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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 30장 : 사천행(四川行)-5
“을지소문입니다. 좀더 일찍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제게 피치 못할 일이 생겨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색을 회복한 소문
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표행에 나선 은마표국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간 일
이었다. 혼자 가기에는 어딘지 어색해 두아와 함께
표행단이 머물고 있는 선실에 들어섰는데 미리 기별을
받은 표사들과 그들을 이끌고 온 표두 송염(宋炎)은
그런 소문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하, 자네의 피치 못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
에 아무도 없다네. 그런 걱정일랑은 하지 말고 우선
앉게나. 나는 이번 표행단을 맡고 있는 송염이라 한다네.”
소문은 송염이 권하는 대로 선실에 마련된 탁자에 자
리를 잡았다. 잠시 둘러보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선
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선실이었다.
“이제 속은 괜찮은가? 원래 처음 배를 타는 사람은 그
렇게 고생을 하게 되어 있다네.”
송염은 소문이 탁자에 앉자 이름모를 차를 권하며 말
을 꺼냈다.
“예. 이제는 단련이 되었는지 어제와 같지 않습니다.
어제는 정말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하! 설마 멀미 조금 한다고 그렇기야 하겠는가? 하
지만 힘들긴 힘들었는가 보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소문의 말에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한 송염은 고개를
돌려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도준이 자네의 옛날이 생각나는구먼. 그
게 아마 자네의 첫 표행이었지? 나로서는 표두가 되
고나서 처음 한 표행이었고…?”
“예. 표두 어른. 그때는 장강이 아니라 황하(黃河)였습
니다.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소문은 자신의 왼쪽에서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
자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어제 오후에 한참 고생을
하던 자신에게 다가와 약만 올리고 간 그 ‘빌어먹을
놈’이 서 있었다.
“어제 보았지? 정말 고생했네. 그래도 안색이 좋아 보
이는 걸보니 이제는 나도 안심이 되네 그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의 입을 한대 쳐주고 싶은 충
동을 가까스로 참은 소문은 정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대꾸를 했다.
“감사합니다. 다 염려해 주신 덕분이지요.”
“하하! 염려는 무슨….”
그래도 염치는 아는지 그쯤에서 물러나는 예도준이었
다.
“내가 소개를 하겠네. 저 친구는 안면이 있다고 했으
니 되었고, 이 친구는 치평이라 하고, 저기 서 있는
친구는 백은상이라 한다네. 그리고 두 명의 표사가 더
있는데 그들은 배에 실린 물건을 살피고 있다네.”
송염의 소개를 받은 표사들은 저마다 소문의 건강을
물으며 인사를 했다. 소문 자신도 약간의 표국 생활을
했는지라 이들이 왠지 남들 같지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마치 이들의 일행이나 된 듯 금방
친숙해졌다. 물론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런데 물건에 비해서 표사님들이나 쟁자수들의 수가
상당히 적어보입니다.”
“흠, 원래 선박으로 이동하는 표물엔 그리 많은 쟁자
수가 필요 없다네. 표행의 대부분이 배로 이루어 지
다보니 오히려 많은 수의 인원이 불편할 수도 있지.”
송염은 간단하게 말을 했지만 소문의 의구심을 다 해
결해 주지는 못한 듯 했다.
“하지만 이 많은 짐들을 다 옮기기엔 일손이 너무 부
족한 듯 보입니다만….”
“하하, 그 친구 참, 사실 지금은 없지만 배가 떠난 포
구까지는 꽤 많은 인원이 따라왔다네. 그 동안은 육
로로 왔으니까. 하지만 포구에 도착해선 그들의 대부분
을 돌려보냈지. 표물을 실은 배가 도착할 포구와 표
물을 운송해야 하는 곳이 그리 멀지 않으니 운송에
그다지 걱정도 없고, 만약에 그 거리가 멀다면 현지
에서 인원을 구할 수도 있겠지. 장강에 때때로 등장
하는 해적들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성의 표시만
하면 문제가 없다네. 물론 그것은 우리 은마표국에만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아! 그렇군요. 하하! 제가 배를 이용한 표행에 나서본
적이 없어서 그런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소문은 송염의 설명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듯
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지만 그의 말을 듣던 송염과
주변의 표사들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네도 표국에서 일하나?”
“예? 표국이라니요?”
소문은 대뜸 물어오는 송염의 말에 되려 놀라 반문을
했다.
“방금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배를 이용한 표행에 나
서 본적이 없다고 그건 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던가?”
“제가 그랬던가요? 하하, 사실 얼마 전까지 천리표국
에서 쟁자수로 일을 했습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표사도 아니고 단순히 쟁자수의 일
을 했다는 것을 밝히기를 꺼려 하겠지만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소문은 지난 몇 달 동안의 표국
생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였다.
“하하! 자네도 참 괴짜로구먼. 그러니까 사천에 오기위
해 표국에 들어갔단 말인가? 그것도 표사도 아니고
쟁자수로?”
“이친구야! 자넨 귀가 막혔나? 표사로 시험을 보려 했
지만 때를 놓친 것이라 하지 않는가? 오죽 급했으면
쟁자수로 표국에 남았을까….”
치평은 웃고 있는 예도준을 나무랐다.
“그거나 이거나 결과는 마찬가지 아닌가?”
예도준은 자신을 나무란 치평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
다.
“그럼 말씀 나누시지요. 저는 갑판에 나가봐야겠습니
다. 나 먼저 가겠네.”
소문과 은마표국의 표사들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
켜보던 두아가 허리를 약간 굽히며 인사를 한 후 고
맙다는 눈치를 보네고 있는 소문의 어깨를 툭 치곤
선실을 빠져 나갔다.
“나이는 그 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데 이런 배를 소유
하고 있다니 대단한 친구야.”
“그럼에도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
더 많은 배를 소유하게 될지도 모르지. 휴, 한달을 죽
어라 일해야 은자 몇 냥 얻는 내신세가 처량하네 그려.”
두아가 나가자 표사들은 저마다 한 마디 하기에 바빴
다. 누구나 자신과 연배가 비슷한 사람이 자신보다
나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러워하기 마련인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다.
“허허! 그나마 그 은자 몇 냥을 벌지 못해 배를 곯는
가람이 부지기수인데 어째 자네는 배가 부른 모양
이네.”
예도준에게 한소리 하는 것을 잊지 않은 송염은 약간
은 노기를 띠운 모습을 하다가 그저 담담하게 웃고
있는 소문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실 내 자네의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요즘 새롭게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고수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
었다네. 그 친구 이름이 소문이라했지 아마?”
송염은 말을 하면서 표사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 했
다. 그런 송염의 의도에 답을 한 사람은 지금껏 말을
아끼던 백은상이었다.
“예, 이름이 소문인지 아니면 성과 이름을 같이 부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그의 이름이 중원을 진동시
키고 있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세상에 누가 있어서 단신으로
그 무시무시한 혈궁단을 작살낼 수 있으며 패천궁의
호법인 목사혁을 죽일 수 있겠는가? 특히 퇴로를 보
장하기 위해 남았던 남궁세가의 가주를 구하러 홀로
싸움터에 끼어들어 그 많은 무인들과 처절한 싸움을 한
그의 무위란!!”
예도준은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의 무위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아직 확실하게 나타
나지 않았지만 사지(死地)로 뛰어들어 남궁가주를 구
해왔으니 진정한 무인의 의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는 말은 틀림없을 듯 하네. 소문에 의하면 백도는
물론이고 흑도의 청년 무인들조차 그런 그를 동경한다
고들 하네 그려.”
송염도 연신 감탄을 하며 말을 하는데 그들의 말을 듣
고 있던 소문만은 약간은 어색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틀림없이 자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흠, 내 얘기를 하는 모양인데 나서기도 귀찮은 노릇이
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되겠지… 그런데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모양이네. 그까짓 싸움 몇 번했다고….’
소문 자신은 상처를 치료를 받느라고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고, 또한 상처가 치유되자마자 길을 떠나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대한 소문은 무림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한 자루 평범한 철궁을 들고 강호에 나타난 궁귀(弓
鬼)!
전무후무(前無後無)한 활 솜씨를 앞세워 공포의 대상이
었던 혈궁단을 쓸어버리고 수백의 적들에게 포위된
상황 속에서도 유유히 남궁검을 데리고 빠져나온 이
시대의 풍운아(風雲兒)!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도 아니었고, 미리 명성을 떨친
것도 아닌 갑자기 강호에 나타나 그 누구도 해내기도
힘든 일을 해낸 소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경악과 호기심, 그리고 부러움과 질시 등이 뒤섞여 있었
다. 일찍이 이처럼 빠르게 명성을 얻은 사람이 몇
이나 되었던가?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은
벌써부터 백도에도 구양풍 같은 무인이 나타났다고
떠들고 다녔다. 하루가 다르게 퍼지고 있는 소문은 살에
살을 붙여 이제는 소문의 팔이 다섯 개요 천년내공
을 지녔으며, 또한 구양풍을 죽인 것이 소문이라는
등 실로 해괴한 유언비어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몇 명을 제외하고는 소문에 대해 제대로 알
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남궁세가의 싸움에서 소문만큼은 아니지만 사람
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삼광이었다.
지금까지 삼광이란 이름은 그들의 독특한 행동을 비아
냥거리는 사람들에 의해 매우 폄하되고 있었다. 특히
무광 곽검명에 대해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산파의
장문인인 아버지만 믿고 철없이 까부는 철부지’ 정
도로 여기고 있었다. 화산파 장문인의 아들이라는 배
경만 없다면 수 없이 많은 비무에서 이기지도 못하고
그렇게 무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 싸움에서 그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의 활약은
특히나 패천궁 흑기당의 당주인 은세충을 쓰러뜨린
데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 한번의 활약으로 ‘호부(虎父)
밑에 견자(犬子)’였던 그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시
작되었고, 곽검명 못지않게 많은 활약을 했던 색광
형조문과 주광 단견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남궁세가에서의 싸움은 일단락되었지만 그에
따라 많은 말들이 나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소문은 자신이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라
는 것을 일부러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문
이 입을 다물고 있자 사람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새롭게 시작된 백도와 흑도간의 싸움
으로 돌렸다.
“암튼 패천궁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세상에 남궁세가
와 강남의 백도세가 그렇게 허무하게 밀릴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나?”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백도가 아니지. 이미 구파일방
을 중심으로 정도맹이 결성되고 지금 장강일대에 많은
고수들이 대거 모여 있다고 하지 않는가?”
치평과 백운상은 저마다 백도가 유리하네. 흑도가 유
리하네 하며 한참동안 설전(舌戰)을 벌였다. 그런 둘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예도준이 한마디 했다.
“쯧쯧,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는… 누가 이기든 그
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그저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것이라네. 세상에서 싸움구경 만
큼 재밌는 건 없는 법이라구!”
예도준이 너무나 태연하게 말을 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말에 별 관심이 없던 소문마저 입을
쩍 벌리고 경악을 했다.
“자, 자넨 도대체 생각이 있는 인간인가? 무슨 말을
그렇게….”
“내가 뭐라나? 놀라기는….”
기가 막히는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치평을 보며
예도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를 했다.
“허허, 자넨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군. 그들이
아직까지 우리 표사들이나 표국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진
않고 있지만 조만간 그들의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네. 자네가 알런지는 모르지만 중원의 거의 모
든 표국들은 구파일방이나 다른 백도문파의 속가제와
그 문파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일으키고 꾸려오고
있다네. 그 말은 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소림이
나 무당을 제외한 대부분 백도문파의 자금줄이 이런
표국에서 본산으로 보내는 돈이라는 소리가 되고, 흑
도에서는 관의 눈을 의식해 직접적으로 표국을 공격을
하진 않더라도 어떤 수를 쓰던지 표국에서 보내는
자금을 막으려 할 것이 자명하다는 소리가 되네. 그
와중에서 우리 표사들도 적지 않은 희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네. 또한 싸움이 장기화가 되면 우리 표
사들도 백도의 편에서 싸움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지.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자네말대
로 제 삼자의 입장이 아닌 백도의 편에 있다고 보는 게 옳은것이네.”
“아! 그렇군요. 뭐 그럼 보나마나 백도가 이기겠네요.”
송염의 자세한 설명에 대한 예도준의 반응은 매우 간
단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중원에 표국이 몇 개인가? 표사의 수는 얼마이고? 이
들이 백도에 서면 싸움은 끝난 것이지.”
치평의 반문에 답답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본 예도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에 좌중의 모든 이들은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후, 자네랑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어리석지. 그래 자네
말이 다 옳으이. 하지만 하나만 말하겠는데 패천궁의
일반 무사하나라도 우리가 당해낼 성 싶은가? 어림
도 없지. 우리는 그냥 머리수를 채우는데 동원될 뿐이라
네. 이 답답한 친구야!”
예도준이 치평의 말에 발끈하여 뭐라 말을 하려 했지
만 송염의 말에 막히고 말았다.
“그만들 하게. 손님을 앞에 두고 이 무슨 실례인가?”
예도준과 치평이 송염의 호통에 뜨끔하여 조용히 입을
다물자 소문은 그런 그들을 보며 살며시 웃음을 지
었다. 이제 인사도 다 했으니 이쯤에서 나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하, 손님이라니요. 그냥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그
리고 저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직 속이 완전치
않아서 강바람이라도 쐬어야겠습니다.”
“그리하려는가? 그럼 그렇게 하고, 앞으로 며칠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
자주 보세나.”
“예. 표두 어른. 그럼….”
소문은 송염의 부드러운 말에 절로 편안함을 느끼며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선실을 빠져 나왔다.
‘에구, 남선북마(南船北馬) 좋아하네. 난 도저히 이런
여행은 못하겠다. 이렇게 따분하고 심심할 줄이야…
조금은 힘들더라도 그냥 걸어서 갈 걸 그랬나?’
첫날 배를 타고 멀미에 고생한 이후 더 이상 소문을
괴롭히는 것은 없었다. 다만 다양한 풍경과 인간들을
볼 수 있었던 육로의 여행보다는 계속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이 따분할 뿐이었다. 그나마 배
에서 바라보이는 좌우 강변의 풍경이 빼어났기에 망
정이지 그마저 볼품없었다면 도저히 버티지 못했을
여행길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결국 지루함을 참지 못한 소문은 지금 배위 한구석에
서 늦가을의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기고 연신 하품을
하며 오지도 않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소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싸늘하게 빛나
는 눈빛의 주인이 서 있었다.
이제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는 소문에게서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임무을 맡게 되었을 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온 말에 따르면 상대는 자신이
지금껏 상대한 어떤 무인보다 뛰어나고 위험한 자였
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만해도 그런 느낌은 계속 되
었다. 육척이 넘는 당당한 체격, 군살하나 붙지 않은
무공으로 단련되어 보이는 날씬한 몸. 과연 대단한
자라고 내심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그의 생각이 깨어진 것은 불과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판을 붙잡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토하는 그의 모습
은 고수의 풍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암습도 할 것 없이
그저 손만 한번 내지르면 목숨을 취할 수 있으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혹시 목표물을 착각한 것은 아닌
가 하여 재차 확인을 했다. 그러나 그의 선실에서 궁
을 확인해본 결과 목표는 정확한 것이 분명했다. 처음
그가 봇짐에 싸서 지니고 있었던 궁이 결코 장식용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 하마터면 활을 들다가 손목이 부러질 뻔 했었으니까….
상대가 정확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오히려 기운이 빠지
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따위 상대에게 그
토록 긴장을 하다니…
‘흥, 지금 당장 공격해도 네놈의 목을 취할 수가 있겠
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있으니 하루만 더 목숨을 연장
시켜 주마. 이제는 네놈을 관찰하는 것조차 지겹다.’
냉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그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자신이 지금간단하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가 혈궁단을 전멸시키고 목사혁을 저
세상으로 보낸 자라는 사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소문의 목을 노리는 자, 그의 이름 혈영일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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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 30장 : 사천행(四川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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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주님! 배가 오고 있습니다. 어찌합니까?”
수하의 보고를 받던 용골채龍骨寨) 채주 노적삼(駑狄三)은
지금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방금 전 수채의 재물을 담당
하는 계구(鷄口)의 말에 의하면 수채의 살림이 말이 아니라
는 것이었다. 계구가 따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 원인을
모를 노적삼이 아니었다. 수채의 살림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 사람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노적삼이 자신의 앞에서 하품을 했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안채를 차지하고 있던 계집을 쫓아내고 애향(愛香)이라는
기녀를 안채로 들인 게 정확하게 석 달 전이었다. 애향
은 붙임성 있는 성격과 애교로 성질 더럽기로 인근에 소
문이 자자한 노적삼을 완전히 휘어잡고 요즘은 제법 강짜
까지 부리고 있었다. 다른 계집 같으면 바로 내치던지 아
니며 팔아넘기고도 남았을 일이었지만 노적삼은 그렇게 하
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
과 투정이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여
애향의 앞에선 조금의 화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노적삼이 그저 별일 아닌 일을 가지고 꼬투리 삼아 벌써
수십 명의 여자를 갈아 치운 이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고 있는 수하들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여자는 그저 욕구불
만(欲求不滿)의 해소거리에 불과하다고 늘상 생각을 해왔
던 노적삼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애향이 용골채에 들어 온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지났지만
수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노적삼이 애향의 비
위를 마치기 위해서 금이며 옥이며, 비싼 장신구와 보석들
을 있는 대로 사다 바치는 통에 노적삼은 제대로 알고 있
지 못했지만 이제 수채에 남아 있는 돈이라고는 땡전 한
푼 없었다. 당장 며칠 뒤부터는 식량걱정을 할 판이었다.
장강을 주 활동 무대로 하는 장강수로연맹(長江水路聯盟)
의 하나이자 사천의 수로교통(水路交通)의 길목을 차지하고
있는 용골채는 여타 다른 수채들에 비하여 그 규모나
재력이 뛰어나 수로연맹에서도 거의 세 손가락 안에 들 정
도로 명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명성의 용골채가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뿌리 채 흔들리고 있었는데… 결국 보다
못한 계구가 오늘 아침 이런 수채의 사정을 말하며 더
이상의 낭비를 하지 말 것을 권유한 것이었다. 비록 자신
의 수하지만 오랜 친구사이이기도 한 계구의 말에 얼굴을
들지 못한 노적삼은 그래도 애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침부터 기분이 바닥을 기고 노적삼의 어투
는 당연히 험악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니? 우리가 언제 지나가는 배를 구경만 하였더냐?
당연히 붙잡아야지. 그래 어디 쯤 왔다더냐?”
“지금 막 미령협(靡寧峽)을 지나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
다.”
대답을 하는 우치(愚癡)는 바싹 긴장을 하며 조심스레 말
을 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어떤 배라더냐? 또 계집이나
끼고 배때기 부른 놈들이 타고 돌아다니는 유람선(遊覽船
)이라더냐?”
“아닙니다. 아직 자세한 연락이 온 것은 아니지만 배안에
그다지 사람들이 없고 대신 물건이 많이 쌓여 있다고 하니
아마도 상선(商船)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선?”
반문을 하는 노적삼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일들을 단숨에 해결해 버릴 구세주(救世主)가
나타난 것이었다. 노적삼은 우치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
에 자신의 옆에 서 있던 한 사내에게 명령을 내렸다.
“배를 접수하러 간다. 부채주는 곧 떠날 준비를 하라.”
“예, 채주님”
부채주라 불린 사내와 우치는 노적삼의 명이 떨어지자 급
한 걸음으로 자릴 떠났다. 누구보다 노적삼을 오래 모시고
있던 그들이었기에 지금 노적삼의 상태가 어떤지 잘 알
고 있었다. 행여나 꼬투리가 잡히면 어떤 치도곤을 당할
지 몰랐다. 당연히 동작이 재빠를 수 밖에 없었는데 급하
게 나가는 부채주를 보며 계구는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 그 배를 아예 깡그리 털 작정을 하였구만.”
“흐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네 말대로 이대로 가다간
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 이때에 그런 상선이 나타나다니,
죽으라는 법은 없네 그려. 하하하!”
노적삼은 마치 모든 일이 해결이 된 듯한 얼굴을 하며 크
게 웃었다. 그러나 그런 노적삼을 보는 계구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더욱 못 마땅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우리가 장강수로맹의 하나로 인정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통행세는 받아왔지만 아예 전부를 뺏은 적은 없었네. 그
로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나 관에서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그런 원칙을 무너트리겠다는
것인가?”
“하하, 이런! 자네의 고질병이 또 도졌구먼. 그놈의 걱정,
하지만 염려 말게 비록 물건을 빼앗기는 하겠지만 가급적
살생을 하진 않을 것이고, 어차피 썩어빠진 관리 놈들이
우리를 잡으러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일이 아닌가
?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은 접고 과연 어떤 물건들이 들
어오나 확인이나 해 보세. 하하하!”
그러나 계구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세. 어차피 우리는 수
적(水賊)이고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런 수적질에도 도리가 있다는 것
은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좋네. 어차피 결심리 선 것 같
으니 이번만은 말리지 않겠네. 그런데 내 생각에 이런 일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일세. 자
네가 그 애향이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오늘과 같이 지나가는 배로부터 통행세가 아닌 모든 물
건들을 빼앗아야만 할 것이네. 그리되면 아무래도 관에서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 우리를 못 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는 구파일방으로부터 공격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며 어쩌면 다른 수채에서조차
경원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르네. 난 그것이 걱정이 되는
것이지….”
계구의 진정어린 말에 그저 하나의 일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고만 생각했던 노적삼도 차츰 신중한 자세가 되어 뭔
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잠시 후 침묵을 지키던 노적삼이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후, 내 자네의 말을 들으니 몹시 부끄럽네. 고작 계집 하
나 때문에 나를 믿고 따르던 수하들과 우리가 애써 키운
용골채가 이런 곤란을 겪계 되다니… 하지만 말일세. 그렇
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년에게 향하는 내 마음을 나도 어
쩔 수가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계집이라면 발가락의 때
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데 일이 이렇
게 되고 보니 나도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그년
을 보게. 얼굴이 이쁜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방중술(房
中術)이 뛰어나지도 않다네. 오히려 그쪽에선 젬병이지.
하지만 그년이 살살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흐
뭇하고 잠시라도 얼굴을 찌푸리면 내 마음이 흔들리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
계구는 탄식을 하는 노적삼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자네는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가 보군. 나이 사심이
다 되어 사랑이라… 허허! 이 것참….’
계구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자 노적삼 또한 허
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았네. 친구라던 내가 자네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구만. 하지만 이번엔 일이 이리 되었지만 다음엔 이런
일이 없어야 하네.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 애향이의 욕심
을 채우려면 힘 꽤나 들겠지만 까짓 못할 것도 없지. 하
지만 자네도 애향이의 버릇을 좀 고치려는 노력은 좀 해야
할 것이네.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으니….”
“고…맙네….”
다른 말은 없었다. 그저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서로의 마
음을 알 수 있었다. 노적삼과 계구는 그런 사이였다.
“하암!”
소문은 갑판에 기대어 연신 하품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때우기는 잠자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었는데 그나마 너무
많이 잠을 자서 그런지 계속 잠을 청하는데도 오라는 잠
은 안 오고 한품만 나오고 있었다.
“이런, 그러다 입이라도 찢어지면 어쩌려구 그러는가?”
멀미를 한 첫날을 제외하고 벌써 사흘째 그러고 있는 소문
의 모습을 보고 있는 두아는 이미 체념을 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배가 지나는 곳마다
이곳은 어떤 곳이니, 저곳은 무슨 명승지(名勝地)니 하며
어떻게든 지루한 여행이 되지 않게 해 주려고 노력을 했지
만 그때뿐이었다. 자신의 말을 할 땐 그나마 약간의 관심
이라도 보이다가 말이 끝나면 바로 저 모습-연신 하품을
하며 지겨워하는 모습-을 하곤 했다.
“아직 멀었습니까? 도저히 지루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자넨 정말 특이한 사람이야.”
두아가 신기한 물건을 쳐다보듯이 자신을 보자 약간은 기
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대답하는 소문의 말투가 퉁명했다.
“뭐가 신기하다고 그러십니까? 지루해서 지루하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허허, 자네가 지금 지나오고 가고 있는 길이 어떤 이름을
지닌 것인지 아는가? 그 유명한 장강일세.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 옆으로 펼쳐진 비경(秘境)을 보기 위해 얼마
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여가며 이곳으로 몰려오는지 아
는가 말일세. 그런 곳을 지나오며 자네가 보인 반응이란
어떤 것인가? 첫날은 구역질만 하다가 그 다음날부터는 매
일 같이 잠만 자려고 하지 않았는가? 아, 밤에는 술 먹
느라고 정신이 없었긴 했었지….”
두아는 도대체 주변 자연을 감상할 줄 모르는 소문이 너무
도 답답했다. 무식한 뱃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자신들도
장강과 기암절벽, 주변의 자연들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광경
을 보고 있노라면 시라도 한수 짓고 싶은 심정이 들곤 하는
데, 그걸 지겨워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암튼 비경이든 뭐든 전 하루라도 빨리 배에서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저하고 배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흐이구! 그렇게 설명을 했건만….”
혀를 차며 돌아서려던 두아의 안색이 변한 것은 순식간이
었다. 뭔가 이상한 것을 본 것일까? 소문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두아의 시선을 쫓았다. 그곳에는 지금 소문이 타고
있는 배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보다 날렵하게 생긴 두 척
의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뱃머리에는 비상하는 용이 그
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배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
이 타고 있는 갑판위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
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용골채로군….”
두아가 조용히 읊조리고 있을 때 어느새 알았는지 선실에
있던 은마표국의 사람들이 뛰어 올라왔다.
“심상찮은 배가 다가온다는 소릴 듣고 왔네만.”
두아의 곁으로 다가온 송염은 다짜고짜 질문을 했다.
“예. 아마도 이 근처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용골채가 나타
난 것 같습니다.”
두아는 송염의 말에 대답을 하며 손을 들어 다가오는 뱃머
리에서 펄럭이고 있는 깃발을 가리켰다.
“흠, 그렇구먼. 우리가 벌써 강진(江津)까지 이르렀군. 너무
걱정하지 말게. 저들하고는 안면이 있으니 별일은 없을
것이네.”
송염은 잔잔한 강바람에도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에 수놓아
진 용의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면을
트고 지내는 수적들이 나타나서 약간은 안심을 하는 모양
이었다.
“배에 타고 있는 인원을 갑판에 다 모이게 하는 것이 좋겠
네. 그게 혹시나 하는 저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는 길이
기도 하니.”
“그리하지요.”
두아는 노를 젓는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갑판
에 모이도록 조치했다. 그래봤자 표국의 인원을 제외하면
얼마 되지 않는 수였다.
“두칠(斗七)형님. 저들이 그 유명한 장강수로연맹이라는 수
적들인가요?”
소문은 막 갑판에 모인 사람들 중 안면이 있는 선원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소문이 멀미를 하는 통에 고
생하고 있을 때 계속 옆에서 소문을 보살펴준 사람이었다.
밤마다 선원들, 표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도 여전
히 속이 이상하다고 투정하는 소문을 위해 끼니때마다 죽을
써서 가지고 오는 자상한 사람으로 소문보다 네 살이
많다고 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나도 이배에 탄지 꽤 되긴 했지만
사천엔 처음이거든.”
두칠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두아님이나 은마표국 사람들이 그다지 긴장하는
모습들이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듯 싶은데? 원래 통행세는
어디서나 있는 것이잖아.”
“예. 그야 그렇지요.”
소문은 그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일이 잘 안돼서 싸울 수도 있지요.’
소문이 지난 천리표국에서 일할 때 잠깐의 실수가 많은 사
람들의 희생을 야기했던 호구채와의 싸움을 떠올리며 생
각에 잠길 때 어느새 다가온 용골채의 배들이 소문이 탄 배
를 지나쳤다. 그리고 방향을 바꾸어 순식간에 좌우에서 나
란히 붙으며 다가온 배의 양쪽에서 무수히 많은 밧줄이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세척의 배를 하나의 배로 만들어 버렸
다. 배들이 단단하게 연결된 것을 확인한 용골채의 수적들
이 하나둘 건너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단순히 통행세만 받으려면 이렇게 많은 인
원들이 넘어올 필요는 없을 텐데…?’
좌우의 배에서 건너오는 수적의 수는 한 둘이 아니었다.
어림잡아도 벌써 사오십은 되어 보이는 인원이었다. 두아나
은마표국의 사람들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 긴장하
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하! 먼 길 오시느라 수고했소이다. 나는 이곳 장강을 책
임지고 있는 용골채의 채주인 노적삼이라 하오이다. 누가
저와 말씀을 나누시겠소?”
“노채주시구료. 나는 은마표국의 표두 송염이라 하오. 장강
의 호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송염이 대뜸 나서서 포권을 하자 얼떨결에 마주 포권을 하
던 노적삼의 얼굴이 심히 일그러졌다. 혹시나 했던 것이
어김없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흐흐, 저거 보이나? 배는 그리 크지 않은데 상당히 많은
짐들이 실려 있구만.”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확신
을 가지고 말을 하는 노적삼을 바라보는 계구의 입에 미
소가 걸렸다.
“하하, 자네가 그걸 원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직 뭐가 뭔
지 하나도 보이질 않네만.”
“허, 이친구야. 그건 자네가 나보다 무공이 약해서 그런 것
이 아니던가? 내 눈에는 다 보이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이
쌓여 있다네.”
노적삼은 계구의 말을 단숨에 일축(一蹴)하고 연신 고개를
빼고 있었다. 그런 노적삼을 바라보는 계구와 용골채의
수적들은 연신 웃고 있었다.
“이것들이! 웃지만 말고 빨리 배나 가까이 대라. 참 그리고
배에 오르더라도 함부로 살생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
심하고. 우리는 그저 물건만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알
았느냐?”
“예. 채주님.”
수하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자 흡족해한 노적삼은 고개를
돌려 계구를 쳐다보았다.
“참, 부채주에게도 말을 전했어야 했는데….”
“내가 미리 말을 해 놓았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자네
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네.”
“흐흐, 좋아! 왠지 느낌이 좋네.”
노적삼은 알아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과 모든 일이 생각대로 잘 되는 것을 기뻐하며
몹시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마음은 시간이 지나고
배가 가까이 접근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이거 어째 이상한데. 짐은 많은데 사람들이 너무 적어.”
“그렇지? 나도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혹시…?”
계구가 어두운 안색을 하자 노적삼은 재빨리 재촉을 했다.
“혹시라니?”
“저밴 우리의 생각처럼 일반 상선이 아니라 표국에서 표물
을 운반중인 배라는 생각이 드네. 상선이라면 유람선처럼
북적이지는 않더라도 의당 어느 정도의 사람들로 부산하
기 마련인데 그런 움직임도 없고, 또한 저배도 작진 않지
만 상선이라기엔 약간의 손색이 있기도 하고….”
계구가 조심스레 말을 했지만 노적삼은 믿지 않으려 했다.
“설마, 자네말대로 표물을 운반중이라면 표국을 상징하는
표시가 있어야 하는데 배 어디에도 그런 표식은 없지 않
은가?”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그리고 까짓 표국이면 어떤가? 오히려
표물이 뒷탈이 없지.”
노적삼의 태연한 말에 깜짝 놀란 계구가 황급히 말을 이었
다.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뒷탈이 없다니. 관군 따위야 문
제 될 것도 없지만 표국이라면 사정이 달라지네. 표물을
잃은 표국은 물건의 손실도 손실이지만 떨어진 신용을 만
회하기 위해 악착같이 덤벼든 다는 것을 모르는가? 더구나
약간의 이름이라도 있는 표국이라면 주변의 사람들만 모
은다 하여도 우리에겐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을 잘 알지
않은가? 물론 장강에서 우리와 싸울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
래도 그건 모르는 일, 만약 표물이라면 행여나 건드릴 생각
을 하면 안 되네. 저들도 우리에게 약간의 성의 표시는
할 것이니 그 정도로 끝내도록 하세.”
계구는 평상시와 다르게 상당히 강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노적삼도 계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알았네. 만약 표물이라면 내 그리 하도록 하지. 그러니 아
무 염려 말게나. 하지만 표물은 아닐 게야. 내 장담을
하지.”
노적삼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말을 했다. 하지만 계
구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해요~~~^~
즐감~!
잘보았습니다
ㅎㅎㅎ
즐감하고갑니다.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 합니다
잼납니다
ㅈㄷㄱ~~~~~~~~~~``````````````````
즐감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견물생심
표물
ㅈㄷㄳ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좋아
즐독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