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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18.01.28)]
/ 복음의 진전(進展)
(이장우 목사)
빌립보서 1:12~18 복음의 진전(進展) 2018. 1. 28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본문 12절을 봅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에 인사말과 감사와 기도를 한 후에 편지의 본론에 들어갑니다. 자신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것을 알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가 염려를 하면서 에바브라디도를 보낸 것입니다(빌4:18).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런 염려를 하는 빌립보 교회의 형제들에게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 어떻게 복음이 나아가고 펼쳐지는 일이 됩니까?
우리는 그동안 전도하라는 말을 무수히 많이 들어왔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하늘나라에서 상이 제일 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주업이 전도이고 부업은 직장이라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열심히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일을 잘 되게 하셔서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잘 돼야 전도도 잘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선교를 많이 하면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가 복을 받는다는 말도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가 들어온 내용과 성경이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본문 13절입니다. 바울 자신이 매임 곧 감옥에 갇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곳만이 아니라 그동안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어도 복음은 갇힌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옥에 갇힘으로 인하여 시위대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빌립보에서도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 다음 옥에 갇혔을 때에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다 열렸지만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자살하려던 간수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8~9절입니다. “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복음 전하는 자가 죄인처럼 매이고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이신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 끝날 까지 진전됩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입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은 자신이 제자들을 통하여 이 말씀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바울을 통하여서도 이루십니다.
사도행전 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도 예수님의 자기 의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만이 아니라 스데반 집사도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선 자가 바울입니다. 이런 바울이 예수 믿는 자를 다 잡아 죽이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가다가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이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3:11절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받은 때는 바울사도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소식을 견딜 수 없는 자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게 하는데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이 옥에 갇힌 다음 날 유대인중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결의한 자들 40여명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천부장에게 가서 바울을 공회에서 더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여 데리고 오면 죽이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바울의 조카가 바울에게 알려줍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가이사랴의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보내기 위하여 보병 2백 명, 창병 2백 명, 기병 칠십 명으로 보호하여 보냅니다.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에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옥에 갇히고, 바울을 고발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오고, 총독 앞에서 변론합니다. 변론의 과정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26장까지 보면 2년 넘게(행24:27)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만이 아니라 로마의 시위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로마의 군인만이 아니라 백부장과 천부장들과 총독들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두려워도 하지만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한 것을 탐내어 바울을 자주 불러서 말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을 옥에 가두어 둔 이유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벨릭스 다음으로 베스도가 부임합니다. 베스도 앞에서도 재판을 받게 되자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가이사에게나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베스도도 유대인들의 신임을 얻으려고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겠느냐고 하자 바울은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합니다. 가이사에게 보내려면 상소의 자료가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복음이 입증됩니다.
결국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오다가 배가 파선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선되어 간 곳에서 또 복음이 입증됩니다. 드디어 로마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빌립보서가 로마의 감옥인가 하는 문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바울 사도가 예루살렘에서 잡혀서 감옥에서 약 2년을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로마에까지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옥에서도 약 2년간 지내면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죄수가 아닌데 죄수의 몸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잡혀가는 신세이지만 복음은 전혀 매이지 않고 오히려 로마의 시위대와 총독들과 로마의 본토에까지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바울이 복음 때문에 옥에 갇혀있는데도 형제 중 다수가 바울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 전하다가 옥에 갇혀 있는데 복음 전하는 자들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의 역설입니다. 복음은 핍박하면 할수록 오히려 순수하여지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매임이 오히려 복음의 진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창원기독교 연합회 이단 대책위원회에서 질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이미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만 그 답변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러나 답변을 하다가보니 복음의 변증이 되기에 저에게는 기쁨이라고 하면서 여러분도 이런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당함으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질문으로 인하여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담대하여지는 것입니다.
본문 15~17절입니다. 바울이 옥에 갇힌 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두 종류가 나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전파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들이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른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바울과 인간적인 관계가 껄끄러운 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들은 바울이 복음 전하다가 옥에 갇혔으니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기들이 더욱 옳은 복음의 일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것으로 알고 사랑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본문 18절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런 말씀을 가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리스도만 전하면 된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하여도 저주를 받으라고 한 바울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 안에 바울을 좋지 않게 본 사람들이 자기들의 옳음으로 나타내려고 더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가 증거 되니 나는 기쁘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이단성이 있다거나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서 저를 사랑하여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복음이라고 전한 내용이 여러분 마음에 들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이 목사가 무언가 문제가 있으니 연합회나 노회에서 문제로 삼은 것이 아니냐며 열심히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합시다. 이럴 때에 제가 그리스도가 증거되니 나는 기쁘다고 하려면 무엇이 없어야 가능한 일입니까? 내가 없어져야 합니다. 자아의 죽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빌립보서 1:20~21절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리스도만 내 몸에서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기 때문입니다.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기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교회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기고, 우리 목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긴다면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만 살아있습니다. 내가 아니라도 우리 교회가 아니라도 예수가 그리스도로 전파되는 것으로 기뻐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복음의 진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옥에 갇히고 고난을 받는 모습으로 전하여지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모습으로 복음이 증거되면 안 되는 것입니까? 세상의 표적과 기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이러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세상의 신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십자가의 비밀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들이 옥에 갇히고 순교를 하여도 복음은 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전하여지는지 성경을 봐야 합니다.
사도행전 28:16~20절입니다.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자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가리사랴에 약 2년을 감옥에 있으면서 몇 번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군인들과 백부장과 천부장과 총독들과 왕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내용을 앞에서 보았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에까지 죄수의 모습으로 끌려왔지만 그 모든 과정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는 복음의 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대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그 말씀이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길이 꽃길이 아닙니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를 ‘주’라고 호칭하는 로마의 한복판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가 ‘주’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21~23절입니다.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이 있기에 상당한 자유를 줍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청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합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입니다. 그 결과를 봅니다.
24~31절입니다.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ㄱ)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 3)(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의 복음을 듣고 믿는 자가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고 합니다. 이렇게 로마에까지 전하여진 복음이 또 온 세상으로 전파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파되고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곧 아들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로마에 오는 과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보면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지만 주님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면서 이 길로 이끌어 가시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 복음의 진전은 세상이 볼 때에 멋진 모양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는 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렇게 복음이 입증되리라고 하신대로 이 복음의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약 2천년을 지나 이방의 땅 이곳 창원까지 왔습니다. 이제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되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예수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 온 우주만물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죽기 전에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밀양의 세종병원에서 화재로 인하여 37명이 죽었습니다. 금요 성경공부 방학동안 밀양에서 모이는데 그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마치면서 주님 재림하지 않으면 다음 주에 만나자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 김정은 씨 할머니도 그 병원에 입원하여 있다가 무사히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김건우 씨가 카톡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답장을 이렇게 했습니다.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이런 소식을 보면서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함을 더욱 실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딸과 사위 손자 두 명이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세상이 늘 요란합니다. 그러나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지금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믿는다면 우리의 삶의 모든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입니다. 집을 사면 천국의 집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합격을 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이 되었는지 물어보고, 실패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범사에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