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등산길은 생명 길이다. 목적지로 삼은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닦고 숨을 고른다. 채 가시지 않은 어스름에서 오늘도 맨 먼저 올랐다는 뿌듯함과 건강한 하루를 시작한다는 자부심이 인다. 등 뒤에서 가랑잎 밟히는 소리가 부스럭거린다. 선수를 놓친 섭섭함과 새로운 동행자가 생겼다는 반가움이 겹친다. 고개를 돌리며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그대로 얼어붙는다.
얼핏 보기에도 이삼백 킬로의 거대한 멧돼지다. 몇 발자국 앞에서 내려오던 길을 멈추고 노려보고 있다. 과욕을 부리다가 얻은 병을 고치는 길에서 탐욕의 대상이라 일컫는 놈을 맞닥뜨리니 얄궂은 만남이다. 긴장이 흐른다. 눈을 피하지 마라. 고개를 돌리지 마라. 사나운 동물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을 더듬는다. 시간이 정지되고 겨드랑이에 땀이 밴다. 공격에 대비하여 피신해 올라갈 나무를 곁눈질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쳐다보던 표정에서 체념의 기색이 보인다.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다가 슬며시 등을 돌린다. 걸음아 나 살려라. 냅다 뛰어 내려온다. 날마다 마주치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이른다. 며칠 전에 새끼가 딸린 어미를 맞닥뜨렸는데 가만히 섰으니 다른 길로 비껴 가더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돌진만 하는 줄 알았던 멧돼지도 먼저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습성이 새롭다. 성숙하지 못한 호들갑에 얼굴이 붉어진다.
불혹에 접어든 허허로움에 안달이 났다. 주위의 안정된 부를 바라보는 어깨가 무거웠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갈증이 저돌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리저리 살피는 중에 서울의 친구에게서 행운이 날아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주방가구 제조사에서 한국 대리점을 찾는다는 소식이었다. 워낙 고가의 제품이라 최고급 주택에만 쓸 수 있는 좁은 시장이 염려되었지만, 막 불기 시작한 고급주택 바람에 희망을 걸었다. 아시아에 미리 진출한 일본과 싱가포르의 시장조사 결과도 고무적이었다. * 베블렌(Veblen) 효과를 노린 영업 전략에 욕심이 보태졌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라 하지 않던가. 큰물에서 놀아보자는 배짱에 나 자신도 놀랐다.
부의 크기가 다른 그들을 상대하는 전략을 세웠다. 지방의 작은 건설회사를 드나든 알량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욕구를 부추겼다. 전시장을 보여줄 때마다 최고급 외제 승용차로 금수저의 신분으로 받들어 허영을 채워주고, 운동이란 구실의 접대골프는 질긴 끈이 되었다. 신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돈의 단위도 놀랍지만, 비싼 제품을 1년도 안 돼 바꾸는 태연함에 주눅이 들었다. 그들의 쓰레기가 버려질수록 계약 액수와 일의 양도 늘어갔지만, 종지인 주제에 대접인 척해야 하는 위선은 스트레스로 쌓여갔다.
날카로운 수술 도구가 내장을 긁어대는 기분 나쁜 꿈에서 깨어났다. 파란 커튼이 둘러쳐진 수술실의 천정에서 하얀 전등이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으로 빛을 가리려 하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지가 철 침대에 묶여있었다. 돌발행동은 뇌출혈 수술의 후유증이라고 했다. 꼼짝 못 하는 아픈 육신보다 나락으로 떨어진 마음이 미치도록 슬펐다. 산천을 헤집고 다니던 짐승에서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스트레스성 뇌출혈이었다. 호사다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큰 병마였다. 무지개가 떠 있는 피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낭떠러지로 추락한 억울함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땅에 떨어진 자존감은 하루하루의 길이를 늘려갔다.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온 게 다행이라 위안하고, 신체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다 당한 낭패라고 다독였다. 일을 줄이고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라는 주치의의 몸 처방이 내려졌지만, 상처 난 마음 치료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TV 화면에 도심을 활보하다가 총에 맞은 멧돼지의 영상이 보인다. 돌진만 하다가 맞은 최후가 서글프다. 등산길에서 만난 멧돼지가 겹쳐지며 낯이 간지럽다. 복과 탐욕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말 못 하는 산짐승의 모습이 교차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좋은 일의 뒷면에는 반드시 불행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한 결과이리라. 주위도 돌아보며 알아차리는 통찰이 있었다면 큰 화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깨닫는다. 김훈 작가는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 시절 열정까지 버리겠는가만은 줄어든 욕심만큼 마음의 평수를 늘려야겠다. 앞만 보던 몸에 병이 들고서야 마음에 나이가 들었다. 행운을 놓친 손에 다행을 잡고, 또다시 행운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