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7. 유낙준주교.
코로나19 이후의 우리 성공회 사제의 선교에 대하여
“많은 신도들이 와서 자기들이 한일을 숨김없이 자백하였다(사도19:18)”는 성공회가 되는 길
코로나19로 인하여 인간이 영업정지를 당해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삶이 일상화될 것입니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보통 18개월을 보는데 그동안 경제가 어려울 것이고 그로 인하여 그간 익숙한 삶의 방식으로는 살 수 없게 되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 성공회 선교의 방향도 재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댁 방문으로 봅시다. 보통 40분에서 한 시간을 방문하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정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차를 마시고 나옵니다. 사제는 성도의 집의 방문이 기본사목이었습니다. 가족식구들의 아픈 삶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귀한 주님의 방문이 된 사제방문입니다. 미국과 영국의 성장하는 교회를 보면 대개 사제의 성도의 집 방문을 수시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방문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식구들 전체가 모여 가정예배를 올리는 것이 어려울 듯하면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미팅이 주가 될 듯합니다. 방문보다는 미팅이 주가 된다는 뜻입니다. 한 가정 전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식구수대로 만나야 하기에 사제는 더 바쁠 것입니다. 만남의 시간도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짧은 만남으로 많이 듣고 짧은 기도하는 미팅시간이 될 것입니다.
면대면 만남이 어려워지니 중개 도구를 사용하는 선교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쁜 엽서에 힘과 용기를 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선교하는 것으로 혼인기념일, 생일, 영명축일기념, 세례축일, 등 각종 기념일마다 다양한 엽서를 보내는 것입니다. 엽서를 교구차원에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편입니다. 아픈이들이 많이 나오니 이를 위한 위로기도의 엽서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교육원은 매년 공부를 마칠 때마다 감사성찬례를 올려 수여장을 주는 예식을 갖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년- 복사직, 2년- 성경독서자, 3년 성체, 성혈조력자, 선교사, 평신도 리더의 최고의 권위를 수여하는 예식, 4년- 명예부제, 착복식 5년- 명예사제, 착복식 등 이런 식으로 교구나 교회 안에 예식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 좋을 듯합니다. 어머니회, 아버지회 직제에 따른 수여장을 권위를 가지고 수여하는 예식이 보다 더 선교적이라고 여깁니다. 전례교회이면서 전례를 활용하지 못하고 개신교의 영향안으로 들어가는 듯하여 안쓰럽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님의 함께 하심의 큰 가치를 넣는 것은 믿음생활에 덕이 될 것입니다.
탐욕을 채우는 것으로 사회발전의 동기를 형성한 자본주의가 이제는 어렵게 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항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사회입니다. 약국 pharmacy은 human scapegoat 인간희생자라는 뜻입니다. 약국 pharmacia(파마시아)이라는 말은 pharmacus(파마커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파마커스라는 말뜻은 ‘재난시 도시주민을 대신하여 액땜으로 희생물이 되던 사람(희생자)’을 가리킵니다. 약사라는 말 안에는 희생자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경쟁사회일 때 희생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필수요소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경쟁으로 살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탐욕을 채우고 욕망을 성취하는 삶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로사랑을 실천할 진짜 교회가 이 세상에 드러날 시기가 온 것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필요한 것을 돕는 상호 돕는 방식으로 사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큼 우리에게 다가선 기본소득제도가 서로 돕는 방식입니다. 한국교회협의회 NCCK에서 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를 세워 복음교단의 이양호총회장목사님이 앞장서고 계십니다. 우리 사제중 한분이라도 이 모임과 연결하시기를 빕니다. 10년 훨씬 전에 홍세화와 금민과 함께 제가 기본소독에 대해서 대전 충남대학교 정심화홀에서 포럼을 한적이 있습니다. 많은 활성가들이 기본소득운동을 한 결과로 한 순간에 나라가 기본소득제를 적용하게 된 모습에 놀라고 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흩어져 신앙생활을 하는 선교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기본으로 들어가야만 답이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 마음과 내 마음이 일치되는 길로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료기술체계가 코로나19를 막아낸 것으로 기술체계가 우상이 될 시대가 올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믿는 길이 더 크게 열렸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은 기술체계가 해결해 주지 않으니까요. 생명의 문제는 하느님의 영역이니까요. 인간의 삶의 근본문제를 타치하는 선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 안전, 보호, 치유, 희망, 우정, 사랑 등 성령이 만들어 주는 언어들이 주제어가 될 사회가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humility, and self-control/성령이 만들어 내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사제 안에 있는 성령의 활동이 사제 자신을 지배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제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자신을 지배할 때 성령의 이끄심에 인도되는 인생이 사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사제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의 힘으로만 사는 것이니까요. 세상 잣대로 살다가 망가진 경험 때문에 하느님만 붙잡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세상 잣대로 사는 교만이 사제를 휘감으니 사탄이 준동합니다. 사탄의 주목적은 겸손한 사제를 잡는 것입니다. 사제의 가장 취약한 점을 잡으려 하오니 사제의 취약한 점을 기도로 강하게 하시길 빕니다. 사제의 공동체에 기여하지 않으면 사제로 죽었을 때 자신의 관을 들어줄 사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 전에 신도들이 사제의 곁을 떠나고요. 그러면 비참한 사제가 됩니다. 전에 비참한 사제였는데 이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제이기를 저 자신에게 바라고 동료사제들이 그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