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종에게 동방의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 같은 금욕적인 영성이 나타난다. 이세종은 예수님도 고운 옷을 안 입으셨다고 말하면서 평소에 홋바지 저고리로 지냈으며, 더운 때나 추운 때나 같은 옷을 입었고, 언제나 걸인과 같이 떨어진 베옷을 기워 입고 구멍뚫인 모자를 쓰고 다녔다. 옷만 다른 사람보다 좋게 입어도 마음이 교만해져서 다른 사람을 낮추어보게 된다고 일부러 낡은 검정색 무명옷만 입고 다녔다. 이세종이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받아 갔는데, 세상에서 보기 드문 우스운 모자를 쓰고 거지 옷을 입고 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설교보다도 그 꼴이 신기해서 거지가 설교를 한다고 모여 들기도 했다. 이세종은 예수를 믿고 하루 한 끼만 식사했으며, 육식도 금했다. 성 안토니도 수도를 시작한 후에 주로 해 진 후에 하루에 한 끼, 이틀에 한번 혹은 나흘에 한번 음식을 먹었다. 성 안토니의 영향을 받은 이집트 동방의 수도사들은 수도를 하면서 주로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육식을 금했다. 이세종의 생활유형이 이들과 유사 하다. 이세종은 음식 먹을 때는 상에 차려 먹지 않고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혹시 누가 밥상을 차려와도 마음이 높아진다고 싫어하고, 자기는 죄인이라면서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이세종은 생선도 먹지 않았으며, 남의 집에서 가져온 명절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의 주식은 보통 사람들은 역겨워서 도저히 먹기 어려운 쓱 범벅이었다. 이세종은 자신의 설교에서 “인간은 식욕이 폐하면 자연히 색욕이 패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상은 요한 클리마쿠스에게도 나타난다. 그는 “배불리 먹은 배는 간음을 일으키지만 억제하는 위는 순결로 인도한다.”고 말했다. 이세종이 음식을 절제한 것은 정욕을 이기고 성결하여 궁극적으로는 순결을 통해 성경의 진리 안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또한 이세종은 마치 수도사들처럼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세종은 “바울선생은 시집가는 것이 죄는 아니나 안 가는 것이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고린도전서 7장이다. 과부가 시집가는 것이 좋으나 홀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하셨다. 예수 믿는 것이 더 좋은 일 하는 것이다. 더 좋은 복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세종은 히브리서 13장4절의 “결혼을 귀히 여기라”는 바울의 권면이 있지만 그의 수도사적인 영성의 관점 때문에 고린도전서 7장을 선택하고 있다. 물론 이세종은 결혼을 죄로 보지는 않았다. 자식을 낳는 것도 죄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세종은 회심한 뒤에 순결하게 살기위해 부부는 남매처럼 지내야 한다면서 동거하지 않고 다른 방에 거처했다. 부인이 잠든 사이에 몰래 들어오면 어느새 알고 내쫓았다. 이세종이 세상을 떠날 무렵, 얼마 동안 아내는 남편 시중을 들려고 한 방에 있었지만, 그것도 밤에 쉴 때는 중간에 칸을 막고 이웃 방에 거처했다. 이같이 이세종이 예수 믿고 부인과 부부관계를 단절한 해혼(解婚) 사상은 이집트의 동방 사막 교부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니트리아의 아모운은 삼촌이 억지로 결혼을 시켜서 했지만 수도를 하면서 18년 동안 부부가 한 집에 살면서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 해혼 생활을 했다. 그 후에 니트리아 산속으로 가서 그 곳에 수실 두 개를 짓고 22년 동안 각자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모운은 매년 두 번 정도 부인을 만났다. 이집트의 수도사 유키리투스와 그의 아내 메리는 결혼하여 한 집에 살았지만 부부관계를 하지 않고 살았다. 그들은 주위에 해혼 사실을 숨기고 살았다. 아모운 부부는 처음 18년은 같이 살면서 해혼을 하였고, 나머지 22년은 따로 떨어져 해혼 생활을 했다. 유키리투스 부부는 처음부터 같이 살면서 해혼 생활을 했다. 이들 수도사들의 해혼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혼을 비밀로 하고 살았다는 점이다. 다른 제자들에게 강요 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이세종의 해혼 생활은 공개적이었으며, 제자들에게 해혼을 강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이세종의 ‘해혼 사상’은 그 당시 기성교회로부터 신학적 공격을 받는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세종이 해혼 생활을 제자들에게 강요한 것처럼보인 점은 지나친 금욕주의 형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