명 모이기 어려운 사찰이 즐비한 지역 현실 탓만 하며 모든 것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도 있듯이 이런 때 일수록 사암연합회를 통한 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올해를 2011년을 ‘익산불교 화합’의 원년으로 삼고 사부대중의 결집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종교간 갈등으로 인한 물적 정신적 소모를 줄이기 위해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와 포용, 상생을 위한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사암연합회 중점사업의 하나로 4대종교협의회를 구성하는 것을 비롯해 지역 재래시장 살리기, 우리농산물 이용하기 캠페인 등을 통해 지역현안을 함께 고민하고 종교간의 친목과 우호, 교류 증진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준공한 템플스테이 전용시설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참선같은 수련을 통해 처음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만족스럽다” 템플스테이를 다녀간 성당의 청소년들의 이같은 소감이 전해지면서 숭림사와 숭림사의 템플스테이에 대한 관심은 이제 전국적이다. 1987년 후반 주지 부임 후 지금까지 5차에 걸친 중창불사를 통해 사격(寺格)을 일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 가운데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되면서 숭림사는 전국 어디에서 누구든지 찾아오는 도량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함라산 둘레길 걷기, 곰나루 나루터 탐방도 프로그램에 포함하는 등 자연과 문화와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검은 것 희다’ 말 못해
해인사 승려대회때 ‘단지’
사암연합회 활동 매진
사찰수익 10% 내야 종단도 불교도 발전
건축불사보다는 인재불사, 모두를 위한 사찰로 꾸려가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하물며 물건에도 부가세가 10%가 붙는데 우리가 내는 분담금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사찰수익의 10%는 분담금으로 내야 종단도 불교도 희망이 있습니다.”
급한 일, 답답한 일 있으면 못 참고 나서는 게 단점일까. 해인사승려대회에 동참해서도 말보다는 세 손가락 ‘단지’로 마음을 표현했던 스님은 이 일로 잠시 관(官)에 ?기는 신세가 돼 결국 고향과 가까운 숭림사(崇林寺)에 정착하게 됐다. 양철 지붕에 비가 새는 당우가 허다하던 폐사지와 크게 다를 바 없던 이곳에 들어와 스님은 하루 세 시간씩 빗질을 하며 도량을 가꾸어왔다.
법당만이 수행공간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있는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 주변 환경이 어떻건, 내 마음이 본래 성품인 불성(佛性)을 회복하는 것이 불법(佛法)의 근본이 아닌가. 그러니 절에 가면 조금 정신이 나고, 집에 오면 바로 망상과 집착에 사로 잡혀 부처님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이거야말로 불교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스님은 새벽 도량석과 예불을 마치고 나면 법당 앞부터 일주문까지 1km에 이르는 길을 혼자 쓸고 또 쓸었다. 길이 아닌 마음속에 있는 오물을 버리고 또 버리듯이…. 그래서 스님은 보살(여신도)들에게 꼭 일러두는 말이 있다.
“절에 온다고 남편, 아이들 끼니 대충 때우게 하지 말라. 밥 한 그릇, 찌개 한 그릇이라도 정성을 담아 내 놓을 때 가정이 화목해 진다.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쳐 가며 절에 와서 기도하면 무엇 하겠는가. 집에 있는 부처님부터 존중할 알아야 한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어렵게 해석하고 싶지 않다. 이렇듯 스님은 매사를 쉽고 편하게 이야기 하다 보니 ‘건성’으로 듣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영원전(靈源殿) 보고 다시 보광전(普光殿) 돌아보니 주련이 글귀가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掌上明珠一顆寒(장상명주일과한)
自然隨色辨來端(자연수색변래단)
幾回提起親分付(기회제기친분부)
暗室兒孫向外看(암실아손향외간)
“손바닥 위 한 개의 밝고 영롱한 구슬 색은 빛깔 따라 어김이 없어라. 몇 차례나 친절히 전해 주었건만 어리석은 아이들은 밖을 향해 찾도다.”
一光東照八千土(일광동조팔천토)
大地山河如日(대지산하여고일)
卽是如來微妙說(즉시여래미묘설)
不須向外尋覓(불수향외만심멱)
“광명이 동쪽 많은 국토에 비치니 온천지가 해와 같이 밝구나. 부처님의 미묘한 설법도 이와 같으니 모름지기 밖을 향해 헛되이 찾지 말라.”
원불교 ‘햄버거’… 불교는 ‘초코파이’ 포교
지광스님의 숭림사 주석 24년은 익산불교 활성화를 위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연말 익산불교사암연합회 회장을 다시 맡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활동의 많은 부분이 지역사회와 초점에 맞춰져 있다. △상호 ‘이해와 상생’을 위한 4대 종교협의회 구성 △ ‘재래시장 살리기’ 등 지역현안 고민 △ 일요법회 교리교육 통해 포교저변 확대 등 회장으로서 주요 계획의 중심이 지역 사회와 경제발전, 종교화합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포교 활성화’에 있다. 군포교 그 가운데 하나. 익산의 육군부사관학교에 대한 종단과 교구의 보다 많은 관심을 호소하는 스님의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도 절실하다.
육군부사관학교는 신임 하사뿐만 아니라 부사관 최고 계급인 원사들도 보수 교육을 받는 곳으로 육군의 준.부사관들에게는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다. 10주 과정의 부사관 양성반, 15주 과정의 초급반을 운영하고 있다. 또 준사.원사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반과 전문대, 육사 등 연중 2만여 명이 거쳐 간다. 원불교세가 강한 지역의 특성상 부사관 학교에 대한 원불교의 지원이 막강하다. 스님은 “군포교에서 논산훈련소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이곳 부사관학교”라며 “종단차원에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군법당 호국충국사를 통한 불교계의 지원 또한 적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 연간 2억원의 예산을 바탕으로 “원불교는 햄버거를 가져오는 데 우리(불교계)는 아직 초코파이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