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하늘은 어디이고, 말할 수 없는 말은 무엇입니까?
1. 나의 신이 영원히 &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고후 12:2-6)
그에 대하여
이 말씀에서 그 는 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은유적 표현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았던 환상과 계시를 자랑으로 말하고 싶지 않는 바울의 겸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절에서는 내가 &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 한다고 했다가 2절에서는 그 라고 표현했지만 뒷부분에 가서는 그 를 다시 나 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셋째하늘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이 계시 중에 셋째 하늘에 올라간 특별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은 지구의 대기권을 말하며, 둘째 하늘은 해, 달,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을 말하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고 천사들이 거하고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라는 말씀 속에서도 셋째 하늘의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떤 영이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간다고 암시하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말씀은 선지자 다니엘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울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 계시를 통하여 하늘을 보았던 사실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문 성경에서는 하늘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계 12:12) Therefore rejoice, ye heavens(복수), and ye that dwell in them(복수).
계시록이 하늘을 복수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은 사도 바울이 계시를 통하여 셋째 하늘을 갔다는 사실과 서로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다니엘 선지자가 계시를 받는 장면을 통해서, 계시는 뇌(brain)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단 7:1) 그러므로 다니엘이 그의 뇌 속 에서 계시를 보았던 것처럼, 바울 역시 그의 뇌 속 에서 하늘의 장면을 보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죽지도 않은 바울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가서 하늘로 날아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만 하실 수 있는 기적적인 역사를 통하여 바울의 뇌 속에 하늘의 모습을 펼쳐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표현했던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바울 자신 역시 이러한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말이란 천사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듯합니다. 하늘의 언어라고 불러야겠죠. 셋째 하늘에 가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 히브리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을지라도 지구의 언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하늘의 언어는 요즘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방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 소통하고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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