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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의 마음공부 >
나 홀로 묵언 정진 (Silence Retreat) |
글 | 스텔라 박
침묵(고요함)은 위대한 힘의 근원이다
(Silence is a source of great strength).
- Lao Tzu
침묵이 필요해
UCLA MARC 에서 마인드풀니스 교사로 인가받은 이들은 매년 적어도 5일 이상의 묵언 안거 기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그만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 가운데 거하는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해 연말이면 MARC 졸업생들은 올 한 해 어느 곳에서 며칠간의 안거를 했는지, 안거 시 스승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명상 클래스는 총 몇 시간이나 했는지의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
덕분에 나 역시 매해 안거 기간을 갖고 있다. UCLA MARC에 입학한 이후로는 스피릿 록 명상센터, 고엥카 명상센터, 샴발라 명상센터 등 그곳에서 인정하는 기관에서 안거를 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좀 사정이 다르다. UCLA MARC 측에서도 올 한 해는 코로나로 인해 문을 연 명상 센터 찾기도 갖기가 쉽잖을 테니, 온라인 리트릿으로 대체하겠다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나 역시 온라인 리트릿을 여러 번 시도해봤는데 아무리 온라인이라도 하더라도 모든 것을 잠시 다 내려놓고 오직 침묵 가운데 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리트릿이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의 경우, 방송을 하지 않는 날이 주어진다면 그 기간 동안에 안거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방송이 없는 날과 인증 기관에서 안거 프로그램을 하는 날이 우연찮게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휴무로 한다는 것이었다. 진행자들은 정말 간만에 이틀간을 녹음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무려 나흘간이나 쉴 시간이 주어졌다.
참 잘 꾸며진 수행처, 금강선원
여기저기 명상센터를 검색했지만 모두 현재 코로나로 문을 닫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누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나 홀로 안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행히 배닝(Banning)에 있는 금강선원(Diamond Zen Center)은 문을 열고 있었다. 이곳 저곳 수행처를 다녀봤지만 금강선원만큼 산세 좋고 모든 조건을 갖춰놓은 곳도 그리 많지 않다.
LA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금강선원은 주변의 산세가 아름답고 골짜기 아래 파묻혀 있는 것이 마치 한국의 사찰과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든다. 서쪽으로 하늘이 불타오르며 해가 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밤이면 휘영청 달이 떠오르는 것도 목격할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 오솔길을 운전해 오면 흰 탑이 들어서 있다. 난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달 밝은 밤 하늘 아래 탑 주위를 돌며 마음 다해 걷는 시간도 가졌다. 그 건너편에는 청화큰스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새겨놓은 부도탑이 있고 더 올라가면 스님이 거쳐하시던 토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스님께서 읽으셨던 책들, 스님께서 생활하셨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청화스님 박물관 아래에는 작고 아담한 삼신각이 있다. 토속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불교의 열린 가슴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쌀 한 포대가 눈에 띄었다.
그 아래에는 통나무로 지어진 제법 큰 집이 있다.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공간이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있는 큰 건물은 공양간 겸 도서관, 그리고 수행 공간과 게스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한 곳에 있고 그 앞에도 6명이 들어갈 수 있는 숙박 공간이 있다.
대웅전 가는 길에는 범종루가 아름다운 단청 누각에 들어서 있다. 그 길을 걸어가면 예전에 마구간으로 쓰였다는 공간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나온다.
황금불상 옆에는 청화큰스님의 대형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날카로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현재 금강선원은 범휴스님께서 부임하셨다. 범휴스님은 본래 수행도량이었던 이곳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청소하고 단장하느라 몸을 아끼지 않고 계신다. 범휴스님의 노고로 몇 달 후쯤 더 안정된 모습의 범행처가 될 금강선원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금강선원을 개원한 청화큰스님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하자면 1923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하셨고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화상을 스승으로 출가하셨다. 청화스님은 40여 년간 상무주암, 백장암 등 20여 곳의 토굴을 옮겨다니며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과 자리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의 수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5년 전남 곡성의 태안사에서 대중교화를 시작해 미국 금강선원과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으며 2003년 11월 세납 80세, 법랍 56세로 입적했다. 지은책으로 법문집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마음의 고향>, <진리의 길>, <가장 행복한 공부>등이 있고, 옮긴책으로 <정토삼부경>, <약사경>, <육조단경> 등이 있다.
절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도반
안거 들어가기 전, 수행 공동체에서 만난 한 도반에게 안거 계획을 말하며 혹시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녀는 함께 수행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내 수행 바라지까지 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받아본 제안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것이긴 했지만 나는 수행 바라지를 받을 만큼의 공덕을 지은 게 없는 만큼 그저 함께 수행하자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하여 그녀와 나는 금강선원에서 따로 또 함께 수행했다.
그녀는 명상수행보다는 몸을 많이 쓰는 절 수행을 더 많이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명상하고 앉아 있으면 조용히 법당 문을 열고 들어와 절을 하곤 했다. 나는 명상수행을 하면서 그녀가 절을 하는 동안 적잖은 소리가 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도 궁금해 걷기 명상을 하기 전 도대체 어떻게 하나, 그녀를 지켜봤더니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마치 선녀가 비단 옷을 입고 바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가 우아하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무릎과 머리를 조아린 그녀는 한 배 한 배 정성을 다해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도 그날 이후 108배를 할 때마다 그녀처럼 고요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정성 가득히 절을 하려 애쓴다.
그녀가 절에 머문 마지막 날, 나는 그녀를 향해 삼배를 올렸다. 함께 침묵 가운데 수행하며 존재해준 그녀가 눈물 나게 고마와서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깊은 대화가 침묵의 대화임을 안다. 제한된 언어로 인생 3막5장을 밤새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침묵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교류가 일어난다는 것을 몸으로 이미 체험해서다.
잠시 묵언을 깬 “야옹”
저녁 식사 후 시간에는 주로 법당에 혼자 앉아 정진했는데 본의 아니게 묵언을 깬 순간이 있었다. 법당에 앉아 낮은 조명을 켜고 명상을 하는데 쥐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여럿 있으면 그들도 행동을 조심하는데 나 혼자 있는 것을 알고 개무시를 하나, 싶었다. 그리고 난 아직 쥐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경지가 못 된다. 그래서 법당 조명을 최대한 밝게 켜고 앉았다. 그래도 쥐들은 막무가내였다. 난 집에 두고온 고양이 예삐가 지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다가 쥐들을 조용히 시키는 방법으로 내가 고양이 소리를 내기로 했다. “야옹, 야옹” 평소 예삐의 야옹거리는 소리를 많이 따라해본 나의 내공에도 불구하고 쥐들은 “야, 너 야옹이 아닌 거 다 알거든.” 하는 듯이 여전히 달그락 거리며 운동장 달리듯 움직였다.
나중에 안거를 마치고 용화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아마도 그 쥐들이 나를 편하게 여겨서일 거라고 하셨다. 스님 방에서는 쥐들이 아예 나와 스님과 눈을 마주하며 다른 쥐들과 함께 놀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해칠 의지가 전혀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쥐들이 더 잘 안다고 했다. 하기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연결돼 있는 생명체인 그들 역시 나와 똑같은 재질로 형성됐으며 내재하고 있는 지성(Innate Intelligence)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야옹” 소리는 왜 냈었는지… 스스로에게 피식 웃음이 났다.
들꽃이 들려주는 노래들
처음엔 50분 명상 10분 걷기 명상을 반복하려 했었는데 하다 보니 시간을 넘기며 고요히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앉아 있을 수 있는 만큼 좌선을 하다가 너무 앉아만 있었다 싶으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마음 다해 걸었다.
걷다 보니 또 한 도반인 친구가 따와 엽서를 만들었던 들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도드라질 것 없는 그 들꽃과 들풀들을 그녀는 하나 하나 애정을 가지고 종이에 붙여 엽서를 만들었다. 그녀의 눈을 통해 본 들꽃들의 아름다움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장미꽃이 아니어도, 함박꽃이 아니어도 참 예쁘다. 물기가 없어 거의 드라이플라워가 됐음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그 존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노래를 한다. “지금 그대로 너무 충분해..” 라고 하는 걸까, “모든 것이 모든 것일 수 있도록 허용해…”라고 하는 걸까.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던 침묵의 시간
이번 안거를 통해 난 내가 뭘 붙들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게 됐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도 별로 없고, 욕심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질투도 장난 아니게 많았다. 혼자서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결국 인정했다. “그래… 나 질투하는구나…”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편안해졌다. ‘아, 내 안에 질투하는 마음이 있구나… 이제껏 경계에 부딪혀 보지 않아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구나… ‘그 마음을 아니라고 저항하다가 ‘그래…’ 하고 인정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질투가 헤아려졌다. ‘그럴 수도 있구나… 별 것 아니구나…’ 싶었다.
형성된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래서 공하다. 형성된 것이 모두 사라진 그곳에 고요함만이 흐른다.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내 마음에는 괴로움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침묵은 이렇게 답을 스스로 찾게 해준다.
나홀로 묵언 안거 수행을 마치고 난 후, 난 여느 리트릿 후처럼 좀더 고요해졌고 좀더 차분해졌다. 그리고 안거 들어가기 전에는 30분 하기도 힘든 날이 있었는데 안거에 들어가 하루 종일 명상만 하다가 내려오면 하루 1시간 명상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진다. 수행에도 탄력이 붙는 것이다.
매일 매일 일상의 수행과 함께, 기회가 허락하는대로 금강선원이건, 어디건 일상에서 벗어나 수행을 계속하려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반복하는 것은 강화됨을 알기 때문이다. 카르마도 반복하면 강화되고 덜어내기도 반복하면 강화된다. 그저 평생 할 뿐이다. 함께 수행해준 아름다운 도반에게 감사한다. 함께 하는 상가가 내 귀의처임을 고백한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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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1세기 묵언정진 소식
반가운 글입니다
1972년 부산 송정리 앞바다가 암자에서
청화스님을 친견함으로 금강심론, 보리방편문
반야심경략해와 금타대화상님의 오도송 독송하는
낙으로 이민생활의 모두를 극복합니다
법휴스님 거처를 알려 주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