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태(洪世泰)-中原旅懷(중원여회)(중원에서 나그네 시름에 젖어)(타향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萬里西風吹白頭(만리서풍취백두) 백발에 불어오는 만 리 밖의 가을바람
故園今夜亦悲秋(고원금야역비추) 오늘 밤 고향에서도 이 가을을 슬퍼하리라
病軀厭作中原客(병구염작중원객) 병든 이 몸 중원 땅의 나그네도 싫증이 나
歸思忙於下瀨舟(귀사망어하뢰주) 물결 위의 배보다 고향 생각 더 바빠라
木落虫鳴俱悄悄(목락충명구초초) 떨어지는 잎새 벌레 우는 소리 다 구슬프고
天高斗轉更悠悠(천고두전갱유유) 드높은 하늘 도는 북두성은 더 아득하구나
遙知兒女燈前語(요지아녀등전어) 저 멀리서 가족들은 등불 아래 이야기하며
開篋還應檢弊裘(개협환응검폐구) 상자 열어 해진 갖옷 다시 쓰다듬고 있겠지
*위 시는 “한시 감상 情정, 사람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柳下集유하집)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변구일님은 “서녘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백발의 시인, 강물이 흐르는 드넓은 공간 속에서 시인은 상념에 잠겨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집에있는 가족들에게 먼저 불고서 그 숨결을 안고 나에게 불어오는 것일 터, 가족들도 오늘 밤 나처럼 이 바람을 맞으며 가을을 느끼고 서글퍼할 것이다. 집을 떠나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는 그만 가족들에게 돌아갈 시간이다. 가족들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고픈 내 마음이 물결 따라 내려가는 배보다 더 바쁘기만 하다.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온갖 풀벌레들 울어 대기에 나그네 시름은 점점 깊어지고 광활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집 생각은 더욱 아득해진다. 그렇다, 저 멀리 별빛 아래서 가족들은 지금 등불 앞에 앉아 상자 속에 담긴 내 해진 가죽 외투를 꺼내어 어루만지며 나를 걱정하고 있으리라.
홍세태는 숙종 연간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영조 초년에생을 마감한 중인 출신의 시인이다. 이 시는 네 수의 연작시 가운데 두 번째 시로 그가 1718년 66세때 한강을 따라 유람하다가 중원, 즉 충주에 당도했을 때 지은 것이다.
유하집에는 동호에서 배를 띄우고 지은 시, 밤에 여주 목사 조공과 이별하며 남긴 시, 충주의 가흥참에 당도하여 지은 시, 탄금대에 저물 무렵 배를 댄 일을 읊은 시 등이 있어 당시의 여정을 대략이나마 엿볼 수 있다.
한양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의 나루에서 배를 띄워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광주에이르면 물길이 둘로 나뉜다. 여기서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남한강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물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양근, 여주를 지니 충주에 닿는다. 천천히 노를 저어 올라가는 뱃길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강기슭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홍세태는 처음에 8남 1녀를 두었지만 불행히도 먼저 다 세상을 떠났다. 늦게서야 또 딸 둘을 낳고 시집까지 보냈지만 둘째 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의 요절을 겪으면서 그는 죽음보다 참혹한 삶을 이어 왔으리라. 이 여행은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삶에 주는 작은 위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홍세태[洪世泰, 1653 ~ 1725, 자는 도장(道長), 호는 창랑(滄浪) · 유하(柳下), 본관은 남양(南陽)]-조선 후기의 시인이자 서예가이다. 부친은 무관이었던 홍익하(洪翊夏), 모친은 강릉유씨(江陵劉氏)이다.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7, 8세에는 글을 지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신분이 중인층이라 제약이 많았다. 시로 이름이 나서 김창협(金昌協) · 김창흡(金昌翕) · 이규명(李奎明) 등 사대부들과 절친하게 지냈으며, 임준원(林俊元) · 최승태(崔承太) · 유찬홍(庾纘弘) · 김충렬(金忠烈) · 김부현(金富賢) · 최대립(崔大立) 등 중인들과 시회를 함께 하며 교유하였다. 1675년 을묘식년시에 잡과인 역과(譯科)에 응시, 한학관(漢學官)으로 뽑혀 이문학관(吏文學官)에 제수되었다. 30세에 통신사 윤지완(尹趾完)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으며, 46세에 이르러 역과 합격 때 제수된 이문학관에 실제로 부임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사신이 우리나라의 시를 보고자 하였을 때 좌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숙종에게 홍세태의 시를 추천하여 임금에게 호감을 얻었기 때문에 그해에 제술관에 임명되었다. 모친의 상으로 사직하였다가 50세에 복직하였다. 53세에 둔전장(屯田長), 58세에 통례원인의(通禮院引義), 61세에 서부주부 겸 찬수랑(西部主簿兼纂修郎), 63세에 제술관, 64세에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가 되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뒤에 재능과 맞지 않게 궁핍하게 사는 것을 애석하게 여긴 이광좌(李光佐)의 도움으로 67세에 울산감목관(蔚山監牧官)이 되고, 70세에 제술관이 되었으며, 71세에는 남양감목관이 되었다. 문장의 재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제술관을 특히 많이 역임하였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으며, 8남 2녀의 자녀가 모두 앞서 죽어 불행한 생애를 보냈다. 이러한 궁핍과 불행은 홍세태의 시풍에도 영향을 끼쳐 암울한 분위기의 시를 많이 남겼다. 특히 중인 신분으로서의 좌절과 사회부조리에 대한 갈등이 시 속에 우수와 감분(感憤)을 담게 하였다. 한시에 대한 재능을 널리 인정받았으며, 비절(悲切)하고 그윽한 서정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 특히 능하였다. 또한, 위항문학의 발달에도 중요한 구실을 하였는데, 중인층의 문학을 옹호하는 천기론(天機論)을 전개하였으며, 위항인의 시를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라는 위항시선집을 간행하였다. 죽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시문집을 엮어 자서(自序)를 써서 부인에게 맡겼다. 죽은 지 6년 만인 1731년에 사위와 문인에 의하여 『유하집』 14권이 간행되었다.
*旅懷(여회) : 객지(客地)에서 품게 되는 울적(鬱寂)한 느낌
*瀨(뢰) : 여울 뢰(뇌), 1.여울(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2.급류(急流), 3. 물의 이름
*俱(구) : 함께 구/갖출 구, 1.함께, 2.모두, 3.다(남거나 빠진 것이 없이 모두)
*悄(초) : 근심할 초, 1.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근심 걱정에 잠기다, 2.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조용하다, 3. 엄하다(嚴--: 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엄격하다
*篋(협) : 상자 협, 1.상자(箱子), 2.좁고 긴 네모난 상자(箱子)
*弊(폐) : 폐단 폐/해질 폐, 뒤섞일 발, 1.(폐단 폐/해질 폐), 2.폐단(弊端), 3.부정행위(不正行爲)
*裘(구) : 갖옷 구, 1.갖옷(짐승의 털가죽으로 안을 댄 옷), 2.갖바치(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 3. 갖옷을 입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