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 70차 사랑의 쌀 나눔!
아프리카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돌아 오자마자 월 말에 미얀마 난민들에게 보낼 사랑의 쌀 후원금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콩고와 르완다는 로밍이 되지 않고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작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행기가 카타르 도하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최선을 다해서 후원금 호소문을 보냈으나 대기 시간이 길지 않아서 몇 통 보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 르완다의 수도인 키갈리의 숙소 “센 폴 센터”에서 와이파이가 되어 추가로 십여 분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그러면서 기도를 바쳤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하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해도 더 이상 카톡을 보낼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70차 난민구호 사랑의 쌀 후원금을 주님께서 직접 마련해 주셔야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 이 일은 제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입니다. 그 동안 주님께서 저를 협력자로 택하여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아프리카에 머무는 십여 일이야말로 주님의 일하심을 더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콩고 일정을 마치고 나가서 제가 “여호와 이레” 탄성을 지르게 해주십시오. 믿고 들어 갑니다."
사랑의 쌀 후원금 모금을 주님께 맡긴다고 했지만 키브호를 건너 맨 먼저 만난 콩고 형제에게 블루투스로 와이파이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인터넷 연결이 안된다고 일축하였다. 애초부터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역시나 였다.
부냐끼리주의 수도인 부카부 시내를 통과하여 키창가로 가는 길목에서 콩고 형제가 슈퍼마켓에 간다고 해서 따라 내렸다. 식사 대용식을 사들고 짚에 오르다가 힘없이 미끄러져 콘크리트 바닥에 철푸덕 나뒹굴었다.
혼자 일어나지 못하여 버둥거리자 주변 사람들이 와서 붙잡아 주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한 편으로 창피하였다. 오른쪽 발과 손목에 통증이 왔다. 무엇보다 손바닥과 손등 팔목 안과 밖이 퍼렇게 멍들었고 손목이 쑤시고 아팠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도 없이 통증과 싸우며 험악한 오지 산길을 일곱 시간 가야했다. 목적지인 피그미마을 키창가에 도착했으나 작은 선교병원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부운 부위를 붕대로 감아주는 것 뿐이었다. 약을 주었지만 약물 알러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먹지 못하였다. 가지고 간 비상약과 그 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의 비상약으로 견뎌야 했다.
아무리 콩고 오지라 해도 선교사님이 카톡을 하시므로 비밀 번호를 받아 카톡을 해볼 궁리를 하였는데 오른손이 다침으로 해서 모든 생각들이 일시에 정지되었다. 생각을 멈추고 마음이 차분해지니 “맡기고도 맡기지 않는“ 나의 불신과 교만이 눈앞에 뚜렷이 부각되었다. 아픈 손을 붙잡고 나의 믿음 없음을 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손을 다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카톡을 해보려고 애썼을 것인데 손을 쓰지 못하니 기도하며 성령님의 역사하심, 감동감화하심 외에는 기댈 것이 없었다. 하루 하루 미얀마 난민들을 위하는 사랑의 쌀 후원금이 답지되길 간절히 기도하였다. 또한 후원자들과 난민들의 삶을 간섭해주시고 무더위와 장마 속에서 모두의 강건과 평안의 축복을 빌었다.
드디어 일주일이 지나 오지인 키창가를 떠나서 부냐끼리의 수도인 부캬부에 왔다. 숙소에서 인터넷 연결이 된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확인하려니 가슴이 벅찼다.
아뿔싸!
앱을 열어 보니 예상 후원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순간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므로 절망하지 않기로 나 자신을 다독였다. 거지처럼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격려하며 고향 어머님과 후원자들에게 카톡으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고통 중에 있는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결코 그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양식을 보내주실 것을 확신하며 거듭 되새김질하였다. 또한 난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하여 난민들에게 다른 NGO단체가 나타나 더 많은 식량을 받게 되는 것과 한편으로 난민 캠프 안에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과 내전이 속히 끝나기를 위하여 거듭 간구하였다.
콩고를 떠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용기를 내서 몇 분에게 기도 응원을 청하기로 하였다. 카톡으로 몇 분에게 기도 요청을 하였다. 그리고 비전아시아 이사장님께 카톡을 보냈다.
”목사님, 70차 미얀마 난민 송금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네, 기도합니다. 건강하시길요.”
“예, 목사님, 기도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어요.”
“70차 난민 구호 성북교회가 감당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한 달 전 정도에 개인 후원으로 큰 도네이션을 하였기 때문에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예에?
”또요!“를 반문하였다.
할렐루야!
찬미가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졌다.
키브호를 넘어, 키갈리를 지나, 도하를 거쳐서 돌아오는 길 내내 주님께서 어리고 약한 나의 손을 잡아 주셨다. 나는 과자를 양손에 들고 행복한 아이처럼 울고 웃으며 감사하며 "여화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그렇다! 분명하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신다.
할렐루야!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묘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