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백성으로 살라
(출 4 : 10~17)
사람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게 되면 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되살려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생각과 언행에 변화가 있고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느냐, 소망을 없느냐가 많은 차이점을 냅니다.
어떤 여자에게 불면증이 있습니다.
불면증이 있음으로 뒤척이니까 함께 잠을 자던 남편이 거실에서 나와서 자는 일이 반복되어서 본인이 스스로 병원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의사가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듣더니 좋은 약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약에 대해서 친절하게 약 먹는 방법과 시간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의사의 말은 들은 이 여인이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준 것을 믿고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그대로 따라했더니 잠이 오더랍니다.
잠이 드니까 머리도 맑아지고 생활에 기쁨이 오더랍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병원에 찾아갔더니 그 약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더랍니다.
실은 그것은 약이 아니라 밀가루 덩어리였다고 하지만 당신의 병이 다 낫지 않았느냐고 했답니다.
1968년 하버드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로젠탈(Robert Rosenthal)과 미국에서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Lenore Jacobson)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한 후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한 반에서 20% 정도의 학생을 뽑았습니다.
그 학생들의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지적 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라고 믿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이전과 같은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명단에 속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높게 나왔고,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여자의 이야기를 심리학에서 ‘플라시보효과’라고 합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 환자에게 복용토록 했을 때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두 번째, 학생들에 관련된 것은 ‘피그말리온효과’라고 합니다.
피그말리온효과는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면 기대에 부응하는 쪽으로 변하려고 노력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교육심리학에서는 교사의 관심이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의 소망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두 종류입니다.
먼저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소망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실체가 있는데 잘못되기를 바라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자들을 마귀라고 합니다.
잘못되기를 바라고 망하기를 원하는 세력, 사탄 그리고 마귀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 때에 소망을 주시고, 생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길이 있는 반면에 계속해서 망하게 만들고, 잘못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드는 마귀의 세력이 있습니다.
심지어 믿는 자안에서도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들을 통해 마귀는 절망의 씨앗을 뿌리고 소망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도는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절망을 주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절망에 빠졌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가에 버려 악어 밥이 되게 하는 것, 노예로서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악행에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큰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이어서 24절에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때부터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절망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소망가운데 살아가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삶이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절망가운데 있고 소망이 꿈꿀 수 없으며 힘에 겨워 넘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그 때부터 소망이 생깁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하루를 기대하면 삽니다.
이스라엘백성과 같이 고된 노동으로 지쳐있어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자녀를 보고 또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도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은 쓸쓸할 뿐 아니라 적막합니다.
이런 적막함이 계속 될수록 사람은 지쳐가고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장군은 정말 탁월한 지략가입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살릴 까 하는 관심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고 최선을 다해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원해냅니다.
그런데 명량의 마지막부분에 이순신 장군이 탄 배가 율돌목의 회오리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에서 장군의 배가 스스로의 힘으로 소용돌이를 빠져나가지 못함으로 포기하려고 할 때에 누가 그들을 이끌어 냅니까? 바로 백성입니다.
자신들의 고깃배와 나룻배를 가져다가 백성의 힘으로 함선을 소용돌이에서 이끌어 냅니다.
그 때 9척의 배가 뒤로 도망갔다가 이순신장군의 지략을 보고 달려옵니다.
그리고 일본의 배들을 격파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패했고 조선의 수군은 승리했습니다.
12척의 배를 가지고 300여척의 배를 상대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순신장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절망가운데 있는 두려움을 용기로 이끌어낸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그 마음이 백성들과 군인들로 하여금 승전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절망가운데 있습니까? 나에게는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다면,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무력해하십니까?
소망의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천군과 천사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오늘도 승리를 위해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소망의 하루, 절망의 사슬을 끊고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체험하는 새로운 하루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S.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
몸에 가지고 있는 장애는 진정한 장애가 아니다.
그리고 인생 중에서 겪게 되는 불행은 진정한 불행이 아니다.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존엄과 영광이 무엇이고 그 분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 때에 발버둥 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 화종부 목사의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에서 -
주의 손이 짧아서 은혜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문제는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죄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벌을 받는 것입니다.
영혼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이 적합한 고행을 통해서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또 죄를 능가(?)할 만큼 많은 선을 행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없으며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의 문제는 인생의 지식과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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