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이코 다윗파 데이비드 코레시
4월19일 웨이코 사건이 터짐
어른50+어린이 25명 사망
■ 데이비드 코레시(David Koresh)
데이비드 코레시(영어: David Koresh, 1959년 8월 17일 – 1993년 4월 19일)는 미국의 종교인이자, 범죄자로, 다윗교라는 광신적 종교집단의 교주였다. 본명은 버논 웨인 하웰 (Vernon Wayne Howell)이었으나 1990년 5월 15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유대인을 바빌로니아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의 이름을 조합하여 데이비드 코레시로 개명했다. 종말론에 심취하여 재림 예수를 자칭하며 아마게돈에 대비한다며 텍사스주의 웨이코의 다윗파 본부에 수많은 총기와 탄약을 비축하였다. 1993년2월 28일, ATF의 압수 수색이 총격전으로 이어지면서 51일 동안 대치하다가 건물에 발생한 화재로 데이비드 코레시를 비롯한 성인 55명과 28명의 아이가 사망하는 참사를 일으켰다. (웨이코 사태)
■ David Koresh
본명 : 버논 웨인 하웰
출생 : 1959년 8월 17일, 텍사스주 휴스턴
사망1993년 4월 19일 (33세), 텍사스주 맥레넌 카운티
직업 : 종교 지도자
종교 : 다윗교

이 웨이코 사건으로 미국 기독교 원리주의자 및 백인 극우 집단이 연방 정부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대표적으로 티머시 맥베이는 이 사건에 대한 개인적 보복의 일환으로 웨이코 사태 2주년인 1995년4월 19일에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Oklahoma City bombing)는 1995년 4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주오클라호마시티에 있는 앨프리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다. 이 테러의 범인인 티머시 맥베이는 민병대 운동의 동조자였으며, 해당 건물 앞에 폭발물 가득 실은 트럭을 폭발시켰다. 또한 맥베이의 공모자인 테리 니컬스는 폭탄 준비를 도왔다.
이 사건은 2001년 9·11 테러가 있기 전까지 미국 영토에 대한 가장 심각한 테러 사건이었다. 이 폭탄 테러로 6세 이하 아동 19명을 포함한 168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680명 이상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이 폭탄 테러로 반경 16블록 내에 있는 324채 건물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86대 차량이 파괴되거나 화재를 입었고, 근처 258개 건물의 유리창이 파손되었다. 이 폭발 때문에 6억 520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다.
연방정부에 대한 그의 증오와, 1992년 루비 능선 사건 및 1993년의 와코 포위 작전 때 자신의 실수로 여겨진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맥베이는 테러를 감행할 시간을 와코 사건이 일어난 지 2주년이 되는 때에 맞추었다. 건물이 폭발한 지 90분 뒤에 오클라호마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의 찰리 행거(Charlie Hanger)가 무면허 운전을 이유로 맥베이를 멈춰 세웠고, 무기의 불법 소지를 이유로 그를 체포하였다. 법적인 증거물 때문에 니컬스는 맥베이의 테러 행위에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나 체포되었으며, 며칠 뒤 두 사람 모두 경찰에 고소되었다. 또한 마이클 포티어(Michael Fortier)와 로리 포티어(Lori Fortier)가 나중에 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에서부터 전 세계에 걸쳐 여러 기관이 인명의 추가 구조를 도왔으며, 미국 전역에 걸쳐 상당한 액수의 기부가 이루어졌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은 11개 조의 도시 내 수색구조 작업반을 투입하였으며, 이에는 인명 구조와 복구 작업을 도울 구조대원 665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의 공식 수사기관인 오크봄(OKBOMB)은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범죄 수사기관이었다. FBI는 28000여 회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으며, 3.2톤에 달하는 증거를 수집하였고, 100만 건에 가까운 정보를 수집하였다. 테러범들은 1997년에 재판을 거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맥베이는 2001년 6월 11일에 독극물 투여 방식으로 사형에 처해졌으며, 니컬스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마이클 포티어와 로리 포티어는 맥베이와 니컬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증언하였다. 마이클 포티어는 미국 정부에 사건을 알리지 않은 죄로 12년간 복역할 것을 선고받았으며, 로리는 법정에서 증언을 한 대가로 기소를 면제받았다.
폭탄 테러의 결과로, 미국 정부는 연방정부 청사 주변 경비강화를 위한 법률을 추가 테러 공격에 대비하여 통과시켰다. 그 이후 1995년부터 2005년까지 60건이 넘는 미국 내 테러 기도가 폭탄 테러에 대비하여 앞서 취한 법률 조치 때문에 실패하였다. 2000년 4월 19일에는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기념비가 뮤러 연방정부청사의 자리에 폭발 희생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매 년 추모행사가 폭발이 일어난 날 같은 시각에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