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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팔공산에 갔다가 대규모 주차장에서 조선팔도의 용하다는 무속인들이 모여 무무절(巫巫節 신의 날) 행사를 했는데 행사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던 여자 무속인이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시선을 안고 12개의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신명(神暝)과 흥(興)에 의한 그야말로 신명 나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
작두란 예전 시골에서 소에게 먹일 풀을 짧게 자르던 도구로써 조그만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손가락이던 손목이던 몸을 분리시키던 도구인데 열두 작두 위에 조그만 맨발로 오르며 알아들은 수 없는 말로 뭐라 뭐라 하셨는데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의 건강과 나라의 국운"을 빌었던 것 같다.
평소에 TV로 봐왔던 무속인이 오르던 작두를 실제로 아주 가까운 근거리에서 봤는데 후한 말 삼국지속의 관우의 청룡 언월도 보다 더 서슬퍼런 날이 살아있었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만져보고 싶었지만 무속인들이 사용하던 물품은 만지면 안된다는 관례에 따라 직접 만져보지는 못했으나 면도날 같은 칼날 위에서 무속인이 알 수 없는 주문(呪文)과 함께 신명으로 오르고 내리는 동안 실제로 신(神)을 만나 함께 했는지 알길 없다
장거리산행도 무지원이라면 면도날 같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매일 면도날 보다 더 날카로운 삶을 사는 우리네 하루 일과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전날 방장산 쓰리봉에서 분기되어 변산으로 이어가는 지맥길에서 발원하는 갈곡천 17km를 마치고 고창읍에 들러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른 아침에 택시로 이곳 영산강 우측의 산줄기 솔재에 선다
솔재에서 본 고창
전북 고창은 꼬리힘의 상징인 장어와 복분자, 2천 기가 넘는 고인돌, 고창읍성, 동학 농민운동의 전봉준 생가지로 유명하며 산으로는 백성을 포용하는 큰 산이란 뜻의 방장산과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 선운사를 품은 선운산이 있어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있는 땅이기에 가족들과 함께 찾으면 좋은 곳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저수지에 속하는 예산의 예당호와 논산의 탑정호 그리고 고창의 동림저수지가 고부천으로 흘러들어 동진강으로 이어진다
오늘 하천길 지나는 길에 노릿하게 구운 장어나 붉은 복분자 술은 구경하지 못할 테지만 읍성(邑城)이나 전봉준 생가터, 전국 최대의 고인돌은 둘러볼 수 있을듯하다.
솔재 터널 위로 올라와서
길이 좋게 이어질 것 같지만 나무 울타리를 월장하듯 넘으면 만수산에 있어야 할 칡덩굴이 빼곡하며 그 가운데 송전탑이 보란 듯 서있다.
짧은 칡덩굴을 밟고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넓게 이어진다.
솔재에서 대략 1km 지점의 410봉
오늘 내려갈 고창천 14km는 이곳 410봉 서쪽 계곡에서 이어지는데 인공 지도를 살펴보면 인근으로 계곡의 길이가 고만고만한 게 여러 개가 있으며 그중에서 410봉의 계곡이 가장 길다
지나간 경로 하천 252개
짧지만 주위로 볼 것 많은 고창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몇 년 전에 어린 편백나무 심은 곳으로
지금은 어른 손목 정도 굵기의 편백으로 자랐는데 그 주변으로 가지치기나 기타의 잡목 제거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가시 잡목이 많이 자라고 있다.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산과 계곡의 속살이란 어딜 가도 이런 모습일 테지만 오늘 걸음 역시 쉽지 않을 듯하다
평양 기생이라 하더라도 뭇 남정네들에게 속살은 함부로 보여주지 않을진대 속살은 이렇게 쉽게 보여주고 "털끝하나 건드리지 마라!" 하니 뚫고 나가기 애매하다
가을이라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대표적일 테고 그다음 하늘 아래 높은 곳에 떨어진 삼정승의 가을밤(栗) 아닐까?
커다란 밤나무에 가을이 입 벌려 한 되이상 떨어져 있었으나 내려갈 길이 너무 어수선하니 사진만 한 장 담고
산아래 고창에서 솔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보이고
저곳 도로까지 내려가는 길에 고창천 발원지를 찾은 후 도로 따라가도 될 듯
내려온 곳이며 편백나무가 주위로 보이고
산이 본격적으로 속살을 보여줄 시간
이런 곳을 골라가며 내려오려고 하천길과 깊은 인연을 맺었나 싶을 때...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안다는데
이런 곳은 사람이 침착하게 걸어 갈길이 아니기에
가끔 홍어나 가오리보다 못할 신세로 보이는 건 왜일까
마치 거대한 벽과 함께했고 개선장군 처럼 내려왔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한여름에 푸르름을 온 세상에 도배하듯 장식했으나
지금은 계절 앞에 주눅 든 풀과 서리 올 때까지 꼬장꼬장하게 버티는 칡을 밟고 내려와
사방천지가 이런 찔레 가시덩굴과 칡 그리고 거미줄로 도배한 모습일 때 답답함은 말할 수 없고
뚫고 들어갈 곳은 방금 내려온 곳뿐이다
힘 좋은 예초기 들고 와서 싹 정리하고 싶지만 내 한 몸 기어서 가거나 밟고 지나면 그뿐이라
찔레나무
어느 가수가 불렀던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이란 노래가 생각나는데
찔레는 봄날 하얀색의 꽃을 피우며 여인의 속살과 비슷한 맑은 향기를 내는데 지금은 칡과 사랑에 빠져 얽혀있다.
정신줄 놓게 만드는 길이 이어지고
산꾼의 하루 중에서 잠시나마 영혼을 가을 들판의 곡식을 탈곡하듯 탈탈털고 내려온곳
갈수기라 그런지 물은 찾을 수 없었고
인근 3곳의 계곡에서 흘러와 모인 곳으로 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아 왔다리 갔다리 하며 물을 찾아본다
주위는 이런모습이고
해발 270m에서 겨우 찾은 고창천 발원지
이물이 흘러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구황산 서쪽 안테나봉에서 온 주진천 (33km) 물과 만나는데 주진천의 원 발원지는 구황산 서쪽 안테나 봉이지만 최장 발원지는 고창 고수천(고창천)이다
고수천은 고수면 은사리 해넘이골 계곡에서 발원해서 조산 저수지-고수면을 거처 고창 lc부근에서 고창천에 합류해서 고창군 아산면 하갑리에서 구황산에서 흘러온 주진천에 합류하는 16km의 하천길이다.
고수천은 주진천의 최장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 언젠가 최장으로 알려지기를 바랄 뿐인데
두물이 만나는 곳까지 거리로 본다면 주진천 보다 약 1,5km가량 더 길다.
고창천 발원지가 있는 편백나무 아래
계곡과 내려가는 길
물은 흐르고
아침 일찍 솔재로 올라오던 도로가 보이고
발원지 물도 찾았으니 편하게 도로 따라
도로가 없었다면 저 칡덩굴 속으로 기어가야할판
일제 강점기 무렵인 1926년에 만든 28만 7천 톤 규모의 월산 저수지
물이 아주 깨끗하니 바닥이 훤히 보인다
전형적인 산촌마을의 산정마을을 지나며
산정마을 노거수 아래에서 잠시 쉬다가
시골입구를 지키는 노거수는 대부분 느티나무나 팽나무가 많고 그다음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노거수
본격적인 아름다운 하천길에 고창읍으로 들어오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대표하는 한 무리의 꽃무릇이 붉은 심장을 드러냈고 그 뒤로 요염한 양귀비가 도브 샴푸로 머리 감고 햇살아래 말리듯 찰랑거리는 버드나무 줄기가 춤을 춘다
하천가에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자라는 건 당연지사이고, 유명 절집에 있어야 할 꽃무릇 3 대장은 이곳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정읍 내장사가 있겠는데 이 중에서 선운사 꽃무릇을 최고로 쳐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사찰(寺刹) 주변 또는 길가로 만개했던 꽃무릇은 추석 지나고 나며 시들해지는데 하천가를 시키며 사랑받았던 붉은 꽃이 살짝 시들긴 했어도 사랑을 노래하는데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하천을 지나오며 쓰레기 하나 발견하지 못했고 무지 깨끗하게 관리했다
멀리 방장산으로 고창분들께 진산으로 알려져 있다.
바닥에는 부유물이 조금 가라앉아 있으나
하천의 제왕인 수달이 살고 있고
꼬물이 피라미들의 세상인 물은 깨끗한 모습이다
고창천은 가을을 닮은 듯 깨끗한 모습인데
최근에 하천가로 웃 자란 풀은 모두 제거해서 그런지
어린 여자애 머리처럼 단정하게 관리했다
조용한 하천길
물속에 다슬기도 보이고
고창읍성이 보이는데 하천길 조금 더 걷다가 매표소 인근의 북문의 공북루나 성아래 비석 군(碑石群)과 타원형의 성(城) 입구 정도는 구경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창읍성 안내글
읽어보시고
전라좌도(左道),우도(右道) 여기저기서 일하다가 뜻하지 않게 불려 와 한 구역씩 맡아 성을 쌓게 했다는 건데 읍성이 가장 많았던 시기가 임진왜란 직후에 160개 정도 읍성이 있었고 그 외 산성까지 합치면 성 쌓는데 진심인 민족이 우리나라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조선 백성이 살아가는 읍성은?
15세기에는 전국에 96개의 읍성이 있었는데 경상도와 전라도가 가장 많았고 (세종실록지리지)
16세기 무렵인 1501년-1600년대에 160개로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 가장 많았고(신 증동국여지승람)
18세기에는 107개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가장 많았으나 임란이나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이 줄어든 경향이 있다 (여지도)
경상도와 전라도에 읍성이 많았던 건 왜구들의 영향이라 보면 되겠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읍성은 일제 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발달(먹고사는 문제)로 대부분 훼철되어 지금은 많이 없어져 아쉬움이 드는 게 현실이다.
성안으로 들어가려면 매표를 해야 하는데
오늘 일정도 그렇고 입구 매표소 직원분께 사진만 몇 장 찍고 나와도 되냐? 하니 그러라고 하신다
북문인 공북루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때 왜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라 좌, 우도의 백성들이 자연석을 쌓아 올린 성이며
인근 입암산성과 연계하여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성으로 알려졌다
둘레 1,6km이며 높이 4,6m이며 세종 1450년 축조해서 인근 19개 군현(郡縣)에서 백성을 동원해 단종 때인 계유년 1453년에 완공했으니 3년 만에 쌓았다
백성을 동원해 성을 쌓을 때는 한여름, 추운 겨울 농번기를 제하고 실시하는데 대부분 밥은 먹여주지 않고 일만 시킨다.
고창현 비석 군
고창과 연관이 있었던 관찰사. 현감, 군수의 선정비(善政비碑) 16기를 모아 놓은 곳으로 고창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한 곳에 보기 좋게 모아 두었다
비석은 모두 16기이며 그중에 가운데 가장 멋진 건
현감 이항의 선정비다
북문은 이렇게 생겼고
성벽아래 자리 잡은 15기의 비석 군
북문 앞에 고창 신재효 선생의 생가가 있어 들어가 본다
신재효 선생은 (1812년- 1884년)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적벽가, 가루 치기 전까지 판소리 6마당을 정리하신 분이고
초가집 기둥은 네모난 것과 둥근기둥으로 이루어 졌있는데 암행어사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초가집은 크지만 마당이 좁아 조금 답답할 수도 있겠다.
이곳 읍성 근처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점심 식사는 그만두고 아름다운 하천길을 구경하며 지난다
가을날
파랑이 좋은지
분홍이 좋은지
전봉준 생가지 방향으로
하천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선조 때 유운이 인근의 선비들과 학문을 토론하며 풍류를 즐기고자 건립한 석탄정이라곳이 있어 찾아왔는데
건물 앞에는 느티나무가 많이 자라고 건물 뒤로는 소나무가 자란다
좌측은 석탄정(石灘亭) 우측은 누마루와 아궁이가 있는 건물이고
건물 반대편에서 본 석탄정
정 3품 벼슬을 한 통훈대부행청암도 비석
석탄정을 보고나와 전봉준 생가지를 찾아가는 길에
길게 이어지는 논둑길을 지나는데 메뚜기란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만간에 가을 들판에 메뚜기 잡으러 나올 분들 많을 것 같다
어지간한 논에는 벼와 피(잡초)가 같이 자라는데
피(잡초)는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환경이던 잘 자라는 식물이다
고창 논에는 피가 거의 없고 누렇게 익은 벼만 곱게 보인다.
전봉준 생가터
초가집이라도 단출하게 복원했나 싶었는데 땅바닥에 마빡만 보이는 비석이 하나 겨우 있을 뿐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비석
전봉준은 이곳 당촌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아버지 천안 전 씨 창혁과 어머니 언양 김 씨의 아들로 태어나 13살 때까지 살던 집이며 동학농민 운동의 핵심 인물이자 최고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전봉준의 주요 약력을 살펴보면
이곳에서 태어나 13살 때 고부군 남면으로 이사를 갔고 이후 1894년 1월부터 고부민란을 주도했으며 같은 해 황토현, 장성군 황룡천에서 전투를 하였고
4월 말에는 전주성 점령, 10월에 공주로 넘어가던 우금치 전투, 11월 8일에 우금치 전투 대패
12월에 순창 피노리마을에 숨어 있다가 체포
이듬해 3월 말 경에 서울 전옥서 터 현재의 서울 영풍문고에서 교수형에 처해진다.
1894년 한 해만 놓고 보면 불꽃처럼 타올랐으며 눈코 뜰 새 없이 사셨던 분이기에 파란 만장했던 그분의 생가터에서 고단했던 그분을 한 해를 생각해 본다
전봉준 생가터를 나와 길가에 300년 이상된 소나무가 굽은 허리로 인사를 하는데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같이 인사를 나눈다
누구나 늙지만 소나무처럼 곱게 늙어가기란 쉽지 않을 듯
가을 산에 토실한 알밤이 있었다면
길가에 수크령이나 코스 양은 가을의 중심에 있는 식물이며 꽃이다
거석문화(巨石文化)의 1번지인 고창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군락지이며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3만 개의 고인돌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강화, 화순, 포항이 있으며 이 중에 서해안 지역으로 2만 개가 있고 전북 고창군에만 2천 기에 달하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곳곳에 풀 작업하고
갈대는 모히칸족 머리처럼 남겨두었고
한반도 땅은 좁지만 그 가치가 너무 커
언제까지나 지켜야 할 땅으로 남았으면 하는 생각이들고
고인돌
선사시대 때 서해안을 중심으로 살기 좋았다면
삼국시대, 고려 시대 이후 조선시대 때 살기 좋았던 명당은 어디 있었을까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산도 좋고 물도 좋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인심이 좋아야 한다고 적었다.
이중환의 명당 몇곳을 살펴보면
충청도땅 내포(홍성, 당진, 예산, 아산, 태안, 서산, 보령) 인근이며 가야산을 곁에 두고 평야와 바다가 있으며 지금은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동했고
다음으로 대전인근의 계룡산 아래 갑천 일대로 대를 이어 살만한 곳이라 적었다
지금은 육군본부와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시가 자리하고
다음으로 안동 화산아래 하회마을인데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이며 영국 여왕이 찾았던곳
조선팔도 360州 가운데 가장 좋다는 곳은 평양 외성으로 산 좋고, 물 좋고, 인심도 좋다고 적었지만 갈 수 없는 곳이라 모르겠다
애국가속의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홀로 있어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는 고인돌
코스 양
향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 위에서도 더럽히지 않고 향기를 품었다
쉬었다 가기 좋은 원두막
그 옆으로 억새가 서로 선을 넘지 말라며 선을 그었고
푸른 초원 위에 검게 보이는 건 모두 고인돌이고
보이는 산은 서산 산성이 있는 곳이고
그 아래는 모두 고인돌이다
돌의 믿음일까
돌 크기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했을까?
크고 작은 돌이 산아래 곱게 곱게 자리 잡았다
넓은 세상 두고 어찌 산아래 고이고이 자리 잡았는지
힘으로 밀어 붙이던 시절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그리고
이분들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은 잔치국수나 자장면처럼 돌을 옮기는 게 일상이었을까
지나온 고인돌 군락지와 고창천
고창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밀집된 곳
이곳에도 소나무 재선충에 감영 된 소나무가 보이는데 2~3년후에 고인돌 군락지의 소나무가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미리 걱정해본다.
구황산에 흘러온 주진천과 고창천이 만나는 곳에서 일정을 정리하며
물은 생명을 성장하게 하지만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흐르지 않은 물은 음기(陰氣)가 더욱 더 많이 서린 것으로 생각했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그 물에 머문다고 생각했는데 하천길에 고인돌을 보며 그 당시에 얼마나 살기 좋았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고창으로 가서 광주 그리고 대구로 향한다

첫댓글 고창을 먹여 살린 고창천 물길 후기 감사히 잘 봅니다.
노래에는 소질이 없는 것을 보니 평산신씩 신재효 선생의 피를 이어받지는 않은 듯.
^^
아무 흔적도 없는 전봉준 생가며
고창읍성...
물이 지나는 길마다 이야기가 꽃망울 터지듯 톡톡~
고창에 고인돌이 많은 걸 보면
그 옛날 옛날 옛날... 부터 고창땅은 생명들로부터 선택받았던 땅이 분명했던 듯 싶습니다.
후기 재밌어질라하니 갑자기 주진천과 만난다며 끝나서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이어지는 강행걸음 한걸음 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예전에도 살기 좋았고
지금도 앞으로도 사람 살기좋은곳으로 보였습니다.
깽이님은 트롯보다 판소리 하시면 잘 하실듯 합니다.
꽃무릇이 그쪽에도 보이는군요..
전봉준생가터 지나 있는 고목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고인돌 규모도 엄청나네요..
한두개씩 있는거는 봤지만 이정도 규모는 처음 봅니다.
코스모스를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봅니다.
한창 이글을 잘 쓰고 있는데 머리 복잡게해서 죄송...
글 잘보고갑니다.
고창 여행은 과거로의 여행이기에 한번 둘러보시면 산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 되실듯 합니다.
늘 밝은 목소리 듣기 좋았는데
자주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회사 일로 쉬지도 못하고
고생 하셨는데 좀 쉬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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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떨어지면 기온이 쌀쌀한데
건강 조심 하시고요.
잘 정리된 고창읍성보다 가산산성이
더 정감이 느껴지는 건 ~~~~~
올해는 꽃무릇도 만나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건강 잘 채기시길 바랍니다.
추석 끝나고 조용한날이 이어져 오늘은 운석공 사진 한장 담으러 나왔습니다.
마침 오늘 초계면에서 운석공 축제 하는날이네요
고창읍성의 오래된 성벽과 전통가옥,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비석들, 고창의 들녘과 노송, 그리고 오늘도 도심을 흐르는 고창천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돌과 나무, 황금빛 들판을 지나 마침내 만나는 고창천의 물길. 그 풍경 속에는 옛사람들의 삶과 고창의 시간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은 흘러가지만 역사는 그 물길 곁에 남는다.”
산에서 느끼지 못하는것들이 많죠
산은 잠시 두고 국토를 배운지 10년이 지나니 우리나리는 참 아름다운곳이구나 하는걸 많이 느낍니다
아우님 글 감사드립니다
에구 시작부터 덩쿨이 어마어마합니다.ㅠㅠ
고창이도 들판이 넓게 있을 줄 알았는데 사진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ㅋㅋ 동학농민운동의 역사가 있고~ 고인돌시절부터 먹을게 많았는지 고인돌도 많네요!ㅋㅋ 아무튼 오랜만에 하천길 잘 봤습니다. 방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