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서 영 ( 수 필)
스포츠는 사람의 열정을 소모시켜 머릿속의 잡념을 없애준다. 아울러 신체의 성장과 건강을 촉진하며,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완화시킨다. 세상에는 온갖 유형의 스포츠가 있으며 매일 많은 경기가 열린다. 그래서 인간은 스포츠를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알게 모르게 함께 살아가기 마련이다. 골프도 그중의 하나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골프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그 스타들은 다른 종목을 능가하는 대우를 받고 인기를 누린다. 아마추어도 동호인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한번 시작하면 빠르게 몰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프(golf)의 정의로 흔히 말하는 것이 green, oxygen, light, friendship의 네 글자다. 즉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푸른 초원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사람들과 우의를 나누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골프에 입문하는 사람은 대부분 기량과 관계없이 광(狂)이 된다고 한다. 별로 운동이 되는 것 같지 않고,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으며, 화끈한 쾌감을 주는 것도 아닌데, 시작한 후에는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결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제각각의 스윙, 그다지 빠르지 않은 걷기, 비교적 단순한 경기 규칙 등 얼핏 보면 골프는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것은 땀과 훈련만으로는 쉽게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고, 다른 종목보다 자연과의 교감이 많은 점 등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마니아라고 해도 골프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비교적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고, 연습장에서 코치를 받아야 하며, 경기에 나가려면 부담이 될 만한 비용이 든다. 골프장은 대부분 교외에 있어 긴 이동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미리 예약해야 하는데 구장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또 날씨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4계절이 공존하는 큰 나라이거나 항상 일정한 기온이 유지되는 온대 지역은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나라는 혹한이 계속되는 겨울과 푹푹 찌는 한여름에는 골프 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거기에다 요즘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이 심각하여 맘먹은 대로 골프장에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바로 스크린골프이다. 스크린골프는 말 그대로 스크린 화면에 골프 코스가 비쳐 실제 클럽과 볼을 이용해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말하자면 '골프 시뮬레이션 시스템'인데, 90년대 초반 미국, 독일, 일본에서 개발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90년대 후반 우리의 IT 기술을 바탕으로 더 발전시켜 지금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업그레이드되고 인기 게임으로 정착하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은 그 수가 급증하여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스포츠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레크리에이션과 체력단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골프장은 그 수가 한정되고 새로 만들기가 어려워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의 일부를 스크린이 수용하면서 빠른 발전이 가능했다. 스크린의 출현으로 귀족 스포츠이던 골프가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손쉬운 오락이 되었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고 경제적 부담까지 덜어 주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소수의 전유물이었고 많은 시간과 금전적 지출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 되었다. 멀리 이동하지 않고 도심에서 즐길 수 있으며 장비와 신발까지 현장에서 조달할 수 있으니 편리해 환영받는다. 또 필드에 나가기로 예약해 놓고 며칠 전부터 눈비가 올까 추울까 더울까 날씨 걱정으로 애태우지 않아도 된다. 꼭 4명이 단체를 이룰 필요도 없다. 혼자도 하고 두 명도 가능하며 인원수 제한이 없으니 좋다.
스크린의 또 하나의 장점은 쉽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등급과 난이도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비거리도 좀 더 나가고 벙크 샷이나 퍼팅도 조금은 수월해 실전보다 더 잘 칠 수가 있다. 그래서 초중급 골퍼들에게 자신감을 주어 필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아무래도 스포츠는 자신감을 가지고 대할 때 제대로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고 재미도 더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실전은 더 어렵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또한 도전의식으로 작용하여 기량 연마를 촉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스크린은 우리 국민의 골프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골프는 봄, 가을에 천연 잔디에서 한다는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어놓고 시원하게 라운드를 할 수 있어 피서의 한 방법이 되었으며, 눈 내리는 겨울에도 해외 골프여행의 대용품으로 손색이 없다. 실내에서 이름만 넣으면 그 골프장이 화면에 나타나고 화면 그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중도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소를 바꿀 수도 있다. 아울러 스크린골프는 직장인의 여가문화도 변화시켰다. 회식에서 2차를 가는 대신 스크린에서 운동하며 술을 깨우고 칼로리도 소모한다. 동료들이 함께 즐기며 친밀감을 늘려갈 수 있는 오락이자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요즘은 스크린골프 전용 TV 채널도 생겼다. 각양각색 사람들의 경기가 24시간 이어진다. 전국의 직장과 지역사회 사람들을 초청하여 게임도 하고생활주변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다양한 콘텐츠로 동호인들로부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프로선수들이 참여하는 상금이 큰 대회도 있고, 갖가지 스타일의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하여 생활체육의 전파 기능도 하고 있다. 아울러 수준별 레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마치 실제 경기장에서 하는 것과 같은 교습 효과를 낸다.
또 어느 프로그램 개발 업체에서는 전용 홈페이지를 만들고 회원들의 경기 결과를 기록하고 주요 장면을 영상으로 저장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자신의 자료를 확인하여 결점을 보완할 수 있고, 화면을 통하여 레슨을 받기도 한다. 스크린골프는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스포츠의 영역이었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떤 형태의 스포츠가 개발되어 우리를 놀라게 할지 자못 궁금하다. 또 현재의 스크린골프가 얼마나 더 실전과 유사한 게임으로 발전할 수 있을 지도 기대가 된다.
스크린골프의 급속한 발전과 성장에는 그림자도 있다. 협소한 공간에서 즐기다 보니 술과 담배는 항상 문제가 된다. 과도한 음주와 무분별한 흡연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스크린은 제한된 공간이라 쉽고 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생각은 당연히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보다는 건강을 위한 신체단련 스포츠로서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점에서 동호인들의 자제와 개선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컴퓨터와 프로그램의 성능이 계속해서 발전해 가지만 벙커의 상태, 그린의 높낮이, 퍼팅의 요령 등은 아직도 실전과는 차이가 많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스크린의 스코어만 믿고 실제 경기에 임한다면 실망이 커질 수도 있다. 이것을 굳이 스크린골프의 단점이라고 하기 보다는 특성이자 차이점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겠다. 골퍼들이 양자의 특성과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게임을 즐긴다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내와 나는 스크린골프 마니아이다. 필드에서 하는 실전을 선호하지만 어디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가. 겨울철에 가끔 나간다 해도 그린이 얼어붙어 공이 튀어 오르고 말라붙은 잔디를 때리느라 스코어 내기가 어려우니 별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요즘은 이틀이 멀다 하고 미세먼지로 고통스럽다. 한때는 추우면 공기가 깨끗했는데 요새는 춥고 덥고를 가리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여러 가지 조건이 다 맞는다 해도 언제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스크린과 친해지고 가끔 하다 보니 실력도 조금씩 늘어 재미있다. 한 게임을 시작하면 서너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으니 저렴하고 건강한 레크리에이션이다.
최근 이사하면서 친구가 없어 적적해 하던 아내는 아파트 단지 스크린 동호회에 들어 친구도 사귀고 그들과 모이느라 외출이 잦아져 지루해 할 틈이 없다. 근래에는 몇몇 이웃 부부들과 함께 운동하고 식사하며 인정을 나누는 정도로 발전해 가고 있다. 그러다 어느 하루는 단지 대회에서 우승했다며 상품으로 귤 한 박스를 받아 오기도 했다. 낼모레도 대회에 나가야 한다며 쉬지 않고 연습한다. 나는 아내의 연습 파트너다. 같이 하자면 게임도 함께 하고 대회에 나갈 때는 운전기사 역할도 한다. 얼마 전에 아파트 지하 공간에 2개의 스크린 방이 만들어져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비용도 외부에 비하여 저렴하고 지척에 있으니 편리하다. 미세먼지 속 얼어붙은 필드보다 훨씬 낫다. 재미있어 좋고 운동이 되니 더 좋다. 스크린골프는 올 겨울 우리 부부가 늘 함께 있도록 해주는 촉매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둘이서 1타에 얼마씩 걸고 게임비 내기를 하다 보면 서로 안 지려고 아웅다웅 싸워서 그렇지 한나절 여가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안방에서 TV 보던 아내가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카톡을 보냈다.
"오후에 스크린 한 판 어때요?"
나의 회신은 "OK(손가락 그림 이모티콘)"이다.
너나없이 우리는 참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계간<화백문학>79호(202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