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11.월요일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480-547) 대축일
잠언2,1-9 콜로3,12-17 마태19,27-29
참 좋은 분, 성 베네딕도
-슬기, 사랑, 섬김-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8-9)
오늘은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이자 제 사제서품 33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참 좋은 분을 만나면 마음도 환해지고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전 전임 아빠스님을 뵙고 왔을 때도 그랬고 어제 수도원을 방문했던 분들과의 만남도 그랬고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성 베네딕도와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긴 여운의 향기로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우리 곁에 왔던 성자,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책을 좋은 지인에게 선물 받았습니다. 바로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성 베네딕도에게도 딱 드러맞는 말마디입니다. 우리 곁에 왔던 성자, 여전히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성 베네딕도입니다. 아니 주님과 함께 여전히 우리 곁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행복을 주고 있는 듯한 성인입니다. 성인을 기리는 입당송입니다.
“베네딕도는 그 이름 뜻대로 복을 받아 거룩하게 살았네. 그는 가족과 유산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거룩한 수도생활을 추구하였네.”
어제 저녁기도시 아름다운 성경소구 말씀도 그대로 성인의 풍모에 대한 묘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증거자로다. 그는 구름들 사이에 있는 아침 별과 같고 보름의 둥근 달과 같도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전 위에 비치는 태양과 같고 영광의 구름에 걸린 무지개와 같도다.”(집회50,5-7)
바로 이런 베네딕도 성인입니다. 위기와 혼란에 처했던 5-6세기 유럽을 구한,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선물, 유럽의 수호자 성 베네딕도입니다.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인 성인의 후예인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이 이후 1500년에 걸쳐 가톨릭 교회와 세상에 준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합니다.
방금 부른 베네딕도 성인의 생애를 요약한 듯한 복음전 부속가 노래는 얼마나 아름답고 깊고 풍부하고 흥겨웠는지요! 길지만 내용이 은혜로워 그대로 인용합니다. 정말 성인을 자랑하고 싶은 내용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한권의 책이라면 성인 삶의 책은 참 ‘내용contents’도 ‘이야기story’도 깊고 풍부해 샘솟는 우물같습니다.
“새빛 선물 가져오는 위대하온 지도자를 기념하는 대축일.
성총받은 그 영혼이 노래하는 찬미가는 마음속에 울리네.
동쪽길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성조용모 감탄 울려 퍼지네.
태양같은 생명으로 많은 후손 얻은 그는 아브라함과 같도다.
작은 굴에 있는 그를 까마귀의 복사로써 엘리야로 알리네.
강물에서 도끼건진 성 분도를 엘리세오 예언자고 알도다.
무죄덕행 요셉같고 장래일도 알아내니 야곱처럼 알도다.
그의 생각 지극하여 예수님의 영복속에 우리 인도하소서.”
오늘 자주 불러 보려 합니다. 성인 축일은 기념, 기억하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성인이 되라 불림 받았으니 성인이 될 각오를 새로이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걸출한 성인이 없는 요즘 세상이라 탄식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분한분이 성인이 될 각오를 새로이 하시기 바랍니다.
성인이 되려는 청정욕은 얼마든 좋고 하느님께서도 환영하십니다. 성인의 삶을, 성 베네딕도회 영성을 요약하라면 저는 주저없이 ‘산山과 강江’의 영성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1998.
무려 24년전 자작 짧은 시詩이지만 이상적인 영성의 요약입니다. 밖으로는 언제나 거기 그 자리 임 기다라는 정주의 산같은 삶, 안으로는 끊임없이 임 향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이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는지요! 저는 산을 베네딕도로, 강을 프란치스코로 바꿔 읊기도 합니다.
“밖으로는 성 베네딕도,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성 프란치스코,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성 프란치스코”
사실 절묘하게 상호보완을 이루는 두 성인입니다. 성 베네딕도회에 속한 프란치스코 수도사제인 제 좌우명같은 고백이기도 합니다. 참 자랑스러운 베네딕도 성인입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성인의 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슬기를 추구하라!”입니다.
지혜의 순수한 우리말 슬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슬기란 우리말 이름도 많습니다. 얼마전 신씨 성의 ‘신난다’ 이름이 참 기발하다 생각했는데 정말 신나게 사는 형제입니다. 오늘 잠언은 한결같이 지혜를 추구하라는 충고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참 지혜로운, 슬기로운 분이셨습니다. 이런 지혜는 그대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혜에 네 귀를 기울이고 슬기에 네 마음을 모은다면, 그래, 네가 예지를 부르고 슬기를 향해 네 목소리를 높인다면,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 그때에 너는 주님 경외함을 깨닫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찾아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그분 입에서는 지식과 슬기가 나온다.”
정말 궁극으로 추구해야할 바 주님의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로 충만한 성 베네딕도의 삶을 요약한 어제 저녁성무일도시 계응송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베네딕도 성인은 모든 덕의 어머니인 분별력의 지혜의 대가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슬기로운 절제와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하였도다.”
“이 거룩한 사람은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없었도다.”
둘째, “사랑하라!”입니다.
무지無知에 대한 답이 슬기라면, 허무虛無에 대한 답은 사랑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참으로 하느님을 온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사랑의 대가’였습니다. 사랑은 성덕의 잣대이자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사랑에서 샘솟는 지혜입니다. 정말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를 보면 무려 38개 항목에 걸친 기적 일화들인데 한결같이 사랑의 기적들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기적’이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불순한 의도가 전무한 순전히 모두가 성인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하신 하느님의 화답으로 이뤄진 사랑의 기적들입니다. 제2독서 콜로새서 말씀은 사랑으로 새사람이 되라는 바오로 성인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며칠전 보자기의 영성을 강조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가방의 영성이 아니라 큰 보자기의 영성을 지니자는 권고였습니다. 이런저런 모든 것을 하나에 담아 묶을 수 있는 것은 정해진 규격의 가방이 아니라 큰 보자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닮아 사랑의 큰 보자기 마음이 되자는 것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셋째, “섬겨라!”입니다.
위로 하느님을 섬기고 좌우사방의 이웃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성이 섬김service과 종servant의 영성입니다. 섬김의 사랑이야 말로 참 영성의 잣대입니다. ‘섬김의 대가’ 예수님을 닮아 성 베네딕도 역시 섬김의 대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유언遺言과 같은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을 빼다 닮은 성 베네딕도는 자기 제자들의 수도승 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했습니다. 평생 한결같이 겸손한 사랑의 섬김의 자세로 살라는 성 베네딕도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또 주님을 섬기듯 형제를 섬기라는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역시 ‘섬김의 학교’에서 평생 배우고 훈련해야 할 섬김의 덕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섬김의 직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 서비스업인 음식점, 병원, 학교를 보면 그 핵심이 뭔지 한눈에 들어 옵니다. 다음 셋은 서비스업의 3대 필수요소란 것이 제 지론입니다. 첫째 사람이 친절하여 좋아야 하고, 둘째 사람이 유능하여 실력이 좋아야 하며, 셋째 안팎의 환경이 아늑하고 푸근하여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셋을 우리 수도원과 제 자신에 자주 적용하여 점검해 보기도 합니다.
참 좋은 자랑스런 성 베네딕도입니다. 자랑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길이 향기로 남아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부단히 분발의 노력을 다하게 하는 베네딕도 성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 베네딕도처럼 날로 슬기의 사람, 사랑의 사람, 섬김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사람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자에게는 좋은 것 뿐이리라.”(시편34,10-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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