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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를 보고
-인간과 자연의 배타성을 중심으로
1. 들어가기
세계는 하나의 자연이다. 인간 역시 이 세계라는 곳에 살고 있으므로 자연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에 두려워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는 별명이 의미하듯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자연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러한 힘은 산업혁명 이후에 더욱 커지고 인
간들에게 "자연을 극복할 수 있다"라는 자만심을 불러일으켰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연을
생활도구의 하나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필요에 따라서 이리 저리 변화시키는가 하면 각종
대체제를 만들어 기존의 자연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자연의 저항이
있었고 그 저항은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각종 기상이변, 공기
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수질 오염으로 인한 먹을 물 부족 등이 그것이다. 이 때부터 인
간들은 자연의 무서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자연보호"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각종 사회운
동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으려 하는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자연보호를 위해 협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파는 영화라는 유희장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애니메이션
에 있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일본이 이러한 전세계적 관심거리를 놓칠 리가 없다. 본 보
고서에서는 다카하다 이사오의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 폼포코"에 드러난 환경문제에 대해
살펴볼 것인데, 인간과 자연의 배타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2. 줄거리
인가 근처에 너구리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의 존재 법칙을 가지고, 인간들과의
별다른 대립 없이 평화로운 생활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그들 서식지 근처의 인가가 빈집
이 되어 버렸다. 도시로 떠나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집이 포크레인에 의해서 부서
진다. 인간들이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세운 New Town 정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다. 그러나, 너구리들은 인간들의 이러한 의도를 생각지도 못한 채 여전히 '선천적인 낙천성'
을 가지고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라면 점점 그들의 서식지인 숲이 줄
어들고 이에 따라 먹이도 부족해 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너구리들 서로 간에 잦은 다툼이
생기고 결국 너구리들만의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이 한창 중일 때, 오로크 할머니 너구리가
나타나 "모두 져라, 지는 너구리는 모두 죽여라....... 남은 너구리도 살아남지 못한다..... 모두
살 곳이 없다......전쟁은 파멸의 원인이다."라는 말을 하며 전쟁을 종식시킨다.
그 때서야 너구리들은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원인이 인간들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
람은 정말 대단하다, 부처님처럼 모든 것을 순식간에 변화시킨다."라며 이에 대한 대책회의
를 한다. 이 회의에서 "인간연구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변신술을 배워서 그들의 생존권을
갉아먹고 있는 인간들에 대항하려 한다. 변신술을 어느 정도 익힌 너구리들은 인간사회에
들어가 가두실습을 하는 등 최종 시험에 통과한 후 "곤타"를 중심으로 뉴타운 계획 방해 공
작에 돌입한다. 그 과정에 몇몇 인간들이 부상을 입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인간들이 뉴타운 계획에 잠시 주춤하자 너구리들은 춤판을 벌리며 즐거워한다. 이에
고무된 "곤타"는 "인간들은 모두 쳐죽이자."라고 강경책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뉴타운 계획
은 재개되고 너구리들은 좌절한다. 이에 "쇼우키치"는 인간들이 신령의 분노를 걱정하는 점
을 이용해 부처로 변신하는 등의 다소 온건한 대응책을 편다. 여기서 "곤타"와 "쇼우키치"는
대립을 하게 되고 제 3의 대책이 필요하게 된다.
제 3의 대책으로 선택된 것이 변신술 사범을 초청하여 인간들에 대항하자는 계획이었는
데, 사범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쇼우키치의 온건 대응책은 계속된다. 이 때 후지산에서 너구
리 한마리가 후지산을 오염시키는 토사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기 위해 타마쿠료 산에 온다.
그리고 토사의 근원지가 도심이 아니고 또 다른 산이라는 것을 알고 인간들에 대한 분노를
더욱 증대시킨다.
변신술 사범을 기다리다가 결국 봄이 오고 너구리들에게 베이비붐이 일게 되고 개체수의
증가로 서식지와 먹이가 더욱 부족하게 되어 너구리들의 비극은 더욱 커진다. 이 때 시코쿠
의 장로들인 변신술 사범이 드디어 도착하고 특훈을 통해 요괴 대작전을 펼친다. 모든 너구
리들이 전력투구해 벌인 이 작전은 교우부 장로의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성공적이었다며
너구리들에게 용기를 심어준다. 그러나 테마파크인 원더랜드의 사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회
사 선전이었다고 허위 발언을 함으로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실의에 빠져있는 너구
리들에게 류우타로우라는 여우가 나타나 너구리들의 생존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금장대명사
를 유인한다. 그러나 그 생존 방법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변신해서 원더랜들에 취직을 하고
돈을 받아서 인간으로 사는 것이었다. 한 편 "곤타"를 위시한 몇 몇 강경파 너구리들은 인
간들과 맞붙어 계속 투쟁을 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못당해......"라며 전멸하고 만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야시마의 하게 장로는 실성을 하고 보물선을 만들어 변신술을 익히지 못한
너구리들을 태우고 죽음의 길로 항해를 떠난다. 남은 너구리들은 결국 여우의 제안을 받아
들여 인간사회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마지막 춤판을
벌인다.
3. 인간과 자연의 배타성
이 작품은 너구리의 관점에서 인간과 너구리의 배타성을 다루고 있지만, 너구리는 또 다
른 유형의 인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너구리 내부의 배타성-인간에 대한 투
쟁과 인간에서 얻는 먹이 사이에서의 배타성-도 드러난다. 즉 그들이 살고 있는 숲과 그들
의 생존권 사이에서의 배타성이 그것이다.
우선 이 영화에는 인간들의 생존권을 위한 활동이 뉴타운 정책을 위시해 나타난다. 뉴타
운 정책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도시'를 말한다. 인간들이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있어 처
음에는 의식주의 기본만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인구수가 증가하고 그에 따른 그
들의 영역확장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이 뉴타운 정책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이와 배타적으로 너구리 역시 그들의 생존권 보장이 필요하다. 이는 일차적으로 자연의
생존권 보장을 의미한다. 즉 자연도 나름대로의 생명력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우선 인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구리들이 직립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신술이라는 것을 익혀 인간들의 위협에 저항하는 능동성을 보여주는 것
또한 자연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인간 연구 5개년 계획"을 통한 인간 연구에 대한 의지 또
한 너구리, 즉 자연의 능동적 생명력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능동적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자연 또한 봄이 되면 짝짓기를 하고 그에 따른 먹이의 부족 현상을 겪는 한계
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과 자연이 상호 생존권을 위한 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영화에 드러나
는 인간과 자연의 전쟁의 원인이다. 즉 인간과 자연은 '병'이라는 일정한 공간 속에 들어있
는 물과 기름처럼 한 쪽의 영역이 확장되면 다른 한 쪽의 영역이 그만큼 줄어드는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4.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
인간과 너구리 즉, 인간과 자연의 생존권 사이는 위와 같은 배타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상
호 의존성도 지니고 있다. 먼저 너구리가 지니고 있는 인간에의 의존성을 보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이 '먹이'이다. "곤타"가 인간들을 모두 죽이자고 주장할 때에도, "그렇게 되면
튀김, 꽁치, 옥수수, 도너츠, 햄버거 등은 누가 주나요? 그냥 몇 명만 살려두면 안되나요?"라
고 한 너구리가 말하자 너구리들이 모두 이 말에 공감하는 것이다. 즉 아무리 인간들이 자
연에 피해를 준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자신들의 생존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잊
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부처님처럼 모든 것을 순식간에 변화시킨다."라
고 도시화되어 가는 숲을 바라보며 너구리들이 느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즉 부처님과도
같은 자연 변화 능력을 보고 피해의식을 일차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제일 먼저 인간의 그러
한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너
구리는 낙천적인 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너구리들의 이러한 겸손이 없다. 즉 자신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는
자연이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숲 속에 살고 있는 너구
리의 생활영역이 부족하다거나, 먹이가 부족하다는 것에는 전해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의 생활영역을 확장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인간들은 공기라는 것이 그들의 생명력 보
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알고는 있으면서 생활의 편리를 위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등
의 행동을 함으로써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영화에서 너구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
난다. 먹이가 부족한 너구리들이 인가로 먹이를 구하러 가면 덫을 놓아 그들을 죽이는 것이
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 속에서도 인간과 자연의 배타성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5. 인간과 자연의 전쟁
이러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 배타성과 인간의 이기성 때문에 인간과 너구리는 전쟁을 벌이
지 않을 수가 없다. 너구리들은 인간들이 신령의 분노를 두려워한다는 점을 이용해 인간들
의 숲 파괴를 막으려 한다. 그러한 너구리들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이 바로 요괴 대
작전이다. 변신술 사범을 초대하기까지 해서 그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이 요괴 대작전
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성공인 것이다. 그러나 너구리들의 모든 것이라
고 할 수 있는 이 작전은 한 인간의 허위 발언으로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인간의 힘에 비
해서 자연의 힘은 너무나 미약한 것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전쟁에 있어서 자연이 패배할 것
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영화전개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전술했던 인간에 대한 너구리의 의존성에 비해 인간은 너구리들에게의 의존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즉 실제적으로는 상호 의존성을 지니고 있지만,
너구리가 그것을 인정하는 데 반해 인간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
이다.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결국 인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너구리들에게
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너구리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이 그들 자신의 영역확장에
만 집중하는 것이다.
"곤타"가 벌인 강경대응책에서 너구리들이 몇 몇 인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는 하지만,
그래서 뉴타운 계획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지만 근본적인 저지는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곤
타"를 위시한 강경대응파 너구리들은 모두 죽음을 맞는다. "인간에게 못당해....."라는 말을
남기며 그들의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쇼우키치"를 위시한 온건대응파에서도 드
러난다. 쌍동이별 작전을 벌여서 인간들에게 신령의 분노를 인식시키는가 하면, 원래 돌부처
가 없는 숲속에 돌부처로 변신해서 신령의 존재를 일깨워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
들을 쫓아내면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작전인 것이다. 결국
너구리의 짓이라는 것이 탄로남으로 인해 이 작전도 실패하고 만다.
그런데, 너구리의 인간에 대한 전쟁 과정에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선천적인 낙천성
을 지니고 있는 너구리들이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즉 인간으로의 변신술을 익히는 과정에
서 조금씩 난폭하고 파괴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곤타"를 위시한 강경대응파에
서 가장 잘 드러난다. 무조건 인간을 죽이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쇼우키치"를
위시한 온건대응파에서도 나타난다. 쇼우키치가 혼자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러한 온
건적인 대응을 통해서 과연 인간들을 이길 수 있을까?"라며 온건적인 대응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너구리들의 성격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스포츠 경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스포츠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
이기 때문에 상호대립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스포츠 세계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고수, 중수, 하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수의 선수가 하수와 대결할 때는 자신의 실력보
다 좀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 중수의 선수가 고수와 대결할 때는 자신의 실력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상대방의 실력에 따라 자신의 실력발휘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성이 인간과 너구리의 전쟁에서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한다. 즉
낙천적인 너구리들이 파괴적인 인간들과 대결을 벌이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인간들의 파괴성
을 닮아 가는 것이다. 즉, 너구리들이 낙천적 성격에서 파괴적 성격으로 바뀐 것은 그들 내
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인간들의 파괴적 성격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만
나게 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 속에 어느 샌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을 지적한
것인데, 바로 이것이 너구리들에 나타난 인간들의 파괴성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들은 이 전쟁에 임함에 있어 철저히 냉소적이다.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이
것을 '전쟁'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못되는 것이다. 그저 미미한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다.
"쯔루가메 스님" 너구리가 요괴 대작전을 너구리들이 한 것이라는 내용의 투서를 방송국에
보내자 방송국에서 너구리들 인터뷰를 나오지만, 그들이 인터뷰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재미있는 쇼를 위한 것이지 그들에게 절실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원더랜드 사장이 너
구리들의 요괴 대작전을 펼친 자들을 찾아 돈을 벌려는 데에서도 이것은 확연히 드러난다.
즉 너구리들은 그들의 생존권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인간들과 대치하지만, 인간들은
이러한 너구리들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해 나간다. 지루한
그들의 일상에 하나의 새로운 유희 정도로 이 전쟁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전쟁 속에서도 역시, 인간과 자연의 배타성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6. 변신술의 의미
이 영화에는 너구리들의 변신술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인간들의 환경변화 능력, 즉 또다른
형태의 변신술과 대응된다. 즉 이 영화에서의 전쟁이란, 인간의 변신술과 너구리의 변신술의
대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변신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자연에 대한 적응력"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다. 단지 인간들은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자연을 변신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너구리는 자연이 아
닌 자신들을 변신시키는 방법을 택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너구리들은 자연을 변신시
키지 못하고 자신들 스스로를 변신시키는 방법을 택했는데, 이는 전술했던 자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즉 자연을 변신시켜 그들이 필요한 모양으로 바꾼다면
당장은 그들에게 편리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들은, 자신들은 그대로 있고 자연을 변신시키는 방법을 택했는
데, 이는 자연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즉 당장의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먼 미래에 그들에게 올 엄청난 결과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 또한 인간과 자
연의 배타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구리들 중에도 변신술을 하는 너구리와 변신술을 하지 못하는 너구리들이 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했을 때 변신술을 할 수 있는 너구리들은 인간사회에 들어가 살고, 할 수 없는
너구리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기 때문에 죽음의 길로 항해를 떠난다는 설정은 변신술이 자연
에 대한 적응력을 의미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변신술이 있는 너구리들, 즉 적응력
이 있는 너구리들은 인간사회에 들어가 살 수 있지만, 변신술이 없는 너구리들, 즉 적응력이
없는 너구리들은 새로운 자연인 인간사회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7. 나오기
이 영화는 너구리와 인간과의 변신술 대결, 즉 너구리와 인간의 자연에의 적응력 대결을
중심으로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너구리의 배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배타적 성질에
서 인간이 부정적인 대상으로 보여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 부정적인 측면 중에서 가장 근
본적인 원인으로 보이는 것은 자연을 변화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즉 변신술을 적용
함에 있어 인간 자신들에게 변신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자연에 변신술을 사용함으로써 결
국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연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너구리들은 변신술을 자연에 적용하지 않고 자신들 스스로에 적용함으로써 자연에
적응하여 살아간다고 설정함으로써 우리 인간들에게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간이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문득 이
영화가 일본 영화라는 점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고, 이 생각에 이르자 우리 나라의 환경정
책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지반이 불안한 섬나라로 지진 등 각종 자연
재해가 우리 나라보다도 더 많다. 그런데도,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는 일본보다 우리 나라가
더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일본인들의 선천적인 꼼꼼함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나 궁색하다. 일본에서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와 같은 환경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애니메이션의 발달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에서 더 이상 말로만 외치는 자연보호는 수치심밖에 유발할 수 없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일본과의 비교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의 안전한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
진정한 환경보호에 나서야 할 것이다.
첫댓글 관련 검색어 : 슬로건, 산업혁명, 의식주, 환경문제, 너구리 압박
굿입니다 바로 그것임 의식주 환경문제 이런게 다 이 만화에 담겨져있음 꼭좀 보시기를
죄송하지만 3번이나봐서 ㅋ
무지 긴데 3번이나 보시다니 질기십니다 ㅋ
학교에서 3번이나봣음 ㅡ,.ㅡ 일어시간에 샘이한번보여주고 ,,그담에 안봣다고 해서 한번보고 ,,마지막한번은 강제로 ㅋㅋㅋ수업안할려고 봣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